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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난히 우리 가족에게 친근하게 다가오던 암컷 아기너구리를 딸이 안고 찍은 것이다. 개과로 묶어 분류하는 학자들도 있지만 너구리과로 독립해 분류하는 학자도 있다고 한다.
 유난히 우리 가족에게 친근하게 다가오던 암컷 아기너구리를 딸이 안고 찍은 것이다. 개과로 묶어 분류하는 학자들도 있지만 너구리과로 독립해 분류하는 학자도 있다고 한다.
ⓒ 김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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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12일 오전 1시 30분쯤, 출근한 남편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남편은 "너구리 세 마리를 데려갈 것인데 괜찮겠어?"라고 말했다.

한밤중에 전화해 살아있는 너구리를 데려온다는 남편의 말이 도무지 믿기지 않았다. 잠결에 받은 전화라 꿈을 꾼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남편이 라면 박스를 안고 나타났다. 너구리 라면이 아닌, 진짜 살아있는 꼬물거리는 아기너구리 세 마리가 들어있는 그런 박스를 안고 말이다.

어미는 차에 치였고, 아기 너구리들은 높은 축대에서 떨어졌단다. 그 자리에서 꼼짝 못 하고 있는 아기 너구리들을 그냥 두고 오면 차에 치이거나 족제비 같은 날짐승들에게 먹힐 수도 있을 것 같아 데려왔단다. 한밤중이라 일단 집으로 데려온 거란다. 남편은 날이 밝으면 산으로 보내든지 야생동물보호협회 같은 곳에 보내야 할 것 같다고 했다.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일이라, 아니 아예 생각조차 안 했던 일이라 눈앞에 너구리들이 꼬물거리고 있음에도 도무지 실감나지 않았다. 아기 너구리들은 아파서 우는 건지, 어미를 찾는 것인지, 아기울음소리 같기도 하고 강아지 울음소리 같기도 한 소리들을 내며 보챘다.

남편은 손을 종지처럼 오므려 우유를 따른 후 너구리들을 한 마리씩 안고 먹였다. 그런 후  퇴근하는 길에 사온 강아지 사료를 조금씩 줬다. '젖병이라도 사다 먹여야 하나?' 걱정됐다. 그런데 다행히도 너구리들은 강아지 사료를 잘 먹었다. 

며칠이 지났다. 시들어 가는 식물처럼 힘이 없던 너구리들은 며칠 사이 눈에 띄게 팔팔해졌다. 틈만 나면 달려가 저희들을 쳐다보곤 하는 우리 가족에게 다가와 킁킁대거나 손을 핥기도 했다. 그리고 60cm~70cm 높이의 상자를 넘어 집안 곳곳을 기웃거리거나, 침대 밑처럼 구석진 곳에 들어가는 등 활개를 치고 다녔다.

어느날 새벽 남편이 데려온 너구리 삼남매

난 남매를 뒀다. 뱃속에 있을 때부터 움직임이 뚜렷하게 달랐던 아들과 딸은 태어난 첫날부터 확연한 차이를 보이며 자랐다. 그런데 너구리같은 짐승들도 그런가 보다. 수컷 두 마리가 몸싸움을 하며 노는 것과 달리 암컷은 가지고 놀라고 준 휴지심에 붙어있는 휴지를 물어뜯어 한쪽에 모으며 노는 등 모든 면에서 수컷들보다 얌전했다.

귀나 발을 물어뜯으며 과격하게 노는 수컷 두마리로부터 몸을 사리곤 하는 암컷만 따로 둘까 망설이기도 했다. 그러나 그냥 두기로 했다. 너구리들은 사료는 사이좋게 나눠 먹으면서도 우유나 사과는 서로 먹겠다고 다투곤 했는데, 맛있는 것을 조금이라도 더 먹겠다고 다투다가도 언제 다퉜냐는 듯 서로 꼭 붙어 잠을 자곤 했기 때문이다.

처음 남편이 너구리를 데려왔을 때, 2~3일 후면 보낼 것이라고 했기에 현관 앞에 박스를 넣고 신문지를 두툼하게 깔아 보금자리를 만들어줬다. 그런데 너구리들은 하루에도 몇 번씩 잠을 자는 그 박스 안에 똥과 오줌을 쌌다. 너구리는 습성상 한 곳에만 배설을 한다는 걸 인터넷 검색을 통해 알게 됐다. 한두 번이면 몰라도 그게 반복되니, 냄새가 장난이 아니었다. 간혹 치우지 않으면 집안 가득 개의 오줌과 비슷한 노린내가 진동했다.

난 시골에서 자랐고 우리 집은 늘 개를 키웠다. 그래서 난 개를 좋아한다. 그러나 밖에서 키우는 것을 좋아하지 집안, 그러니까 사람들이 먹고 자는 공간에서 키우는 것은 싫다. 이런지라 냄새 풀풀 나고 보이지 않게 털도 많이 날릴 너구리들을 집안에 둬야 한다는 것이 무척 괴로웠다.

단지 마음 문제가 아니었다. 남편이나 아이들은 아무렇지도 않은 것 같은데 난 시도 때도 없이 목이 컥컥 막혔다. 게다가 벼룩이나 살인진드기라도 묻어왔으면 어쩌나 싶어나도 모르게 눈이 자꾸 방바닥을 닦는 등 신경이 곤두섰다.

당분간, 야생에서 혼자 살 수 있을 때까지만...

손가락에 묻은 우유까지 핥아먹을 정도로 우유를 좋아하는 너구리.
 손가락에 묻은 우유까지 핥아먹을 정도로 우유를 좋아하는 너구리.
ⓒ 김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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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밖으로 내보내자니, 어린 시절 걸핏하면 나타나 집에서 기르는 닭이며 토끼 등을 물어 죽이던 족제비 같은 날짐승들이 생각나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 도와준답시고 데려와 우리의 부주의로 도리어 잘못되는 상황이 발생하는 건 생각만으로 끔찍했기 때문이다. 만에 하나 그런 일이 발생하면 죄책감으로 두고두고 괴로울 것 같았다.

사정이 이러니, 너구리들이 온 후 그 누구보다 바빠진 것은 남편이었다. 밤새 거래처를 돌고 새벽에 들어와 너구리들의 잠자리 청소부터 현관 물청소까지 해야만 했다.

"동물보호협회 같은 곳으로 보낼까 했는데, 얘네들이 원래 살던 곳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 그런데, 사실 안심이 안돼. 원래 동네 뒷산 정도는 되는 큰 산이었는데, 십 년 전 아파트들을 지으면서 산이 조각나버렸거든. 대부분 산이나 논밭을 아예 밀어버리면서 아파트들을 짓고 그러잖아. 그런데 이 OO동 일대는 산을 다 밀지 않고 여기 조금 저기 조금 남겨놓는 식으로 했어. 도로도 내고…. 그냥 나무 몇 그루 모여 있는 정도로 작은 산들이 아파트들과 공장들 사이에 있는 상태지. 너구리같은 야생동물들이 안심하고 살긴 좀 그래. 이산에서 저산으로 가려면 도로를 지나야 하니까 로드킬도 많이 일어나기도 하고. 차라리 우리 동네 뒷산이나 북한산이 너구리들에겐 훨씬 좋을지 몰라."

그럼에도 남편은 너구리들을 보낼 생각을 하지 않는 듯했다. 너구리를 데려올 때만해도 "오늘 야생동물보호협회에 연락해 보낼 것"이었던 남편은 "일어나보니 오후 6시가 넘어버려 전화를 하지 못했다, 내일은 꼭 알아봐서 보낼 것"이라며 하루 이틀 미뤘다. 그러더니, 조금만 더 데리고 있자고 했다.

남편의 말이 맞을지도 모른단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남편의 "우리가 조금만 더 데리고 있다가 내보내도 되겠다 싶으면, 스스로 먹이를 찾을 수 있겠다 싶으면 야생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해주자"는 말에 선뜻 동의했다.

유인원 연구 여성 3인 중 한사람인 '다이앤 포시(1932~1985)'가 열대우림의 고릴라들과 15년간 생활하며 관찰 연구한 기록인 <안개속의 고릴라>(2007년 승산 펴냄)란 책에 의하면, 사람들처럼 가족 간 유대감이 강한 고릴라들은 가족 중 누군가 포획되거나 희생되면 그를 구하고자 열 마리가 넘는 가족들이 결사적으로 싸운단다. 희생되거나 포획된 가족을 찾고자 죽을 각오로, 모두 죽어 더 이상 싸울 가족이 없을 때까지 싸우는 것이다.

르완다 국립공원 등 아프리카 국립공원의 일부 관리자들은 어린 고릴라들을 포획해 업자들에게 팔아넘기는 비리를 저지르곤 한다. 그렇게 잡힌 어린 고릴라들은 세계 각지의 동물원으로 가게 되나 평생 가족에 대한 그리움과 이별의 아픔으로 살아간다고 한다.

다이앤 포시가 <안개속의 고릴라>를 쓰던 1978년 어느 날 독일 퀼른 동물원의 고릴라 코코와 퍼커가 한 달 간격으로 죽는 일이 발생한다. 다이앤 포시에 의하면 이 고릴라들은 스스로 죽음을 선택한 것이란다. 마음의 병 때문에 살아갈 의지를 스스로 포기한 것이다. 둘 다 각각 열 마리가 넘는 가족들의 희생 끝에 인간에게 붙잡힌 고릴라들이었기 때문이다.

언제나 꼭 붙어 자곤 하는 너구리들을 보며 몇 년 전 다이앤 포시를 통해 알게 된 고릴라 이야기도 떠올랐다. 너구리들도 고릴라들처럼 가족 간 유대감이 강하단 생각과 코코와 퍼커처럼 어미와 형제들에 대한 그리움으로 마음이 아플 거란 생각에 측은하기만 했다. 그래서 당분간 좀 불편해도 참고 야생에서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한다는 생각에 동의한 것이다.

10일째 되던 날, 집 나간 너구리는 돌아오지 않았다

아기너구리 삼남매를 놓아주던 날
 아기너구리 삼남매를 놓아주던 날
ⓒ 김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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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일째 되던 날인 6월 21일 오전 11시 며칠 전 철망 등을 사다가 임시로 만들어 보호 중이던 우리에서 너구리들을 꺼내놓았다. 이삼 일 사이 표가 나도록 부쩍 자란 데다가, 3일 밤을 밖에서 자게 했는데 날짐승들이 너구리를 노린 위험의 흔적이 전혀  발견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어차피 야생으로 보낼 거면 사람들에게 더 의지하거나 길들여지기 전에 보내는 것이 너구리들에게 훨씬 좋겠다고 생각했다.

우리에서 내보내자 너구리 삼남매는 마당을 비롯한 집안 곳곳을 탐색하고 다녔다. 그리고 수컷 두 마리는 굵은 목련나무 부근으로 잽싸게 튀어가 나무 주변에 쌓아둔 재활용품들을 헤집으며 놀기 바빴다. 그러나 수컷 두 마리에 비해 비교적 얌전했으며 수컷들보다 더 가까이 다가오곤 하던 암컷 너구리는 목련나무 아래에 놓아둔 항아리 앞에 한참 동안(아마도 5분 남짓?) 서서 날 바라봤다.  

'그 암컷 너구리는 왜 그리 오랫동안 날 바라보며 서 있었던 걸까? 무슨 말을 하고 싶었던 걸까? 밖으로 나가는 것이 두려웠던 것일까. 저희들을 버리는 것 같아 우리가 섭섭했던 걸까? 지금은 어디에서 잘 자라고 있겠지'


이제는 볼 수 없는 너구리들을 생각하며, 어디에서든 잘 살고 있겠지라고 생각하며 이 글을 쓰는 이 순간에도 그날 암컷 너구리가 보여줬던 행동과 눈빛이 특별한 감정으로 떠오른다. 지난 두 달 동안 문득문득 떠오르곤 했던 인상 깊게 남아 있는 그 행동과 그 눈빛이.

우리에서 내놓던 날 한참동안 바라보고 섰던 암컷 아기너구리.
 우리에서 내놓던 날 한참동안 바라보고 섰던 암컷 아기너구리.
ⓒ 김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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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구리 삼남매를 내보내면서도 때 되면 와서 먹이도 먹고, 저희들이 며칠간 부비며 지내었던 우리로 돌아와 잠을 잘 것이라고 생각했다. 아니 오지 않을 것이란 생각은 아예 하지 않았다.

어린 아가들이지만 야생동물이고 보니 작은 소리에도 민감하게 반응하곤 했으나 그럼에도 우리 가족에겐 다가와 냄새를 맡거나 핥는 등 친근함을 보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미처 먹이를 주지 않거나 부족하다 싶으면 우리를 향해 밥그릇을 밀어 나름의 의사표현도 하는 등 우리 가족에게 의지하는 것이 분명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 시간쯤 목련나무 주변이나 마당 여기저기를 기웃거리며 놀던 너구리 삼남매는 어느 순간 보이지 않더니 어느새 아예 사라져버렸는지 오후 내내 보이지 않았다. 게다가 지난 열흘 동안 매일 저녁먹이를 먹던 5~6시가 되어도, 그 이후에도 나타나지도 않았다. 물론 우리로 돌아와 자지도 않았다. 그래도 다음날에는 오겠지. 그러나 매일 아침을 먹던 시간에도 아예 나타나지 않았다.

무사히 살아 있는 것만이라도 확인하고 싶다

사실 너구리들을 풀어놓은 첫날, 저녁을 먹으러 나타나지 않아 걱정되었다. 그러나 한편으론 내보내기 직전에 먹이를 충분하게 줬기 때문에 배가 고프지 않아 오지 않는 것이라고 스스로 위로했다. 그리고 배가 고프면 당연히 오리라. 아니 잠은 우리로 돌아와 자리라 기대했다. 그러나 밤새 흔적이 없음은 물론 너구리들은 다음날 밥 때를 지나 오후가 되어도 나타나지 않았다. 

다음날이 되어도 나타나지 않는 너구리들을 보며 그동안 우리가 보호한답시고 데리고 있었던 것이 실은 너구리들에겐 그리 좋지 않았을지도 모른단 생각이 들었다. 그리하여 저희들이 살 곳을 찾아 아예 산으로 가버렸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차라리 정말 잘 된 것이다 싶었다. 그러나 한편으론 아직 먹이도 제대로 구하지 못할 정도로 어린 것들을 너무 빨리 내놓아 족제비 같은 날짐승들에게 먹혀버린 것은 아닌가 싶어 마음이 싱숭생숭 복잡했다.

아니, 처음부터 언젠가는 보낼 것을 전제로 데리고 있었던 거지만 예상과 달리 느닷없는 이별을 한 터라 너구리들이 나타나지 않는 시간이 더해지면 더해질수록 허전해지기만 했다. '그간 너구리들과 정(情)이 참 많이 들었었구나'의 생각도 들고.

"엄마 아빤 뭐가 그리 급했는데? 좀 더 데리고 있다가 보내지…. 나한테 미리 말이라도 좀 하고 보냈으면 좋았을 것인데….  난 이별도 못했잖아. 잘 살겠지만 그래도 너무 슬프고 허전해."

학교에서 돌아 온 딸은 더 이상 너구리들을 볼 수 없음을 슬퍼하며 나와 남편을 원망하며 눈물을 쏟았다. 그런 딸에게 조만간 예쁜 강아지 한 마리 데려다 주겠다며, 그러나 먹이를 구하지 못한 너구리들이 왔다가 저희들이 있던 자리에 강아지가 있는 것을 보면 마음의 상처를 입을지도 모르니 한 달 정도만 기다려 달라며 약속했다. 그러고도 내 안에서 무언가 빠져나가버린듯 자꾸 헛헛하고 착잡해져 집주변과 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산 입구로 가 한참을 서성였다. 혹시 볼 수 있을까. 녀석들 모두 무사히 살아있는 것만이라도 확인하고 싶어서….

(그 후 이야기 며칠 후에 이어 쓰겠습니다.)


태그:#너구리, #야생동물, #야생동물보호법, #애완동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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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제게 닿아있는 '끈' 덕분에 건강하고 행복할 수 있었습니다. '책동네' 기사를 주로 쓰고 있습니다. 여러 분야의 책을 읽지만, '동·식물 및 자연, 역사' 관련 책들은 특히 더 좋아합니다. 책과 함께 할 수 있는 오늘,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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