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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 하루 전, 창 너머 초록빛 바깥 풍경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중증장애인 생활시설의 한 할머니. 누굴 기다리는 걸까.
 추석 하루 전, 창 너머 초록빛 바깥 풍경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중증장애인 생활시설의 한 할머니. 누굴 기다리는 걸까.
ⓒ 김종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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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중증장애인 노인생활시설인 경남 산청 성심원. 싱그러운 초록빛 가득한 바깥 풍경에 눈을 떼지 못하는 할머니. 텔레비전에서 연신 흘러나오는 '고향 찾아가는 고속도로가 밀린다'는 소식이 머나먼 이웃 나라 일처럼 낯설지만, 그래도 눈은 창 너머 바깥 풍경을 벗어나지 못했다.

"영~ 맥을 못 추네···."

식사 시간이 다가오는데도 일어나지 못하고 누워있는 할아버지를 만나기 위해 휠체어를 끌고 온 여든일곱의 할머니의 걱정스러운 눈길은 할아버지를 떠날 줄 몰랐다.

스페인에서 오신 유의배(알로이시오) 신부님이 아흔아혼살의 할머니 노래에 춤을 추고 있다.
 스페인에서 오신 유의배(알로이시오) 신부님이 아흔아혼살의 할머니 노래에 춤을 추고 있다.
ⓒ 김종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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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어둠이 물러가고 해가 떠올랐다. 태양은 어제와 오늘 똑같았지만, 사람들은 오늘을 한가위라 부르고 며칠 전부터 이날을 위해 준비하고 머나먼 고향을 찾아 나서기도 한다.

'주님의 방'이란 애칭으로 불린 주방에서는 추석 음식 만드느라 모두 바쁘다. 다행히 어제 내내 누워 있던 할아버지는 기력을 찾아 할머니와 함께 아침을 드셨다. 곁에 앉은 할머니께서는 오늘도 앞이 보이지 않는 할아버지 옆에서 추석을 맞아 나온 각종 기름진 음식과 과일 등을 부지런히 챙겨 입에 넣어주었다.

요양원 성당에서 미사 전례를 마친, 스페인에서 오신 푸른 눈의 유의배(알로이시오) 신부님이 침대에 누운 아흔아홉의 '하동댁' 김 마리아할머니의 노랫가락에 따라 손을 맞잡고 춤을 추었다. 

추석맞이 윷놀이 대회가 열린 요양원 앞 은행나무 뜨락
 추석맞이 윷놀이 대회가 열린 요양원 앞 은행나무 뜨락
ⓒ 김종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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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아침도, 점심도 지나고 가을이라기에는 아직도 뜨거운 햇살이 내리쬐는 오후 2시. 은행나무 앞 뜨락이 갑자기 왁자지껄한 소리가 한창이다. 드디어 마을 윷놀이 대회가 열렸다. 생활인대표와 각 조 대표선수들이 모여 대진표 추첨. 결전의 순간은 다가왔다.

"저 할머니 조심해야 돼, 너무 잘해."
"아이구 주문을 걸어봐."
"니도 하는데 나는 못하나, 낙!"

옆에서 추임새 넣듯 '낙'만하지 말라는 주위 사람에게 화답하듯 '낙' 할 거라며 웃는데 정말 '낙'이 나왔다. 상대편도 우리 편도 웃었다.

휠체어에 의지해 윷을 던지는 어르신.
 휠체어에 의지해 윷을 던지는 어르신.
ⓒ 김종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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휠체어에 의지한 할머니는 대회 간식으로 나온 튀김 닭 다리를 한 손에 잡고 나머지 한 손으로 윷을 던진다.

"모다!~"
"얼씨구나 좋다~지화자 좋다."

닭다리 뜯으며 어깨춤이 덩실덩실. 예선전에서 일찌감치 떨어지거나 윷놀이대회보다는 잿밥에 관심이 더 많은 사람은 주전부리로 나온 닭고기며 찌짐(부침개)을 먹으면서 사이사이 경품 추첨에 받은 행운권 번호를 쳐다보기 바쁘다. 자신보다 더 큰 커다란 베개를 경품으로 받은 여든다섯의 로사할머니. 아들에게 추석 선물로 줄 거라며 놓칠세라 가슴 가득 꼭 안는다.

노래방 기계 반주에 맞춰 마이크 잡은 마을 공식사진사(?) 할아버지는 엉덩이를 실룩이며 장단을 맞춘다. 노랫소리에 여기저기에서 어깨가 들썩이는 사람들 사이로 윷놀이의 흥은 달아올랐다. 시원한 천막 그늘에서는 주거나 받거니 술 한 잔이 두 잔이 되고 석 잔이 되어도 취하지 않는다.

"펑~"

은행나무 옆에서 어제부터 뻥튀기가 한창이다. 윷놀이대회가 열리는 뜨락에는 술도, 노래도, 뻥튀기도 있다. 여기저기서 환호와 탄성이 터지고 엎치락뒤치락하는 재미가 구수한 찌짐과 함께 퍼질 무렵 윷놀이도 끝을 향했다. 8개 조로 나눠 진행된 윷놀이대회는 결국 노인전문주택 가정사 2동에서 1등을 차지해 상금 20만 원을 받았다.

요양원 막내에 해당하는 마흔둘의 젊은이에게 추석을 맞아 과자 하나를 나눠주시는 어르신.
 요양원 막내에 해당하는 마흔둘의 젊은이에게 추석을 맞아 과자 하나를 나눠주시는 어르신.
ⓒ 김종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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윷놀이 대회도 끝나고 모두가 자신의 자리로 돌아갈 즈음, 휠체어를 타고 산책하는 요양원 막내에 해당하는 마흔둘의 젊은이에게 할아버지께서 과자 하나를 추석 선물로 건네었다 과자 하나에 한가위 보름달처럼 가득찬 정겨움이 흘렀다.

'더도 덜도 말고 늘 가윗날만 같아라'는 성심원의 추석도 이렇게 저물어 갔다.

덧붙이는 글 | 해찬솔 일기장 http://blog.daum.net/haechansol71/
여성가족부 <여행상자> http://blog.daum.net/moge-family/



태그:#추석, #성심원, #복지시설의 추석, #윷놀이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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