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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카타의 거리
 콜카타의 거리
ⓒ Dustin Burnet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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핸드폰에 맞춰놓은 알람이 울린다. 십 분만 더. 잠시 후 눈을 비비고 무거운 머리를 힘겹게 들고 일어난다. 버스에 오른다. 작은 핸드폰 화면을 들여다보고 있는 사이, 버스가 꽉 막히는 도로를 지나 회사 앞으로 간다. 버스와 지하철이 뱉어내는 사람들 틈에 끼어, 그들을 다시 흡입하는 우뚝 솟은 빌딩 속으로 들어간다. 이것이, 서울에서 맞이하는 내 하루의 시작이다.

콜카타의 하늘은 노랗다. 오전 7시, 숙소를 나와 노란 하늘 아래 콜카타의 거리 속으로 들어갔다. 빌딩 숲과 차로 꽉 막힌 도로 대신, 쓰레기와 소똥이 여기저기 널려 있는 지저분한 거리 위로 사람들의 움직임이 분주하다.

알루 파라타(aloo paratha. 감자를 사이에 넣어 구운 난)나 알루찻(aloo chaat, 향신료와 기름으로 볶은 감자 위에 고수를 뿌려 파는 길거리 간식)을 파는 노점상들이 커다란 팬에 야채를 어지러이 볶으며 거리의 공기를 맛있게 채운다. 5살 정도 되어 보이는 어린 소년은, 거리의 주방장 옆에서 숙련된 솜씨로 양파를 재빠르게 썰어낸다.

길 한쪽에는 노숙인 가족이 어젯밤 그들의 몸을 따뜻하게 감싸 준 이불을 담장에 널어놓고, 길어온 물로 양치와 샤워를 하며 아침을 준비하고 있다. 어린 아이가 물을 길어간 공동 수돗가에서는 이런저런 사람들이 둥그렇게 모여 볼 일을 본다. 이를 닦는 아저씨, 분홍 사리(인도 전통 의상)를 빠는 아주머니, 머리를 감는 소년. 자전거와 릭샤들이 이리저리 엉켜 지나가는 거리 저쪽으로, 쓰레기가 가득 쌓인 덤불이 보인다. 원래 무슨 색이었는지 알 수 없는 검둥이 돼지들이 쓰레기 더미 속을 뒹군다.

콜카타의 거리. 노란 사리를 입은 아주머니가 사탕수수주스를 마시고 있다.
 콜카타의 거리. 노란 사리를 입은 아주머니가 사탕수수주스를 마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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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각자 맡은 일에 충실히, 소리로, 냄새로, 움직임으로 도시를 깨우고 있었다. 도시는 살아 있는 하나의 유기체처럼 출렁이며 활기를 띠었다. 서울에서 겪은 아침과 다른 시작이다. 멍하니 일어나 멍하니 버스를 타고, 기계 속 세상을 들여다보다 더 큰 기계를 들여다보는, 머릿속만 바쁜 아침이 아니다.

이를 닦는 내 옆에는 머리를 감는 꼬마가 있고 감자를 볶는 노점상이 있다. 분주히 움직이는 사람들 옆에는 분주히 움직이는 염소도 있고 돼지도 있다. 몸의 모든 감각이, 도시 전체가 깨어나 살아 움직이는 것이 콜카타의 아침이다.

출렁이는 인도의 아침 풍경 속에 들어와 있으니, 인도 땅에 서 있다는 것이 실감이 난다. 그토록 두렵던 인도. 소문과 다르지 않게, 더럽고 정신 없는 곳임에는 분명하다. 정제되지 않은 삶들이 거리를 어지럽힌다. 그런데 그런 어지러움이, 이 도시에 생기를 불어넣는다. 더러운 거리의 숨기지 않은 민낯이, 살아 있음을 느끼게 한다. 원래 이 세계가 더럽고 정신 없는 곳이 아니던가. 깨끗한 시멘트 바닥과 네모난 컴퓨터 모니터는 진짜 세계가 아닐지도 모른다. 적어도 이 곳에 있는 동안은, 내가 살아있다는 사실을 잊지는 않을 것 같다.

인도 최대의 박물관, 인도박물관

인도 식민지 시절에 지어진 인도박물관
 인도 식민지 시절에 지어진 인도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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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코라(야채를 튀긴 음식)를 파는 노점상 무리를 지나 코너를 돌자 인도박물관이 보였다. 주위의 더러운 거리 풍경에 어울리지 않게 유럽식으로 웅장하게 지어진 박물관은, 오래전에 흘러왔다가 화석이 되어 어쩔 수 없이 박힌 생물처럼 생뚱맞은 모습으로 서 있었다.

그럴싸해 보이는 박물관 내부로 들어가자, 19세기 이후 사람의 발길이 거의 없었던 것 마냥 어둡고 우중충한 기운이 감돌았다. 다행히 화려한 색의 사리를 두른 관람객들 덕에, 박물관은 창백한 얼굴에 분홍 연지를 찍은 소녀처럼 조금은 활기를 띠었다.

박물관 내부에는 그 자체로도 유물로써 보관되어야 할 것 같은 낡아빠진 진열장이 늘어서 있었다. 먼지가 가득 쌓인 진열장의 깨지고 벌어진 유리 사이로, 몇 천 년이 되었는지 알 수 없는 유물들이 아무렇게나 진열되어 있었다. 분명 인도 최대의 박물관이라고 들었는데. 이런 '될 대로 되라지' 식의 박물관일 줄이야.

수백 년, 수천 년의 시간은 거슬러 왔을 것 같은 정교한 돌 조각 아래에는, 고작 '돌'이라는 이름표 말고는 일언반구의 설명도 없는가 하면, 이름표조차 없는 유물들도 수없이 널려 있었다. 박물관 한쪽에는 존재 이유를 알 수 없는, 귀퉁이가 썩은 커다란 지구본이 쓰레기 더미와 함께 널브러져 있었다. 겉만 영국식이지, 속은 인도식으로 알차게 채워넣은 박물관이다.

인도박물관 내부
 인도박물관 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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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박물관 구석의 정체를 알 수 없는 지구본
 인도박물관 구석의 정체를 알 수 없는 지구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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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관람객들이 관심 있는 것은 오래되고 먼지 쌓인 유물 따위가 아니었다. 박물관에서 가장 핫한 아이템은 '인도 각 지역의 전통의상'이라는 제목이 붙어진 커다란 인도 지도였다. 지도에는 인도의 각 지역에서 입는 전통의상이 그려져 있었다. 분홍, 주홍, 초록, 보라의 세상 모든 색을 화려하게 걸친 인도 관람객들은, 옹기종기 모여 신기하다는 듯 지도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도대체 뭐가 신기하다는 건지. 내가 보기엔 관람객들이 걸친 의상이나, 지도에 그려진 전통 의상이나, 다를 바가 하나도 없다.

깨진 유리병 안에 자라난 화초 같은 곳, 콜카타

콜카타는 마치, 여러 색의 단단한 지층으로 되어있는 곳 같다. 작은 어촌이었던 콜카타. 그 위에 영국 식민지 시절의 역사와 문화가 덧칠해지고, 시간이 지나 화석처럼 굳어진 그 과거 위에 다시 지금의 인도가 생생한 색을 내며 존재하고 있다. 영국이 지은 인도박물관 안에는, 인도인들이 영국 식민지 이전부터 입어왔던 전통의상을 그려놓은 지도가 전시되어 있고, 지금도 같은 옷을 입고 있는 그들이 그 지도를 바라보고 있다.

영국 식민지 시절에 지어진, 하얀색도 아니고 회색도 아닌 유럽식 건물의 무너진 벽 틈 사이로 나무 하나가 팔을 뻗어 자라나고 있다. 서로 섞이지는 않지만, 과거와 현재와 붉은 것과 노란 것이 각자의 뚜렷한 색을 내며 공존하고 있는 곳. 동화되지는 않지만, 서로의 위에, 서로의 옆에 함께 남아 공존하는, 깨진 유리병 안에서 자라난 화초와 같은 것이, 콜카타라는 도시의 풍경이다.  

영국 식민지 시절의 과거가 한 겹, 거리의 먼지가 한 겹, 정신 없는 경적 소리가 한 겹, 맹렬한 사람들의 표정이 한 겹. 겹겹의 표정이 덧칠해진 콜카타 거리에서, 나는 나라는 존재를 생각했다. 내 안에는, 고집을 부리고 쉽게 후회를 하는 엄마의 모습이 어려 있다. 타인을 위한 따뜻한 마음을 가진 엄마의 모습도 어려 있다.

모든 사람을 좋아할 수만은 없는, 싫은 건 절대 좋은 티를 내지 못하는 아빠의 모습도 있고, 엉뚱한 꿈을 꾸는 이상주의적인 아빠의 모습도 있다. 그 위에 더스틴과의 관계에서 피어난 새로운 내가 자라 있다. 그 안에는 온건한 모습도 있고, 화를 내는 모습도 있고, 뒤틀리고 못난 모습도 담겨 있다.

콜카타는 날 것의 도시다. 지나온 과거를, 더러운 거리를, 지독한 가난을 숨기지 않고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이곳의 사람들은 엉클어진 과거를 그런 채로 내버려 두고, 그 위에서 오늘 나름의 인생을, 깨어 있는 아침을 산다.

완벽하지 않은, 깨끗하지만은 않은 나지만, 많은 게 얼룩져 있는 나의 민낯을 숨기지 않을 줄 알아야, 진짜의 나를 들여다볼 수 있을 것 같다. 그래야 그 위에 다시 쌓일 새로운 색의 세계를,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겠지.

콜카타에 남아있는 영국 식민지 시절의 건물, 빅토리아 메모리얼
 콜카타에 남아있는 영국 식민지 시절의 건물, 빅토리아 메모리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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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콜카타, #캘커타, #인도박물관, #콜카타 국립 박물관, #인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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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량한 부부의 히말라야 여행,' '불량한 부부의 불량한 여행 - 인도편'을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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