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관상>은 한 인간의 얼굴을 보고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읽는 내용이다. 하지만 관상만으로는 한계 있다는 것을 이 영화는 역설적으로 밝힌다. 역사의 파고를 넘나드는 파도 소리를 감지하지 못한 것 말이다. 나무는 보지만 그 숲을 꿰뚫어 보지 못한 것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영화는 단지 한 개인의 관상으로 그치는 게 아니다. 그를 둘러싼, 그와 관계된 한 시대의 역사를 관통한, 조선 세조의 왕위찬탈사건을 보여준 대서사시였다. 이른바 피로 얼룩진 '계유정난'에 관한 사건이 바로 그것이다.

포스터 영화〈관상〉메인 포스터

▲ 포스터 영화〈관상〉메인 포스터 ⓒ 쇼박스


얼굴을 보고 운명을 점치는 관상가 김내경(송강호 분). 그는 호랑이 상을 한 김종서 대감(김윤식 분)의 얼굴을 보고 감탄한다. 이런 인물이 있는 한 결코 조선은 흔들리지 않을 것이라고 말이다. 모름지기 군자는 소탐대실(小貪大失)하지 않고, 소임에 최선을 다할 뿐 무위자연(無爲自然)하고, 불변의 도를 말하면서도 교만하지 않는다 했다. 그런 인물이 김종서였던 것이다.

그와 달리 수양대군(이정재 분)은 어떠했던가? 김내경이 처음 바라본 수양은 결코 역모를 꾸밀 위인이 아니었다. 그저 범상한 하루 강아지 정도였다. 물론 그것은 수양대군이 자기 발톱을 숨긴 채 다른 대역을 내 보낸 탓이었다. 아무리 뛰어난 관상가라도, 귀신이 아닌 바에야, 어찌 숨어 있는 사람의 얼굴까지 알아볼 수 있으랴?

영화 속 한 컷 김내경(송강호 분)이 관상을 보고 있다

▲ 영화 속 한 컷 김내경(송강호 분)이 관상을 보고 있다 ⓒ 쇼박스


물론 김종서 대감을 따라 수양대군의 진짜 얼굴을 봤을 때는 달랐다. 김내경은 그 순간 소름이 돋는 얼굴의 리액션을 보여줬다. 극악무도한 역모를 꾸밀 치졸한 소인배의 모습에 화들짝 놀란 얼굴이 그것이었다. 무릇 소인배는 재물과 명리를 좋아하여 형이하학적 속물로 변하기 쉽고, 공익보다 사익(私益)을 더 우선시하며, 민의수렴과 절차보다 결과만을 중시한다 하지 않던가? 수양대군이 꼭 그런 형국이었다.

그런 군자와 소인배의 형국이 모두 관상에 드러나 있다니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물론 현명한 우리네 조상들은 일찍이 '짐승의 관상'을 갈파한 바 있다. 사람의 이목구비(耳目口鼻)에 따라 '뱀대가리' '쥐눈깔' '매부리코' '오리입' '개턱' '당나귀귀' '고양이 입술' 그리고 '뱁새눈'을 한 형국이 그것이다. 그만큼 짐승만도 못한 인간을 두고서 밝힌 것이다. 영화 속 수양대군의 관상이 그 중 몇 몇과 흡사했다면 너무 지나칠까?

영화 속 한 컷 수양대군(이정재 분)이 천하를 호령하고 있다

▲ 영화 속 한 컷 수양대군(이정재 분)이 천하를 호령하고 있다 ⓒ 쇼박스


무릇 기록은 기억을 지배한다고 했다. 모든 역사는 '첨삭'(添削)의 역사와도 같다. 어떤 면에서는 조선왕조실록도, 성경의 역대기도, 그리고 현재의 어느 역사 교과서도 그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이 시대의 언론이라고 그로부터 예외일까? 아니다. 여전히 팩트와 픽션을 넘나든 채 군자를 소인배로 몰아 부치는 언론들도 참 많다. 그저 '뱁새눈'에 주눅 든 채 말이다. 영화 <관상>이 그런 현대사를 꼬집고 있다면 너무 과한 표현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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