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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일제강점기 당시 일제가 세운 괴뢰국인 만주국에서 간도특설대 장교로 일해온 백선엽씨에 대해 대한민국 국방부가 그의 이름을 따서 '상'을 제정한 것입니다. 이에 대해 민족문제연구소를 비롯한 시민사회단체들과 민주당 김광진 국회의원 등이 성명을 발표하며 강력 비판하고 있음에도 국방부는 계획을 철회할 의사가 없음을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나아가 지난 18일에는 <중앙일보>와 국방부가 이른바 '백선엽 한미동맹상'(이하 동맹상)의 주관 및 후원 협약식을 체결한 데 이어, 한미동맹 60주년을 맞아 오는 9월 30일 시상식을 할 예정이라고 발표했습니다.

저는 한미동맹 60주년을 기념한다는 이 상의 제정 자체를 반대하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백선엽'이라는 인물의 이름을 따서 국가기관이 주는 상을 제정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제대로 알려야 한다는 절박한 마음으로 이 글을 씁니다.

백선엽, 그는 누구인가

일제강점기 때 항일독립군을 토벌했던 '간도특설대' 장교 출신 백선엽씨가 지난해 2월 21일 오전 서울 상암동 '박정희 기념·도서관'에서 열린 개관식에 참석한 모습.
 일제강점기 때 항일독립군을 토벌했던 '간도특설대' 장교 출신 백선엽씨가 지난해 2월 21일 오전 서울 상암동 '박정희 기념·도서관'에서 열린 개관식에 참석한 모습.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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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선엽은 일제 강점기인 1920년에 태어나 1942년 12월 만주군관학교를 졸업한 후 1943년 4월 만주국군 소위로 임관합니다. 이후 본격적인 군인의 길을 걸어간 그가 3년간 근무한 곳이 바로 '간도 특설대'였습니다. 간도 특설대는 조선인들의 거주지였던 간도 일대에서 항일투쟁을 벌이던 조선인과 중국 팔로군을 토벌하는 임무를 담당한 부대였는데 주로 항일 투쟁가들에 대한 정보 수집, 선전, 토벌, 심문 등을 맡았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자료에 의하면 백선엽은 그곳에서 일제에 항거하는 '동북항일연군'과 '팔로군' 진압에 모두 108차례 나선 것으로 확인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백선엽은 일제의 조선 식민지배가 유지, 옹호될 수 있도록 적극적인 친일 행각을 해 온 것입니다. 당사자인 백선엽 역시 이 사실을 부인하지 않습니다.

1993년 일본에서 출간된 <간도특설대의 비밀>이라는 책에서 백선엽은 "간도특설대가 소규모이면서도 군기가 잡혀 있어 커다란 전과를 올린 것은 당연한 일이었고 간도특설대가 추격했던 게릴라 중에는 많은 조선인이 섞여 있었다"라고 인정했습니다. 이처럼 조선의 독립을 위해 싸우던 독립운동가를 탄압했음을 인정한 그가 이후 언급한 '망언'을 듣고 저는 경악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백선엽은 '간도 특설대'에 대해 '우리'라고 표현하면서 "우리가 전력을 다해 토벌했기 때문에 한국의 독립이 늦어졌던 것도 아닐 것이고, 우리가 '배반하고' 오히려 게릴라가 되어 싸웠다면 독립이 (더) 빨라졌다라고도 할 수 없을 것이다"라며 "동포에게 총을 겨눈 것이 사실이었고 비판을 받더라도 어쩔 수 없다"고 했습니다. 나아가 '간도 특설대'의 역할에 대해 "민중을 위해 한시라도 빨리 평화로운 생활을 하도록 해주는 것이 칼을 쥐고 있는 자의 사명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고 했습니다.

백선엽이 말하는 "(군인으로서) 빨리 평화로운 생활을 하도록 해주는 것"의 의미를 생각하면서 저는 전율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가 말하는 "빨리 평화로운 생활을 하도록 해주는 것"은 쉽게 말해서 조선의 독립을 위해 노력하는 모든 독립군을 진압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며 이는 다시 말해 '일제의 식민 지배가 안정적이고 공고화 되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지금 국방부가 이런 '친일 반민족 행위자'의 이름을 딴 '한미 동맹상'을 추진하고 있는 것입니다.

백선엽에게 '6·25 전쟁'은 축복?

백선엽은 이같은 친일 행적에 따라 지난 2008년 민족문제연구소에서 발표한 <친일인명사전>에 이름이 수록되었으며 이듬해인 2009년에는 국가 기관인 '대통령소속 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위원회'에서 발표한 '친일 반민족행위자' 704명 중 한 명으로 이름을 올린 사실이 있습니다. 그의 친일 행적에 대해 민간단체와 국가기관이 동시에 사실을 확인함으로써 명실상부한 '친일 반민족 행위자'로 공인된 것입니다.

그런데 이처럼 '명백한' 친일 반민족행위자 백선엽에 대한 사회적 비난은 고사하고 오히려 그의 이름으로 대한민국 국방부가 상까지 제정하는 이유는 '6·25 전쟁 당시 그가 세운 공이 크다는 것' 때문입니다. 국방부 측에 따르면 정전 60주년을 맞아 한·미 동맹을 위해 헌신한 미국인들에게 감사의 뜻을 표하고자 동맹상 제정에 나선 것이고 "우리가 영웅으로 여기는 백선엽 장군의 이름이 들어갔으면 좋겠다"는 미국 측 뜻을 반영하여 이처럼 결정한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렇습니다. 친일 반민족행위자 백선엽에게 있어 6·25 전쟁은 어쩌면 축복이었는지 모릅니다. 명백한 친일 행적에도 불구하고 늘상 따라붙는 이른바 '전쟁 영웅'이라는 칭호가 그것을 반증합니다. 만약 백선엽에게 6·25 전쟁이 없었다면 어땠을까 상상해 봅니다. 어쩌면 '그저 그렇고 그런' 군인에 불과했을지 모릅니다. 그렇기에 당사자는 동의하지 않을지 모르겠지만 6·25 전쟁은 백선엽 개인에게 있어서는 천운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이는 백선엽 뿐만이 아닙니다. 우리 민족에게 다시는 벌어지지 않아야 할 민족 동란인 6·25 전쟁은 친일파와 그 주변 세력에게 '다시 없는 큰 축복'이었음을 반증하는 근거는 몇가지 사실만 살펴봐도 알 수 있습니다. 백범 김구 선생님을 시해한 안두희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그는 1949년 6월 26일 백범 선생님을 시해한 죄로 체포되어 법원에서 종신형(무기징역)을 선고 받았습니다. 하지만 그가 수형 생활을 한 것은 고작 1년여에 불과했습니다. 어떻게 가능했을까요. 6·25 전쟁이 발발하자 안두희는 1950년 7월 10일, 죄수 신분에서 일약 육군 소위로 복직했고 다시 2달만인 9월 15일에는 육군 중위로 진급합니다.

안두희의 행운은 거기서 그치지 않습니다. 이후 승진을 거듭한 안두희는 1953년 12월 15일 육군 영관급 장교로 제대한 후 국방부로부터 군납 업체를 지정받아 사업가로 나서게 됩니다. 그렇게 승승장구한 안두희는 이후 강원도에서 세 번째로 세금을 가장 많이 내는 '축복받는' 인생을 살게 됩니다. 묻고 싶습니다. 과연 안두희에게 6·25 전쟁은 어떤 의미였을까요. 민족 동란으로 기억할까요. 아니면 일생 일대의 최고 행운이었다고 답할까요.

지금이라도 대한민국 국방부의 반성을 촉구합니다

국방부가 추진하는 이른바 백선엽 상은 '민족의 양심과 정의를 생각하는 국민이라면' 결코 용납할 수도, 좌시할 수도 없는 일입니다. 국방부는 백선엽이 6·25 전쟁 과정에서 수많은 전과를 세웠다며 그의 과거 친일 행적보다 이후의 공적에 대해 언급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아닙니다. 과정은 중요하지 않고 결과만 좋으면 된다는 식의 어처구니없는 발상이며 이는 국가기관으로서 가져서는 안 될 인식입니다. 강력하게 비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마치 총칼로 무고한 이들의 돈을 빼앗아 좋은 일에 쓰면 잘못이 없다는 것이며, 일주일 내내 온갖 못된 짓은 다 하고도 주일에 교회에 나가 반성만 하면 죄가 없다는 식의 '못된 발상'입니다. 이런 식이라면 누가 과정을 중요하게 생각할까요. 친일 반민족행위자의 잘못을 이따위로 면죄하고, 나아가 이제는 그의 이름을 국가기관이 나서서 빛을 내준다면 민족의 수난 시대가 다시 도래할 시 누가 민족을 위해 희생하겠습니까.

저는 요구합니다. '친일 반민족행위자' 백선엽의 이름을 딴 '한미동맹상' 제정은 즉각 철회되어야 합니다. 미국의 요구에 따라 이름을 따게 되었다는 주장도 옹색합니다. 국방부가 역사와 민족 의식을 제대로 갖춘 국가기관이라면 '백선엽'의 이름을 따서 상을 제정해 달라는 미국 측 요구에 대해 부적절하다고 이해시켰어야 합니다.

"6·25 전쟁 당시 백선엽 전 장군이 보여준 일련의 공적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해주는 미국에 대해 고맙습니다. 하지만 일제 강점기 당시 백선엽 전 장군이 행한 일련의 민족 반역행위에 대해 한국 국민들은 여전히 용서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 민족이 가진 정서입니다. 한국인은 관대하고 온유하지만 민족을 반역한 행위에 대해서는 단호합니다. 그의 이름으로 상을 제정할 수 없는 이유입니다. 깊은 이해를 당부드립니다."

대한민국 국방부는 이렇게 말해야 합니다. 지금이라도 반성을 촉구합니다. 분명하게 말하지만 '친일 반민족 행위자' 백선엽씨가 6·25 전쟁 과정에서 일궈낸 성과가 있다면 민족을 배반한 행위에 대한 '속죄 행위'로 평가되어야지 이에 대해 영웅으로 추대하는 것은 옳은 일이 아닙니다. 백선엽씨 스스로 이렇게 말하는 것이 옳습니다. 이것이 바로 '진정한 역사 바로 세우기'임을 저는 주장합니다.

끝으로 백선엽씨의 공적으로 일컬어지는 '전투' 중 이름 없이 숨져간 '진짜 대한민국 애국 군인'을 추모합니다.


태그:#백선엽, #안두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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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 운동가, 재야인사 장준하 선생 의문사 및 친일 반민족행위자의 재산을 조사하는 조사관 역임, 98년 판문점 김훈 중위 의문사 등 군 사망자의 명예회복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저서- 중정이 기록한 장준하(오마이북), 장준하, 묻지 못한 진실(돌베개), 다시 사람이다(책담) 외 다수. 오마이뉴스 '올해의 뉴스게릴라' 등 다수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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