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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작가의 공간은 고시원 3층에 있다. 1층 감자탕집과 2층 당구장을 지나 계단을 오르자 3층과 4층이 고시원이었다. 입구 층계참에서 일행을 맞은 작가는 박카스 병부터 권했다.(본문 15쪽)

최재봉 <한겨레> 문학 기자가 토요판에 2011년 9월부터 이듬해 9월까지 1년간 연재한 '최재봉의 공간' 원고들을 수습하여 내놓은 책 <그 작가, 그 공간>은 이렇게 시작하고 있다. 모두 28명의 작가와 그 작가들이 작품을 배태하는 공간 중에서, 멀쩡한 공간을 다 놓아두고 관 속 같은 고시원 방에 들어앉아 글을 쓰는 소설가 김태용의 공간을 가장 처음에 배치하여 눈길을 끈다.

김태용 작가는 유독 고시원을 고집... 딱 글만 쓸 수 있는 공간

최재봉 문학 기자의 <그 작가, 그 공간> 책표지.
 최재봉 문학 기자의 <그 작가, 그 공간> 책표지.
ⓒ 한겨레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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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로 1.5미터, 세로 2미터 정도. 상상해보라. 얼마나 좁은지. 이 고시원을 집필실로 만든 건 2005년부터이니 제법 긴 세월이다. 보증금 없이 월 16만 원. 10분 거리에 가족들이 있는 아파트도 있고, 서울예술대학교 문예창작과 교수로 부임하여 멋진 연구실도 받았는데, 김태용 작가는 유독 고시원을 고집한다.

그건 딱 글만 쓸 수 있는 공간이라 좋고, 작가가 게으른 편이라 넓고 편한 공간은 늘어지기 때문이란다. 고시원이 없어지지 않는 한, 한 평생 고시원에서만 글을 쓰고 싶다면서 그는 소설은 물론, 짧은 산문 하나라도 고시원을 벗어날 수는 없다고 하니, 이 작가의 그 공간은 참 독보적이다.

시인 김경주는 서울시 마포구 상수동의 '이리 카페'에서 자신의 문학적 공간을 짜 놓았다. 그의 공간은 김태용과 달리 활짝 열려 있다. 공간적인 폐쇄성을 벗어나 있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자신의 문학을 다양하게 공유하고 있다. 그는 그곳에서 낭독회를 하면서 독자들과 만나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문학이 살기 위해서는 소리가 살아야 한다는 신념으로 지난 2000년부터 '이리 카페'를 중심으로 낭독 운동을 펼쳤다. 평소 '시는 끊임없는 중얼거림 속에 있다'고 하면서 시를 쓸 때 시어의 뜻 못지않게 그 소리와 질감을 중시하는 경향성이 그가 낭독 문화를 이끌어가는 요인이었다.

김경주는 '이리 카페'에서 밥벌이용 글쓰기도 하고, 각종 낭독회도 열며 금천구청 인근 옛 육군 도하부대 터를 독립 예술가들의 작업공간으로 만들기 위한 프로젝트도 진행한다. 뿐만 아니라 장애인 예술 체험 행사와 매달 마지막 주 일요일에는 '이리 백일장'을 여는 등 그의 문학적 공간은 매우 넓다. 그의 공간은 이렇게 소통을 통해 존재하는데 그는 시가 어렵다며 소통을 입에 올리는 데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제 생각에 소통이란 양의 문제가 아니라 질의 문제예요. 작가는 이미 있는 독자를 찾아가는 것이 아니라 잠재적인 독자를 발견해야 합니다. 시인들이 시집 한 권을 묶는데 보통 3년 정도 걸립니다. 그런 시집을 세 시간 안에 읽어치우고는 '소통이 안 된다'고들 합니다. 시가 어렵다고 느껴진다면 소리 내어 읽어보세요. 그러면 한결 이해가 쉬워집니다. 아무리 난해하고 복잡한 시라도 읽는 순간 독자는 잠시나마 '어디론가 건너갔다 오는 것'이죠. 그게 바로 제가 생각하는 소통입니다.(본문 62쪽)

역시 문제는 '낭독'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김경주의 '공간'을 가득 채우는 것도 '낭독'이다.

안도현, 살구나무가 있는 시골집... 시인의 상상력을 데우는 곳 

안도현의 전북 완주군 구이면 광곡리 시골집은 살구나무와 함께 자란다. 전업 작가가 되고서 시도 때도 없이 걸려오는 전화를 피해 피신한 곳이 바로 이 시골집이다. 10년째 비어있는 집을 손보고, 잡풀 없애고, 잔디를 깔며, 나무도 심었는데, 그 시골집의 '원주민'이 살구나무였던 것.

그는 시에서 살구나무가 꽃을 피우는 것은 나무 속에 보일러가 들어있기 때문이라는 상상력을 가동시키며, 집 주변의 자연을 소재로 100편이 넘는 시를 쓰고, 다섯 권의 시집을 펴냈다. 시골집과 살구나무는 겨울에도 '그르렁그르렁' 돌아다니며 시인의 상상력을 데우는 보일러의 '뜨거운 물'이었다.

안도현은 2009년 노무현 전 대통령 추도사를 낭독하고 2012년 대선에서 문재인 후보 진영에서 본격적인 정치 활동을 벌였다. 독자들 중에는 그의 정치참여에 실망했다는 반응도 나왔는데, 그는 이명박 정부의 역주행을 보며 자신이 쓰는 시와 현실 사이의 괴리를 어떻게 메울 것인가를 지속적으로 고민하였다고 한다. 최근 그의 절필 선언은 이 고민의 연장선상에 놓인 결단이 아닐까.

2012년 4월부터 안도현은 트윗 활동을 하게 되었는데, 도종환 시인의 작품을 교과서에서 빼려는 교육당국에 맞서 싸운 것이 계기가 되어 널리 알려졌고, 지금은 팔로워 수가 4만 명이나 되었다. 트위터를 이용해 일기 쓰듯 글을 올리고, 백일장도 열고 있다. 정치와 트위터야말로 새롭게 자리 잡아 가고 있는 안도현의 '공간'으로 보인다.

경기도 한성시 공도읍 마정리 고은 시인의 '공간'은 시인과 30년을 함께 한 지기이다. 이 마정리 '공간'에서 <만인보> 30권을 비롯하여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시집과 산문집을 그야말로 '쏟아냈다'. 그 공간엔 책들이 넘쳐난다. 고은 시인은 '책은 자궁'이며, 스스로를 '태아'라고 비유한다.

서재에 있을 때 가장 몸이 달아오른다니, 그의 열정이 뜨겁다. 시인은 주로 원고지에다 볼펜으로 글을 쓰지만 때로 신문에 끼어오는 광고지 뒷면도 원고지 대용으로 쓴다. 이 '광고지 원고'는 그대로 출판사로 보낸다. 그냥 버리면 천벌을 받을 것 같아서다. 나무를 죽여 가며 사는 존재라는 자각의 표현이다.

고은 시인을 사람들은 '영원히 움직이는 존재', '동사형 존재'라고 한다. 지금도 <만인보> 이후의 대작을 10개가 넘게 구상하고 있다는데, 어언 80살이 된 시인에게 '팔십 노인'의 풍모보다는 '여든 살 청춘'을 더 발견하게 되는 것은 바로 이러한 '움직임' 때문일 것이다.

'내 위치는 아직도 움직임 속에 있다.'

그래서 따로 고정된 공간이 없을 것 같지만, 30년 안성 생활은 뜻밖에 길었다. 그만큼 안성은 '편안한 공간'이었나보다. 이제 새로운 공간을 모색한다고 하니, 아무래도 고은 시인은 새로운 탈주와 유목을 꿈꾸고 있는 것 같다.

강릉시 주문진읍 장덕리 복사꽃마을은 시인 겸 소설가 김선우의 '공간'이다.

동쪽 바다 가는 길 도화 만발했길래 과수원에 들어 색(色)을 탐했네
온 마음 모아 색을 쓰는 도화 어여쁘니 요절을 꿈꾸던 내 청춘이 갔음을 아네
가담하지 않아도 무거워지는 죄가 있다는 것은 얼마나 온당한가
이 봄에도 이 별엔 분분한 포화, 바람에 실려 송화처럼 진창을 떠다니고,
- '도화 아래 잠들다' 부분(318-319쪽)

시인은 2003년 봄, 여행길에 영덕 복사꽃밭을 지나다가, 미국이 이라크를 침공하는 뉴스를 보았다. 그때 복사꽃의 아름다움과 전쟁의 참상이 겹쳐지면서 하염없이 눈물이 났다고 했다. '가담하지 않아도 무거워지는 죄'는 바로 그때 눈물을 흘렸던 시인의 여린 마음을 표현한 것이리라.

그런 시인의 마음은 한진중공업 김진숙 구하기와 제주 강정 구럼비 바위 살리기, 쌍용자동차 싸움까지 여러 사회적 의제에 매달릴 수 있는 에너지가 되었다. 시인은 2010년 인도의 생태 영성 공동체 오르빌을 다녀와서, 송경동 시인의 제안으로 희망버스를 탔다. 그리고 구럼비 바위가 폭파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펑펑 울고는 한국작가회의 항의 단식 농성단 '1번 타자'가 되었다. 2012년 쌍용자동차 문화제에서 동료 시인들과 연대시를 낭송하기도 했다.

김선우의 '공간'인 복사꽃 밭은 그러므로 결코 약하지 않다. 한 송이 꽃이라도 저를 피우고자 할 때는 필사적이기 때문이다. 봄날, 그런 필사적인 개화가 마침내 꽃 천지를 만드는 것이 바로 '혁명'이 아니겠는가.

작가와 작가의 정신, 문학과 공간은 서로 날줄과 씨줄로 얽혀

최재봉의 <그 작가, 그 공간>에서 정작 '공간'은 다만 작은 매개체일 뿐이다. 그 공간에서 발현된 '작가'와 '작가 정신'이 있을 뿐이다. 그렇다면 왜 '그 작가'는 '그 공간'에 있는 것일까. 소설가 한승원의 염원처럼 '살아 있는 한 글을 쓰고, 글을 쓰는 한 살아 있을 것'이기 때문일까.

'천국이 있다면 그곳은 일종의 도서관과 같은 모습일 것'이라는 보르헤스의 말처럼 도서관이라는 공간 속에서 느끼는 외로움(김도연) 때문일까. 모든 길은 소설로 통한다(박민규)는 믿음 때문일까. 아니면 '딱딱하게 발기만 하는 문명에게' 거대한 반죽 뻘의 물컹물컹한 말씀을 전하기 위함(함민복)인가.

문학은 길이며(이순원), 라디오이고(정혜윤), 사막이며(최승호), 집이다(함성호, 김소연). 그리고 문학은 그리움이고(김성동), 밝은 햇살이며(박남준), 몽당연필이고(김훈), 감성이다(이외수). 또한 문학은 유기농 포도이며(류기봉), 길고양이이고(황인숙), 섬이며(한창훈), 다시 고향이다(박범신, 유용주).

그 작가와 작가의 정신과 문학과 공간은 서로 날줄과 씨줄로 얽혀 세상을 썩지 않게 한다. 스스로 시대의 '항생제'가 되어 병든 세상을 치료하기도 한다. 진실로 파란 하늘과 뭉게구름 같은, 산줄기 같고 샘물 같은, 그리고 오래된 나무 그늘 같은 문학이 없다면, 도대체 세상이 없는 것과 무엇이 다를까. 그것이 바로 중상모략과 권모술수, 사이비와 탐욕에 '쩔어가는' 세상에 문학이 당당하게 존재하는 이유일 것이다.

시인은 오늘도 마당에 나가 꽃 소식에 귀를 기울인다. 화단에는 복수초 노란꽃과 연분홍 노루귀가 피었고, 꽃대가 올라온 깽깽이풀이 다음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 개울가 청매화 꽃망울에 맺힌 빗방울이 '인드라망'의 구슬 같다고 느끼는 순간, 엊그제 다녀간 소녀가 방명록에 남긴 문구가 눈에 들어온다. "활짝 핀 꽃들만 생각하며 살았습니다. 활짝 피기 전의 꽃이 이리 예쁜 줄 몰랐습니다. 지금 내가 가장 예쁘다는 걸 몰랐네요."(본문 233쪽)

덧붙이는 글 | <그 작가, 그 공간>, 최재봉, 한겨레출판, 2013년 6월 28일, 1만 5천 원



그 작가, 그 공간 - 창작의 비밀을 간직한 장소 28

최재봉 지음, 한겨레출판(2013)


태그:#작가와 공간, #창작 공간, #항생제, #나무 그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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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합천의 작은 대안고등학교에서 아이들과 만나고 있습니다. 시집 <느티나무 그늘 아래로>(내일을 여는 책), <너를 놓치다>(푸른사상사)을 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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