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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총학생회 학생들이 12일 오후 서울 여의도 새누리당사 앞에서 국정원 정치개입 및 NLL 물타기 규탄집회를 열어 국정원 대선 개입에 대한 박근혜 대통령의 입장 표명을 촉구하고 있다.
▲ 서울대 총학생회, '국정원-새누리당 커넥션 규탄' 서울대 총학생회 학생들이 12일 오후 서울 여의도 새누리당사 앞에서 국정원 정치개입 및 NLL 물타기 규탄집회를 열어 국정원 대선 개입에 대한 박근혜 대통령의 입장 표명을 촉구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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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박도 할아버지. 저는 서해안 연평바다에 사는 꽃게입니다."

"먼 강원도에 사는 나를 찾아줘서 고맙다. 그런데 어쩐 일이냐?"

"요즘 사람들이 하는 일들을 보고 있으니까 참 한심하고, 답답하여 할아버지와 말씀을 나누면 좀 풀릴까 하여 찾아왔습니다. 잠시 제 말동무가 돼주세요."

"나보고 말동무가 돼달라고?"

"네, 그렇습니다. 할아버지는 이전에 안흥산골에 사실 때 거의 매일아침 뒷산 멧새와 함께 아침인사도 나누고, 이런저런 대화를 하셨지요. 그래서 저랑 대화가 될 것 같아 문을 두드렸습니다."

"별 걸 다 기억하는구나. 아무튼 고맙다. 나는 요즘 늘 함께 살던 카사(고양이)란 놈과도 헤어져 적적하던 차 찾아줘서 고맙고 반갑구나. 그런데 사람들의 일 가운데 '참 한심하고 답답한 것'이 뭐니?

'옹·치·시'

"왜 사람들은 자기들 마음대로 바다에다가 무슨 선을 그어놓고 싸움질을 하는 겁니까? 정말 '옹·치·시'합니다. 어디 바다가 사람들 것입니까?"

"그것은 대자연을 탐욕스럽게 보는 무명무지한 사람들의 한계 때문이란다. 사실은 이 세상 모든 자연물은 모든 생명체들이 함께 누리는 삶의 터전이지. 근데, '옹·치·시'라니?"

"저는 사람들을 만물의 영장으로 대단하게 여겼는데 그 실상을 알고 보니 대단히 '옹졸하고, 치사하고, 시시하다'는 말입니다."

"얘, 좀더 구체적으로 말해 보렴."

"얼마 전에는 제가 사는 바다에서 멀쩡한 군함이 폭파되어 젊은 수병 수십 명들이 희생되더니, 곧 얼마 안 돼 서로 포격 질을 하고, 이즈음에는 무슨 'NLL(서해북방한계선)'이라는, 우리는 알아듣지도 못하는 해괴한 말로 왜 나라 안에서 싸움질을 합니까?"

"네 말 듣고 보니 나도 사람으로 참 부끄럽구나. 나는 이즈음 우리나라 근현대사를 공부하면서 최근에는 한국전쟁을 깊이 공부해 보니까 이 모든 게 우리나라 정치지도자들이 제 할 일을 못한 탓이더구나. 나라를 이웃나라에게 빼앗기고, 그걸 다시 제대로 찾을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나라가 두 조각이 났더구나.

그런 가운데도 정신 차리지 못하고 서로 한 하늘 아래서 살 수 없는 원수처럼 이판사판 싸웠고, 정전협정으로 싸움을 중단하고도 정치회담을 통한 한반도 평화적 해결방안을 모색치 않은 탓으로 여겨진다. 이 모두가 첫째로 정치지도자들이 제 할일을 하지 못한 결과였다."

"역시 할아버지 말씀을 들으니까 제가 기대한 대로 차츰 이해가 되네요. 좀더 자세하게 말씀해 주세요."

"어쭈, 네가 나를 소쿠리비행기 태우는구나. 다음의 말은 내 말이 아니고, 서울대학교 국제대학원 박태균 교수님이 <한국전쟁> 이라는 책에서 말씀하신 거다."

정전협정을 체결하면서도 해결하지 못한 또 하나의 문제는 해상의 군사분계선을 설정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국제법에서 영해는 12해리(22.224킬로미터)로 규정되어 있어 남과 북의 영해가 서로 겹칠 수밖에 없다. 가령 유엔군의 관할로 규정된 서해 5도는 북한까지의 거리가 10킬로미터도 되지 않는다. 따라서 서로 자기 영해로 규정할 경우 이 지역에서 불가피하게 충돌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 동해 역시 마찬가지다. 해안선 12해리를 설정할 경우, 서로 겹치는 영역이 발생한다.

유엔군사령부에서는 정전협정 조인 직후 해상의 군사분계선을 설정하여 북한에 통보하였다. 그러나 북한에서는 유엔군사령부에서 설정한 해상 군사분계선이 자의적이라면서 받아들이지 않았고, 1999년에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명의로 자기들 나름대로의 해상 군사분계선을 설정하였다. 결국 남과 북이 합의한 해상 군사분계선은 '없는' 것이다.

이로 인해 정전협정 후 동해안과 서해안에서는 수많은 사건들이 발생했다. 남과 북의 어부들이 해상 군사분계선을 넘었다는 혐의로 끌려가는 일이 다반사였다. 경우에 따라서는 수십 척의 어선들이 통째로 북한에 끌려가기도 했다. 아무리 남과 북의 정부가 경고를 해도 파도가 높거나 꽃게가 많이 잡히는 철에 뱃머리를 돌리는 것은 쉽지 않았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끌려갔다가 돌아온 어부들은 조사를 받았다. 북한에서 무슨 훈련을 받지 않았는가. 혹시 북한을 찬양하는 사람으로 변해서 돌아온 건 아닌가. … 1999년과 2002년에 있었던 서해교전은 결코 우연한 사건이 아니었다. 예견된 사건이었다. - 박태균 지음 <한국전쟁> 371~375쪽 발췌 인용

서해평화협력특별지대 방안

"네, 이제 확실히 이해가 되네요. 그 이후에 일어난 천안함사건이나 연평도 포격사건도 그 연장선상의 사건으로 보면 되겠네요."

"그럼, 그 일들은 저자가 책을 펴낸 이후의 일들이라 빠트렸을 것이다."

"그렇다면 노무현 대통령님께서 2007년 10월에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만나 이런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제안을 한 것을 할아버지가 좀 쉽게 설명해 주세요."

"요즘 이 문제가 정치권에서 '뜨거운 감자' 왈가왈부하는데, 이 할아버지의 생각으로는 노무현 대통령님의 제안은 나라와 겨레의 앞날, 곧 화해와 평화 통일의 시대를 여는 아주 획기적이요, 바른 제안이었다고 생각한다. 좀더 구체적이고 정확한 것은 그분의 말씀을 직접 들어 보아라."

한반도에서 어떤 전쟁도 반대하며 불가침의 의무를 확고히 준수하기로 뜻을 모았습니다. 저는 서해 해상의 평화 정착을 위해서 군사적 대결의 관점이 아니라, 경제협력의 관점으로서 이 서해 문제를 우리가 풀어 나가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그래서 서해에서 공동어로구역과 해상평화공원, 그리고 해주공단 개발과 이를 개성공단 · 인천항과 이렇게 연결하고, 한강 하구의 공동 이용을 묶어서 포괄적으로 대결 상태를 해소하고 평화를 구축해서 경제적 협력을 해 나가는, 이런 포괄적인 해결 방안으로서 서해평화협력특별지대 방안을 제의를 했습니다.

이에 대해서 김정일 위원장은 국방위원회 참모들과 상의한 다음에 우리 제안을 원칙적으로 수용하겠다는 의사를 밝힘에 따라 정상선언에 포함되게 됐습니다. - 2007년 10월 4일 남북정상회담 대표단 환영식 '대국민 보고' 중에서

"복잡한 정치적·군사적 문제를 경제적·평화적 대화로 한 방에 풀려는 큰 정치가의 한 단면을 보여주셨네요."

"글쎄다. 그건 너희 꽃게들의 생각이고 지금 우리 정치권과 언론계에서는 이를 두고 'NLL 포기다, 아니다' 라고 해석하는 그 논쟁이 뜨겁단다.

치졸했던 소년시절

한국전쟁 무렵의 천막교실 책걸상
 한국전쟁 무렵의 천막교실 책걸상
ⓒ NA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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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할아버지의 생각은 어떠세요?"

"내가 초등학교 입학할 때는 한창 한국전쟁이 진행 중일 때였다. 나는 당시 경북 구미초등학교를 다녔는데 학교의 교실들이 폭격으로 타버려 1, 2학년 학생들은 제대로 된 교실에서 공부를 하지 못하고, 초가지붕의 임시 교실에서 가마니를 깔고 공부를 하다가 3학년 때인가 처음으로 제대로 지은 교실에 책걸상에 앉아 공부했단다.

그때 책상은 하나를 두 학생이 공동으로 사용했단다. 그때 학생들 가운데는 그 책상 가운데 줄을 그어 홈을 판 뒤 서로 그 선을 넘으면 때리거나 선을 넘은 학용품을 자기 것으로 갖는 유치한 짓들을 했단다. 선생님 가운데 고약한 분은 수업시간 그런 학생들을 교단  앞으로 불러내 서로 뺨을 때리게 하는 악랄한 벌도 주곤 했다.

지금 그때를 돌이켜보면 그런 싸움을 한 학생들도, 고약한 벌을 준 선생님도 참 치졸한 짓으로 여겨진다. 지금 우리 정치권이나 언론계에서 이 NLL 문제로 싸움질하는데 그 가운데 대다수는 내 어릴 때 아이들이나 고약한 선생님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한 듯하다. 이런 유치한 수준의 정치인이나 언론인들을 바라보며 겨레의 화해와 통일을 기대하는 일은 구운 밤에서 싹이 나기를 기다리는 것과 다름이 없다는 생각이 든다."

"짝 짝 짝! 할아버지, 오늘 말씀 참 잘 들었습니다. 또 찾아뵐게요."

"내 말을 잘 들어줘서 고맙다. 나는 내 말을 열심히 들어주는 제자들을 무척 좋아했단다. 잘 가거라." 

"저도 선생님 말씀 잘 듣는 착한 제자가 될게요. 부디 건강하세요."


태그:#N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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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 은퇴 후 강원 산골에서 지내고 있다. 저서; 소설<허형식 장군><전쟁과 사랑> <용서>. 산문 <항일유적답사기><영웅 안중근>, <대한민국 대통령> 사진집<지울 수 없는 이미지><한국전쟁 Ⅱ><일제강점기><개화기와 대한제국><미군정3년사>, 어린이도서 <대한민국의 시작은 임시정부입니다><김구, 독립운동의 끝은 통일><청년 안중근>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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