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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월 말부터 오늘(11일)까지 내가 첨삭, 논평한 자기소개서를 건수별로 표시해 놓은 쪽지.
 8월 말부터 오늘(11일)까지 내가 첨삭, 논평한 자기소개서를 건수별로 표시해 놓은 쪽지.
ⓒ 정은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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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학년도 수시 원서 접수도 한 고비를 넘기고 있다. 지금 고3 교실의 학생·교사들은 지원 대학과 전공 분야 선택, 그리고 각종 서류 준비 등으로 모두 '초죽음 상태'를 보내고 있다. 94건. 개학 후 8월 말부터 지난 11일까지 내가 첨삭·논평한 자기소개서(자소서) 건수다. 1차·2차 식으로 중복해서 본 학생들의 자소서까지 합한 숫자다.

지금까지 내가 되풀이해서 자소서를 본 학생은 대략 40여 명이다. 그러니 학생 수만을 기준으로 계산하면, 약 2주 동안 대략 50여 명 정도의 자소서를 본 셈이다. 내가 담임을 맡고 있는 우리 학교 3학년의 전체 정원은 268명. 20% 정도 되는 학생들의 '약전(略傳)'이 내 손을 거쳐간 것이다. 해서 나는 지금 거의 '멘붕' 지경이다. 우리 학교 아이들은 내 얘기를 농담처럼 받아들였지만, 솔직히 자소서 첨삭의 절정기였던 지난 주에는 꿈에 자소서를 보는 내 모습이 나타나기까지 했다.

자소서만 앞에 두면 어려운 글쓰는 학생들

극히 일부의 예외가 없진 않지만, 대입 수시 전형의 입학사정관(입사관) 전형은 대다수가 자소서나 교사추천서 제출을 요구한다. 입사관 전형에서는 학생의 잠재 역량과 미래 발전 가능성을 중시한다. 그런데 이들 항목은, 학생부의 정량화한 교과 성적이나 비교과 영역의 교내 '공식' 활동만으로는 제대로 드러나지 않는다. '공식' 자료에는 학생 자신의 생생한 목소리가 담겨 있지 않기 때문이다.

문제는 자소서 양식이 과연 학생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얼마나 잘 드러낼 수 있느냐에 있다. 학생들은 대개 한국대학교육협의회(대교협)의 공통 양식을 자소서로 활용한다. 이 양식은 모두 네 개 항목으로 이뤄져 있다. 성장 과정과 환경이 미친 영향, 배려·합력·갈등 관리 등의 실천 사례와 그를 통해 배운 점, 지원 동기와 지원 분야를 위한 노력 중 가장 의미 있었던 교내·외 활동, 입학 후 학업 계획 및 진로 계획 등이 그것이다.

이들에 대한 기술로 학생들은 자신의 숨어 있는 내면을 제대로 드러낼 수 있을까. 언뜻 보면 과거 성장 과정과 환경의 영향을 써야 하는 첫 번째 항목에서 학생의 '내밀한' 속내를 엿볼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그런 글을 만나기는 쉽지 않다. '저는 군산에서 나고 자란 평범하지만은 여고생'이나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인한 경제적인 어려움' 등의 내용에서 학생의 숨겨진 모습을 보는 일은 불가능에 가깝다.

학생들의 글쓰기 실력이 문제여서일까. 그런 면이 없지 않다. 인문계 일반교과과정에는 <화법과 작문> 과목이 있다. 제대로만 한다면 작문의 이론과 기본 규범, 실제를 익힐 수 있는 과목이다. 그런데 심화선택과목인 <화법과 작문>은 주로 고등학교 졸업 학년인 3학년 2학기 과정에 편성된다. 입시와 문제풀이에 다걸기하는 학교 현장에서 온전한 글쓰기 교육이 이뤄지기 힘든 이유다.

이런 이유 때문에 학생들이 쓴 글은 차마 두 눈 뜨고 보기 어려울 때가 많다. 학생들은 '선생님'조차 '샘'으로 줄여 부르는 축약 문자 세대다. 트위터나 카카오톡의 세례로 짧은 글 올리는 데도 나름대로 괜찮은 감각들을 지니고 있다. 'ㅠㅠ'나 '^^' 등의 이모티콘을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감성 세대기도 하다. 학생들이 문장을 길게 쓰고, 추상적인 관념어로 정색한 표정을 지을 이유는 그 어디에도 없어 보인다.

하지만 자소서를 쓰는 학생들은 갑자기 조선시대의 부녀자들이 된다. '언문'을 자유자재로 부리던 조선시대 여염집의 아녀자나 궁녀가 돼 고색창연한 <석보상절>식 장문체를 구사한다. 한 문단이 5행 200여 자에 육박하는 묵직한 장문을 아무렇지도 않게 써내려간다. 유아기부터 초등학교 시절까지, 또는 사건의 배경부터 결말까지를 '~하고' '~하며' '~하니' '~해서' 등의 연결 표현으로 줄줄이 이어놓는 식이다.

문장이 너무 길어 잔소리를 조금이라도 하면 학생들은 긴 문장을 짧게 끊어놓기는 한다. 하지만 '그리고' '그러므로' '그래서' '또' 등의 접속어가 간단없이 튀어나오는 지경에 이르면 차라리 중세시대식 장문이 더 낫겠다며 한숨이 나온다. 과잉 추론과 일반화, 전후 맥락의 지나친 축약 등으로 글의 일관성과 통일성을 찾는 일은 애초부터 불가능하다. 추상적인 관념어들의 나열에는 치기어린 젊은 유생의 향기마저 느껴지기도 한다.

학생 탓할 게 아냐... 진짜 문제는 대교협·대학에 있다

도대체 학생들은 왜 그렇게 장문체에 집착할까. 왜 그렇게 한자어를 남용하고, 맥락을 짚지 못한 채 글을 쓸까. 자소서 양식을 눈앞에 둔 순간, 난데없이 문자는 알지만 글은 모르는 사람이라도 돼버린 걸까.

이런 모든 사실들이 크든 작든 학생들에게 영향을 준 것은 분명하다. 학생들이 쓰는 축약어와 이모티콘들은 전체 맥락과의 연관성에 대한 고려 없이 남발된다. 휴대전화로 보내는 단문 메시지는 분명 잘 만들지만, 차분한 태도로 글감을 찾고 생각을 돌아본 후 글을 쓰는 감각은 다소 떨어진다. 잘 쓰고 싶은 의욕은 있으나 직접 해본 적이 없으니 우선 남들 보기에 좋고 아름다운 말들만 골라 쓴다. 학생들의 글쓰기 능력과 감각, 정말 문제는 문제다.

하지만 곰곰이 따져 보면 공통 양식을 제공하는 대교협이나 자소서를 직접 보게 되는 대학측의 문제가 훨씬 크다. 어떤 문제가 있을까. 학교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자소서의 각 항목에서 요구하는 글자 수는 최대 1500자를 넘지 않는다. 대체로 가장 많은 글자 수를 요구하는 항목은 세 번째(지원 동기와 교내·외 활동) 것이다. 이 항목은 주로 1000자에서 1500자 정도에 걸쳐 있다. 나머지 세 항목은 500자 내외를 기본으로 한다. 300자 정도로 제한하는 학교도 있다.

나는 이들 항목을 쓸 때 이야기를 하듯 쓰라고 한다. 구체적인 경험과 사례를 중심으로, '기술'하지 말고 '묘사'하라고 말한다. "저는 어른 공경을 최우선의 생활 태도로 삼아 살아왔습니다" 대신 "저는 엘리베이터에서 이웃 어른을 만날 때마다 꼭꼭 인사를 합니다"로 쓰라고 조언한다. "우리 아파트 경비실 김씨 아저씨는 저를 '맏며느리감'으로 부르십니다"처럼 쓰면 더 좋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런 조언은 나만의 한바탕 잔소리로만 끝날 때가 태반이다. 그렇게 세세한 이야기를 조목조목 담아내기에는 대학이 제한해 놓은 300자나 1500자는 턱없이 부족한 양이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자신들만의 고유한 살아 있는 언어가 아니라 의미 없이 떠도는 세상의 죽은 말들을 여기저기서 갖다 쓰는 이유다. 펄떡펄떡 살아 움직이는 날렵한 단문이 아니라 축 처진 엿가락처럼 긴 장문을 쓰는 까닭이다.

자소서 쓰기가 글쓰기 실력을 뽐내기 위함은 물론 아니다. 화려한 언변으로 자신을 부풀리기 위한 것은 더더욱 아니다. 자소서는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드러내는 대신 보이지 않는 역량과 감각을 봐달라고 제공하는 참조 자료일 뿐이다. 자소서가 글의 구성이나 서술 방식, 문체나 표현의 유려함과 내용의 다과 등으로 평가받아서는 안 되는 이유다.

그런데 대입 자소서에서는 이런 점이 깡그리 무시된다. 학생들은 엄격하게 제한된 글자 수 규정에 묶여 정작 하고 싶은 말을 다 하지 못할 때가 많다. 하고 싶은 말이 정말 없는데도 억지춘향 격으로 지어 넣는 경우도 있다. 학생 개개인의 경험에 우열이 있을 리는 없다. 하지만 글을 쓰는 학생이나 그것을 보는 평가자 모두 경험의 우열을 전제로 하는 듯하는 분위기 널리 퍼져 있다.

교실에서는 이 내용은 어떠냐, 저 내용을 써도 되겠냐는 식의 질문이 난무한다. 그런 질문들에 대해, 어떻게든 한 마디라도 더 도움 되는 말을 해주고 싶어하는 열의 가득한 교사들이 각양각색의 대답을 내놓는다. 학교 밖에서는 자칭 혹은 타칭 전문가들의 코칭과 컨설팅이라는 이름으로 현란한 자소서 이론이 난무한다. 시중 서점의 입시 서적 코너에는 '우리 책 내용이 정답'이라는 투로 자소서 쓰기 기술을 뽐내는 책들이 즐비하다.

자기소개서, 제발 좀 자유롭게 쓰도록 합시다

어떻게 자소서 쓰기에 '정답'이 있을 수 있겠는가. 하지만 '정답'에 익숙한 우리는 많은 돈과 시간, 정성을 들여 그 '정답'을 찾으려 한다. 전문가가 써 놓은 글과 인터넷에 떠다니는 그럴듯한 정보들을 눈에 불을 켜고 찾아다닌다. 그래서 국어 교사는 알아서 솔직하게 쓰라 이르고, 수학 교사 담임은 그런 국어 교사 말을 들으라 한다. 넘치는 의욕을 주체하지 못하는 학생들은 그런 국어 교사와 한바탕 논쟁 아닌 논쟁을 벌인다. 대체 자소서는 어떻게 쓰는 게 맞느냐면서 말이다.

자소서를 포함해 입사관 전형에서 요구하는 교사·교장 추천서 등의 제출 서류 무용론을 운위하는 이들이 많다. 서류 자체의 형식주의와 내용의 변별성, 이와 관련되는 평가 자료로서의 타당성 등이 이유로 제시된다. 그런 아우성을 치면서도 학생들과 교사들은 꾸역꾸역 말들을 뱉어내야 한다. 이쯤되면 거대한 '사기극'으로 불러도 하등 이상하지 않다. 그러니 정녕 무의미한 서류 제도는 입사관 전형에서 사라져야 하는가.

나는 대교협의 공통 양식이 없어졌으면 좋겠다. 각 대학에서 자체 양식을 만들어 쓰라는 말은 아니다. 나는 자기소개서를 쓰되 심층 면접 시간을 이용해 자유롭게 쓸 수 있도록 제도를 보완했으면 한다. 현행 대교협 공통 양식에서와 같은 구체적인 발문이나 글자 수 제한도 두지 말고 학생들이 말 그대로 '멋대로' 쓸 수 있게 했으면 좋겠다. 일대기 방식을 취하는 어엿한 '약전'으로 해도 좋고, 개조식으로 자신을 소개하는 항목들을 나열하는 방식도 괜찮다. 글자 수도 한 문장으로 쓰든 2000자로 쓰든 학생들이 마음대로 정할 수 있게 한다면 금상첨화겠다.

그렇게 해서 어떻게 평가를 하라고? 미안한 말이지만 그건 평가를 담당하는 대학에서 고민해야 하는 문제다. 자소서를 포함해 추천서나 학생부 등과 같이 고등학교에서 올려보내는 각종 서류를 못 믿겠다면 직접 현장을 찾아와 확인하시라. 그렇게 해서, 성적도 성적이지만 진정으로 탁월한 잠재 역량을 가진 학생을 선발할 수 있다면 우선 대학이 좋지 아니겠는가.

자소서 쓰기가 지금과 같은 분위기 속에서 계속 이어진다면 입사관 전형은 조만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것이다. 하지만 그 한켠에는 입사관 전형의 본질과 의의를 잘 살리고 있는 대학과 전형들이 없지 않다. 그들을 위해서라도 자소서 쓰기 정책은 일대 손길을 타지 않으면 안 된다. 말도 많고 탈도 많지만 입사관 전형은 한국적인 교육 현실에서 그 존재 의의가 자못 크기 때문이다. 있지도 않은 '정답'을 찾으며 헤매는 학생들과, 그런 학생들을 안타깝게 바라보며 자소서 90여 장을 첨삭·논평한 어느 3학년 국어 교사의 물정 모르는 하소연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오마이뉴스 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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