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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석봉에서 본 상사암과 상주해변
 제석봉에서 본 상사암과 상주해변
ⓒ 김종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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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쪽 바닷가 '한 점 신선의 섬(일점선도, 一點仙島)'에 아름다운 산 하나가 있다. 초록 비단을 휘두른 산자락이 성큼성큼 바다로 내려간다. 어느새 비단산이 쪽빛 바다까지 덮어 버리자 뭍과 바다의 경계는 사라졌다.

금산. 이 산의 도움으로 왕에 오른 이성계가 은혜를 갚으려 비단으로 온 산을 감싸는 대신 산 이름을 '금산'이라 불렀다는 얘기는 아득해진 지 오래. 금강산에 버금간다는 소금강이니 하는 수식어는 필설의 형용에 그칠 뿐이다. 밖에서 언뜻 보면 금산은 그다지 높지 않은 한낱 바위산에 불과하나 안으로 들어서면 기기묘묘한 풍광에 산의 깊이를 쉬이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로 오묘하고 옹골차다.

제석봉에서 보면 일월봉과 형리암, 보리암, 탑대 등 기암괴석의 전시장 같다.
 제석봉에서 보면 일월봉과 형리암, 보리암, 탑대 등 기암괴석의 전시장 같다.
ⓒ 김종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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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리암
 보리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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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부터 선인들은 금산의 이런 선경을 두고 '금산38경'이라 하여 그 경치를 아꼈다. 망대, 문장암, 대장봉, 형리암, 탑대, 천구암, 이태조기단, 가사굴, 삼불암, 천계암, 천마암, 만장대, 음성굴, 용굴, 쌍홍문, 사선대, 백명굴, 천구봉, 제석봉, 좌선대, 삼사기단, 저두암, 촉대봉, 향로봉, 사자암, 팔선대, 상사암, 구정암, 감로수, 농주암, 화엄봉, 일월봉, 요암, 부소암, 상주리 석각, 세존도, 노인성, 일출경이 금산이 자랑하는 38경이다.

오늘(10월 5일)은 금산 38경에서도 으뜸가는 풍경을 보기로 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일출경'을 보기 위해 새벽 금산을 오른 것. 해가 뜰 새라 종종걸음을 쳐서 제석봉까지 한달음에 걸었다.

제석봉에서 본 남해 풍경
 제석봉에서 본 남해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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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해 제일의 경승지 상주해변
 남해 제일의 경승지 상주해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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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필 제석봉인가!

조물주가 빚어 이처럼 아름다운 조각을 전시했는가. 제석봉에 오르면 벼랑 끝에 한 떨기 꽃처럼 피어난 보리암을 가장 멋들어지게 볼 수 있다. 암자 뒤에 우뚝 솟은 대장봉에서 내려다보는 보리암의 정취도 빼어나지만 제석봉에서 보는 보리암이야말로 그 부감의 풍경에 절로 감탄이 인다. 웅장하고도 위엄 있는 대장봉과 금방이라도 떨어질 듯 허리를 굽힌 형리암, 그 아래 위태하게 자리한 보리암과 삼층석탑을 받치고 있는 절벽 탑대의 기묘함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곳이 제석봉이다.

또한 대장봉 왼편에 있는 세 개의 바위 농주암과 화엄봉, 일월봉으로 이어지는 기암괴석의 조각은 가히 일품이다. 근엄한 듯 의젓하고, 지긋한 듯 위엄 있는 바위들은 신비로움마저 자아낸다. 가까이서 보면 날 일(日)이고, 멀리서 보면 달 월(月)자 모양인 일월봉은 듬직함을 넘어 경외감마저 든다.

벼랑 끝에 한 떨기 꽃처럼 피어난 보리암
 벼랑 끝에 한 떨기 꽃처럼 피어난 보리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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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석봉에서 본 남해 풍경
 제석봉에서 본 남해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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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바다로 눈을 돌리면 또한 어떠한가. 보리암에서 금산 정상을 오르다 보면 어느 곳에서든 바라보는 한려수도의 경치는 그만이다. 앞바다에 점점 떠 있는 섬들의 천국. 미조 앞바다의 호도, 애도, 밤섬, 목섬, 송치도, 삼여도, 소치도... 그리고 살포시 입을 다문 듯 벌린 상주해변의 포구는 숨 막힐 듯 흥분된다. 금산을 배경으로 삼은 상주는 과연 남해 제일의 경승지다.

다시 눈길을 오른쪽으로 돌리면 상사암이다. 금산에서 가장 웅장하고 큰 바위답게 그 위용이 대단하다. 남해를 호령하는 장군처럼 떡하니 버티고 있는 상사암은 그 덩치와는 달리 애절한 사랑 이야기가 전해진다.

보리암
 보리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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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석봉에서 본 상사암과 상주해변
 제석봉에서 본 상사암과 상주해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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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돌쇠라는 머슴이 주인집 딸을 짝사랑하여 애를 태우다 죽어 구렁이가 되었다. 구렁이가 된 머슴이 주인집 딸을 휘감고 놓아주지 않았는데 어느 날 밤 주인의 꿈에 한 노인이 나타나 금산에 있는 높은 바위에서 굿을 해보라고 하였다. 노인이 시키는 대로 굿을 하였더니 구렁이는 마침내 딸을 풀어주고, 자신은 그만 벼랑 아래로 떨어져 죽었다는 이야기다.

제석봉에서 산길을 따라 오르면 금산 정상이다. 탁 트인 하늘 아래 놓인 커다란 돌무더기가 보인다. 망대라고도 불리는 봉수대다. 이곳에선 한려수도를 한눈에 볼 수 있을 뿐더러 멀리 지리산과 사천, 여수까지도 조망할 수 있다. 그래서 '망대'라는 이름이 더욱 어울린다.

보리암 해수관음상. 보리암은 양양 낙산사, 강화 보문사와 더불어 우리나라 3대 관음 기도도량으로 알려져 있다.
 보리암 해수관음상. 보리암은 양양 낙산사, 강화 보문사와 더불어 우리나라 3대 관음 기도도량으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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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종 때의 학자 주세봉의 글씨가 있는 문장암
 조선 중종 때의 학자 주세봉의 글씨가 있는 문장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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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홍문으로 금산을 오르다?

망대에서 올라온 길로 눈길을 돌리다 보면 유난히 큰 바위가 눈에 띈다. 대개 그냥 지나치곤 하지만 이 바위 가운데에 선연히 새겨진 글씨가 있다. '유홍문由虹門 상금산上錦山(홍문이 있으므로 금산에 오르다)'이라는 조선 중종 때의 한림학사 주세붕이 쓴 것이라 한다.

금산에 오르려면 쌍홍문을 통해야 한다. 관문인 쌍홍문을 통해야 금산에 오를 수 있었는데, 요즘은 거꾸로 보리암에서 내려와 쌍홍문을 보러 잠시 들를 뿐이다. 차가 다니면서 길이 바뀌고, 안목이 바뀌고, 문장이 바뀌었다. 그러면서 전설도 희미해졌다. 그 옛날 부처님이 금산에서 돌배를 만들어 타고 바다로 나갈 때 쌍홍문의 오른쪽 굴로 나가 멀리 앞바다에 떠 있는 세존도의 한복판을 뚫고 나갔다는 전설이 아련하다.

예전 금산을 오르려면 쌍홍문을 통해야 했다.
 예전 금산을 오르려면 쌍홍문을 통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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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여자 돌 속에 묻혀 있었네
그 여자 사랑에 나도 돌 속에 들어갔네
어느 여름 비 많이 오고
그 여자 울면서 돌 속에서 떠나갔네
떠나가는 그 여자 해와 달이 끌어주었네
남해 금산 푸른 하늘가에 나 혼자 있네
남해 금산 푸른 바닷물 속에 나 혼자 잠기네
                                    - 이성복의 시, <남해 금산>

바람이 거세다. 벼랑 끝 바위에 오랜 고사목 하나가 오래 버티고 있다. 제석신이 내려와서 놀았다는 바위는 매번 바람과 격정을 섞는다. 그래서일까. 아님 신령해서일까. 죽어서 고사목은 살아 있다. 바람으로 말미암아….

멋진 일출은 아니어도 하늘빛은 고왔다.
 멋진 일출은 아니어도 하늘빛은 고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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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블로그 '김천령의 바람흔적'에도 실렸습니다.



태그:#남해금산, #보리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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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의 미식가이자 인문여행자. 여행 에세이 <지리산 암자 기행>, <남도여행법> 등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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