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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원 여기저기 앉아 글쓰는 참여자들.
 공원 여기저기 앉아 글쓰는 참여자들.
ⓒ 변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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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가다 보았습니다. 2013년 10월 5일 토요일 오후 2시부터 현대중공업 정문앞 공원에서 제 22회 백일장을 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벌써 22년째 진행하는 울산 동구 대기업의 백일장은 어떤 풍경일까요? 궁금했습니다. 학생과 일반시민 누구나 참여 가능하다니 저도 호기심이 생겼습니다. 딱히 뭐 바쁜 일도 없고해서요.

현대중공업 정문은 제가 살고있는 동네인 남목에선 버스로 다섯 정거장 정도 가면 있는 가까운 거리에 있습니다. 오후 2시에 맞춰 가니 사람들이 복작 거렸습니다. 중공업 직원 동호회가 풍선으로 여러가지 모양을 만들어 보이는 곳도 있었고요. 한켠엔 가족이 오면 무료 사진도 찍어 준다는 간판도 서있었습니다. 방송시설이 되어 있었고, 그 옆엔 시식권을 가져오면 무료로 핫바 한개를 준다고도 했습니다. 참여 신청하러가니 여직원이 상냥하게 응대합니다.

에이스리 크기의 글쓰기 용지를 여러장 주었습니다. 덤으로 현대중공업 월간 책자와 메모지도 주었습니다. 그리고 핫바 시식 교환권도 하나 주네요. 대충 보니 200여명은 모인거 같습니다. 오후 2시가 되니 안내방송이 흘러 나왔습니다.

현대중공업 백일장 글 주제문이 팔각정 쉼터에 붙어 있었습니다.
▲ 현대중공업 백일장 글 주제문이 팔각정 쉼터에 붙어 있었습니다.
ⓒ 변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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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부터 제 22회 현대중공업 백일장을 시작하겠습니다. 글쓰기 주제는 저기 팔각정에 현수막으로 붙어 있는대로 합니다. 학생은 일기, 운동회, 친구, 아침, 솜사탕에 대해서 일반은 어린시절, 편지, 울산, 자녀, 손에 대해 글로 써주시면 됩니다. 시식권을 가져가면 핫바 하나를 드립니다. 또, 오후 3시부터 15분 간격으로 현대중공업 경내를 견학할 수 있습니다. 옆 호텔 앞에서 출발합니다. 많은 참여 바랍니다. 그럼 지금부터 백일장을 시작하겠습니다. 글을 다 쓰시고 본부석에 내 주시면 됩니다. 시간은 지금부터 오후 4시로 하겠습니다. 시작해 주십시오."

어린이와 함께 온 부모도 있었고요. 중,고등,대학생도 많이 참여한 것 같았습니다. 여성분이나 일반인도 많았습니다. 시작전엔 울산 동구 안효대 국회의원의 인삿말도 있었습니다. 백일장이 시작되면서 새누리당 소속 안효대 의원은 참석한 사람들을 일일이 찾아 다니며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그 옆으론 동영상과 사진기사들이 따라 다니며 중요 장면을 찍기도 했습니다.

저도 자리를 잡고 앉았습니다. 천리향 나무가 있는 아래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천리향 나무 꽃향기가 좋았습니다. 저는 여러 글쓰기 주제중 어린시절에 대해 썼습니다. 강원도 산골에서 문맹인 부모 이야기, 부모가 단양,제천을 거쳐 울산으로 이사온 이야기, 동구로 넘어와 살던 이야기, 자라면서 현대중공업과 얽힌 이야기를 엮어 썼습니다.

글을 다 쓰고 돌아다녀보니 노동자 입장에선 사람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허긴, 현대중공업 하청노동자가 참여하여 하청노동자 현실을 써올리면 아무리 글을 잘 쓴들 당선시켜 줄까 싶습니다. 현대중공업에 다녔던 백무산 시인이 글을 써 제출한 들, 현대중공업 하청노동자로 일하다 해고된 조성웅 시인이 참여하여 현대중공업을 비판하는 글을 써서 제출한들 현대중공업 심사위원들이 당선시켜 줬을까요? 두분은 노동시인으로 유명한 시인들인데 말입니다.

백일장 마무리하여 제출하고 현대중공업 경내 관람

저는 글을 써서 제출하고 방송내용에 있었던 현대중공업 경내를 관람하기 위해 가보았습니다. 사내버스가 설 자리에 안내원이 있었습니다. 잠시 기다리니 현대중공업 사내버스가 도착했습니다. 10여명이 타자 버스가 출발했고 개별로 들어가려면 복잡한 절차를 밟아야 할 사내를 그냥 통과하여 들어 갔습니다. 버스는 정문을 통과하자마자 오른쪽에 있는 큰 건물앞에 세웠습니다. 문화관이라는 이름이 건물 2층 중앙에 붙어 있었습니다.

 사내 관람에 많은 분들이 모여 들었습니다.
 사내 관람에 많은 분들이 모여 들었습니다.
ⓒ 변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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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내에선 사진을 찍지 못하게 했습니다. 우리는 젊은 여성 안내원을 따라 안으로 들어 갔습니다. 현대중공업 창업자 아산 고 정주영 기념관 이었습니다. 검소하게 살았다는 집안을 그대로 본따 설치해 두었고, 그가 평생 신고 다녔다는 낡은 구두 두켤레도 전시되어 있었습니다.

아산기념전시실에서 제공하고있는 선전물에 보면 아산은 1915년 강원도 통천군 송전면 아산리에서 출생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아산이라는 호를 쓰고 있나 봅니다. 그는 보통학교를 졸업하고 가출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1934년 그가 스무살 되던해 쌀소매업 하는 곳에 취업을 하였고 성실성을 인정받아 그 쌀가게를 물려 받았다고 합니다.

아산은 참 운이 좋은건지 모르겠습니다. 수많은 여성이 정신대에 끌려가고 남자들은 나이 적거나 많거나 강제노역으로 끌려가고 전쟁에 강제 동원되었다는 일제 감정기 시절에 그는 어떻게 그런 좋은 시절을 보냈는지 알길이 없습니다. 그는 또 1950년에 현대건설(주)를 설립하고 대표이사로 취임했다고 나와 있었습니다.

1950년이면 6월 하순경부터 3년동안 한반도는 세계 2차 대전 그러니까 전쟁통이었는데도 그는 그 와중에 건설업체를 만들고 미군을 상대로 돈을 벌었다니 참 대단한 사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의 나이 서른여섯에 말입니다. 나라 살리자고 학도병으로 이름없이 전쟁에 내몰려 수없는 생명이 사라졌는데 그 와중에도 그는 미군과 가까이 지내면서 여러가지 건설 일을 따내 돈을 벌었다니 정말 머리가 좋은거 같았습니다.

 백일장 현장과 현대중공업 본관 건물
 백일장 현장과 현대중공업 본관 건물
ⓒ 변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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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실엔 쌀가게 점원시절 젊은 그를 인형으로 만들어 실제 자전거에 태워 세워 두었습니다. 짐 자전거 뒤엔 쌀 두가마니가 실려 있었습니다. 여 안내원은 차례대로 돌아가며 아산에 대해 칭찬을 쏟아 냈습니다. 입구엔 그와 관련한 서적만도 40여 종류나 전시해 두었고 그가 받은 훈장이나 그가 입었던 옷도 전시되어 있었습니다.

처음 영국으로 건너가 차관을 빌려 올때 일화도 이야기 해주며 당시 쓰이던 한국 지폐 500원 짜리도 그대로 전시되어 있었습니다. 영국 은행에서 돈을 안빌려 주려하자 아산은 가지고 있던 지폐를 내보이며 "우리는 당신네 나라보다 500년 앞서 이런 군함을 만들었었다"고 이야기 해서 그 은행쪽에서 차관을 빌려 주더라는 것이었습니다.

"창업자는 우리나라에서 눈도 잘 안내리고 비도 잘 안오는 지역을 물색하던중 울산 앞바다가 눈에 들어 왔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이곳에 공장이 들어서게 되었습니다."

안내자는 현대중공업이 만들어진 배경에 대해서도 이야기 했습니다. 아산은 공장 짓는 일과 배 만드는 일을 동시에 추진했다고 합니다. 백일장에도 노동자는 없었는데 아산 전시실에도 노동자는 없었습니다. 1972년 현대중공업이 설립되었다고 합니다. 그 당시 이야기를 현대중공업 다녔던 선배로부터 전해듣기로 농촌에서 급조된 노동자들이 많았다고 합니다.

그런 일을 해본적이 없는 사람들에게 용접과 취부, 절단, 색칠법을 급히 가르쳐 투입 시키다 보니 사고가 빈번하게 발생했다고 합니다. 많은 노동자들이 일하다가 다치거나 죽기도 했다고 합니다. 전시실엔 오로지 아산에 대한 칭송만 가득할뿐 그때 무리하게 일하다 죽어간 노동자들의 위령탑 하나 없었습니다.

그곳엔 그의 위대한 업적을 기리는 내용으로 가득했습니다. 그가 남긴 말들이 벽면 가득히 채워져 있기도 했습니다. 벽면 글귀들엔 많이 들어본 내용도 있었습니다.

"시련은 있어도 실패는 없다."
"나는 인간이 스스로 한계라고 규정짓는 일에 도전하여 그것을 이루어내는 기쁨을 보람으로 기업을 해왔고 오늘도 도전을 계속하고 있다."
"나는 생명이 있는 한 실패는 없다고 생각한다. 내가 살아 있고 건강한 한, 나한테 시련은 있을지언정 실패는 없다. 낙관하자. 긍정적으로 생각하자."
"이기심을 버린 담담한 마음. 도리를 알고 가치를 아는 마음. 모든 것을 배우려는 학구적인 자세. 이러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 집단이라야 발전이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인간은 일을 해야하고 일이야 말로 신이 주신 축복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참 멋진 말입니다. 그러나 그 말속에도 노동자의 노고에 대해선 없었습니다. 아산은 어느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나는 돈많은 노동자 일 뿐"이라고 말했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만, 그는 재벌이라는 말과 자본가라는 말이 어울리는 사람일 뿐이었습니다.

현대중공업의 업적과 생산하는 품목 알림을 끝으로 전시실에서 나왔습니다. 그리고 공장을 한바퀴 돌았습니다. 공장마다 수많은 철판이 쌓여 있었고 토요일 임에도 일하는 노동자가 많이 보였습니다. 저는 그들이 하청업체 노동자인지 아니면 정규직인지 궁금했지만 물어볼수 없었습니다. 블럭에는 여러개의 배가 조립되거나 완성을 앞두고 있었습니다. 버스가 어느 공정에 이르자 안내원이 말했습니다.

"여기는 4번 도크로 저 배는 독일에서 컨테이너 운반선으로 수주받은 것이며 컨테이너를 13200개를 실어 나를수 있는 규모입니다. 배 겉 면에 칠하는 페인트는 30만리터 정도되며 20억여원이 들어 간다고 합니다."

 천리향 나무 아래서 저도 글 한편 써내 보았습니다만 기대는 하지 않습니다. 오마이뉴스에 이 글이 실리면 저에대해 어짜피 다 알게 될테니까요. 현대중공업은 언론관련 부서를 따로 두고 모니터 합니다.
 천리향 나무 아래서 저도 글 한편 써내 보았습니다만 기대는 하지 않습니다. 오마이뉴스에 이 글이 실리면 저에대해 어짜피 다 알게 될테니까요. 현대중공업은 언론관련 부서를 따로 두고 모니터 합니다.
ⓒ 참석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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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 겉 표면에 칠하는 페인트 값으로 20억여  원이나 들어 간다는 말에 참여한 시민들이 "와~"하고 탄성을 지었습니다. 배는 200개에서 250개 블럭을 공장에서 만들어 조립한다고 했습니다. 여러개의 도크중 배가 조립되고 있는곳엔 물이 비어 있었고, 배가 완성단계에 들어가 있는 도크엔 물이 채워져 있었습니다. 배가 완성되면 수문을 열어 바닷물로 채우나 봅니다. 버스는 서있지 않고 공장 안을 그냥 천천히 한바퀴 돌면서 안내원이 계속해서 가는곳마다 안내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습니다. 40여분후 우리는 사내버스는 다시 정문을 통과하여 밖으로 나와 처음 탄 곳에서 내리게 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현대중공업이 주최하는 백일장 일정이 모두 마무리 되었습니다. 전시실을 돌때 벽에 쓰여진 현대정신이 생각났습니다. 현대정신은 창조적예지, 적극의지, 강인한 추진력 이었습니다. 거기에 하나 더 추가 되었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원하청 인간차별 금지"가 그것입니다. 현대중공업엔 4만 5천여명이나 일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 중 2만여명이 정규직 직원이고 그 나머진 모두 하청이라 합니다. 이것은 현대중공업 하청노조를 통해 확인한 내용입니다. 정규직보다 비정규직이 더 많다고 합니다.

저도 현대중공업 하청업체 다녀본적이 있어 잘 알고 있습니다. 거친 쇠 옆 면을 부드럽게 갈아내는 구라인딩도 해보았고 트랜스포터라는 대형 철 구조물 실어 날으는 차량 안내원인 신호수도 해보았습니다. 인간차별이 힘들어 몇개월 하지 못하고 나오긴 했으나 그렇게 일하면서 하청과 원청의 인간차별이 그 안에서 얼마나 크게 작용하고 있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정규직노조는 이미 오래전에 회사 입장에 서버린채 활동하고 있고, 하청노조는 노동조합의 기능을 못하는 상태에 있습니다. 그것이 2013년 현대중공업의 노동자 현실입니다. 그만큼 현대중공업은 노무관리를 철저하게 진행시키고 있는 것 입니다.

현대중공업의 그 철저한 노무관리 덕분에 저는 블랙리스트로 등록되어 다른 하청업체에 들어가고 싶어도 못들어갑니다. 그것도 이미 제가 체험한 내용입니다. 겉으로 보기엔 백일장도 하는 참 좋은 기업으로 보이지만, 노동자와 사용자 관계에선 정말이지 무서운 기업입니다. 오늘 현대중공업 백일장에 참여해 보면서 그 대기업의 또다른 면을 살펴보게 되었습니다.

이운남 열사 영결식 현대중공업 사내하청 다니다 부당해고 당한지 8년만에 그는 19층 아파트서 투신 자결 했었습니다. 사진은 지난 2012년 12월 26일 아침 영결식 장면 입니다. 뒤에 보이는 건물은 현대중공업 본관 건물과 정문입니다.
▲ 이운남 열사 영결식 현대중공업 사내하청 다니다 부당해고 당한지 8년만에 그는 19층 아파트서 투신 자결 했었습니다. 사진은 지난 2012년 12월 26일 아침 영결식 장면 입니다. 뒤에 보이는 건물은 현대중공업 본관 건물과 정문입니다.
ⓒ 변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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