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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10만인클럽 환경운동연합은 '흐르는 강물, 생명을 품다'라는 제목의 공동기획을 통해 자전거를 타고 낙동강 구간을 샅샅이 훑으면서 7일부터 6박7일 동안 심층 취재 보도를 내보냅니다. 전문가들이 함께 자전거를 타면서 어민-농민-골재채취업자들을 만나 4대강 사업의 문제점을 고발하고 대안을 제시할 예정입니다. 또 한강과 금강 구간의 문제점에 대해서도 기획기사를 통해 선보이겠습니다. 이 기획은 4대강복원범국민대책위원회와 4대강조사위원회가 후원합니다. 10만인클럽 회원, 시민기자, 독자 여러분들의 많은 관심과 참여 부탁드립니다. [편집자말]


▲ 4대강 사업 이후, 우물이 마른 이유 박종훈씨가 4대강 사업 이후 경남 창녕군 부곡면 노리에서 우물이 마른 현상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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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선거 날, 사흘째 물이 나오지 않아, 참다못해 창녕군 누리집에 글을 썼다."

물 부족으로 고생한 후일담을 들려주던 낙동강 주민 박종훈(54, 경남 창녕군 부고면 노리)씨가 혀를 차며 꺼낸 말이다. 이명박 정권은 4대강 사업의 이유 중 하나로 물부족 해소를 내세웠다. 하지만 정작 4대강에 주변에 살고 있는 주민은 겨우내 물고갈로 생고생을 해야 했다.

시기도 절묘했다. 임기 내내 물그릇 확보에 자신감을 보였던 이명박 대통령의 권력이 끝나던 날이었다. 얼마 전 감사원은 4대강 사업의 '총체적 부실'에 대한 감사결과 발표했다. 이전과는 상반된 내용이었다. 

박종훈씨는 지난 7일 밤 경남 김해시 생림면 마사리의 한 생태공원에 자리 잡은<오마이뉴스> 두바퀴 현장리포트 특별취재팀 텐트로 직접 찾아왔다.  그가 텐트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후줄근한 몰골로 노트북 자판을 두드리던 세 남자의 텐트에 짙은 스킨향이 퍼졌다.

박씨의 이야기는 2012년 12월 17일로 거슬러 올라갔다. 대통령 선거가 있던 날 그는 투표를 하고 창녕군 부곡면 노리에 위치한 집으로 돌아왔다. 박씨가 사는 집은 창녕 함안보에서 자전거길로 7.2킬로미터 떨어진 곳이다. 보름 전부터 물이 나오다 안 나오다를 반복하더니 사흘 전부터는 아예 물이 나오지 않는 상태였다.

그는 이 기간 동안 출근하면서 목욕탕에 들러 몸을 씻고 저녁은 식당에서 해결했다. 하지만 무엇보다 견딜 수 없는 것은 화장실을 사용하지 못하는 것이었다. 불편함이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였다.

참다참다가 동네 이장에게 물으니 "지하수가 말랐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그는 주변 몇 가구와 함께 간이상수도를 사용하고 있었다. 듣기로 7~8년 전 관정을 팠다고 했다. 하지만 요즘처럼 오랫동안 물이 나오지 않는 날은 없었다고 들었다.

"낙동강 코 앞, 물이 부족한게 말이 되나?"

경상남도 창녕군 부곡면 노리에서 거주하고 있는 박종훈씨가 7일 오후 경상남도 밀양 상남면 야영장에서 <오마이뉴스>와 만나 4대강 사업 이후 마을 우물이 마른 현상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있다.
 경상남도 창녕군 부곡면 노리에서 거주하고 있는 박종훈씨가 7일 오후 경상남도 밀양 상남면 야영장에서 <오마이뉴스>와 만나 4대강 사업 이후 마을 우물이 마른 현상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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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답답했다. 그리고 "그럼 어떡하냐"라고 물었다. 이장은 "광역상수도가 마을에 들어와 있지만 간이상수도와 광역상수도의 파이프 크기가 달라 연결도 어렵다"고 했다. 그는 창녕군 누리집을 방문해 글을 올렸다. 그는 누리집에 "군수님 세탁은 세탁소에 맡기면 되고 먹는 건 식당에서 하면 되지만 싸는 것(화장실)은 도저히 안 된다"며 해결책을 찾아달라고 했다.

그러나 돌아온 반응은 싸늘했다. 전화를 걸어온 이장은 "니 잘났는 가배"라며 누리집에 올린 글을 꼬집었다. 순간 그는 "공무원한테 얼마나 쪼인트 까였기에 이러나" 싶었다. 그래서 이장을 설득했다. 그는 "이번 기회에 상수도 깔아보자"라고 말했다.

그가 알기로 약 50여명의 동네주민들은 서너 가지 방법으로 제각각 물을 사용했다. 간이상수도를 이용하는 가구, 우물 또는 계곡물을 퍼나 쓰는 집들로 나뉘어져 있었다. 사흘째 물이 나오지 않는 날 주민들 절반은 갈수현상으로 불편함이 심각해진 상태였다.

물 한 번 마음 놓고 써보자는 생각에 백방으로 돌아다녔다. 그렇지만 여전히 마음 한 구석에 드는 의문은 떨쳐버릴 수 없었다. 지난 1998년 이후 2~3년에 한 번은 강둑이 범람할 정도였다. 그는 당시 상황을 이렇게 설명했다.

"낙동강에서 불과 500미터 정도 떨어진 마을이 지하수 부족이라니 믿을 수가 없었다. 강폭이 1킬로미터나 되는데 직선거리로 강에서 300미터 떨어진 곳에 관정을 파 간이상수도로 이용했다. 동네 우물도 말라 물 부족으로 고생하는 이들이 많았다."

경남교육위원이기도 한 박씨는 여러 경로를 통해 확인 작업을 진행했다. 의문의 실타래를 풀어준 것은 알고 지내던 지인들이었다. 박씨의 지인들은  "함안보 때문에 지역 지하수 수위가 떨어져서..."라고 말했다. 지난해 봄 4대강 사업 반대에 나섰던 박창근 교수도 현장을 보고는 "함안보로 인해서 낙동강 하류의 지역의 지하수 수위가 떨어지면서 발생하는 일"이라고 했다.

의문이 해결되자 박씨는 4대강 사업의 악영향을 기록으로 남길 필요가 있다고 느꼈다. 그래서 4대강 사업의 피해 사례를 발표하는 자리에 나가 발언을 했다. 지역종합일간지인 <경남도민일보>에 제보를 해 보도가 나가기도 했다. 하지만 그가 들려준 이야기는 주목받지 못했다.

한편, 그는 4대강 사업 후 겪은 한 가지 에피소드를 전했다. 동네로 향하는 길목이 벌처럼 변해 하루는 이를 항의하자 공사관계자가 "야 몇 푼 돈 주고 보내"라고 말했던 일화를 들려주었다.

그렇지만 무엇보다 그는 "4대강 사업으로 물이 흐르지 않으면서 녹조가 심해졌다"면서 "물을 자연스럽게 흐르지 않게 하는 것은 장기적으로 낙동강에 안 좋을 수 있다"고 말하는 어르신들의 목소리에 씁쓸할 수밖에 없었다. 4대강 사업으로 보상금을 건네받은 동네 사람들은 낙동강에서 일하는 이들에게 싫은 소리 한 번 하지 않았다.


태그:#4대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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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사진기자. 진심의 무게처럼 묵직한 카메라로 담는 한 컷 한 컷이 외로운 섬처럼 떠 있는 사람들 사이에 징검다리가 되길 바라며 오늘도 묵묵히 셔터를 누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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