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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 남북정상회담 마지막날인 10월 4일 오후 노무현 전 대통령 내외가 평양 백화원 초대소에서 환송오찬후 김정일 전 국방위원장의 작별인사를 받고 있다.
 2007 남북정상회담 마지막날인 10월 4일 오후 노무현 전 대통령 내외가 평양 백화원 초대소에서 환송오찬후 김정일 전 국방위원장의 작별인사를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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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국정감사장에서 정문헌 새누리당 의원이 폭탄발언을 했다. ▲ '노 전 대통령과 김 위원장이 2007년 10월 3일 오후 3시 백화원초대소에서 단독회담을 했고', ▲ '회담 녹취록은 통전부가 비밀 합의사항이라며 우리측 비선라인과 공유'했으며, ▲ 노 전 대통령이 'NLL 때문에 골치 아프다. 미국이 땅따먹기 하려고 제멋대로 그은 선이니까 남측은 앞으로 NLL을 주장하지 않을 것이다'이라 말했다고 주장했다.

새누리당이 만들어낸 노무현의 NLL포기 발언

하지만 북한 통일전선부(이하 통전부)가 작성한 비밀 합의사항은 없었고, 비밀 합의를 한 두 정상의 단독회담은 없었다. 그런 비밀 합의를 한 회담과 그것을 통전부가 기록해서 우리측 비선라인에게 제공한 녹취록도 없었다. 녹취록에 노 전 대통령 미국이 땅따먹기하려고 그은 선이라고 말했다는 것도 허위사실이다.

정문헌 의원은 나중에 비밀 합의와 단독회담은 없었다고 정정하였다. 하지만 '땅따먹기 발언'과 'NLL 포기'에 대해서는 대선 때까지 줄기차게 선거용으로 악용했다. 2007년 정상회담에 배석했던 인사들이 정문헌 의원의 주장은 사실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새누리당의 선거 악용은 멈추지 않았다.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공개로 정문헌 의원을 비롯하여 새누리당이 지난 대선에서 줄기차게 주장했던 노무현의 NLL 포기발언은 사실무근으로 드러났다.

날조된 NLL 포기 발언 논란은 지난 대선 이슈의 한 가운데 있었다. 정문헌 의원의 허위사실을 유포하자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가 나서서 NLL 불씨를 이어갔다. 작년 10월 19일에 박근혜 후보는 "제가 서해 공동어로 문제에 대해 '북방한계선을 지킨다면 논의할 수 있다'고 하니까 북한에서 '정상회담의 경위와 내용도 모른다'고 비판했는데 도대체 2007년 정상회담에서 무슨 얘기가 오갔다는 건가"라며 NLL 논란에 뛰어들었다.

당시 박근혜 대선 후보가 말했다는 서해공동어로 문제는 9월 13일에 <동아일보>와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박 후보는 "기존의 남북 간 해상경계선만 존중된다면 10·4 남북정상회담에서 합의한 서해 공동어로수역 및 평화수역 설정방안 등도 북한과 논의해 볼 수 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서 북한이 박 후보에 대해 정상회담도 모른다고 비판한 것이다.

북한의 박근혜 후보에 대한 비판은 과도한 정치공세였다. 9월 13일 박근혜 후보의 전향적인 점이 있었다. 그러나 박근혜 후보도 북한의 정치공세를 계기로 NLL 논란에 불을 지펴버렸다.

박근혜 후보, NLL을 핵심 대선이슈로 끌어 올려

박정희 대통령이 추진한 7·4 남북공동성명에 대해 북한은 한국정부와 다른 일방적인 해석을 하였다. 미국의 우드로윌슨센터와 북한대학원대학교가 공동 발굴한 73년 루마니아 외교문서에는 북한의 이러한 주장이 잘 나타나 있다. 김동규 당시 북한 노동당 비서는 루마니아 독재자 차우세스쿠를 만나 7·4 남북공동성명으로 더 이상 주한미군이 주둔할 수 없게 되었다고 말했다.

7·4 공동성명에서 발표한 '자주의 원칙'이 주한미군철수를 의미한다는 것이 북한의 주장이다. 박정희 대통령의 특사인 이후락 당시 중앙정보부장이 김일성 수상을 만나서 주한미군철수를 주장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국민들은 아무도 없다. 당시 회담의 대화록을 공개하라고 주장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북한의 발언은 북한의 해석일 뿐이다. 선전과 내부교육과 협상을 위한 전략인 것이다. 북한이 박근혜 후보를 비판했던 것도 2007년 남북정상회담에서 무슨 이야기가 오가서 그런 것이 아니다. 북한의 상투적인 수법일 뿐이다.

정문헌의 의원이 발언으로 NLL 논란이 발생한 가운데 이명박 대통령이 10월 18일에 연평도를 방문하여 간접지원을 한다. 그러자 박근혜 후보는 기다렸다는 듯이 바로 다음날 NLL논란에 뛰어든 것이다. 이로서 작년 대통령 선거에서 NLL 문제는 핵심적인 안보이슈가 되었다.

작년 대선에서 NLL 논란은 2007년 남북정상회담 당시 국방장관이었고 대선에서는 새누리당 국방안보추진단장었던 현 김장수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 명확한 입장만 취하였어도 그렇게 크게 확산될 일은 아니었다. 김장수 실장은 남북 정상회담 이후인 2007년 11월 17일 국방부 국정감사에서 "정부가 추진하는 공동어로수역을 통해서 평화 수역화하는 것은 NLL을 철저히 지킨다는 뜻에서 가능한 것"이라면서 "(노무현) 대통령께서도 NLL은 새로운 해상경계선이 설정되기 이전까지는 확실하게 지켜나가겠다는 것을 확실히 하고"있다고 증언하였다.

김장수와 정문헌, '형님 먼저, 아우 먼저'

김장수 전 국방장관이 지난 2007년 10월 2일 평양 4·25 문화회관 광장에서 열린 공식환영식에서 김정일 전 국방위원장과 악수하고 있다.
 김장수 전 국방장관이 지난 2007년 10월 2일 평양 4·25 문화회관 광장에서 열린 공식환영식에서 김정일 전 국방위원장과 악수하고 있다.
ⓒ 사진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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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김장수 실장은 대선 국면에서 NLL 논란이 발생했을 때는 다른 발언을 하였다. 그는 <월간조선> 2012년 11월호와 인터뷰에서 "정문헌 의원이 주장하는 노 대통령의 NLL 발언이라는 것을 들어보면 노 대통령의 말투와 상당히 비슷하긴 해요"라고 말한다. 그가 2007년에 국방부 국정감사에서 했던 말과 완전히 다른 말이다.

정문헌 의원 역시 당시 그의 발언의 신빙성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대해서 "남북정상회담 한 달여 뒤 열린 남북 국방장관회담에서 김일철 인민무력부장이 김장수 국방장관에게 '노무현 대통령도 NLL에 문제가 있다고 했다'고 발언한 사실이 뒷받침한다"며 김장수 실장의 발언을 그의 주장의 신빙성을 증명하는 근거로 삼았다.

하지만 김장수 실장은 "김일철의 코멘트가 정상회담 때 노대통령이 김정일에게 한 말인지, 정상회담 한 달 뒤 노대통령이 민주평통자문회의에서 한 연설을 북한이 한국언론에서 캐치해 인용한 것인지는 지금도 알 수 없다"고 말했다.

대선을 앞두고 NLL 문제를 일으킨 정문헌 의원은 김장수 장관의 근거가 불명확한 발언을 자신의 허위주장을 뒷받침하는 근거로 삼고, 김장수 장관은 자신이 했던 국회발언과 어긋나게 정문헌 의원의 허위주장에 힘을 실어주었다. 정문헌 의원과 김장수 실장이 '형님, 먼저', '아우, 먼저' 하면서 상대방의 불확실한 말이 사실이나 되는 듯이 보증을 해주었던 것이다. 그러는 사이에 노 전 대통령의 NLL포기 발언은 사실이라도 되는 것처럼 대선의 핵심이슈로 커져버렸던 것이다.

김장수 국가안보실장에 대한 불편한 진실

김장수 실장은 대선을 앞두고 노무현 정부 시절 국방장관을 역임할 때 자신이 마치 NLL을 사수한 사람인 것처럼 각종 언론과 인터뷰하였다. 그러면서 자신이 NLL을 지켜서 참여정부를 크게 도와줬다는 식으로까지 말하기도 했다.

하지만 사실은 이와 다르다. 김경수 노무현재단 봉하사업본부장의 기록에 따르면 2007년 10월 12일 청와대에서 남북정상회담 이행 1차 회의가 열렸다. 그는 당시 청와대 연설기획비서관이었다. 이 회의에서 노무현 대통령은 김장수 국방장관에게 "(NLL은) 사실상 경계선 역할을 하고 있다", "내가 김정일 위원장한테 분명히 얘기했다. 그거(필자 주 : NLL) 지금 양보할 수가 없다. 지금 해결할 수가 없다. 분명히 얘기를 했다. 우리가 그걸 지금 테이블에 올려서 옥신각신해서 절대 해결 안 된다"고 분명히 말했다.

이러한 노무현 대통령의 발언에 대해서 김장수 장관은 "남북기본합의서에 명시된 바와 같이 여타의 군사적인 신뢰조치에 대한 협의와 병행해서 해상불가침경계선(NLL), 그건 논의할 수 있다는 건 국방장관 입장에서 항상 열어놓고 있다"고 응답했다. 김장수 장관의 이런 발언은 2012년 9월 박근혜 후보가 동아일보와 가진 인터뷰와 맥락을 같이하고 있다.

이러한 기록에 따르면 김장수 국가안보실장은 2007년에 이미 노무현 대통령으로부터 NLL을 양보할 수 없다는 원칙을 분명히 들은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12년 대선국면에서 정문헌 의원의 발언에 동조한 것이다.

남북대화 무산도, 대화록 불법공개도 손해날 짓 아니라는 생각

기대했던 남북당국회담은 시작도 못하고 좌초했다. 게다가 남북정상회담 대화록까지 공개되었다. 북한이 앞으로 국면주도를 위해 자신들에게 유리한 남북대화 내용만을 공개할 수 있는 소지를 제공해줘 버렸다. 박근혜 대통령의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도 흔들리고 있다.

한반도 신뢰프로세스의 개념은 모호했지만,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이 실패했기 때문에 성공을 바라는 국민이 많았다. 한반도 신뢰프로세스가 맞이한 첫 번째 시련은 올 봄 쏟아진 북한의 거친 말 폭탄이었다. 북한은 통일대전, 서울불바다, 워싱턴 불바다 같은 위협적인 언사를 퍼부었다.

남북당국회담이 무산된 뒷면에는 북한의 이런 위협적인 발언들이 자리 잡고 있었다. 국민들은 남북 당국회담이 무산되어도 이를 북한에 대한 혼내기로 받아들였다. 북한에 대한 불신이 최고점에 이르고 있기 때문에 정부의 남북회담전략 부실과 같은 것은 문제점으로 여겨지지 않는다.

그래서 남북당국회담의 무산에 대해서도 정부는 손해날 거 없다고 생각했을 수 있다. 오히려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지지율만 올라갔다. 북한이 쏟아낸 말 폭탄이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를 국내정치와 연결시켜버린 것이다. 남북관계 개선은 뒷전으로 밀려버렸다. 남북관계가 개선되지 않아도 북한에 대한 강경자세를 보이면 새누리당에 박수치는 사람들이 더 견고하게 결집되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정상회담 대화록이 불법적으로 공개되었다. 정상회담 대화록 공개는 향후 외교관계 파탄 내는 행위이다. 정상회담의 경우 최종 합의사항만 공개하는 것이 원칙이다. 정상회담의 구속력은 오로지 합의문에 근거하기 때문이다. 정상회담 대화록을 공개해서 정상 간의 대화 내용을 정략적으로 이용하는 국가라는 오명을 쓰게 될 경우 외교관계에 불신과 악영향을 초래한다.

대선에서 NLL문제를 정략적으로 활용하고 이제 다시 대화록까지 불법적으로 공개했다. 아직도 손해날 짓 아니라는 생각이 정부여당에 자리 잡고 있을까?


태그:#NLL 포기, #박근혜 NLL, #정문헌 NLL, #김장수 N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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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는 서로 어울리는 것입니다. 다름을 인정하고 서로 어울릴 때 우리는 평화를 발견합니다. 남과 북이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는 과정이 평화이고 통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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