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뉴스>가 다시 현장으로 달려갑니다. 기존 지역투어를 발전시킨 '2013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전국투어'가 4월부터 시작됐습니다. 올해 전국투어에서는 '재야의 고수'와 함께 지역 기획기사를 더욱 강화했습니다. 시민-상근기자의 공동 작품은 물론이고, 각 지역에서 오랫동안 삶의 문제를 고민한 시민단체 활동가와 전문가들의 기사도 선보이겠습니다. 8월, 2013년 <오마이뉴스> 전국투어가 찾아가는 지역은 대구·경북·울산입니다. [편집자말]
 7월 13일 인천축구전용경기장에서 열린 '인천vs대구'의 시민구단 맞대결에서 대구 미드필더 산드로가 오른발 슛을 시도하고 있다.

7월 13일 인천축구전용경기장에서 열린 '인천vs대구'의 시민구단 맞대결에서 대구 미드필더 산드로가 오른발 슛을 시도하고 있다. ⓒ 심재철


무더웠던 지난 11일 일요일 밤 멀리 광양으로 떠난 대구 FC 선수들은 전남 드래곤즈와의 까다로운 방문 경기에서 후반전 초반에 먼저 골을 내주며 어렵게 경기를 펼쳤지만 끈질긴 의지로 동점골을 터뜨려 귀중한 승점 1점을 챙기고 돌아왔다.

63분, 미드필더 안상현의 도움을 받아 브라질에서 데려온 미드필더 겸 공격수 산드로가 K리그 데뷔 후 일곱 경기만에 드디어 첫 골을 신고한 것이다. 이 경기는 특히 안방 팀 전남에게 하위 스플릿 탈출을 위해 매우 중요한 일전이었지만 대구 선수들이 멋진 동점골을 만들어내며 고춧가루를 제대로 뿌린 셈이다.

대구 FC는 이미 하위 스플릿(8~14위)이 확정되었기에 남아있는 정규리그 일정이 크게 의미 없을지 모르지만 10위(전남) 아래 팀들과의 기싸움에서 밀리지 말아야 하는 절체절명의 상황에 놓여있다고 하겠다. 이렇게 볼 때 대구 FC는 창단 이래 최대의 위기 국면을 맞았다고 볼 수 있다. 더위가 한풀 꺾이고 가을에 어떤 수확을 올릴 것인가는 선수들이 흘리는 굵은 땀방울만이 알 것이다.

2002년 뜨거웠던 겨울의 대구

우리나라에서 더위로 첫손 꼽히는 곳이 바로 대구다. 바로 그곳의 2002년 겨울은 여느 도시보다 축구로 뜨거웠다. 2002 한일월드컵을 성공적으로 개최한 뒤라 축구장 분위기도 최고조였다. 그러나 그 분위기 빼고는 모든 것이 대구로서는 처음이었다.

최초의 시민주 공모부터 시작하여 팀을 상징하는 여러가지 것들을 만들어내면서 초산의 진통은 예정된 것처럼 몰려왔다. '대구 이글스'라는 애초의 명칭을 축구팬들이 쉽게 받아들이지 않기도 했다. 그래서 곡절을 겪은 끝에 한국 프로축구단 최초로 'Football Club(풋볼클럽)'의 약자인 FC를 붙이게 된 것이다.

그렇게 대구 FC의 2002년 겨울은 어느 곳보다 뜨겁게 시작됐다. 그 해를 5일 남겨놓고 창단 승인이 떨어져 한국 프로축구 역사상 11번째 팀이 태어났다. 그러나 파란만장의 역사는 그저 시작일 뿐이었다.

시민구단이라는 태생적 한계는 바로 돈 문제로 직결되며 이는 최고 수준의 실력자들을 보유하지 못하는 프로축구판의 씁쓸한 입맛으로 녹아든다. 이는 고스란히 팀 성적에 반영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그러다보니 대구 시민들이 그토록 바라던 트로피는 남의 것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러던 중 공식적인 트로피는 아니지만 2006년 시즌을 준비하는 프리 시즌 대회인 2006 통영컵 국제축구대회에서 대구 FC가 인천 유나이티드, 퀸즐랜드 로어(호주), 베이징 궈안(중국)을 상대로 2승 1무라는 좋은 결과를 내며 첫 트로피에 입맞춤을 하게 되었다. 지금 수원의 핵심 선수로 자리잡은 미드필더 오장은이 당시 대구 FC의 공-수를 연결한 기억이 또렷하다.

대구 FC, 그 시작은 창대했지만...

이처럼 축구 팀으로서 대구 FC의 역사는 아직까지 소박한 편이다. 1년 늦게 시민구단으로 뒤따라온 인천 유나이티드가 K리그 두 번째 도전(2005년)에서 당당히 정규리그 1위, 챔피언 결정전 준우승이라는 기적같은 스토리를 이룬 것에 비하면 초라해 보이기도 한다. 2006년에 역시 도민구단으로 창단한 경남 FC도 2008,  2012년에 두 번이나 FA(축구협회)컵 준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린 바 있다.

그동안 대구 FC의 그라운드를 누빈 선수들 중 가장 눈에 띄는 인물은 역시 태양의 아들이라는 별명을 붙인 날개공격수 이근호다. 인천 유나이티드 2군 멤버라는 설움을 딛고 대구로 둥지를 옮긴 이근호(현 상주 상무)의 진가가 확인된 곳이 바로 대구 FC였기 때문이다.

2008년에 펄펄 날아다닌 이근호 덕분에 대구 FC는 많은 축구팬들을 놀라게 했다. 순위표는 14팀 중에서 11위에 머물렀지만 여느 팀보다 많은 최다 득점(62득점)-최다 실점(77실점)이라는 절묘한 기록을 한꺼번에 세운 것이다.

하지만 77실점이라는 기록이 말해주듯 대구 FC는 당시에 동네북이었다. 선수로서 태양의 아들 이근호가 대구 FC를 환하게 비추었다면 벤치는 그 반대였다. 선수 시절 매우 빠른 날개공격수로서 이름을 떨친 변병주 감독이 박종환 감독에 이어 2대 감독으로 취임했지만 경기력은 3년간의 순위표(2007년 12위, 2008년 11위, 2009년 15위)가 말해주듯 차마 고개를 들지 못할 수준이었다.

더구나 그는 외국인선수 영입과 관련하여 금품 수수 비리를 저질러 구속될 정도였으니 대구 FC를 믿고 지지했던 팬들의 마음은 이미 까맣게 타버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듬해 이영진 감독이 부임했지만 리그 꼴찌(15위) 순위표를 똑같이 이어받아 2년 연속 최하위의 아픔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희망의 역사는 낮은 곳으로부터

 대구 FC 홈페이지 화면

대구 FC 홈페이지 화면 ⓒ 대구FC


대구 FC가 걸어온 길을 차근차근 돌아보면 참 안 풀린 프로축구단이라는 생각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냉정한 프로들의 세계에서 2년 연속 꼴찌 성적표를 받아들었다고 하는 것은 좀처럼 용납하기 힘든 일이다.

그나마 새로운 감독 모아시르 페레이라의 헌신으로 상처를 치유할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2011년 12위까지 올라온 대구 FC의 순위표 자리는 이듬해 2012년에는 하위 스플릿 2위(전체 순위 10위)까지 올라왔다.

순위를 끌어올리는 경기력이 좋아진 점도 그 의미가 깊지만 더욱 뜻깊은 것은 관중수가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지난해 대구 FC는 창단 10주년을 맞았다. 그 과정 중에서 가장 고무적인 것은 홈 관중수에서 확인할 수 있다. 21경기를 통해 15만 명을 넘긴 것은 시도민 구단 중 유일하며 전년 대비 홈 관중이 증가한 단 두 구단(제주 유나이티드 45.4%, 대구 FC 12.8% 증가) 중 하나라는 사실이 놀랍다. 2003년 3월 23일 수원 블루윙즈와의 창단 첫 K리그 홈 경기 4만 5210명의 대기록이 괜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확인시켜 준 한 해였다.

2013년 3월 10일 낮 대구 스타디움에서 열린 전남 드래곤즈와의 홈 개막전에도 4만 명에서 약간 모자란 3만 9871명의 대관중이 몰려들었다. 대구 FC 엠블럼에 그려진 태양이 본격적으로 타오를 조짐이 보이는 것이다. 이는 철저한 연고의식을 바탕으로 낮은 곳에서 다시 시작하겠다는 구단 프런트의 전향적인 운영 방침이 서서히 불을 지피고 있다는 증거라 할 수 있다. 지역 밀착형 마케팅 전략이 효과를 거두며 창단 10주년 이후 제2의 역사가 본격화되었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는 것이다.

이는 약간 낯설지만 '후원회원제' 도입으로 요약할 수 있다. 웬만한 구단에서 실시하고 있는 연간회원제(시즌권)를 폐지하고 FC 바르셀로나의 소시오(socio) 제도를 닮은 후원회원제를 도입한 대구 FC는 그 효과를 조금씩 느끼고 있다. 단돈 1만 원이면 가입할 수 있는 이 제도를 통해 지역 주민들에게 "내가 후원하는 구단"이라는 인식을 깊게 심어주고 있는 중이다. 시즌 2경기 입장권 제공보다 더 많은 기회가 팬들을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이 널리 알려지기 시작했다는 점이 매력이다.

클럽 하우스 건립 문제 해결해야 새출발 가능

이제 대구 FC에게 남은 과제 중 가장 큰 부분은 경기력을 최고조로 끌어올리는 일이다. 당성증 감독의 후임으로 시즌 중 지휘봉을 잡은 백종철 감독이 'LTE급 축구'를 표방하며 빠르게 경기력을 회복하고 있지만 9월부터 본격화되는 하위 스플릿 일정이 더욱 중요하게 남아 있다.

광주 FC에 이어 두 번째로 강등 팀이 되는 불명예를 뒤집어쓰지 않기 위해서는 남은 여름날을 지혜롭게 보내야 한다. 전남-경남-강원-대전과의 기싸움에서 밀려나지 않도록 상대를 더욱 철저하게 분석하여 대응해야 한다.

더 나아가서는 안정된 경기력의 바탕이 되는 클럽 하우스 건립 문제가 원만하게 해결되어야 할 것이다. 일이 어디서부터 꼬여 있는지 파악한 뒤 현명하게 대처해야 구단이나 대구시의 행정을 바라보는 팬들의 오해와 답답함도 풀릴 수 있는 것이다.

일부 선수들 개인을 보면 억대 연봉이며 스타급 선수로 선망의 대상이 된다고 하지만 대구 FC처럼 클럽 하우스와 개인 훈련 시설 및 전용 연습 구장이 없는 경우에는 그저 빛 좋은 개살구일 뿐이다. 기본적인 개인 훈련 시설과 먹을 곳, 잠잘 곳 등의 복지 환경이 갖추어져야 경기력이 일정 수준을 유지되는 것은 삼척동자도 잘 알 것이다.

대구 FC와 처지가 비슷한 시도민 구단인데도 일정 수준 이상의 성적을 내고 있는 인천 유나이티드, 경남 FC 등이 최근 몇 년간 어떤 길을 걸어왔는지를 살펴보면 대구 FC의 앞날이 더 환하게 보일 것이다. 이미 지역 밀착형 마케팅 구도는 어느 정도 효과를 보고 있으니 클럽 하우스 건립 문제를 깔끔하게 해결해야 지난 10년의 역사 중 부끄러운 경기력을 조금이나마 묻어두고 새출발 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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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대인고등학교에서 교사로 일합니다. 축구 이야기, 교육 현장의 이야기를 여러분과 나누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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