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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초노령연금은 65세 이상 모든 국민에게 드리고, 그 위에 소득비례 연금을 (더)해서 보다 완벽한 노인소득보장을 하겠습니다. 이 부분은 제가 오래 전부터 주장해왔고 꼭 실시하려고 했지만 이전(이명박) 정부에서는 잘 되지 않았습니다. 이번에 제가 국민의 선택을 받게 된다면 꼭 실행할 겁니다."

당시 여당 후보였던 박근혜 대통령은 보편적 기초노령연금의 시행 의지를 확고하게 보여줬었다.
▲ 대선후보 토론회 화면 갈무리. 당시 여당 후보였던 박근혜 대통령은 보편적 기초노령연금의 시행 의지를 확고하게 보여줬었다.
ⓒ YT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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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과 10개월 전인 2012년 12월 16일, 저출산·고령화 대책과 관련, 대선후보 토론회에서 박근혜 대통령(당시 여당 후보)은 이같이 말했다. 이날 박 대통령은 발언기회 중 여러 차례 "(기초노령연금 확대를)오래 전부터 주장해왔다"고 강조하며, 65세 이상의 모든 국민에게 노령연금을 지급하겠다고 확언했다.

그러나 임기가 채 1년도 지나지 않은 지금, 이 자신만만한 약속은 또 다시 빌 공자 공약(空約)이 될 위기에 놓였다. 26일 정부 발표 예정인 기초노령연금 개정안의 방침이 '소득 하위 70%에 최대 월 20만 원까지 차등지급'인 것으로 최근 알려졌기 때문이다. 이는 앞서서 약속한 사항에서 크게 후퇴한 것이다. '노인 소득 보장'이라는 본래의 취지가 무색한 수준이다.

공약사항이라고 해도, 실행단계에서 수정될 수는 있다. 그러나 이번 기초노령연금의 경우는 그 정도가 원안의 취지를 흐리는 수준이라 더 문제가 됐다. 또한 앞서 경제민주화나 의료 급여 관련 법안 등 민생 공약들이 대부분 축소되거나 무산됐다는 비판을 받고 있는 상황이기에, 정부의 공약 이행능력에 대한 지적도 충분히 있을 법 하다. 하지만 지상파 방송사들의 시각은 약간 다른 듯 했다.

공약 불이행을 '정쟁'으로 묘사한 MBC

SBS <8시 뉴스>화면 갈무리
 SBS <8시 뉴스>화면 갈무리
ⓒ 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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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일 방송 3사는 기초노령연금 문제를 각각 1~2 꼭지(KBS·SBS 2꼭지씩, MBC 1꼭지)씩 할애해 다뤘다.

SBS는 연금 등 복지공약 수정을 둘러싼 여야의 입장 차이를 먼저 보여주고, 기초노령연금이 개정됐을 때 현재 청장년층이 입게 될 손해에 관해 비교적 자세히 보도했다. 양당의 입장 차이를 보도할 때도 민주당이 개정에 반대하는 근거를 함께 제시했다.

KBS <뉴스9> 화면 갈무리
 KBS <뉴스9> 화면 갈무리
ⓒ 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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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는 복지공약 축소에 관한 여야의 공방을 보도하고, 이어 청와대의 대응에 관심을 보였다. 26일 있을 박 대통령의 복지공약 축소 관련 입장 표명을 한 꼭지로 빼 다루면서 그 내용을 예측하기도 했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MBC였다. <뉴스데스크>는 복지공약 축소에 관련된 논란을 철저히 '정쟁'이라는 관점에서만 다뤘다. 24일자 뉴스에서는 '국회 정상화 앞두고 여야 치열한 기싸움'이라는 이름의 꼭지에서만 이 문제를 다뤘다. 그것도, 기초노령연금 개정안 논란과 새누리당의 '국회 선진화법' 개정 움직임을 함께 묶은 채였다.

이날 보도에서 <뉴스데스크>는 "국회가 정상화 수순을 밟고 있지만 여야의 기싸움은 갈수록 치열해진다"며 "민주당은 정부의 기초연금 안에 대한 공세를 시작했고, 새누리당은 국정에 차질을 줄 수 있는 국회선진화법 개정에 착수했다"고 현재 상황을 해석했다. 수정안을 통해 달라지는 점을 설명하거나 시민사회단체의 반응 등 여론은 보도하지 않았다.

MBC <뉴스데스크> 화면 갈무리
 MBC <뉴스데스크> 화면 갈무리
ⓒ 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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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데스크>는  23일의 관련 보도에서도 새누리당의 입장은 "전면적인 공약 이행이 불가능한 것이 현실이라면, 할 수 있는 정책을 우선 시행한 뒤 점진적으로 확대하는 대안을 마련할 것"이라는 식으로 비교적 상세히 보도했다. 재원 부족에 관해서는 별도로 한 꼭지를 편성해 내보내기도 했다.

반면 민주당의 대응에 관해서는 "민주당은 '대국민 사기극', '공약먹튀' 같은 원색적인 표현을 써가며 비난 수위를 높였다"고만 표현하며 기초연금 수정안 반대 논리를 제대로 보도하지 않았다. 이런 식의 보도는 시청자들이 민주당의 기초연금 수정안 반대를 단순한 '정치공세'로 여기도록 할 위험이 다분하다.

노령연금은 정치적인 사안이 아닌 민생법안의 영역이다. 또 현직 대통령이 후보시절부터 강력하게 시행의지를 표명해왔으며 유권자들에게 많은 지지를 받은 공약이기도 하다. 각 당의 당론 이상으로 여론이 중요한 사안이라는 뜻이다. 이 문제의 본질은 국민에게 주어질 복지 정책이 수정되었다는 그 자체에 있지, 양 당의 정쟁관계에 있는 게 아니라는 말도 된다.

'국가의 미래를 생각해 넒은 마음으로 이해'를 하든, 약속을 지키지 않은 대통령에게 쓴소리를 하든 그것은 연금을 납부하고 받는 국민이 알아서 할 일이다. 언론은 이 문제를 단순한 정치싸움으로 흐릴 것이 아니라, 국민들이 보다 명확하게 판단할 수 있도록 문제의 본질에 더 집중하는 편이 좋지 않을까.


태그:#기초노령연금, #MBC, #SBS, #KBS, #박근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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