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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오후에는 걷기운동을 한다. 그리고 혼자 걷는 것을 좋아한다. 혼자 걸어야 묵주기도에도 열중할 수 있고, 생각이나 상념에 집중할 수도 있다. 대개 왕복 2시간 가량 걷는데, 걸을 때마다 묵주가 '지팡이'라는 생각을 하곤 한다. 묵주기도 덕분에 2시간을 지루한 줄 모르고 너끈히 걸을 수 있다는 생각이다.

그러므로 오후 걷기운동 2시간은 내게 가장 행복한 시간이다. 건강문제와 관련한 소망, 하루 2시간씩 걷기운동을 하며 살 수 있는 내 처지에 대한 감사, 걷기운동을 하고 싶어도 하지 못하는 사람들에 대한 미안함, 세상의 갖가지 일들과 수많은 사람들을 떠올리며 하게 되는 기도…. 하느님의 은총임을 믿는다.

묵주 덕분에 만난 서울대교구 형제님

153배 제주도 강정마을 해군기지 건설공사장 정문 앞에서 153배를 했다. 지난해 2월 21일의 일이다. 그날 이후 다시 제주 강정마을을 가지 못하는 것이 마음 아프다.
▲ 153배 제주도 강정마을 해군기지 건설공사장 정문 앞에서 153배를 했다. 지난해 2월 21일의 일이다. 그날 이후 다시 제주 강정마을을 가지 못하는 것이 마음 아프다.
ⓒ 지요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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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아카시아 꽃향기가 흐드러지던 날 우리 고장 태안읍의 삭선리 석선천 길을 따라 걸었다. 남쪽 어디선가 발원하여 북쪽 가로림만으로 흘러가는 냇가 한쪽 길은 태안군 올레길의 일부 구간인 '솔향기길'이기도 하다. 그 길을 따라 가로림만 초입에 다다르면 생태공원이라 이름 붙인 아늑하고도 잘 꾸며진 쉼터에 몸을 놓을 수 있다.

그 쉼터에서 나는 초면인 교우 한 분을 만날 수 있었다. 내 또래쯤 되어 보이는 분인데, 부인과 함께 걷기운동을 하고 있었다. 그분은 내 손에 들린 묵주를 보고 먼저 내게 인사를 건넸다. 그도 묵주를 들고 있었다. 우리는 반갑게 인사를 나누며 통성명도 하고 명함도 교환했다.

그분은 서울의 한 본당에 적을 두고 있는 신자였다. 평신도사도직 지구연합회의 회장 직책을 맡고 있다고 했다. 그래서 바쁜 편이라고 했다. 신앙생활을 충실하게 하는 분임을 짐작할 수 있었다. 또 부인과 함께 걷기운동을 하면서 묵주를 손에 들고 있으니, 보기 좋은 모습이었다.

그분이 사업 내용을 명확히 말하지는 않았지만 사업 관계상 자주 태안에 내려온다고 했다. 태안에 땅도 많이 사놓은 눈치였다. 내가 부러워할 것까지는 없지만 현실적으로는 나보다 이런저런 복이 많은 분이었다. 

명함까지 교환하고 잠시 앉아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보니, 그에게서 등잔 밑이 어두운 현상도 접하게 됐다. 그는 '대한문미사'를 전혀 모르고 있었다. 지난 2010년 11월부터 이듬해 11월까지 꼬빡 일 년 동안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서 거행되었던 월요일 저녁의 '거리미사'는 물론이고 각지각처에서 여러 차례 봉헌된 '생명·평화미사'에 대해서도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서울대교구 평신도 사도직 지구연합회 회장 일까지 보고 있는 분이 지난해 7월부터 덕수궁 대한문 앞에서 월요일 저녁마다(지난 4월 8일부터는 매일) 거행되고 있는 정의구현사제단의 미사를 전혀 모르고 있다는 사실이 나는 믿어지지 않았다. 아무리 등잔 밑이 어둡다 한들 이럴 수가 있을까? 기가 막히는 심정이었다. 

이런 현상이 왜 생기는 걸까? 누구 탓을 해야 하나? 정의구현사제단의 '대한문미사'를 긍정하든 부정하든, 그것에 대한 정보는 있어야 할 것 아닌가! 나는 공연히 분노가 치밀기도 했다. 그게 그분만의 잘못은 아닐 터였다. 나는 교회를 향해 분노하지 않을 수 없었다.

군비 확충도 지혜이며 복음정신에서 나온다니...

강우일 주교 천주교 제주교구장이며 한국천주교 주교회의 의장인 강우일 주교는 제주해군기지 건설의 부당성을 명명백백하게 설파하며 여러 차례 강정마을에서 미사를 봉헌했다.
▲ 강우일 주교 천주교 제주교구장이며 한국천주교 주교회의 의장인 강우일 주교는 제주해군기지 건설의 부당성을 명명백백하게 설파하며 여러 차례 강정마을에서 미사를 봉헌했다.
ⓒ 천주교 제주교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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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간 정서교란을 겪으며 그와 좀 더 대화를 나누다 보니 우리는 어느새 제주도 강정에 가 있었다. 그는 제주도 해군기지 건설에 관한 정보는 소상히(?) 알고 있었다. 그는 제주 해군기지 건설을 반대하는 일부 성직자들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제주교구장 주교님과 제주교구 사제들, 그리고 문정현 신부를 비롯한 정의구현사제단 신부들이 '국익'을 생각해서 양보할 줄도 알아야 하는데, 너무 국익을 도외시하는 것 같다는 말도 했다. 그리고 자신의 그런 견해는 지구연합회뿐만 아니라 다수 신자들의 공통된 견해라는 단서도 덧붙였다.

나는 그에게 '국익'의 실체를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제주 해군기지는 미국에 의한, 미국을 위한 기지입니다. 미국이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우리 정부를 압박해서 만드는 것인데, 우리 땅과 바다를 내주고, 우리가 비용을 들여서, 우리 환경을 파괴하면서 만드는 미국을 위한 기지가 어떻게 우리 국익이 될 수 있습니까? 앞으로 유지비용도 엄청나게 들 텐데, 도대체 국익이 뭡니까?"

그러자 그는 여유 만만한 표정으로 말했다.

"미국이 지는 해라면 중국은 떠오르는 해인데, 날로 힘이 강해지는 중국에게 우리가 먹히지 않기 위해서는 제주 해군기지가 꼭 필요합니다. 북한보다도 중국을 막아내기 위해서 우리는 반드시 제주 해군기지를 건설해야 합니다."

그러며 그는 조선시대의 병자호란을 예로 들기도 했다.

"중국과 우리나라가 전쟁이라도 하게 된다는 말입니까? 만약 중국과 전쟁을 하게 된다면, 제주 해군기지가 있다고 해서 우리가 중국을 막아낼 수 있겠습니까? 전쟁이 그렇게 간단한 겁니까?"
"그래도 만반의 대비는 해야 합니다. 유비무환은 만고의 진리입니다. 그것이 평화를 보장할 수 있고요."

"군비 확충이 평화를 보장한다고요? 그게 만고의 진리라고요? 천주교 신자 맞습니까?"
"예, 맞아요. 나, 천주교 신잡니다. 그런데 그 말이 왜 나오죠?"
"복음 정신이라는 말 들어보셨습니까? 복음 정신의 뜻을 아십니까?"
"잘 알지요. 나도 복음 정신에 입각해서 이런 말을 하는 겁니다."
"군비 확충과 전쟁 준비가 복음 정신에서 나오는 겁니까?"
"대비는 지혜입니다. 지혜는 복음 정신에서 나오는 것이고…."

"그럼, 군비 확충 때문에 주변국과 갈등이 생기고 충돌을 빚어지는 것도, 급기야 전쟁이 일어나는 것도 지혜이고 복음 정신에서 나오는 것이겠네요?"
"군비 확충은 전쟁을 막을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그것 자체로 지혜입니다. 능력이 되니까 하는 것이고…."

"그렇다면, 제주 해군기지를 짓지 않으면 평화가 보장되지 않습니까?"
"강한 힘을 갖지 않는데서 유지되는 평화는 위험합니다." 
"그럼, 제주 해군기지가 없으면 중국과 전쟁을 하게 되고, 중국에게 나라를 빼앗기게 됩니까?"
"그런 상황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서 제주 해군기지는 꼭 필요한 거라니까요."
"그렇다면 평화를 보장하는 강한 힘이라는 게 꼭 군비 확충에만 있습니까?"
"강한 힘을 구성하는 것은 여러 가지지만, 그 중의 하나가 군비 확충이지요."

"군비 확충도 지혜이고 복음 정신에서 나오는 것이라면, 그것의 근거는 뭡니까?"
"성경에서도 그 근거를 볼 수 있지요. 이스라엘의 역사를 보면 무비유환의 사례들이 확연히 드러나지 않습니까? 힘을 기르고 대비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민족에게 침략을 당하고 나라를 잃었던 사례들을 잘 살펴보아야 합니다. 우리나라도 그런 역사적 경험들이 있고요."

"교회의 가르침을 기억하십니까? 교회는 무력이 평화를 보장하지 않는다는 가르침을 일관되게 유지하고 있습니다. 군비 확충이나 군비 경쟁은 하느님의 뜻을 거스르는 것이라는 교회의 가르침을 정면으로 부정하시는데, 그러고도 그것을 복음 정신이라고 강변할 수 있습니까?"
"신자로서 교회의 가르침을 존중해야 하지만, 교회의 가르침이 현실과 부합하지 못하는 면도 있다는 것을 헤아려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님께서 세상의 현실과 부합하시기 위해서 이 세상에 오셨습니까? 형제님은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시는 분이지만, 하느님도 믿고 물신도 믿는 분이십니다. 다시 말해 두 주인을 섬기는 분이십니다. 그게 온전한 신앙입니까? 그런 생각 안 해 보셨습니까?" 

이쯤에서 나는 그분과의 대화를 끝내기로 마음먹었다. 그가 또 무슨 말인가를 했지만 나는 몸을 돌려버렸다. 집사람의 퇴근 시간에 맞추어 인근 초등학교로 가려면 시간이 촉박했다. 차가 있는 곳까지 1시간을 더 걷고, 차를 가지고 가서 집사람을 퇴근시켜 주어야 하는 일정이었다.

교회는 어떤 길을 가고 있을까

노장들 서울에서 사시는 나보다 연장이신 두 형제님과 함께 지난해 2월 21일 제주 강정마을을 찾았다. 두 분은 그후에도 여러 번 제주를 갔고, 한 분은 시위 중 연행되어 벌금형을 받기도 했다.
▲ 노장들 서울에서 사시는 나보다 연장이신 두 형제님과 함께 지난해 2월 21일 제주 강정마을을 찾았다. 두 분은 그후에도 여러 번 제주를 갔고, 한 분은 시위 중 연행되어 벌금형을 받기도 했다.
ⓒ 지요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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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에 적은 그분과의 대화는 내가 일목요연하게 정리를 한 것이지만, 사실은 난분분한 설왕설래였다. 옥신각신하는 상황이었다. 힘이 들었다. 인내심을 잘 발휘해야 했다. 그분과의 대화를 끝내고 돌아서면서 입술을 깨물었다. 하늘을 보며 성호를 그었다.

그분이 한심하고 측은하게 느껴졌지만, 그분 역시 나를 한심하고 측은하게 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더욱 마음 무겁고 슬펐다. 그분과 같은 부류의 천주교 신자들을 '가톨릭 인터넷 굿뉴스' 등 인터넷 사이트에서 무수히 접해보았지만, 실제로 만나 설전을 해보기는 처음이었다. 그것도 초면인 서울교구 신자, 평신도지구연합회 고위 간부이신 분과.

사람은 누구나 나름의 지식을 가지고 살아간다. 다수 국민이 높은 교육수준을 지니고 있고, 정보화시대를 향유해간다. 제각기 일정한 자기 세계와 가치관을 확보하고 있다. 그래서 진정한 복음 정신이 설 자리는 더욱 비좁은 것인지도 모른다. 복음 정신이 쉽사리 차용되고 오도되고 왜곡되는 현상도 생겨난다.

그에게서 복음정신의 임의적 차용, 오도, 왜곡 등의 현상이 심각하게 노출되고 있었지만, 그는 그것을 전혀 자각하지 못하는 낌새였다. 오히려 그것을 큰 무기로 삼아 마구 휘두르는 차원이었다. 두 주인을 섬기면서도 그것을 전혀 자각하지 못하거나 오히려 합리화하는 강변은 참으로 난공불락의 경지와도 같았다.

복음 정신의 왜곡과 일탈을 오히려 지혜로 치환하고 강변하는 저런 오도는 이디에서 연유한 것일까? 우리 교회는 오늘 비수와도 같은 물음표들 앞에 직면해 있다. 그런 오도를 교회는 계속 방치할 것인가? 그런 오도에 교회는 아무런 책임도 없는 것일까? 어쩌면 교회부터 오도의 길에 잘못 들어선 탓은 아닐까? 세상의 현실과 부합하려는 자세, 신자들의 분열을 방지한다는 소극적이고 방임적인 태도 때문에 오히려 교회부터 오도의 길을 가고 있지는 않은지 교회는 심각하게 자신을 돌아보아야 한다.

세상을 하느님의 눈으로 보며 가시관을 쓰신 예수 그리스도님과 함께 하려는 신자들, 복음 정신의 진정성을 향해 나아가는 신자들이 교회의 기본이고 중심이며 보배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가톨릭뉴스 지금여기>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오마이뉴스> 독자들 중에는 천주교 신자도 많을 터이기에 이 글을 여기에도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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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태안 출생. 1982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중편「추상의 늪」이, <소설문학>지 신인상에 단편 「정려문」이 당선되어 문단에 나옴. 지금까지 120여 편의 중.단편소설을 발표했고, 주요 작품집으로 장편 『신화 잠들다』,『인간의 늪』,『회색정글』, 『검은 미로의 하얀 날개』(전3권), 『죄와 사랑』, 『향수』가 있고, 2012년 목적시집 『불씨』를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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