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남한산성에서 바라본 일몰, 저 멀리 도심이 붉게 물들어 있다.
▲ 일몰의 시간 남한산성에서 바라본 일몰, 저 멀리 도심이 붉게 물들어 있다.
ⓒ 김민수

관련사진보기


하루가 저물어가는 시간에 남한산성으로 향했다. 혹시 운이 좋으면 일몰도 보고, 저녁 무렵에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을 맞이할지도 모르겠다는 마음으로. 그 마음과 더불어 도심의 빌딩 숲에 갇혀 오가느라 운동과 멀어진 생활의 리듬을 조금이라도 바꿔볼 요량으로 산을 오른다.

남한산성을 자주 다녔지만, 이번에 걸었던 길은 이전에 가보지 못했던 길이다. 그냥, 숲에 안겨있다는 것이 중요한 것, 그 길을 걷는다는 것에 의미를 두고 산행을 한다.

낮은 곳에서 바라보는 일몰과는 또다른 높은 곳에서 바라보는 일몰도 아름답다.
▲ 남한산성의 일몰 낮은 곳에서 바라보는 일몰과는 또다른 높은 곳에서 바라보는 일몰도 아름답다.
ⓒ 김민수

관련사진보기


무너진 성터가 제법 높다. 어려서부터 남한산성이라면 제법 올랐다고 자부했는데, 걷다보니 처음으로 온 곳이다. 나에게는 처음 온 길이지만, 이미 많은 이들이 오간 길임을 증명하듯 등산로와 쉼터까지 있는 곳이다.

전시에는 그곳에서 적의 동태를 살폈을 터이다. 아마 병자호란 때에도 그곳에서 적의 움직임을 살폈을 터이다. 그러나 결국 나라를 끝내 지키지는 못했다.  그곳은 우리네 유린된 역사처럼 무너져 있다.

가장 높은 곳에 올라가 바라보니 우로는 서울에서는 살기 좋다는 송파구와 강남구, 남산타워와 여의도, 북한산 자락까지 한 눈에 들어온다. 좌로는 성남시가 한 눈에 들어온다. 참으로 좋은 위치에 자리한 성벽이다.

도심의 고층빌딩 위로 해가 지고 있다.
▲ 일몰 도심의 고층빌딩 위로 해가 지고 있다.
ⓒ 김민수

관련사진보기


해가 지기 시작한다. 스모그에 오메가를 만들지는 못하겠지만, 바다 위에 떨어지는 해와 그리 다르지 않을 것 같다.

산의 가랑이 사이로 해가 들어가 밤새 해를 품고 아침이면 잉태한 해를 저 바다에 토해놓는다. 도심의 일몰은 산의 가랑이 사이가 아니라 갈라진 빈 틈 사이로 해가 들어간다. 그 사이 도심은 탐욕의 거리가 되어 아침이 오기 전 온갖 배설물들을 토해 놓는다. 그러나 그것이 절망과 동의어는 아니다.

사람이 살아있는 곳에는 언제 어디서든 희망이 살아 숨쉬고 있는 것이다. 단지, 절망과 희망 사이에서 어느 것을 바라보는가의 차이일 터이다. 절망이 더 크더라도 희망을 보는 이가 있는 한 희망적이다.

아주 조금 남은 햇살과 도심의 스모그
▲ 일몰 아주 조금 남은 햇살과 도심의 스모그
ⓒ 김민수

관련사진보기


그렇게 해는 오메가를 만들지 못하고, 스모그에 서서히 물들어갔다. 해도 스모그를 물들이지는 못했다. 그렇게 물들었다. 그러나, 그 뒤 스모그 위의 세상은 도심의 으슬으슬한 잿빛 스모그도 어쩌지 못했다.

그 위의 세상은 여전히 찬란했다. 아직 저 보이지 않는, 스모그에 잡혀 먹은 듯한 태양이 잡혀 먹은 것이 아니라는 증거를 보여준다.

송파구과 강남구, 저기 멀리 여의도까지 오밀조밀하다 못해 빽빽한 도심의 건축물들
▲ 도심의 일몰 송파구과 강남구, 저기 멀리 여의도까지 오밀조밀하다 못해 빽빽한 도심의 건축물들
ⓒ 김민수

관련사진보기


하늘의 구름도 햇살을 받아 아름답게 채색이 된다.
▲ 일몰 하늘의 구름도 햇살을 받아 아름답게 채색이 된다.
ⓒ 김민수

관련사진보기


도심과 도심의 하늘과 경계를 이루고 있는 선명한 라인, 그것을 바라보다 앉아서 노을을 바라본다. 그렇게 앉았을 뿐인데 도심의 성냥갑 같은 건물들이 사라지고 산의 나무와 산등성이와 하늘만 보인다.

이렇게 다르다. 내가 일어서서 세상을 바라보는 것과 앉아서 세상을 바라보는 작은 차이가 이렇게 큰 차이를 만드는 것이구나 싶다. 세상에 눈 감아 버리고 싶어서가 아니라, 또 다른 한 편에 이렇게 아름다운 세상이 있음을 놓치고 싶지 않은 것이다.

하늘은 바다, 구름은 파도인 듯하다.
▲ 구름 하늘은 바다, 구름은 파도인 듯하다.
ⓒ 김민수

관련사진보기


무엇이 어떤 것들과 어울리는가에 따라 그 아름다움도 다르게 다가온다.
▲ 나무와 일몰 무엇이 어떤 것들과 어울리는가에 따라 그 아름다움도 다르게 다가온다.
ⓒ 김민수

관련사진보기


바람이 분다. 입추, 처서가 다 지났으니 완연한 가을 바람이어야 한다. 산 위에서 맞이하는 바람은 완연한 가을 바람이었다. 이렇게 시원한 바람이 지난 여름 내내 이 산에서는 불어왔을지도 모르겠다.

오랜만에 몸으로 느껴지는 시원한 바람은 지난 여름 내내 불어오던 바람과는 차원이 다르다. 아니, 그 바람이 그 바람일 뿐인데 어느 곳을 지나왔는지에 따라 바람의 느낌이 달랐을 것이다. 그 바람의 느낌은 바람의 잘못이 아니다. 그들이 지나다니는 길을 마음대로 바꿔버린 이들의 잘못이라면 잘못일 터이다.

가을바람 답다. 바람이 시원하니 숨통이 트인다. 이렇게 시원한 바람이 우리 사는 세상 구석구석에 불어왔으면 좋겠다. 그리하여 숨통이 좀 터졌으면 좋겠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의 사진은 2013년 8월 24일(토) 담은 사진입니다.



태그:#일몰, #남한산성, #도심, #스모그, #바람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