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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리스트'는 감시대상자, 요주의대상자를 의미합니다. 일반적으로 범죄자에게 어울리는 단어지만 우리나라에서는 불의에 저항한 사람들을 가리키는 단어이기도 했어요. 우리는 한 발 더 나아가 우리 생각 깊숙이 들어와 있는 '왜곡된 생각'도 발견했습니다. 다른 사람은 물론이고 나의 생각까지도 검열하게 만드는 '생각의 블랙리스트'가 우리 사회에 존재하고 있습니다. 이제 그것의 실체를 파헤치고, 맞서보려 합니다. - 기자 말

영화 <설국열차>의 한 장면
 영화 <설국열차>의 한 장면
ⓒ CJ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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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티스는 열차의 독재자 윌포드가 있는 앞의 문을 열려고 하고, 남궁민수는 너무 오래 닫혀 있어 벽같이 느껴지는 바깥으로 통하는 문을 열려고 합니다. 영화 <설국열차>의 클라이맥스입니다. 둘의 문제 해결의 방식은 큰 차이가 있죠. 하지만 공통점도 있습니다. 바로 금기에 대항한다는 것입니다. 사회적 금기는 어느 시대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깨기 위해서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때로 목숨까지 걸어야 하죠. 왜일까요? 답은 간단합니다. '금기'를 지키고자 하는 무리가 있기 때문이죠.

불과 100여년 전까지만 해도 신분제 사회였습니다. 왜와 청에 침략당해 통치 계급의 권위가 붕괴되기 전까지는 아주 철저했습니다. 전쟁 사극에 보면 나이든 병사가 나오잖아요. 실제로 상민은 평생 노동을 하면서도 15세부터 60세까지 병사 노릇을 했습니다. 물론 그보다 못한 천민은 사람 대접도 못 받았죠. 이와 같은 신분제에 도전하는 것은 철저한 금기였습니다.

하지만 숱한 '난'이 있었습니다. 고려시대였던 12세기 후반만 해도, 1172년 지방관의 횡포에 맞서 반란이 일어났고, 1176년 공주 명학소에서 망이·망소이가 난을 일으킵니다. 경상도에서는 손청과 이광 등이 반란을 일으켰으며, 1182년 전주에서 군인과 관노들이 난을 일으켰습니다.

1193년에는 김사미·효심의 난에서부터 반란군은 연합 전선을 폈고 1198년에 일어난 만적의 난은, 신분 해방은 물론 더 나아가서 정권 탈취를 계획합니다. 불과 20~30년 사이에 큰 규모의 반란이 6차례 이상 일어난 겁니다. 하지만 모두 실패했고, 주동자들은 권력자들로부터 살해당했습니다.

서구 중세 질서 중 영주의 '초야권', 신 중심 세계관을 봅시다. 지금 생각해보면 윤리적으로, 과학적으로 말도 안 되는 일들입니다. 하지만 이런 관행과 관점은 천 년이 넘도록 지속되었습니다. 과학적 진리를 누설한 죄 아닌 죄를 지은 갈릴레오의 처지를 통해 우리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사회적 금기에 대한 도전엔 대가가 따른다는 점을 알 수 있습니다.

15세기부터 17세기까지 중세 유럽 곳곳에서는 '마녀사냥'으로 10만 명 이상이 화형당했습니다. 2000년대 들어서도 케냐, 짐바브웨, 탄자니아,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마녀나 주술사로 몰려 화형당하고 있다고 합니다.

물론 '마녀사냥'으로 화형당한 사람들과 '난'을 일으키고 처형당한 사람들을 똑같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누구는 적극적으로 저항했을 것이며, 어느 누구는 영문도 모른 채 억울하게 당했을 겁니다. 하지만 '체제유지', '질서유지'의 희생양이라는 점에서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지배세력이 이익과 권력을 지키기 위해 살해했다는 것이지요.

다시 <설국열차>입니다. 열차의 총리는 안전을 보장하는 것은 '질서(order)'라고 합니다. 탁월한 견해죠. '너와 난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는 질서 말입니다. 그것에 도전하는 것이 바로 '설국열차의 금기'가 되는 것입니다. 현재의 윌포드가 집착하는 지점, 체제와 권력이 응시하는 지점이 어쩌면 '금기'에 도전하는 시작일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이러한 사회적 금기를 '한국사회 생각의 블랙리스트'라 명하고 도전하려 합니다.

해서는 안 되는 일, 해서는 안 되는 생각

7월 2일 오후 서울 중구 덕수궁 대한문 앞에서 쌍용차 사망 노동자 분향소 설치가 경찰들에게 저지되자, 시민들이 빗속에 피켓을 들고 쌍용차 해고노동자들을 지지하고 있다.
▲ 빗속에 쌍용차 해고노동자 지지하는 시민들 7월 2일 오후 서울 중구 덕수궁 대한문 앞에서 쌍용차 사망 노동자 분향소 설치가 경찰들에게 저지되자, 시민들이 빗속에 피켓을 들고 쌍용차 해고노동자들을 지지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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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사회를 구성해서 살아갑니다. 혼자서는 살 수 없다는 말이지요. 그렇기 때문에 '해서는 안 되는 일'이 있습니다.

'간이분향소'가 뭔지 아세요? 쌍용자동차라는 한 직장에서 수천 명이 쫓겨났고 그 억울함 때문에 20명이 넘는 사람들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들을 추모하던 분향소는 경찰에 의해 철거되었고 '상주'인 노조 지부장은 구속되었습니다. 지금도 대한문 앞에는 천막도 없는 하늘 바로 아래 땅 위에 '간이분향소'가 차려져 있습니다. 죄 없는 노동자는 죽어서도 처벌받고, 돈 있는 재벌은 죄짓고도 편히 사는 세상입니다. 노동자들을 해고하고 '간이분향소'를 차리게 한 세력들은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하고 있는 겁니다.

2012년 10월 17일 현대자동차 사내하청 노동자 최병승과 천의봉은 철탑에 올랐습니다. 그곳에서 겨울을 나고, 이듬해 한여름이 돼서야 내려왔습니다. 그들은 대법원 판결대로 현대차의 사내하청 노동자를 정규직으로 전환한 것을 요구했습니다. 그런데 정몽구 회장은 대법원의 판결도 이행하지 않고, 용역깡패를 동원해서 폭력을 일삼았어요. 자기는 대통령 따라 미국도 다녀왔고요. 지금 현대차 회장이 하고 있는 일은 '인간으로서' 해서는 안 되는 일이지요.

여론을 어떻게 만드는지를 연구하는 프로페셔널들이 대선에 '댓글'로 개입했습니다. 우리가 낸 세금으로 월급 받고 비용처리 하면서 말이죠. 나치 독일에서 가장 나쁜 놈은 히틀러고, 그 다음 나쁜 놈은 괴벨스입니다. 학살의 논리의 제공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국정원의 '댓글'은 그냥 댓글이 아닙니다. 그런데 박근혜 대통령은 모르는 척하고 있어요. 이명박씨가 4대강 사업으로 우리 후손들이 살아갈 땅을 못 쓰게 만들고 '모르쇠' 하는 것과 차이가 없지요. 대통령이 해서는 안 되는 일들이지요.

이렇게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하는 사람들은 '돈과 권력'을 가진 자들이 대부분입니다. 물론 반사회적 범죄를 저지르는 '나쁜 사람'도 꽤 되지만 99%의 민중들은 법과 도덕을 지키면서 살아갑니다. 적어도 '돈과 권력'을 가진 자들에 비하면요. 그런데 해서는 안 되는 일을 주로 하는 '돈과 권력'을 가진 사람들이 사회적 금기를 만들어 놓은 것을 아시나요?

예를 들면 국가보안법이 그렇지요. 근대법의 상식은 이불 속에서 무슨 혁명을 꿈꾸든, 반란을 상상하든 죄가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국가보안법만은 생각을 기준으로 처벌을 하죠. 그 처벌의 대상은 주로 '돈과 권력'에 맞서는 사람들이 됨은 물론이고요. 도대체 무슨 책을 읽었다고 해서, 무슨 생각을 했다고 해서 죄를 묻는다는 것이 '자유주의'의 어떤 원리와 통하는지 모르겠어요.

조국통일범민족연합 남측본부 김성일 사무차장이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된 지 열흘만에 지병을 앓아오던 어머니가 숨을 거두어 안타까움을 주고 있다. 사진은 범민련이 지난 7월 2일 경찰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었을 때 모습.
 조국통일범민족연합 남측본부 김성일 사무차장이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된 지 열흘만에 지병을 앓아오던 어머니가 숨을 거두어 안타까움을 주고 있다. 사진은 범민련이 지난 7월 2일 경찰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었을 때 모습.
ⓒ 범민련 남측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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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금기를 찾아볼까요? <그들은 알고 우리만 모르는>(부제 : 위키리크스가 발가벗긴 대한민국의 알몸)을 쓴 김용진은 우리나라를 "글로벌 호구"(102쪽)라고 칭했습니다. 오바마의 전쟁 비용 중 우리나라가 영국, 독일, 프랑스와 같은 액수를 부담했고, 스페인은 우리의 절반, 산유부국인 사우디아라비아는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액수를 부담했다는 사실 때문입니다. 물론 언론에서 보도를 제대로 하지 않았지요. 21세기에 '을사5적'을 만난 느낌이랄까요? 하지만 '미국과 그 협력자'들의 이야기는 아직도 사회적 금기입니다.

10년도 더 지난 그 해 여름, 경남 함안의 한 농촌마을에서 한국전쟁 때를 기억하는 노인분을 만났습니다. 그분의 얘기는 이랬습니다.

"우린 양민증을 흔들어 보여줬다고. 그런데 비행기에서 기총소사를 하는 거야. 4킬로미터가 넘게 늘어선 피난민들을 다 죽였어. 동네 개들이 삼복더위에 사람고기를 하도 먹어 눈을 씨뻘겋게 하고 돌아다녔어. 그런데 지금껏 말 한 마디 못했어. 아무도 모르게 죽을까봐."

이렇게 금기는 만들어졌습니다. 분단과 전쟁, 원조와 한미동맹, 군사정권과 산업화, 신자유주의. 대한민국이 '유지'되기 위해 끊임없이 사회적 금기는 생산되었고, 우리에게 때로는 당연하게, 때로는 강압적으로 다가옵니다.

당연하게 다가오는 것 중의 하나는 '해외여행' 같은 말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섬나라가 아니라 '해외' 여행을 갈 필요가 없는데, 우린 남쪽 땅에 갇혀 산다는 분단의 사고방식이 이미 머릿속에 자리 잡은 것이지요. 어쩌면 분단을 뛰어넘는 사고가 허용되지 않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북한에서도 연애해요?' 같은 질문을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연애는 조선시대에도 했잖아요. 아주 작은 문제지만 분단체제를 뛰어넘는 것이 무척 어렵습니다.

해서는 안 될 일을 하는 '돈과 권력'을 가진 사람들이 만들어낸 '해서는 안 되는 생각'! 이 사회적 금기를 '한국사회 생각의 블랙리스트'라 부르겠습니다. 그리고 파헤치겠습니다. 여러분의 용기가 필요합니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예술과철학(주) 연구원입니다.



태그:#생각, #블랙리스트, #사상, #철학,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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