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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링은 격리와 유폐가 아니다. 참된 힐링은 상처 있는 것들끼리의 위로와 공존이다. 1004개의 섬으로 이뤄진 전남 신안군에는 수려한 자연풍광과 노동하는 사람의 땀과 눈물이 잔파도처럼 함께 넘실대는 많은 섬길이 있다. <오마이뉴스>는 '천사의 섬, 신안군'에 보석처럼 나 있는 '힐링 섬길'을 독자 여러분께 소개해드리고자 한다. 오늘은 그 열세번째로 증도 힐링 섬길이다. [편집자말]
증도 짱뚱어다리를 건너면 다양한 증도갯벌의 생태가 한눈에 들어온다.
 증도 짱뚱어다리를 건너면 다양한 증도갯벌의 생태가 한눈에 들어온다.
ⓒ 이주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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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해 80만 명, 어떤 매력이 있을까

찾아와준 것만으로 고마울 법한데 되레 입장료를 내라는 섬. 가져온 자동차는 지정한 곳에 세워두고 자전거를 이용하라는 섬. 택시는 두 대밖에 없으니 웬만한 거리는 걸으라는 섬. 담배 파는 가게가 없어 흡연하기 힘든 섬. 집집마다 친환경세제를 쓰고 있어서 합성세제 한 스푼 얻어 쓰기 힘든 섬.

이토록 불편한 섬을 2012년에만 약 80만 명이 다녀갔다. 어디에 있는 어떤 섬이기에 이렇게 많은 이들이 찾은 것일까. 대체 이 섬의 어떤 매력이 이렇게 많은 이들을 오게 만들었을까. 

이 섬의 이름은 증도. 물이 귀해 '시루(시리)섬'이라 불리다가 전증도와 후증도가 간척으로 하나가 되면서 한자로 '증도(曾島)'라 표기했다. 증도는 40㎢ 면적, 18개 마을에 주민 약2000명이 살고 있는 작은 섬이다.

이 섬의 가치를 제일 먼저 알아본 것은 국제슬로시티연맹. '슬로시티(slow city)'는 지역 고유의 전통과 자연생태를 보전하면서 인류의 지속적인 발전과 진화를 추구하는 운동이다. 2012년 6월 기준으로 세계 약 25개국의 150개 도시가 국제슬로시티연맹에 가입해있는데 증도는 2007년 12월 '슬로시티'로 지정됐다. 아시아에서는 처음이었다.

증도가 슬로시티로 지정된 까닭은 갯벌 생태와 염전 문화의 우수성을 인정받았기 때문이다. 증도 갯벌은 펄갯벌과 모래갯벌, 홍합갯벌 등이 다양하게 형성되어 있다. 2008년 6월 한국 최초로 갯벌도립공원으로 지정된 증도는 2009년 5월엔 유네스코 생물권보전지역으로 지정되었다.

길이 4km가 넘는 백사장에서 여유로운 한때를 보내고 있는 사람들.
 길이 4km가 넘는 백사장에서 여유로운 한때를 보내고 있는 사람들.
ⓒ 이주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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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전으로 옆으로 함초밭이 펼쳐진 증도의 아름다운 풍광. 증도는 아시아 최초로 '슬로 시티'에 지정된 섬이다.
 염전으로 옆으로 함초밭이 펼쳐진 증도의 아름다운 풍광. 증도는 아시아 최초로 '슬로 시티'에 지정된 섬이다.
ⓒ 이주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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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갯벌로는 드물게 증도 갯벌 31.3㎢가 2010년 1월 습지보호지역으로 지정되더니 2011년 9월엔 람사르 습지로 지정되었다. 연구자들은 증도 갯벌에 짱뚱어, 게, 조개 등 저서생물 100여 종 이상이 서식하고 있다고 전한다. 그리고 퉁퉁마디, 순비기나무 등 염생식물 종도 다양하다고 말한다. 자연생태의 원시성이 잘 유지되고 있고, 생물 다양성이 풍부하다는 얘기다.

이렇게 보전·보호지역으로 지정된 것이 많다 보니 사람들이 불편해지는 것은 당연한 일인지 모르겠다. 하지만 불편함도 이를 감내하려는 주체가 없으면 사라지기 마련이다. 즉 국가나 지방자치단체, 주민들이 불편함을 감수하고서라도 이를 보전하고 보호하지 않으면 그 대상은 개발되어 본래 모습을 잃어버리고 파괴되어 그 흔적조차 사라져버리기 쉽다.

증도가 더없이 아름다운 것은 자연생태와 풍광이 빼어나서가 아니다. 불편함을 감수하고서라도 생물권의 보고인 증도를 지키겠다는 지자체와 주민의 노력이 돋보이기 때문이다. 개발로 인한 눈앞 이득에 급급해 후손들이 천만년을 이어 벌어먹을 터전을 박살내버리는 극단의 사례들이 도처에 널려 있다. 오죽하면 '토목공화국'이란 말이 만들어졌을까.   

슬로시티로 지정된 이후 증도엔 해마다 관광객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그러자 신안군(군수 박우량)은 2009년 12월 '자동차 없는 섬' 조례를 제정한다. 이 조례는 증도를 찾는 관광객들은 타고 온 모든 차량을 증도대교 입구에 마련된 대형 주차장에 세워 놓으라고 주문한다. 대신 섬 안에서는 자전거와 전기차, 마차, 우마차 등 화석연료를 사용하지 않는 운송수단을 이용해 여행하라는 것이다. 주민들의 동의 없인 불가능한 일이었다.

증도 짱뚱어다리를 건너 우전해수욕장에 이르자 흡사 다른 나라에 온 듯하다. 비치파라솔은 백사장을 따라 그림처럼 이어져 있고, 해송림은 4km가 넘는 백사장을 그림자처럼 뒤따라 이어진다. 주민들은 4.6Km 이어진 이 길을 '천년의 숲길'이라고 부른다. 이 숲길은 '제10회 아름다운 숲 대회'에서 '공존상'을 받았다.

비치파라솔이 그림처럼 펴쳐진 우전해수욕장. 풍경이 이국적이다.
 비치파라솔이 그림처럼 펴쳐진 우전해수욕장. 풍경이 이국적이다.
ⓒ 이주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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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도 천년의 숲길은 해송림이다. 우전해수욕장 사구를 따라 이어진 한반도 모양의 이 숲길은 '아름다운 숲길' 공존상을 받았다.
 증도 천년의 숲길은 해송림이다. 우전해수욕장 사구를 따라 이어진 한반도 모양의 이 숲길은 '아름다운 숲길' 공존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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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편한 섬을 만들겠다"

해송(海松)이 뿜어대는 쌉싸름한 향에 취해 걷는다. 80만 명이 넘는 사람이 이토록 많은 불편함을 감수하고 증도를 찾는 이유가 무엇일까. 그것은 불편하기 때문이다. 불편함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도시의 삶과 생활은 편리함을 지나쳐 편리에 길들여진 종속의 지경에 이르렀다. 제 몸과 마음의 근육을 써서 스스로 하는 일이 드물다. 걷기는 자동차가 대신해주고, 생각은 포털 사이트 '지식 검색'이 대신해준다. 

창조를 강조하는 일과 놀이와 노동 역시 '툴(tool)'이 지배하고 있다. 가수는 '소비자의 취향'이라는 툴에 맞춰 대량 생산되고, 시(詩)마저 '맞춤형 평론'이라는 툴에 맞춰 생산되고 있다. 툴에 따라 마구 찍어대는 것들의 홍수에 밀려 대중은 '판매차트 1위'만 '공유'하고 '다운로드' 받다가 사라지는 존재가 되었다.

이미 주체성이 상실된 상태에서 사람은 불편할 틈이 없다. 불편한 관계는 안 보면 되는 것으로 정리된다. 그래서 불편할 필요도 없다. 지나치게 편리하다. 그럼으로 더욱 고독하다. 하여 도피한다.

매 순간 잊고 도피하는 것으로 도시 살이를 하면서 '다 잊어버리겠노라'며 떠난다. 그렇게 떠나온 곳이 불편하다. 대신 걸어줄 자동차는 묶였다. 내 근육을 움직여 걸어야 한다. 제 근육을 움직여 걷다보니 제 마음의 근육도 스스로 꿈틀대기 시작한다. 비로소 살아난다. 내 다리로 걷고, 내 머리로 생각하고….

언젠가 박우량 신안군수는 <오마이뉴스>와 가진 인터뷰에서 "섬에 쓰레기만 버리고 가는 관광객 수백만 명 안와도 상관없다"며 "불편한 섬을 만들겠다"고 말한 적 있다. 불편한 섬, 그 섬에 해마다 관광객이 늘고 있다.

천년의 숲길 끝난 자리에 해당화 열매가 노랗게 영글었다. 마음 속 풍금이 노래 한 소절을 울린다. 필름 사진을 찍듯 수첩을 꺼내 볼펜으로 한 자 한 자 따라 적는다.

"모국어로 타자의 심금을 울릴 수 있는 게 시(詩)뿐이라면 모든 글은 시처럼 씌어져야 할 것이다. 강고하게 가난에 연대하고, 처절하게 바닥을 기며, 의연하게 소멸을 기약하는... 시처럼 쓰고, 시처럼 살 일이다."

해당화는 지고 열매가 노랗게 영글었다.
 해당화는 지고 열매가 노랗게 영글었다.
ⓒ 이주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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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신안군 힐링 섬길, #증도, #유네스코, #박우량, #슬로시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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