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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로자의 날인 지난 5월 1일 서울 종로구 서린동에서 열린 제1회 알바데이 '알바도 노동자다'에 참가한 편의점 아르바이트 노동자가 '최저임금 1만원'을 배경으로 아르바이트 생활에 대한 어려움을 이야기하고 있다.
 근로자의 날인 지난 5월 1일 서울 종로구 서린동에서 열린 제1회 알바데이 '알바도 노동자다'에 참가한 편의점 아르바이트 노동자가 '최저임금 1만원'을 배경으로 아르바이트 생활에 대한 어려움을 이야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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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객님의 2013민가XXXXX호 사건의 소장이 법원에 접수되었습니다.'

올해 2월 4일, 법률구조공단이 내게 보낸 문자 메시지의 일부다. 휴대폰을 확인한 내 입에서 쓴웃음 섞인 한숨이 터졌다. '결국 끝까지 가는구나'. 그 날, 나는 난생 처음으로 '원고'가 됐다. 피고는 내가 작년 여름 아르바이트를 했던 카페의 대표였다.

"신고해도 원망 않겠다"던 사장, 고소하니 "이의 있다"

나는 2012년 7월, 인천공항 내 한 프랜차이즈 카페에서 주말 아르바이트를 했다. 20대 중반의 본사 파견 점장 아래 10여 명의 아르바이트생이 근무하는 직영 매장이었다. 3주 정도 근무했을 즈음인 어느 날 오후, 점장이 좀 당황한 목소리로 "내일부터 출근하지 말라"며 전화를 걸어왔다.

"네? 제가 뭘 잘못했나요?"
"그게 아니라… 내일부터 영업을 안 할 것 같은데, 나도 방금 갑자기 연락을 받아서 더 이상은 아는 게 없어요. 다시 연락 줄게요."

황당했지만, 매장은 정말 그 길로 문을 닫았다. 본사가 점장조차 모르게 폐점을 결정하고, 하루 영업을 마무리할 시간에 전화를 걸어 이제 문을 열지 말라고 '명령'한 것이다. 이유는 간단했다. '장사가 안 된다'.

폐점된 다음 날은 본래 급여일이었다. 그러나 통장에는 아무 것도 들어오지 않았다. 며칠 뒤 회사(?) 대표에게서 메일이 한 통 왔다. 어려운 회사 사정을 늘어놓으며 "임금은 일이 해결되는 대로 바로 지급해주겠지만, 정 기다리기 어려우신 분들은 신고를 한다 해도 원망하지 않겠다"는 말로 마무리되어 있었다. 그러나 그는 일주일도 지나지 않아 직원들의 연락에 짜증을 내기 시작했다.

노동청이 확인해준 체불 임금 기록. 해당 업체의 대표는 총 8백여만원에 달하는 임금을 체불한 상태다.
▲ 체불된 임금 내역 노동청이 확인해준 체불 임금 기록. 해당 업체의 대표는 총 8백여만원에 달하는 임금을 체불한 상태다.
ⓒ 유정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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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2012년 7월 31일, 고용노동청에 임금체불 신고를 했다. 몇 년 전에도 비슷한 일로 신고를 했다가 며칠 뒤 바로 해결을 본 일이 있어, 이번에도 그 정도로 끝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대표는 완강했다. "사정이 어려워 어쩔 수 없다"는 거였다. 서류로 체불을 확인하고, 고용주를 불러 사실관계를 확인하는 절차에만 넉 달이 걸렸다.

2012년 11월 29일, 체불임금확인원이 발급됐다. 내가 틀림없이 근무를 했고, 고용주가 부당하게 임금을 주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공적으로 증명하는 서류라고 했다. 근로감독관은 "노동청에는 강제집행 권한이 없다"며 "이제 직접 민사소송을 걸어 해결을 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체불임금확인원은 그 소송을 위한 증거라는 거였다.

소액체불 소송을 무료로 대행해 준다는 법률구조공단에 신고자가 직접 서류를 들고 가 신청을 해야 했다. 그러나 학교 수업으로 평일에 시간을 낼 수 없었던 나는 해를 넘긴 1월 11일에야 법률구조 신청을 했다. 그리고 다시 한 달이 지난 2월 4일에 비로소 소송이 시작됐다.

증거가 확실하니 오래 걸리지 않았다. 2월 18일에 법원으로부터 이행권고 결정이 내려졌다. 정해진 기간까지 이의가 없으면 그대로 판결이 확정된다고 했다. 그러나 "신고를 해도 원망하지 않겠다"던 대표는 바로 변호사를 통해 이의제기를 했다. 이런 소송에서 이의가 제기됐을 경우엔 그 주장의 사실여부와 관계없이 변론기일을 정해야 한다고 했다. 인터넷을 뒤져보니 비슷한 사례가 많았다. 고용주가 '시간 끌기'를 위해 자주 쓰는 방법이라고들 했다.

변론을 듣고, 판결을 내리는 데 또 넉 달이 넘는 시간이 걸렸다. 그 가게에서 처음 일을 시작한 날로부터 일 년여가 지난 2013년 7월 19일, 드디어 내가 승소했다는 연락을 받았다. 이제야 이 싸움이 끝나는가 싶었다. 그러나 그 기대는 곧바로 무너졌다.

소송에서 이겨도 압류신청 해야... 아니면 소용 없다고?

올해 7월, 처음 임금체불을 신고한지 1년만에 받은 승소 판결문. 나는 승소만 하면 바로 임금을 받을 수 있으리라 생각했지만, 곧 기대는 무너졌다.
▲ 판결문 올해 7월, 처음 임금체불을 신고한지 1년만에 받은 승소 판결문. 나는 승소만 하면 바로 임금을 받을 수 있으리라 생각했지만, 곧 기대는 무너졌다.
ⓒ 유정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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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라는 사람… 재산이 어디에 얼만큼 있는지는 좀 아세요?"

승소 연락을 받고 판결문을 찾으러 간 자리에서 법률구조공단 직원이 내게 한 말이다. 그는 "승소 판결이 나도, 피고가 자진해서 이행을 하지 않으면 원고가 직접 가압류 신청을 하는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그렇지 않으면 받을 도리가 없다는 거였다. 가압류를 위해서는 대상인의 재산을 알아야 한다는데, 나는 대표의 얼굴조차 본 일이 없었다.

재산 상태를 모를 때는 법원에 '재산 명시'나 '재산 조회'를 직접 신청해야 한다고 했다. 공단 직원은 이 과정에 또 5~6개월의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 그런 긴 과정을 거쳐 재산명시를 해도 부동산 같은 특별한 재산이 발견되지 않으면, 개인적으로 '가재도구'에 압류를 걸어도 된다는 친절한 설명을 곁들여서.

당연히 받아야 할 돈을 받는 일에, 피해자인 내가 직접 처리해야 할 절차가 많아도 너무 많았다. 내가 받아야 할 돈은 정확히 29만 4980원. 큰 금액이 아니니 포기할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러기는 어렵지 않았다. 더 이상 어떤 절차도 신청하지 않으면 된다. 같이 일했던 친구들 중 두어 명은 이미 포기했다고 들었다.

그러나 액수와 관계없이, 내 노동을 '없는 일'로 만들 수는 없었다. 꼭 받아야겠다는 오기가 생긴 나는, 몇 천원의 인지세를 들여가며 서류를 떼다 신청을 했다. 그리곤 직원에게 간절한 마음으로 물었다.

"어떻게든 받을 수는 있겠죠?"
"받을 수는 있을 거예요. 천천히라도……. 효력은 10년 정도 있으니까요. 나눠서라도…"

10년이라니. 힘이 빠지고 기가 찼다. 그러나 어쩔 수 없었다. 조용히 신청을 마무리하고 돌아서는 수밖에. 그리고 얼마 전인 9월 12일, 내 신청이 받아들여졌다는 연락을 받았다. 긴 싸움이 다시 시작된 것이다.

통보를 받았을 대표에게선 아무 연락도 오지 않았다. 부도 위기에 처했다던 해당 브랜드는 1년 반이 지난 지금도 성업중이다. 친구들은 농담조로 "연금 부었다 여기고 10년 뒤에 찾는다고 생각해라"고 위로했다. 나는 가벼운 마음으로, 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기다리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러나 뒷맛은 씁쓸했다. 임금을 받지 못한 모두가 나처럼 느긋하지는 않을 터였다. 법률구조공단에서 무료로 변론을 해주는 소액재판의 기준액은 2000만 원까지라고 했다. 2000여만 원의 돈을 받지 못한 사람도 '연금 받는다 생각하고' 10년을 기다릴 수 있을까. 그들의 심정을 상상하니, 새삼 눈앞이 아찔해졌다.


태그:#임금체불, #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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