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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이 다시 조금씩 길어지고 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세네 시만 되면 하늘은 밝아지기 시작한다. 여름의 리투아니아에서 동트는 걸 보며 잠드는 것은 어렵지 않다. 한 번은 이곳 친구가 자기 집 창문을 활짝 열고 별들을 보여 주었다. 불빛들만 없었다면 더 많은 별들을 볼 수 있었을 텐데, 하고 생각하는 사이에 어느새 그 많은 별들은 새벽의 미명 속으로 깜박이며 사라져 버렸다.

별을 볼 수 있는 시간이 네 시간 남짓밖에 되지 않는 이 희한한 곳(더 북쪽으로 올라가면 '밤이 찾아와도 어둠이 내리지 않는 나라'도 있다고 하지만)에 머물 날도 이제 얼마 남지가 않았다. 떠나기 전 나는 틈틈이 리투아니아 친구들을 방문하고 있다.

겨울에 찾아갔던 바레나 근교 숲의 모습.
 겨울에 찾아갔던 바레나 근교 숲의 모습.
ⓒ 류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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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 속에서 자란 아이들, 노는 게 남다르다

민다우가스가 살고 있는 바레나(Varėna)는 벨라루스와의 국경에 인접해 있는 도시로, 도시라고 해 보아야 큰 시골 마을 정도이다. 바레나로 가는 버스를 탔다. 리투아니아에 처음 도착했을 때는, 버스를 타고 달리면 창 밖으로 보이는 것들은 온통 흰눈에 덮여 있었다. 이제는 완연한 여름, 버스가 달리는 길 어느 방향에서나 푸른 숲은 제 모습을 아름답게 드러내 보이고 있었다.

민다우가스네 집은 강을 바로 마주하고 있다. 여름에 민다우가스와 동생들은 여기에서 수영을 하기도 하고, 차를 타고 10분 정도만 나가면 있는 호수에서 수영을 하기도 한다. 민다우가스에게는 두 명의 여동생이 있다. 이제 막 고등학교를 졸업한 18살 리놀다와 이제 초등학교(?) 2학년인 10살 밀다가 그들이다.

지난번, 겨울에 민다우가스네 집에 갔을 때는 리놀다만 만나고 밀다는 보지 못했었는데, 이번에 만나 보니 요망하게 귀여운 꼬맹이다. 처음에는 부끄럽다고 우리에게 얼굴도 보여주지 않았었지만, 곧 친해졌다. 저녁에 오신 민다우가스네 어머니를 만나 뵙고 나니, 밀다가 어머니를 똑같이 빼닮았다는 걸 알겠더라. 리투아니아 여인의 전형적인 외모를 가지고 있다고 해도 무방하리라.

리놀다는 밀다와 그녀의 친구를 호수에 데려다 주기로 했다며, 우리도 꼬맹이들 수영하는 데 따라갈 건지 물었다. 당연히 오케이. 집에 있는다고 해서 딱히 달리 할 건 없다. 호수 구경하고 여기 애들 노는 걸 구경하는 건 우리에게는 특별한 일이다.

밀다는 호수에서 노는 것을 좋아한다.
 밀다는 호수에서 노는 것을 좋아한다.
ⓒ 류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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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다와 밀다 친구는 이미 자기들이 알아서 옷 안에 수영복까지 챙겨 입고, 호수에 도착하자마자 달려가 다이빙을 했다. 다이빙, 또 다이빙. 물 속에서 헤엄치는 실력이 보통이 아니다. 생각해 보면 당연하다. 늘상 여기서 자라며 익힌 게 이런 것들일 텐데. 자연 속에서 자란 아이들은 역시 노는 게 남다르다.

호수 주변에 사는 사람들은 호수에서 수영하기를 즐긴다.
 호수 주변에 사는 사람들은 호수에서 수영하기를 즐긴다.
ⓒ 류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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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함께 간 친구는 리놀다에게 너도 여기서 어렸을 때 수영을 했었냐고 물었다. 그녀는 대답하기를 "난 그냥 오늘 수영하고 싶지 않을 뿐이야. 오늘은 호수에 머리를 적시기가 싫거든"이라고 했다. 아하, 우리는 질문이 잘못되었다는 걸 깨달았다. 호수에서 노는 건 어렸을 때만 하는 게 아니구나. 그냥 이 애들에게는 강에서 호수에서 수영하는 건 일상적인 놀이인 것이다.

이제 대학 입학을 앞두고 학과 선택을 고민하고 있다는 리놀다는 요즘 한 사무실에서 사무보조로 일한다. 매일 저녁마다 놀러 가서 새벽까지 놀고는 아침에 출근을 한다고 한다. 힘들지 않느냐고 물으니 시골에서 할 일 없이 저녁을 보내는 건 지루한 일이라는 대답이 돌아온다. 아, 외국인이라 나이를 별로 신경쓰지 않았었는데, 새삼 이 애가 꽤나 어리다는 게 다시 인식이 된다.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나이에 아무 약속도 없는 저녁은 세상에서 가장 지루한 것이겠지.

민다우가스네 집 바로 앞에는 강이 흐른다. 정원은 꽃과 허브로 가득하다. 비닐하우스에는 야채들도 있다.
 민다우가스네 집 바로 앞에는 강이 흐른다. 정원은 꽃과 허브로 가득하다. 비닐하우스에는 야채들도 있다.
ⓒ 류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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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말은 시골이 지루하네 어쩌네 하면서도 리놀다는 자기가 나고 자란 동네며 자기 집 정원의 열매와 채소들을 우리에게 자랑하듯 보여 주었다. 그녀는 정원에서 허브와 열매를 직접 따 말려서 차를 만들고, 잼을 만들고, 오이며 토마토를 따다가 요리를 한다. 나보고 같이 오이랑 풀잎들을 따자고 해서 같이 따 오기도 했다.

자기가 말린 차들을 정성스레 종이봉투에 담아 차 이름을 적어 우리에게 선물로 주었다. 지난번 왔을 때에는 이 애가 너무 수줍어서 우리에게 관심이 별로 없는 줄 알았는데, 아, 알면 알수록 이 남매들은 전부 정말 소박하고 따뜻하다.

정원에는 그네도 있다.
 정원에는 그네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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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냥을 즐기는 채식주의자

리놀다의 오빠인 민다우가스 역시 방학 동안에 일을 하는데, 아버지가 양을 기를 농장을 만드는 것을 돕고 있다. 그는 채식주의자이고 사냥이 취미인 법대생이라는 특이한 프로필을 가지고 있다.

그의 아버지는 상도 몇 번 받은 적이 있는 능숙한 사냥꾼이다. 그의 집 지하에는 아버지가 잡은 큰 무소를 비롯해 동물들의 뿔이 벽에 여기저기 걸려 있다. 민다우가스 역시 자기 총들을 가지고 있고 아버지와 숙부와 함께 사냥을 나간다.

심지어는 사냥 클럽에도 소속되어 있다. 물어본즉, 그가 채식주의자인 이유는 고기 맛이 싫어서라고 한다. 채식이 건강에도 좋다고. 그에게는 채식이 동물 사랑과는 전혀 관련이 없는 것이다.

민다우가스 아버지의 노획물(?)과 민다우가스.
 민다우가스 아버지의 노획물(?)과 민다우가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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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다우가스네 집에는 사우나가 있다. 리투아니아에는 사우나를 가진 가정집이 굉장히 많다고 한다. 불을 피워서 사우나 안을 덥히고, 암반 위에 물을 부으면 증기가 핀다. 겨울에 왔을 때와 마찬가지로 우리는 사우나를 즐겼다.

민다우가스는 사우나실에서 나와 강가로 가서 시원한 물에 뛰어들어 수영을 했다. 날이 저물려고 할 때쯤(8월 리투아니아에서는 완전히 어두워지는 시간이 오후 10시 정도이다) 우리는 정원으로 나가 바비큐를 구워 먹었다. 우리가 다시 만날 날 이야기를 하면서.

마을 가운데를 흐르는 강.
 마을 가운데를 흐르는 강.
ⓒ 류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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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이 울창한 나라 리투아니아, 그곳 사람들은 자연과 가까이 산다. 자연과 가까이 사는 사람들의 마음은 너그러운 모양이다. 이 사람들의 삶은 바빠도 여유로워 보인다. 나는 이곳에서 삶을 즐기는 방법을 배워 간다.


태그:#리투아니아, #바레나, #교환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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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관심이 많고 알고 싶은 것도 많은 대학생입니다. 항상 여행을 꿈꾸고 있습니다. 오마이뉴스 대학생기자단 오마이프리덤 1기로 활동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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