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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를 하는 오랑우탄 오랑이. 미국동물원수족관협회는 영장류를 쇼에 이용하면 사람이 입는 옷을 입고 쇼를 하게 되어 종보전의 가치를 훼손하기 때문에 금지하도록 권고하고 있다. 의인화의 대표적인 폐해.
 쇼를 하는 오랑우탄 오랑이. 미국동물원수족관협회는 영장류를 쇼에 이용하면 사람이 입는 옷을 입고 쇼를 하게 되어 종보전의 가치를 훼손하기 때문에 금지하도록 권고하고 있다. 의인화의 대표적인 폐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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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인터넷 사이트를 통해 멸종위기 동물을 거래한다는 제보가 있었습니다. 고발장을 접수하고 진술하러 경찰서에 가니 누군가 "이 동물 귀엽네요. 애완용으로 키우면 안 되나요?"라고 물었습니다. 제가 '국제적인 멸종위기종이라 안 된다'고 했더니 대뜸 "<동물농장> 보니까 원숭이 키우는 사람도 있던데요" 하고 반문했습니다.

<동물농장>은 동물을 소재로 하는 대표적인 방송 프로그램입니다. 방송이다 보니 사람들의 흥미를 끌 만한 내용을 담아야 하겠죠. 그러나 대부분 개와 고양이를 제외한 다른 동물을 심각하게 의인화하기도 합니다. 희귀한 애완동물을 키우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꽤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런 사람들의 구매욕을 자극할 우려도 있죠. 의인화의 가장 큰 문제점은 야생동물과 애완동물 사이의 차이와 경계가 모호해진다는 점입니다. 야생동물도 쉽게 애완동물처럼 키우고 사육할 수 있다고 착각하게 만듭니다.

인터넷에 뒤져보니 정말 이름도 처음 들어보는 동물을 파는 사이트도 있고, 개인 간에 동물을 거래하는 사이트도 있더군요. 토끼, 개, 고양이, 기니피그 같은 동물들은 동물보호법에 의해 동물판매업으로 등록하고 팔지 않으면 불법입니다. 그러나 야생생물 보호 및 관리에 관한 법률은 기본적으로 산과 들, 강에 사는 야생동물(wild animals)를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야생동물을 판매하는 업체가 등록하거나 신고해야 하는 조항이 없습니다.

법률의 한계점을 이용해 사고파는 사람들이 있는 셈이죠. 한 사이트에 들어가보니 통신판매업으로 등록해 놓았더군요. 통신판매업 신고를 받는 곳은 각 시군구의 지역경제과입니다. 한 구에 전화해 물어보니 통신판매업 신고를 할 수 없는 업체 중 동물판매는 없다고 했습니다. 그 사이트 주소로 들어가보니 택배로 배달도 가능하다고 나와 있었습니다. 그러나 정작 전화하니 다행히 택배는 요새 안 하고, 직접 받으러 오라고 했습니다.

야생동물을 애완화하면 안 되는 이유

파충류는 수입시 검역도 받지 않고 번식과 매매에도 특별한 신고기준이 없어 상당수 개인간 거래된다.
 파충류는 수입시 검역도 받지 않고 번식과 매매에도 특별한 신고기준이 없어 상당수 개인간 거래된다.
ⓒ 전경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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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종위기종은 불법이니 당연히 거래해서는 안 되지만 다른 동물이라고 해서 안전하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우선 외국에서 수입한 동물의 경우 양서류와 파충류는 검역대상에서도 제외되어 있습니다. 이 동물을 국내에서 번식시키고 판매할 때(멸종위기종의 경우 환경부의 허가가 있어야 용도변경을 할 수 있습니다) 규제가 없다보니 개인 간의 거래도 곧잘 이루어집니다.

이런 동물을 애완용으로 키우면 어떤 문제가 발생할까요? 우선 개와 고양이처럼 사람과 친숙해지지 못하니 키우다 보면 그다지 즐겁지가 않습니다. 감정을 주고받아야 정이 들죠. 그래서 사이트를 통해 키우던 동물을 서로 주고받기도 합니다. 일종의 교환이죠. 이런 동물은 혹시라도 유기를 한다 한들 눈에 띄지도 않습니다. 도로 한복판에 이런 동물을 유기하진 않겠죠. 정확한 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이런 종들이 함부로 야생에 풀어진다면 생태계를 교란시킬 위험도 있습니다.

동물체험관을 운영하는 분에게 들으니 희귀한 동물들이 기증이라는 그럴듯한 이름으로 둔갑하여 체험관 안으로 들어오기도 한다고 합니다. 기증이 아니라 사실상 유기한 것이죠. 그리고 중고등학생들 중에는 뱀이나 파충류를 번식해 키운 후 되팔아 이윤을 남겨 용돈벌이도 한다고 합니다. 수입종 중 양서류와 파충류는 왜 검역대상에서 제외되었냐고 물으니 관련 정부기관에서 일하시는 분이 "광우병이나 구제역처럼 정확하게 병의 원인이 밝혀진 바가 없고 발발한 것이 확인된 바가 없기 때문"이라고 대답했습니다.

질병의 문제뿐 아니라 동물의 삶 전체, 탄생에서 죽음까지 누가 책임지고 그 동물을 살펴줄 것인가도 중요합니다. 그 동물로부터 어떤 영향을 받을지, 그리고 아프다 한들 희귀한 야생동물을 치료할 동물병원이 몇이나 될지도 의문입니다. 파충류와 양서류는 특히 임상증상이 늦어 질병이 발생한 것 같은 순간부터 죽음까지 매우 빠른 속도로 진행된다고 합니다. 예쁘고 귀여운 개나 고양이가 아니라고 해서 소중하지 않은 생명은 아닙니다. 원래는 야생동물이지만 내가 키우기 시작했으니 사육화되었다고 말하는 것 역시 위험합니다.

원숭이에게 먹이를 던져주는 모습. 이런 행위는 야생동물을 애완동물로 인식하게 만드는 주 요인이다.
 원숭이에게 먹이를 던져주는 모습. 이런 행위는 야생동물을 애완동물로 인식하게 만드는 주 요인이다.
ⓒ 전경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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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생동물을 함부로 사육하고 애완동물처럼 만들지 말아야 할 이유는 우리가 그 동물에 대해 알고 있는 지식이 많지 않다는 것입니다. 어떤 조건과 환경을 조성해주어야 하는지, 어떤 질병에 걸리기 쉬운지, 사람에게 어떤 영향을 주는지, 그 동물에 대한 연구성과도 많지 않고 극히 일부의 전문가들만 알고 있겠죠. 우리가 개와 고양이를 주로 반려동물로 키우는 이유는 그 동물과 인간이 생활한 역사가 오랜 기간 축적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개가 사람과 살기 시작한 지는 1만5000년, 고양이는 4000년이나 됐습니다.  우리는 그 역사적 경험을 단기간 내에 나 혼자만의 의지와 애정으로 극복할 수 있다고 함부로 말하면 안 됩니다. 무엇보다 희귀한 동물을 소유하려고 하는 사람의 심리에는 '개나 고양이는 너무 흔해. 나는 좀 다른 동물을 키우고 싶어'라는 과시욕도 있습니다. 우리가 동물을 사랑한다고 말할 때 '예쁜 동물을 가지고 싶다. 소유하고 싶다'고 하는 것과 '살아 있는 생명이니 존중하자' 하는 것에는 차이가 있습니다.

누군가 부산의 한 보호소에서 멸종위기 야생동물을 봤다고 제보한 글을 본 적이 있었습니다. 그 글은 민주당 장하나 의원실로 접수되었는데, 그 다음 날 의원실에서 전화를 걸어왔습니다. '보호소에서 나오게 해서 보호하긴 해야겠는데 마땅한 곳은 없고. 어디로 보냈으면 좋겠냐'고. 나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좋은 동물원은 서울대공원 동물원밖에 없고, 그곳이 가장 믿을 만하다'라고 답은 했지만, 사실 이런 말도 참 괴로울 뿐입니다.

내가 알기로 개인이 키우다 감당하기 어려워 동물원으로 기증된 동물들이 상당하다고 들었습니다. 동물원은 개인이 키우다 동물을 버리고 가는 곳이 아닙니다. 안 그래도 포화상태인 서울대공원 동물원에 이런 루트를 통해 지속적으로 동물이 유입되어 들어온다면 문제입니다. 그 야생동물이 살아갈 공간을 마련하는 데만 적게는 수억 원에서 수십억 원이 소요됩니다. 조금 특이한 동물을 소유하고 싶다는 욕심은 수억 원의 시민 세금을 지출하게 만드는 결과를 초래합니다.

의원실에서 미처 손을 쓸 틈도 없이 그 보호소에서는 멸종위기 동물이라는 것을 알고 나자 주위의 동물원으로 보냈고, 그 동물을 어떻게 다뤄야 할지 잘 몰랐던 동물원 측이 방심하던 사이 그 동물을 놓치고 말았습니다. 국제적 멸종위기종을 찾을 길이 막막하게 되었습니다.

체험관에 기증된 햄스터. 기증이라는 형식을 갖췄으나 개인이 책임지지 못하는 동물들이 동물원으로 흘러들어가고 있다.
 체험관에 기증된 햄스터. 기증이라는 형식을 갖췄으나 개인이 책임지지 못하는 동물들이 동물원으로 흘러들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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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초에 멸종위기 동물의 거래실태를 알게 되어 경찰서에 가기 전 제보한 분이 이런 고민을 털어놓았습니다.

"그 동물을 몰수하면 안락사시킬까요?"

환경부에 물어보니 몰수하면 동물원에 보낼 거라고 하더군요. 그러나 저는 또 걱정입니다. 안 그래도 미어터지는 동물원에 또? 우리나라는 아직 야생동물만 전담으로 보호하는 일종의 보호소, '생추어리'가 없습니다. 지방마다 아프거나 다친 야생동물을 치료하고 보호하는 곳은 있으나, 이런 곳에서 근무하는 수의사들의 근무시간은 하루 12시간을 넘습니다. 살인적인 업무를 견뎌내는 것은 오직 동물을 사랑한다는 수의사들의 사명감이지만, 사명감만으로 버텨내라 하는 것은 너무 가혹한 일입니다.

그 동물들은 인간이 야생동물의 터전을 빼앗으면서 다치거나 위기에 처한 동물들입니다. 우리가 한 짓이거나, 우리 이웃이 한 잘못 때문에 우리 지구별의 또 다른 친구들이 아프고 병들어가는 것이죠. 우리에게 책임이 없을까요?

동물을 좋아하는 사람과 싫어하는 사람들, 공존의 길은?

길고양이가 볕을 쬐도록 주민들이 놔준 박스.
 길고양이가 볕을 쬐도록 주민들이 놔준 박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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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서울시 동물보호명예감시원입니다. 이 제도를 만들기 위해 동물단체의 활동가들이 수년간 싸워왔기에 내가 할 책임을 다하고 싶었고, 또 일반인들이 하기 힘든 각종 학대현장과 동물관련 산업업소에 출입하거나 자료를 요구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생겼으니 최대한 활용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첫 활동으로 서울시 안의 공원에 가서 개를 데리고 나온 사람들을 만나 등록여부를 살피고 전단지를 나눠주는 활동을 하게 되었습니다.

두 번째 날 보라매공원을 갔다가 간 김에 공원관리소장님을 만났습니다. 현재 서울시에서 처음으로 만든 반려견 놀이터는 어린이대공원 내에 있습니다. 그러나 보라매공원은 시민들도 많이 이용하고 반려견을 키우는 사람도 많으니 반려견 놀이터를 만들어도 좋겠단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소장님은 당신의 고충을 털어놓으셨습니다. 반려견 놀이터를 만들자고 말한 사람들 상당수가 '내 눈에 띄는 거 꼴 보기 싫으니 어디 가둬두고 풀어놓으라'는 의미로 반려견 놀이터를 만들라고 한다는 것입니다.

물론 에티켓을 지키지 않는 사람도 문제지만, 내 눈에 띄는 것이 무작정 싫다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동물보호과로 들어오는 상당수의 민원 중에는 '저 개 좀 어떻게 해달라', '동네 고양이 좀 어떻게 해달라' 하는 식으로 동물을 처분해 달라는 민원도 상당하다는 것입니다. 저는 서울시 안에 반려견 놀이터 하나 생긴 것만으로도 기적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행정관청에 전화해 '동네 고양이 좀 싹쓸이 해달라'는 사람들이 있는데요.

길고양이를 돌보는 이른바 '캣맘'들은 주로 밤시간대를 이용한다. 협박에 종종 시달리기 때문이다.
 길고양이를 돌보는 이른바 '캣맘'들은 주로 밤시간대를 이용한다. 협박에 종종 시달리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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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는 어떤 동네 아파트 주민들이 지하에 사는 길고양이들을 죽이겠다고 지하실 문을 잠가 가두는 바람에 한바탕 소란이 있었던 적도 있었습니다. 동물단체에서 일하다보니 그런 제보는 수도 없이 많습니다. 누군가 동네에서 쥐약을 풀어 고양이를 죽이는 거 같다고 해서 사체를 들고 왔길래 부검을 받으러 검역원까지 간 적도 있었죠.

그뿐이 아닙니다. 고양이에게 밥을 주면 죽이겠다고 협박하는 동네 사람들. 동네에서 쫓아내겠다고 하는 사람들. 그런 분들에게 물어본 적이 있습니다. 그 고양이가 뭘 그렇게 잘못했나요? '그냥 싫다'고 하십니다, 그냥. '밤에 우는 것도 싫다'고 하시는 분들에게는 '고양이가 발정기가 되면 그럴 수 있으니 구청에 연락하시면 데려다가 수술시키고 방사해요'라고 권유합니다. 그러나 이런 분들도 있습니다.

"방사는 무슨 방사. 그냥 잡아가 죽이면 안 되나요?"

극단적인 혐오에 의한 학대, 잘못된 애정에 기초한 무책임함 모두 우리 사회의 모습입니다. "부자 되셨습니까? 그걸로 충분하십니까?"라고 묻고 싶습니다. 서로 다른 사람들끼리 이웃으로 살려면 서로 양보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해하고 배려하고 대화로 문제를 풀어나가고.

내가 싫으니 '내 눈앞에서만 치워버리면 그만이다'라고 말하는 분들. 희귀한 동물을 소유하겠다고 욕심내는 분들. 유기된 동물 연간 10만 마리를 처분(?)하는 데 들어가는 비용, 희귀한 동물을 몰수 후 보호할 곳이라고는 동물원밖에 없을 때 그 동물을 사육하고 관리하는 데 들어가는 비용은 모두 어디서 나올까요? 결국 우리 모두 분담해야 할 사회적 비용으로 돌아오는 것입니다.

욕망은 있으나 책임지지 않는 사회. 나만 생각하고 양보하지 않는 사람들. 동물을 둘러싼 사람들의 시선을 본 결과입니다.


태그:#동물학대, #야생동물, #애완동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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