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브리 스튜디오의 신작 애니메이션 <바람이 분다> 스틸컷. 미야자키 하야오는 <벼랑 위의 포뇨>(2008) 이후 5년 만에 직접 기획과 각본, 연출을 맡았다.

지브리 스튜디오의 신작 애니메이션 <바람이 분다> 스틸컷. 미야자키 하야오는 <벼랑 위의 포뇨>(2008) 이후 5년 만에 직접 기획과 각본, 연출을 맡았다. ⓒ 대원미디어


|오마이스타 ■ 취재/이선필 기자| 개봉도 하기 전부터 비평과 논란의 대상이 된 미야자키 하야오(72) 감독의 신작 애니메이션 <바람이 분다>. 이미 지난 달 말 한국 취재진과의 대면을 통해 감독이 직접 입장을 전했지만, 개봉을 2주 앞둔 요즘 그리고 광복절을 전후로 일본과의 관계가 다시금 불거지며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에게도 불똥이 튀는 모양새다.

특히 지난 13일 세계 2차 대전을 배경으로 한 또 다른 일본 영화 <전쟁과 한 여자>의 프로듀서와 작가는 직접적으로 자국의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을 겨냥했다. 영화의 프로듀서를 맡은 데라와키 켄(61)과 작가 아라이 하루히코(66)는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은 역사의식이 없는 사람"이라며 "왜 침략전쟁에 쓰이는 전투기를 만든 기술자(호리코시 지로)를 모델로 했는지 모르겠다"라고 비판적 발언을 했다.

물론 <전쟁과 한 여자>가 '핑크 영화'(남녀의 정사를 주로 다루는 성인영화지만, 역사나 사회에 대한 비판 의식을 담는 일본 영화 문화의 한 장르)로 분류된다는 점에서 <바람이 분다>와 수평적 비교는 어렵다. 하지만 비슷한 시기에 두 영화 모두 일본인의 시각으로 바라본 전쟁의 모습을 그렸다는 걸 떠올린다면 상반된 양측의 발언은 분명 기억할 만하다.

<오마이스타>에서 보도한 대로(관련기사: <미야자키 하야오 "'바람이 분다'가 전쟁 영화라고?">, <미야자키 하야오의 정치적 입장, 영화보다 관심 뜨거웠다>) 지난 7월 26일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은 약 한 시간에 걸쳐 한국 취재진의 인터뷰에 응했다. 하지만 현장 취재 여건상 작품과 관련 논란에 대한 감독의 충분한 답을 듣지 못했다는 판단에 서면 인터뷰를 요청했다.

질문지를 받은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이 지브리 스튜디오를 통해 답신을 보내왔다. A4 용지 7장에 달하는 긴 분량이다. 오해의 소지를 줄이고 최대한 의미를 살리기 위해 내용 그대로를 일문일답식으로 풀었다. 가독성과 지면 할애 관계상 두 차례에 걸쳐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답신을 싣겠다.

참고로 <바람이 분다>는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이 <벼랑 위의 포뇨> 이후 5년 만에 선보인 작품으로 비행기 설계사 호리코시 지로의 삶에 사랑이야기를 더한 내용이다. 소설가 호리 타츠오의 동명 소설에서 여인에 대한 사랑 부분을 따와 작품에 함께 실었다.

<바람이 분다>는 지난 7월 20일 일본에서 개봉해 4주째 박스오피스 1위를 기록 중이다. 일본 영화 통계 사이트인 에이가닷컴에 따르면 영화는 지난 8월 11일까지 흥행수업 56억 엔을 돌파했고, 현재까지 400만 명 이상의 관객이 영화를 찾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9월 5일 개봉을 앞두고 있다.

 <바람이 분다>의 한 장면.

<바람이 분다>의 한 장면. ⓒ 지브리 스튜디오


"논란 감수하더라도, 호리코시 지로 그리고 싶었다"

- 그간 감독님은 상상의 공간, 상상의 인물을 통해 구체적인 주제 의식을 전했다. 이번 작품에는 보다 사실성이 돋보인다. 물론 비행설계사에 원작 소설 속 사랑이야기를 합쳤다고는 하지만 전작들보다 사실적인 건 분명하다. 남자의 꿈과 사랑, 그리고 시대의 바람을 담으려 했다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왜 하필 '제로센' 비행 설계사를 소재로 잡았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미야자키 하야오(이하 미야자키) : "'무기를 사용한 인간을 주인공으로 해서 영화를 만들자'는 것에 대한 의문은 나와 스태프 마음 속에도 있었다. '정의는 보증되지 않고, 시대의 왜곡 속에서 꿈은 변형되고, 고뇌는 해결되지 않은 채로 살지 않으면 안 된다. 이 운명은 사실 현대 세계에 살고 있는 자신들이 아닐까'라는 생각으로 이 영화를 제작했다.

또 하나의 이유로는 20세기 모더니즘 시대에 일본에서 매우 특출했던 인물이 호리코시 지로였으며, 더욱 경애해야 할 인물이 호리 타츠오였기 때문이다. 비행기 설계가와 소설가는 전혀 다른 분야지만 내겐 이 둘이 동일 인물처럼 생각되었다. 오랜 시간이 이런 화학반응을 발생시켰으리라 생각하지만 내 영감에 솔직하게 영화를 제작했다."

- 사실 치열한 삶을 살아온 인물은 호리코시 지로 외에도 많다. 단순히 치열한 삶을 조명하기 위해서라면 굳이 호리코시 지로를 선택해 불편한 논란의 중심에 오르기보다도 좀 더 이야기에 집중할 수 있는 다른 방안도 고려해볼 수 있지 않았을까.
미야자키:"호리코시 지로의 젊은 날 한 장의 사진이 내 심금을 울렸다. 부끄럽다. 질문에서처럼 '논란의 위험을 감수'하더라도, 직감적으로 그는 그릴만한 인물이라고 생각했다."

 신작 애니메이션 <바람이 분다> 개봉을 앞두고, 지브리 스튜디오의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이 26일 일본 도쿄 작업실에서 한국 기자들과 만나 작품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신작 애니메이션 <바람이 분다> 개봉을 앞두고, 지브리 스튜디오의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이 26일 일본 도쿄 작업실에서 한국 기자들과 만나 작품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 대원미디어


"전쟁에 대한 묘사는 역사책이나 다큐에 담아야"

- <바람이 분다>가 한 개인의 꿈과 사랑을 그린 작품으로 끝날 수도 있지만, 역사의 한 부분을 차지하기도 한다. 그래서 이 작품에 관심이 쏠리는 것은 당연하다.
미야자키 : "역사인식이라는 점을 설명하자면 동시대에 발생한 많은 사건, 학살, 약탈, 전쟁에 대한 묘사하지 않았다. 의도해서 동시대의 사건은 건드리지 않았다. 이는 역사책이나 다큐멘터리를 통해 이해해야 할 내용이다. 역사적으로 무지하거나 선량한 사람들에 대해선 스스로 어찌할 바를 몰랐지만 (작품은 만들어야겠다고) 결심하고 이 필름을 제작했다."

- 영화를 보면 주인공이 '일본은 가난하다' 등의 대사를 여러 번 말한다. 여기엔 자국에 대한 나름의 의식이 담긴 건가?
미야자키 : "고도경제 성장의 결과, '일본은 풍족하다'라고 표현할 수는 있지만 나 역시 아직 일본은 가난하다고 생각한다. 게임에 빠진 아이들, 과도한 소비나 경쟁, 이웃집 사람에 대한 무관심 등을 보면 그런 생각이 든다. 물질과 마음의 균형이 잡힌 사회는 아직 실현되지 않았다."

- 동시에 <바람이 분다>는 분명 일본색이 기존의 작품보다 짙다. 의도된 부분인가, 아니면 단순히 실존 인물을 다루다 보니 자연스럽게 묻어 난건가?
미야자키 : "사람들의 행동이나 행위를 가능한 한 재현해보고 싶었다. 예의범절도 많이 잊어가는 모습을 발굴해내려 노력했다. 현재 우리는 소비 중심의 그릇된 생활로 아름답지 않은 것이 너무나 많다. 나 자신도 잊고 살아 온 것이 많아서 아버지나 어머니의 행동을 생각해내려고 계속 시도해보았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바람이 분다>의 한 장면.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바람이 분다>의 한 장면. ⓒ 지브리 스튜디오


<바람이 분다>를 통해 하고 진짜 싶었던 말은?

- 그간 여러 작품에서 비행기를 다뤘고, 이번 작품 역시 비행기를 다뤘다. 감독님에게 비행기는 어떤 존재인지?
미야자키 : "내 관심은 1920년대에서 1930년대 사이의 비행기에 있다. 다른 시대의 비행기는 별로 관심이 없다. 실은 냉전이라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현대의 제트기에는 전혀 관심이 없다."

- <바람이 분다>는 여러모로 이전 작품과 다르다. 처음으로 실존인물과 실제 시대적 배경이 등장하고 주인공이 어른이다. 애니메이션은 아이들을 위한 것이라고 주장했던 것 같은데, 혹시 변화를 시도한 것인가?
미야자키: "어린이를 위한 영화 제작은 상업주의와 타협해서는 안 되는 신성한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상업주의에 동요치 않는 어른으로 있어야만 어린이 영화 제작이 가능하다. 현재 세계는 대 변동기에 접어들면서, 시대의 톱니바퀴가 소리를 내며 돌아가기 시작했다. 내가 이 시대 속에서 어떻게 생각하고, 어떻게 보고, 어떻게 느끼는지 지독히도 많은 질문을 받고 있다.

아이들에게는 잠깐 기다리게 하고 한 소년으로 돌아와서, 어려웠던 진심의 시대에 살아 본 것이 이번 <바람이 분다> 작품이다. 답이 되리라고 생각하진 않지만 '무릇 네 손이 일을 당하는 대로 힘을 다하여 할지어다'라는 구약성서의 한 구절 말씀이 가슴에 깊이 와 닿았다."

- 기자간담회를 통해 '바람이 분다. 살아야한다. 살아있는 것이 멋지다'라는 이야기를 했는데, 이 메시지에 대해 조금 더 설명을 부탁드린다. 감독님 본인의 철학인가?
미야자키 : "바람은 산뜻한 바람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시대의 거친 바람', '방사선을 포함한 독이 든 바람'도 의미한다. 동시에 바람이 일어나는 것은 생명이 빛나는 증거이기도 하다. '세계는 있다. 세계는 살아 있다. 나도 너도 살아있다. 아무리 힘들어도 살지 않으면 안된다'라고 난 이해하고 있다. 바람은 곧 세계이며, 생명이고, 시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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