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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IA의 월드 팩트북. 해당 국가에 대해 조사할 때 참 유용한 누리집이다.
 CIA의 월드 팩트북. 해당 국가에 대해 조사할 때 참 유용한 누리집이다.
ⓒ 월드 팩트북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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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베를린 자유대학에서 공부하는 정치학도입니다. 특히 국제정치 분야에 관심이 많은데, 해당 국가에 대해 조사하려면 객관적인 정보는 필수이지요. 특히 특정국가의 천연자원 및 국가개관에 대한 주제를 다룰 때 주로 쓴 1차 사료는 주로 미국 CIA의 월드 팩트북(The World Factbook)이었습니다. 해당 국가의 개괄정보뿐만 아니라 지리·사회 구조·정부 구조·경제·에너지 정책·통신 및 교통·군사 정책 등이 압축적으로 잘 요약돼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CIA의 역사를 보면 전기 고문 및 일방적인 해외 정치개입과 같은 추악한 사건들이 많아, 이 자료를 어쩔 수 없이 활용할 때 마음이 심란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CIA에 대해 안 좋은 역사적 기억을 가지고 있는 이란 친구들도 연구를 할 때 월드 팩트북 자료를 많이 활용합니다. 여담으로 말하자면, 이란의 경우에는 1953년 CIA로 인해 이란 민족주의자이자 석유 국유화를 외쳤던 모하마드 모사데크 총리가 정치에서 축출되고 친미 팔레비 정부를 확립합니다. 하지만 팔레비 국왕이 지나친 친미정책 및 부패로 인해, 결국 시민들이 1979년 이란 혁명으로 팔레비 국왕을 퇴위시키고, 미국 대사관 직원들을 인질로 삼지요. 이로 인해 미국과 이란은 국교를 단절하게 됩니다.

이러한 모순적인(?) 행동을 하고 있었던 저는 우리나라 국정원에서 이러한 자료를 독자적으로 만들어서 논문 쓸 때 이를 활용했으면 좋겠다라는 희망을 가진 적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나꼼수>에서 언급한 댓글 알바부대, <뉴스타파>에서 언급한 국정원 선거개입을 독일에서 들으면서 국가가 제대로 돌아가는지 의문이 들었습니다.

그래도 전 공식적인 검찰 발표가 나올 때까지 인내하며 기다렸지요. 검찰조사 발표는 제가 본 인터넷 언론이 말한 그대로였습니다. 정부 기관의 각종 조작 및 민주주의의 후퇴를 통탄스러운 마음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더구나, 제가 타지에 있는지라, 서울광장 및 제 고향인 부산에서 이를 바로잡기 위해 촛불시위하시는 시민들과 함께하지 못해 가슴이 아픕니다.

민주주의의 후퇴뿐만 아닙니다. 국정원의 경우 국가의 대외정보 수집이라는 중요한 임무가 있습니다. 이러한 정보는 학자들이 해당국가에 대한 심도 있는 연구를 할 때 매우 중요한 1차 사료가 됩니다. 뿐만 아니라, 기업인들에게는 해외진출을 추진할 때 해당 지역에 대한 시장분석은 필수입니다. CIA의 월드 팩트북과 심히 대조되는 국정원 누리집. 그래도 학자로서 객관적으로 평가해보기 위해 국정원 발간자료들을 살펴봤습니다.

2009년부터 2011년 3월까지 공개된 발간자료 '전무'

현재 인터넷에 올라온 국정원 발간자료는 40권. 자료들의 경우 노무현 정권 때 발간된 2008년 이전 자료와 이명박 정권 이후 발간한 자료로 나뉠 수 있다.
 현재 인터넷에 올라온 국정원 발간자료는 40권. 자료들의 경우 노무현 정권 때 발간된 2008년 이전 자료와 이명박 정권 이후 발간한 자료로 나뉠 수 있다.
ⓒ 국정원 누리집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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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인터넷에 올라온 국정원 발간자료는 40권입니다. 자료들의 경우 노무현 정부 때 발간된 2008년 이전 자료와 이명박 정부 이후 발간한 자료로 나뉠 수 있는데요. 이 기간을 바탕으로 자료를 비교해보면 확연히 차이가 납니다.

우선 노무현 정부 때 발간된 자료를 살펴보면, 주로 신흥시장에 대한 연구 및 산업스파이 및 테러 대처요령에 대한 자료들입니다. 특히 신흥시장에 대한 연구는 각 권당 무려 300쪽 가까이 돼 사실 단시간 내에 꼼꼼히 읽기 힘들었습니다. 하지만, 각 자료를 살펴보면, 의외로 유용한 정보들이 많습니다.

1순위로 저에게 와닿았던 자료는 '산업스파이 사건 재조명'입니다. 이 서적을 보면 산업스파이가 왜 발생하는지에 대한 개관뿐만 아니라 당시 우리나라에서 발생했던 사건들을 구체적으로 낱낱이 기록했습니다. 이를 바탕으로 해서 공통적인 문제점을 추려내고 이에 대한 해결 방안을 제시했지요. 특히 구체적인 사례들을 잘 살펴보면, 우리나라 기업들이 스스로 산업스파이를 방어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할 수 있을 정도입니다.

두 번째로 와닿았던 자료는 '동남아의 사회/문화 알기'였습니다. 동남아시아의 경우 사실 역사 및 경제구조, 그리고 지난 직장에서 배운 관광산업구조만 겨우 알고 있었습니다. 이 자료에서 읽었던 사회문화적 구조는 상당히 새로운 분야였습니다. 특히 상대국가의 역사를 감안한 구성주의적 문화연구가 인상 깊었지요. 동남아시아에서 비즈니스를 시작하시고 싶으신 분들은 반드시 읽어봐야 하는 자료라고 봅니다.

마지막으로 와 닿았던 자료는 '최근 중국 지역경제 정보'였습니다. 중국 경제에 대해서는 주로 미국 및 다른 강대국과의 관계를 바탕으로 강의를 들었던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이 자료의 경우 중국의 각 성(省)의 산업구조 및 지방정부를 구체적으로 분석했습니다. 또한 지리적 정보를 바탕으로 해서 해당 성(省)에서 어떤 사업을 하면 좋을지에 대해서도 제시했지요.

이밖에도 테러 예방법 및 폭탄차량 검색매뉴얼과 같은 안보 분야 자료들도 있었습니다. 이는 위험 지역에 진출한 한국기업 및 연구자들에게 유용한 정보입니다. 다만, 2008년 이전 자료에서 아쉬운 점은 비즈니스 분석에만 상당히 할애했다는 점입니다. 특정 국가와 정상회담 및 장관급회담을 의미 있게 진행하려면, 해당 국가의 정치 및 경제적 상황뿐만 아니라, 민심을 정확히 파악해야 합니다. 정치·경제 상황의 경우 해당 국가의 언론들이 자세히 다루지만, 민심의 경우 일부 개발도상국 언론들이 정권 유지를 위해 구체적으로 다루지 않는 경우가 있어서 인문학적인 틀을 가지고 분석하는 것이 필수지요.

반대로 이명박 정부 이후의 자료의 경우에는 캠페인성 자료들이 많습니다. '만화 111탐구생활'을 보면, 구체성을 반영한 '산업스파이 사건 재조명'과 확연히 비교됩니다. 의심 유형에 대해서만 알렸을 뿐, 구체적 사례를 제시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다른 자료들도 유형에 대해서만 추상적으로 언급했지, 구체성이 상당히 떨어집니다. 또한 각 자료당 분량도 많아야 30쪽 정도일 뿐입니다. 왜 2008년의 구체적인 자료들과 확연히 구분되는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겠지만, 국정원의 정치 개입 등이 결정적으로 영향을 미쳤지 않았는지 추측해봅니다.

국정원 개혁의 열쇠, 여기에 있다

지난 13일 오후 서울시청앞 서울광장에서 209개 시민사회단체로 구성된 '국가정보원 정치공작 대선개입 시민사회 시국회의' 주최로 열린 '국정원 정치공작 대선개입 규탄 및 진상규명 촉구 3차 범국민대회'에 많은 시민들이 촛불을 들고 참여하고 있다.
▲ 서울광장 수놓은 수만개 촛불 지난 13일 오후 서울시청앞 서울광장에서 209개 시민사회단체로 구성된 '국가정보원 정치공작 대선개입 시민사회 시국회의' 주최로 열린 '국정원 정치공작 대선개입 규탄 및 진상규명 촉구 3차 범국민대회'에 많은 시민들이 촛불을 들고 참여하고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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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원 정치개입 사건은 이미 수많은 언론들이 구체적으로 다뤘던 내용입니다. 원세훈 국정원장의 특별 지시로 선거여론 조작을 한 사건이지요. 게다가 황교안 법무장관의 개입 논란까지 더해져서 공정성 시비도 있었습니다. 어렵게나마 국정조사 특위가 구성됐다고는 하지만,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여야의 갈등으로 인해 공정하게 이뤄질 수 있을지도 의문이고요. 하지만 향후 국정조사를 통해 국정원뿐만 아니라 청와대와의 관계까지 명확하게 규명돼 언론에서 제기하는 의혹들이 해소되고, 사법처리가 제대로 행해지길 바랄 뿐입니다. 올바른 조사 및 재판을 위해 시민들의 특별한 관심 및 이를 촉구하는 촛불시위는 필수입니다.

또한 사법처리뿐만 아니라 국정원 개혁 로드맵에 대해서도 관심을 기울이고 청와대에 압력을 가해야 합니다. 범법자에 사법처리가 올바르게 이뤄져도 이에 대한 철저한 개혁 없이는 국정원의 조작은 계속 될 것입니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국정원에 관심 있는 시민들의 참여가 필수이지요. 가칭 '국정원 시민감시단'을 발족시키는 것은 어떨까요? 국정원의 중립적 기능을 올바르게 수행하고 있는지, 그리고 제대로 된 해외정보를 수집하고 있는지 이 분야에 관심 있는 시민들은 꼼꼼히 살펴봐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올바른 해외정보를 수집했어도 방법론이 문제가 있다면 이에 대한 비판도 가감없이 해야 하는 것이 시민의 의무라고 생각합니다.

국정원의 구체적 개혁안을 시민사회에서 직접 마련해보는 것은 어떨까요? 가장 쉬운 방법을 제안해봅니다. 2008년 이전 국정원 발간자료를 직접 읽어보시길 권합니다. 그러면 그들이 대체 무엇에 집중해야 하는지, 조직 개혁은 어떤 방향으로 이뤄져야 하는지 아실 수 있을 겁니다.


태그:#국정원, #정보수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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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시민기자입니다. 독일에서 통신원 생활하고, 필리핀, 요르단에서 지내다 현재는 부산에서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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