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불법 선거운동 의혹을 받고 있는 국정원 직원 김아무개씨가 1월 4일 오후 피의자 신분으로 조사를 받기 위해 서울 수서경찰서에 들어서고 있다.
▲ 마이크 뿌리치는 국정원 직원 불법 선거운동 의혹을 받고 있는 국정원 직원 김아무개씨가 1월 4일 오후 피의자 신분으로 조사를 받기 위해 서울 수서경찰서에 들어서고 있다.
ⓒ 연합뉴스

관련사진보기


검사 출신인 한 변호사는 최근 검찰의 '국정원 선거·정치개입 의혹' 사건 수사를 이렇게 평가했다.

"현재 검찰의 처지에서 할 만큼 했다고 본다."

검찰이 국가정보원법뿐만 아니라 공직선거법까지 적용한 것에 호의적인 평가를 내린 것이다. 사실 '공직선거법 적용' 문제는 검찰수사 내내 내부갈등의 중심주제였다. 공직선거법을 적용할 경우 박근혜 대통령 당선의 정당성에 흠집이 날 수밖에 없어서 더욱 그랬다. 이에 검찰은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에게 공직선거법을 적용하되 그를 불구속 기소하는 절충안으로 내부갈등 사태를 마무리지었다.

국정원이 인터넷 여론조작을 통해 선거·정치에 개입해온 사실을 처음으로 확인한 점은 분명 검찰수사의 성과다. 검찰은 원세훈 전 원장을 향해 "그릇된 인식"이라는 좀 격한 단어까지 써가며 그가 "국정원의 합법적인 직무범위를 일탈"한 사실들을 고스란히 공소장에 담았다. 게다가 김용판 전 서울지방경찰청장이 당시 상당한 진전을 보이던 경찰수사 결과를 치밀하게 은폐한 사실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점도 성과다.

하지만 부실수사를 지적하는 목소리가 높다. 민주당의 한 관계자는 "검찰이 수사를 통해 독자적으로 밝혀낸 것은 없다"며 "검찰은 언론에서 밝힌 것조차 다 추적하지 못했다"고 꼬집었다.

검찰, 김용판 전 청장의 수사결과 은폐 확인한 데 그쳐

국정원 직원이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선후보 비방댓글을 달았다는 의혹을 수사중인 서울 수서경찰서 이광석 서장이 2012년 12월 17일 오전 서 강남구 대포동 수서경찰서 회의실에서 브리핑을 하고 있다.
 국정원 직원이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선후보 비방댓글을 달았다는 의혹을 수사중인 서울 수서경찰서 이광석 서장이 2012년 12월 17일 오전 서 강남구 대포동 수서경찰서 회의실에서 브리핑을 하고 있다.
ⓒ 권우성

관련사진보기


국정원 선거·정치개입 의혹 사건이 터진 것은 지난 2012년 12월 11일이었다. 대선 투표일을 8일 앞두고 터진 사건이라 여야의 긴장감은 최고조에 이르렀다. 하지만 투표일을 이틀 앞둔 12월 16일 오후 11시 경찰에서 "댓글을 단 흔적을 발견하지 못했다"고 발표함으로써 사실상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의 손을 들어주었다.

국정원 선거·정치개입 의혹 사건이 대선에 '어느 정도' 영향을 미쳤는지를 객관적으로 파악하기는 어렵다. 다만 ▲ 검색 키워드 축소(100여 개 → 4개) ▲ 허위 중간수사 발표문 작성·배포·지시 ▲ 증거분석 결과물 회신 거부 등 대선 직전 김용판 전 청장의 주도로 이루어진 '수사결과 은폐'가 대선에 영향을 미쳤음을 부인하기는 어렵다. 야당과 시민사회 등에서 "경찰이 제대로 수사했거나 정치적 중립을 지켰더라면 대선 결과는 달라졌을 수 있다"는 주장이 나오는 이유다.

검찰도 지난 14일 수사결과 발표에서 "당시 수사 의지가 높았던 수사팀에서 디지털 증거분석 결과를 가지고 수사를 진척시키면 국정원 개입 의혹이 더욱 가중되거나 실체가 일부 드러날 가능성이 있었다"고 지적했다. 그런 점에서 사건이 터진 지난 2012년 12월 11일부터 12월 18일까지 수사하던 경찰을 둘러싸고 막후에서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를  밝혀내는 것은 중요하다(관련기사 : '경찰 역사상 가장 중요한 사건', 정치경찰이 차버렸다).

경찰은 대선 투표일 전까지 진행한 디지털 증거분석을 통해 대선후보 등 정치인과 정당 지지·반대 글 및 찬반 클릭 활동에 사용된 40개의 ID·닉네임과 이를 통해 '오늘의 유머' 등 인터넷 커뮤니티에 접속한 기록 등을 찾아냈다. 특히 박근혜·문재인 대선후보를 지지하거나 비방하는 내용의 게시글·댓글을 올린 사실을 발견했다. 국정원 직원이 인터넷 여론을 조작해온 정황을 구체적으로 포착한 것이다.

이러한 사실을 보고받고 있던 김용판 당시 서울지방경찰청장은 지난 2012년 12월 16일 수사팀에 중간수사 결과가 담긴 보도자료를 작성하고 배포하라고 지시했다. 중간수사 결과는 "문재인·박근혜 후보에 대한 지지·비방 댓글이 발견되지 않았다"였다. 검찰은 "보도자료 및 디지털 증거분석 결과 보고서는 모두 김용판 전 청장에게 보고되어 승인받은 뒤 수서경찰서에 송부됐다"며 특히 "대통령 선거 수일 전 국정원 선거개입 의혹 사건의 중간수사 결과를 발표한다는 것은 선거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는 것이다"라고 지적했다.

하지만 검찰수사는 김용판 전 청장의 은폐 의혹을 사실로 확인한 데서 그쳤다. 경찰에서 국정원 직원의 인터넷 여론조작 가능성을 명백하게 확인했는데도 '왜' 그리고 '어떻게' 김 전 청장이 수사결과를 치밀하게 은폐했는지를 파고들지 않았다.

김무성 "댓글 발견하지 못해"... 수사팀도 모르는 사실을 어떻게?

국가정보원의 정치개입과 선거개입 의혹을 받고 있는 원세훈 전 국정원장이 4월 29일 오전 10시부터 30일 오전 12시 20분경까지 14시간여동안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검 특별수사팀(팀장 윤석열)에서 피고발인 신분으로 소환 조사를 받은 뒤 귀가하고 있다.
▲ 검찰조사 받고 나오는 원세훈 전 국정원장 국가정보원의 정치개입과 선거개입 의혹을 받고 있는 원세훈 전 국정원장이 4월 29일 오전 10시부터 30일 오전 12시 20분경까지 14시간여동안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검 특별수사팀(팀장 윤석열)에서 피고발인 신분으로 소환 조사를 받은 뒤 귀가하고 있다.
ⓒ 권우성

관련사진보기


김 전 청장이 수사결과를 은폐한 데에는 '새누리당-국정원-경찰'의 커넥션이 작용했음을 방증하는 정황들이 계속 나오고 있다. 먼저 경찰의 디지털 증거분석 결과나 12월 16일 중간수사 결과가 실시간으로 새누리당에 유출됐다는 의혹이다(관련기사 : "경찰, 국정원 정치개입 수사 새누리당에 실시간 유출").

이러한 의혹은 지난 2012년 12월 16일 김용판 당시 청장의 지시에 의해 중간수사 결과를 발표하기 직전 김무성 새누리당 선거대책본부 총괄선대본부장과 박선규 대변인의 발언을 근거로 한다. 김무성 본부장은 이날 기자들과 한 오찬간담회에서, 박선규 대변인은 대선후보의 3차 방송토론회가 끝난 직후인 오후 10시 40분께 각각 이렇게 말했다.

"국정원 여직원 PC 1차 조사에서 아무런 댓글을 발견하지 못했다는 정보가 들어오고 있다. 경찰은 눈치보지 말고 오늘 중으로 수사결과를 공식 발표해달라."(김무성 본부장)
(YTN의 <대선 3차 TV토론 어떻게 보셨습니까>라는 프로그램에 출연해)"제 생각에는 국가적인 국민 관심이 있었기 때문에 조사결과가 오늘 나올 것이다."(박선규 대변인)

그런데 공교롭게도 새누리당 선거대책본부 핵심인사들이 이렇게 발언한 후인 이날 오후 11시 중간수사 결과가 발표됐다. 새누리당의 압박 때문인지, 그동안 형성해온 유착관계 때문인지 단정할 수 없으나 '묘한 오비이락'이 이루어진 셈이다. 이런 사실을 들어 진선미 민주당 의원은 "사건을 담당했던 수서경찰서에서도 전혀 모르던 내용을 알았다는 것은 서울청의 디지털 증거분석 결과와 진행상황을 새누리당 선거본부와 긴밀하게 공유하지 않고는 발언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특히 김용판 전 청장이 권력 실세를 배경으로 서울지방경찰청장 자리에 올랐다는 의혹이 불거지면서 경찰(김용판)-새누리당 유착 의혹은 더욱 커지고 있다(관련기사 : "작년 서울경찰청장 발표 직전 김용판으로 바꿔").

18일자 <서울신문>에 따르면, 지난해 서울지방경찰청장에는 B 치안감이 내정됐는데 인사를 발표하기 직전 김용판 전 청장(당시 경찰청 보안국장)으로 바뀌었다. 여기에 권력실세인 A씨가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것이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김 전 청장은 자신의 청장 발탁 인사를 수사결과 은폐로 보은했다는 지적을 피할 수 없다.

새누리당-국정원의 양동작전으로 한밤중 중간수사 결과 발표?   

지난해 경찰이 국정원 여직원 댓글 사건을 수사할 당시 사건을 맡은 수서경찰서에 부당하게 개입해 수사를 축소시킨 의혹을 받고 있는 김용판 전 서울경찰청장이 조사를 받고 5월 22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초동 서울중앙지방검찰청 밖으로 나서고 있다.
▲ 김용판 '질문은 사양합니다' 지난해 경찰이 국정원 여직원 댓글 사건을 수사할 당시 사건을 맡은 수서경찰서에 부당하게 개입해 수사를 축소시킨 의혹을 받고 있는 김용판 전 서울경찰청장이 조사를 받고 5월 22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초동 서울중앙지방검찰청 밖으로 나서고 있다.
ⓒ 연합뉴스

관련사진보기


또한 새누리당-국정원, 국정원-경찰의 유착 의혹도 불거진 상태다. 새누리당-국정원 유착 의혹에는 당시 권영세 새누리당 선거대책본부 종합상황실장과 박원동 국정원 국익정보국장이 등장한다. 박범계 민주당 의원은 지난 17일 "지난해 12월 16일 김용판 전 청장을 중심으로 권영세 종합상황실장(현 주중대사)과 박원동 국익정보국장이 여러 차레 통화했다는 제보가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권영세 대사는 "사실이 아니다"라고 부인했다.

그런데 국회 정보위원회의 한 관계자는 "박원동 전 국장과 김용판 전 총장이 연결됐을 가능성은 있다"며 "두 사람은 국정원에서 같이 근무한 적이 있고, 영남대 선후배 사이다"라고 말했다. 특히 이 관계자는 "박원동 전 국장은 국정원 내 국내정치공작 계보를 잇는 인물이다"라고 귀뜸했다.

이러한 관계는 차문희 전 국정원 2차장과 박원동 전 국장이 김용판 전 청장과 직거래했다는 의혹과 무관하지 않다. 신경민 민주통합당 의원이 지난 10일 제기한 의혹 등에 따르면, 지난 2012년 12월 11일 국정원 선거·정치개입 의혹 사건이 터지자 국정원 2차장 산하 신아무개 국익전략실장과 장아무개 단장이 경찰과의 업무협조에 나섰다. 하지만 업무협조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자 박원동 당시 국장이 나서서 김용판 청장과 직거래했다.

하지만 문제의 그날(2012년 12월 16일) 차문희 2차장이 나섰다. 대선후보 3차 방송토론회에서 박근혜 후보가 문재인 대선후보에 밀렸다는 평가가 나왔기 때문이다. 이미 2차 토론회에서도 이정희 통합진보당 대선후보의 공격으로 밀린 터였다. 신경민 의원은 차문희 차장이 이렇게 말했다고 주장했다. 

"큰일 났다. 박 후보가 잘못해서 토론이 엉망진창됐다. 이 일을 어떻게 해야 하느냐. 조간을 판갈이해야 한다."

지난 12월 16일 새누리당 박근혜 대선후보와 민주통합당 문재인 대선후보가 여의도 KBS에서 열린 마지막 TV 토론회에 앞서 악수를 하고 있다.
 지난 12월 16일 새누리당 박근혜 대선후보와 민주통합당 문재인 대선후보가 여의도 KBS에서 열린 마지막 TV 토론회에 앞서 악수를 하고 있다.
ⓒ 사진공동취재단

관련사진보기


심각한 위기감에 휩싸인 차문희 2차장은 김용판 청장에게 전화했고, 그날 오후 11시 "댓글 흔적을 발견하지 못했다"는 경찰의 중간수사 결과가 발표됐다는 것이다. 새누리당과 국정원의 양동작전으로 중간수사 결과 발표가 이루어지면서 새누리당이 대선의 최대 위기로부터 벗어난 모양새다.

하지만 이진한 서울중앙지검 2차장은 경찰수사가 진행되는 동안 김용판 전 청장과 새누리당·청와대 인사가 통화했는지 여부와 관련해 "김용판 전 청장이 정치인들과 직접 통화한 것은 확인된 바 없다"고 일축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향후 재판 과정에서 이러한 유착 의혹이 확대되거나 사실로 확인될 경우 이는 박근혜 대통령에게 상당한 정치적 부담이 될 것으로 보인다. 공직선거법 적용을 위안삼고 있는 검찰에게도 마찬가지다.

'십알단'과 국정원, 그리고 트위터

검찰의 수사발표문을 보면 '외부 조력자'로 표현된 이아무개씨가 나온다. 이씨는 국정원 직원 김아무개씨의 인터넷 여론조작 활동을 도운 인물이다. 특히 지난 2004년 17대 총선에 출마했던 현 새누리당 현역 의원의 선거운동원으로 활동한 사실이 드러나 눈길을 끌었다. 그는 이번 사건에서 기소유예됐다.

하지만 검찰은 이씨와 같은 '외부 조력자'(민간인)의 실체를 제대로 밝혀내지 못했다. 가령 김씨처럼 국정원 심리전단(심리정보국) 사이버팀 요원 1명당 1명 이상의 외부 조력자를 알바로 고용했다면 국정원 요원 70여명과 그들의 알바를 합쳐 140명 이상이 인터넷 여론조작 활동에 참여했다는 단순계산이 나온다. 실제 알바를 고용했다면 이보다 규모가 훨씬 클 수도 있다.

특히 윤정훈 목사가 이끄는 '십알단'이나 보수성향 인터넷 커뮤니티인 '일간베스트저장소'(일베) 등이 국정원과 연결돼 있다는 의혹도 해소되어야 할 부분이다. 실제로 지난 대선 당시 새누리당 SNS미디어본부장을 맡았던 윤정훈 목사는 "나를 지원하는 분이 국정원과 연결돼 있다"고 말해 그런 유착 의혹을 키웠다.

게다가 국정원과 연관된 핵심계정 10개와 윤 목사의 트위터 계정들 사이에 서로 리트윗(트위터에서 글을 재전송하는 행위)한 정황이 발견되기도 했다. 국정원 심리전단 사이버팀 요원들이 날마다 하달받은 '주요 이슈와 대응 논지'를 십알단도 공유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또한 이진한 서울중앙지검 2차장은 지난 14일 수사결과를 발표하는 자리에서 "국정원 직원이 사용하는 트위터 계정에 정치관련 글 320여 개가 발견돼 최종확인하고 있다"며 "트위터는 서버가 해외에 있어서 수사 공조를 요청했다"고 말했다.

이날 검찰이 발표한 수사결과는 국정원 심리전단(심리정보국) 사이버팀 소속 요원들이 '오늘의 유머'(오유) 등 인터넷 커뮤니티와 네이버·다음 등 포털사이트에 게시글·댓글을 올리거나 찬성·반대 클릭활동을 벌인 것에 한정됐다. 그런 가운데 이진한 2차장의 얘기는 국정원이 트위터 등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에서도 여론조작 활동을 벌였을 가능성이 있음을 보여준다.

그런데 검찰은 지난 14일 수사결과 공식 발표가 끝난 뒤 일문일답 과정에서 "국정원 직원이 사용하는 트위터 계정에 정치관련 글 320여개가 발견됐다"고 밝혔지만 "최종확인중"이라는 단서를 달아 이러한 내용을 수사발표문에는 포함시키지 않았다.




태그:#국정원 대선개입 의혹, #원세훈, #김용판, #차문희, #박원동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1970년 전남 강진 출생. 조대부고-고려대 국문과. 월간 <사회평론 길>과 <말>거쳐 현재 <오마이뉴스> 기자. 한국인터넷기자상과 한국기자협회 이달의 기자상(2회) 수상. 저서 : <검사와 스폰서><시민을 고소하는 나라><한 조각의 진실><표창원, 보수의 품격><대한민국 진보 어디로 가는가><국세청은 정의로운가><나의 MB 재산 답사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