프로야구 삼성과 두산이 오는 24일, '꿈의 무대' 한국시리즈에서 재회한다.

한국시리즈에서는 역대 네 번째이자 2005년 이후 8년만의 재대결이다. 통산 전적에서는 두산이 2승 1패로 근소하게 앞서고 있다. 하지만 삼성은 2005년 대결에서 두산에 4전 전승으로 완승을 거둔 바 있으며, 이때부터 현재까지 총 4회의 한국시리즈 우승을 쓸어담으며 올시즌에는 통합 3연패에 도전장을 던지고 있다.

두 팀의 인연은 프로 원년인 198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역대 최초의 한국시리즈 파트너가 바로 삼성과 두산의 전신인 OB 베어스였다. 사자군단에게는 어찌보면 지긋지긋한 한국시리즈 20년 잔혹사의 '시작과 끝'에 바로 곰이 있었다.

1982년 당시는 전후기리그 체제에서 OB는 전기리그 우승, 삼성은 후기리그 우승팀 자격으로 한국시리즈에서 만났다. 초반 페이스는 삼성이 앞섰다. 1차전에서 연장 15회 끝에 3-3으로 승부를 가리지 못했고, 이후 2차전은 삼성이 9-0으로 완승하며 기선을 제압했다.

하지만 OB는 이후 내리 4연승으로 원년 챔피언에 등극했다. 가장 극적인 장면은 최종 6차전에서 OB 김유동이 4-3으로 앞선 6차전 9회초 삼성 투수 이선희에게서 만루홈런을 뽑아내며 승부에 쐐기를 박은 장면이다. 삼성의 한국시리즈 잔혹사에 시작을 알린 장면이다. 이후로 삼성은 20년간 7차례나 한국시리즈에 도전했으나 한 번도 우승을 차지하지 못했다.

한국시리즈 역사상 가장 화제가 되었던 대결

두 팀의 한국시리즈 재대결은 그로부터 19년이 지난 2001년에야 다시 성사된다. 양팀의 한국시리즈 역사상 가장 화제가 되었던 대결이기도 하다.

당시 한국시리즈 우승에 목말랐던 삼성은 해태에서 '우승청부사' 김응용 감독을 영입한 것을 비롯하여 파격적인 투자로 호화군단을 꾸리고 있었으며, 정규시즌 1위로 이미 한국시리즈에 직행한 상태였다. 두산은 5할이 조금 넘는 승률로 정규리그 3위에 올라 준플레이오프에서 한화(2승), 플레이오프에서는 현대(3승1패)를 제치고 한국시리즈에 올랐다.

십중팔구는 전력에서 월등히 앞선 정규리그 1위 삼성의 우승을 전망하는 의견이 대다수였다. 하지만 물오른 두산의 기세는 전문가들의 예상을 보란듯이 뛰어넘었다. 2001년 한국시리즈는 역대 최고의 타격전으로도 회자되고 있는데, 절정은 3-4차전에서 벌어졌다. 두 경기 연속 한국시리즈 양팀 최다득점(20점-29점), 팀 최다득점(11점-18점), 1경기 최다안타(34안타), 1이닝 최다득점(삼성 2회 8득점, 두산 3회 12점/ 4차전) 기록 등을 연이어 경신했다.

삼성은 한국시리즈 사상 처음으로 1차전에서 승리하며 기세를 탔으나 2차전이 뜻하지 않은 가을비로 하루 연기된 것이 지쳐있던 두산 타선에게 유리하게 작용했다. 힘을 비축한 두산 타선은 2차전에서 9-5의 완승을 이끌었다. 당시 한국시리즈 흥행을 위하여 남은 3~7차전을 모두 잠실에서 연 것도 삼성에게는 불운이었다.

본격적인 난타전의 서막을 알린 3차전에선 두산은 삼성에 11-9로 승리했다. 하지만 이마저도 4차전과 비교하면 예고편에 불과했다. 두산은 4차전 1회말 우즈의 2점 홈런으로 2-0의 리드를 잡았으나, 삼성은 2회초 7안타 3볼넷을 묶어 8득점, 단숨에 전세를 역전시켰다. 많은 이들이 사실상 흐름이 삼성으로 넘어왔다고 예상했다.

그러나 삼성의 리드는 오래가지 못했다. 두산은 바로 3회말 공격에서 김동주-안경현의 랑데뷰 홈런을 포함한 장단 7안타를 몰아치며 무려 12점을 퍼부었다. 종전 2회에 삼성이 갱신했던 한국시리즈 한 이닝 최다득점 신기록을 불과 1시간 만에 경신한 기록이었다. 특히 김동주는 10-8로 앞서던 1사 만루에서 박동희를 상대로 1982년 김유동에 이어 한국시리즈 사상 두 번째 만루홈런(그것도 똑같은 삼성을 상대로)을 쏘아올리며 승부에 쐐기를 박았다. 두산의 18-11 승리. 사실상 흐름이 두산 쪽으로 기우는 듯한 결정적인 장면이었다.

삼성은 5차전을 잡으며 기사회생하는 듯했으나 6차전에서 다시 3번의 역전을 주고받는 접전 끝에 두산에 5-6으로 덜미를 잡히며 우승이 좌절됐다. 두산으로서는 1982년, 1995년에 이은 통산 세 번째 우승이었고, 삼성으로서는 통산 일곱 번째 한국시리즈 준우승이었다. 김응용 삼성 감독의 '한국시리즈 9연속 무패신화'가 처음으로 막을 내리는 순간이기도 했다.

가을잔치서 만날 때마다 명승부 연출한 삼성과 두산

두 팀의 마지막 대결의 막은 4년 뒤인 2005년에 올랐다. 이때는 양팀 모두 사령탑이 바뀌어 있었다. 삼성은 김응용의 후계자로 꼽히던 선동열 감독이 지휘봉을 잡은 첫 해였고, 두산은 김인식 감독의 뒤를 이은 김경문 감독이 부임 2년차 만에 처음으로 팀을 한국시리즈로 이끌었다. 두 사람은 고려대 선후배 사이이기도 했다. 당초 두산 감독 내정설이 파다하던 선동열 감독이 삼성 지휘봉을 잡으며 사실상 김경문 감독이 대타로 지휘봉을 잡는 비하인드 스토리도 있었다.

하지만 2005년 승부는 예상보다 싱겁게 끝났다. 이미 2002년 한국시리즈 첫 우승을 거머쥔 삼성은 더 이상 큰 경기에서 벌벌 떨던 새가슴이 아니었다. 정규리그 2위였던 두산은 플레이오프에서 전임 김인식 감독이 이끌던 한화를 3연승으로 격파하고 기분 좋게 한국시리즈에 올랐지만 삼성의 높은 벽을 절감했다. 삼성은 4전 전승으로 두산을 아이 다루듯 격파하며 2001년의 빚을 갚았다. 역대 가장 싱거운 한국시리즈로도 기억되는 이 대결은 삼성과 두산의 무게추가 바뀌는 전환점이기도 했다.

삼성은 2002년 첫 우승 이후 총 5회의 한국시리즈 우승을 거머쥐며 두산(3회)을 추월했다. 2005년과 2006년, 2011년과 2012년에는 두 번이나 한국시리즈 통합 2연패도 달성했다. 반면 두산은 2001년 마지막 우승 이후 3번이나 다시 한국시리즈 무대를 밟았으나 번번이 준우승에 그치며 더 이상 우승컵을 추가하지 못했다.

이밖에도 한국시리즈는 아니었지만 양팀의 대결에서 빼놓을 수 없는 또 한 번의 명승부는 2010년 플레이오프(PO)였다. 삼성이 3승 2패로 신승했는데 5경기 모두 1점차 승부라는 진기록이 나왔다. 특히 최종전에서는 삼성이 두산에 0-5로 뒤져 패색이 짙었으나 두산 선발투수 켈빈 히메네스가 경기 중반 갑작스럽게 손톱이 벗겨지는 불운과 함께 구위가 뚝 떨어지며 삼성의 추격이 시작됐다. 결국 삼성은 5-5 동점을 만들었고 연장 11회말 두산 마무리 투수 임태훈을 상대로 박석민의 끝내기 내야안타를 뽑아내며 극적인 6-5 승리를 거뒀다. 많은 야구팬들은 지금도 역대 포스트시즌을 통틀어 최고의 명승부 중 하나로 2010년 플레이오프를 꼽고 있다.

두 팀은 가을잔치에서 만날 때마다 대부분 명승부를 연출했고, 숱한 이야기와 진기록들을 써내려갔다. 삼성은 이번 한국시리즈에서 역대 최초의 정규리그-한국시리즈 통합 3연패와 함께 두산에 졌던 12년 전 한국시리즈의 빚을 갚는다는 데 의미가 있다. 두산은 2001년 이후 멈춰었던 팀의 네 번째 우승에 도전장을 던지며 역대 최초로 정규시즌 승률 4위팀의 한국시리즈 우승이라는 또 한 번의 기록에 도전한다.

삼성의 '신화'와 두산의 '미라클', 후세에 2013 한국시리즈의 키워드는 무엇으로 기억될까.


☞ 관점이 있는 스포츠 뉴스, '오마이스포츠' 페이스북 바로가기

야구
댓글1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