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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원이나 과외없이 아이들 키우기 힘든 세상이고 그 비용을 벌기 위해 아르바이트 하는 엄마들도 많습니다. 학원 교육을 염두에 두고 수업을 진행하는 교사도 있고 학원을 장려하는 교사도 있는 현실이지요. 공교육이 그만큼 무너졌다는 말이겠지요. 그런 세상에, 그런 공교육에 아이를 보내면서 아이의 자유의지만을 믿고 아이를 키우는 간 큰 엄마가 되보려고 합니다. 그렇게 키워도 망하지 않을 듯 한데, 저와 제 아이를 격려해 주실런지요? - 기자 말

'4학년때 공부 기틀을 잡아야 한다'는 엄마들 속닥거림에 초등 4학년 방학 때 처음 수학학원에 보냈다. '영어가 무섭다'는 아이 말에 6학년때 몇 달간 영어학습지를 시켰다. '누가 수학 공부 좀 도와줬으면 좋겠어' 해서 수학 과외도 시켰다. 다 후회했다.

성적은 조금 올랐지만 들어간 돈만큼은(그게 어느 정도인진 모르지만) 아니었고 본전 생각 나서 아이가 미워졌다. 영어학습지를 제대로 하지 않을 때마다 스트레스를 받았고, 수학 과외 숙제를 하지 않은 날 과외를 가네, 마네 하며 승강이를 벌었다. 공부 때문에 아이랑 다툼하는 동안 나는 불행했다. 모든 것을 그만둔 6학년 2학기때부터 아이와 난 다시 살가운 모녀가 되었다.

입시 사교육 안시킨다 선언했지만, 스멀스멀 불안이...

상반에서 하반으로 직행. 역시 심화 단계는 혼자 어쩌지 못 하는 건가. 학원 가야하나? 과외를 붙여야 하나? 생각이 널뛰기 시작한다.
 상반에서 하반으로 직행. 역시 심화 단계는 혼자 어쩌지 못 하는 건가. 학원 가야하나? 과외를 붙여야 하나? 생각이 널뛰기 시작한다.
ⓒ sx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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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중학교에 들어가면서 선배 엄마들의 이런저런 충고와 한탄을 들었고 상위 10% 안에는 들어야 대학에 갈 수 있다는 어마어마한 현실도 들었다. 대부분 학원에 보내거나 과외를 하고 있었고 학습지라도 시키고 있었다.

장고 끝에 내 방향은 결정되었다. 이 몸은 입시 컨설턴트로도 재능없고 물주로서 소질도 없다는 것 인정! 다른 엄마들 방식대로는 싫다. 입시 사교육 안 시킨다! 지가 알아서 하겠지! 공부할 놈은 어떻게든 한다. 그래야지 암! 나는 밥만 해줄 거다! 그것도 딱 스무 살 때까지만.

이런 내 결심을 들은 분들의 반응은 "혼자 공부 잘하나 보네!". 허걱. 초등 내내 국어는 대다수 90점이다가 가끔 100점, 수학은 50점 이하 대부분이다가 어쩌다 70점대. 영어는 시험을 본 적 없어 모르지만 'naver'와 'never'가 같은 말인 줄 아는 수준. 혼자서 그 정도면 잘한다고 진심으로 칭찬해왔다.

그저 내가 믿는 것은 아이의 자존감 지수가 최상위라는 것! 우울지수 최하위! '아이는 지금 행복한 상태다. 그니까 밀고 나가보자. 지 인생 소중한만큼 내 인생도 그만큼이고 내가 내 삶을 허투루 생각하지 않은 만큼 아이도 그러겠지'라고 생각한 다음 날부터 스멀스멀 불안이 고개를 내민다.  

6학년 겨울방학에 들어서자 중학교 1학년을 선행했다, 3학년까지 선행해야 한다, 초등은 장난, 이제 전쟁이다… 별별 소리가 다 들린다. 귀막고 눈막고 그런 말 하는 엄마들 핑계대고 안 만난다. 그래도 마음 한구석이 찜찜해 아이를 얼른다.

"미리 좀 공부해놔야 하지 않을까? 너도 좀 걱정되지?"

조언을 가장한 은근하고 끈질긴 강요. 아이의 불안감을 들춰낸다. 서점에 같이 간다. 예비 중1 영어, 수학 문제집을 산다. 아이가 직접 고른다. 아이는 한동안 매일 한 단원씩 들여다본다. 책이 얇아 마음도 가볍다. 그러나 그 얇은 책도 2/3는 깨끗하게 보존한 채 올해 중학교 1학년을 맞이한다.

체크 교복 치마를 곱게 입은 아이는 수업에 제법 집중한다. 모르는 게 태반이라 선생님 말씀 흘려들으면 아예 모르고 지나간다. 또랑또랑 대답도 잘하고 선생님한테 눈길이 쏠려 있는 아이라 선생님 눈에 띄고 사랑받는다. 학기초 배치고사 결과 수학 중반이었던 아이는 중간고사 결과 상반으로 승천한다. 문제가 전부 서술형 답 쓰는 방식이라 잔뜩 겁먹었는데 오호라!

"엄마, 가오스가 수학자 이름이라네. 재밌지!"

가오스? 가오리라면 몰라도, 가오스는 누군가. 그러거나 말거나 수학자 이름도 알고! 게다가 재밌다고!! 엄마가 원한 게 바로 이거였다. 지가 재미나서 공부하는 거. 재미가 나면 열심히 하게 되고 재미와 노력이 만나면 거칠 게 없는 거 아닌가. 으흠 내 구상대로 되가는군.

"상반은 힘들어, 중반이 좋았는데..."

어느날, 아이는 투덜거린다.

"상반에 괜히 갔어. 전교 1등이 만날 수업 종치기 직전에 질문해서 우리 반만 늦게 끝나. 뭐가 만날 궁금한지 몰라."

끙. 그애 엄마는 뭔 재주를 부렸나.

"진짜 짜증나겠다. 엄마도 종치려는데 질문하는 애가 제일 싫었어."

일단 아이의 말에 공감해준다.

"그리고 애들은 미리 공부 다 했나봐. 난 반도 못 풀었는데 애들은 다 풀고 놀고 있어. 내가 왜 상반이 된 건지."
"개네들은 선행했겠지. 넌 선행도 안 하고 상반 갔으니 엄청난 거지. 힘내. 수업시간에 놀고 있음 뭐해."
"그래도 상반 힘들어. 그냥 중반이 좋았는데…."

기말고사를 준비하면서 아이는 수학 공부에 열을 올린다. 모르는 문제로 끙끙될 때 내가 풀어주기도 했다.

"아직 엄마 안 죽었지? 고2때 수포자(수학포기한 사람)였는데 중등수학은 된다 그치!" 
"엄마, 나 90점 넘을 거 같아. 문제가 잘 풀려."
"90점 맞아도 돼. 100점도 되고."
"중반에 다시 가고 싶단 말야."
"그럼 웬만큼만 공부해."
"재밌는데 어떡해?"
"어쩌냐…."

큭큭. 좋아 죽겠다 했더니 기말고사 결과 수학 35점. 중반 건너뛰고 하반으로 직행.

"어떻게 된 거야?"
"방심했어. 중간고사처럼 나오는 줄 알았는데 전부 심화 문제였어."
"속상하겠다. 너 공부한 거 엄마가 아는데…."
"그만 생각하자. 이미 지난 일이잖아. 이제 와서 어쩌겠어?"

너는 쿨해서 좋겠다. 엄마는 춥다. 역시 심화 단계는 혼자 어쩌지 못 하는 건가. 학원 가야하나? 과외를 붙여야 하나? 생각이 널뛰기 시작한다. 생각 그만! 돈 없다. 여름방학 초입. 할 일 없는 아이는 낮 12시까지 자고 종일 소파에 눌러 붙어있다. 충분한 수면과 휴식으로 피부가 탱탱해졌다.

"아, 심심해."
"심심하면… 공부 좀?"
"오 노!"
"그럼 친구들이랑 놀아."
"애들 다 학원 다닌단 말야."
"너도 갈래? 심심한데."
"오 노!"
"엄마가 그래도 영문과 출신이잖아. 나랑 영어 공부 좀 할래? 네가 계획잡아봐. 엄마가 시간낼게"
"……."

그래 놀아라. 엄마가 먹이고 입혀줄 때 맘껏 놀아라.

엄마 속이 으르렁 거리는 거, 아이는 알려나

슬쩍 들여다 본 아이 책상 달력에 공부할 계획이 들어있네요. 그럼 그래야지! 실천이 어려워서 그렇지 스스로 공부할 요량은 있는 것이렸다. 내 너를 믿으마. 엄마가 안믿어주면 누가 믿어주겠니?
 슬쩍 들여다 본 아이 책상 달력에 공부할 계획이 들어있네요. 그럼 그래야지! 실천이 어려워서 그렇지 스스로 공부할 요량은 있는 것이렸다. 내 너를 믿으마. 엄마가 안믿어주면 누가 믿어주겠니?
ⓒ 한진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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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방학 2주차. 방학 전 오디션 본 학교 뮤지컬에 참여하게 됐단다. 방학 동안 연습한단다. 최소한 뭐라도 하는구나. 그런데 매일 노트북에 코 박고 있다. 녀석의 책상은 아무도 볼 수 없는 위치에 있는 데다가 책으로 방패를 쳐놓아 철통보안이다.

"너무하는 거 아니니? 벌써 몇 시간째 컴퓨터야?"
"노는 거 아냐."
"그럼 뭔데?"
"시놉시스 써. 뮤지컬 공연하는 거. 내가 캐릭터 짜고 있단 말야."

끄응. 시놉시…. 그래 뭐라도 열심히 하니 다행이라고 여기려는데 컴퓨터를 끝낸 녀석은 핸드폰으로 아이돌 노래에 빠져있다. 요즘 EXO라는 그룹 노래 좋단다. 제목은 으르렁. 내 속이 으르렁대고 있다는 거 녀석은 모르겠지.

생각하는 대로 살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 나는 아이를 다그치지 않고 살기로 했다. 아이의 자율성과 자유 의지를 믿기로 했다. 경쟁사회에서 편하게 살 수 있는 힘센 무기를 장착한 아이로 키우기 보단 자기의 기쁨과 소질을 스스로 알고 가꿔갈 줄 아는 아이로 키우기로 말이다. 가끔 사는 대로 생각하지 않으면 미쳐버릴 것 같은 순간이 올테지만.


태그:#입시, #사교육, #소질, #생각하는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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