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상반기, 각 방송사의 주중 드라마는 '일드(일본 드라마) 리메이크작의 강세'로 요약할 수 있다. 상반기 최고의 화제작이라고 평가할 수 있는 SBS <그 겨울, 바람이 분다>는 2002년 방영된 일본드라마 <사랑 따윈 필요없어, 여름>을 원작으로 하며, 최근 종영한 KBS 2TV <직장의 신> 역시 2007년 방영된 일본 드라마 <만능사원 오오마에>를 리메이크한 작품이다. 주목할 만한 점은 <그 겨울, 바람이 분다>와 <직장의 신>은 대중성과 작품성을 모두 갖춘 웰메이드 드라마로 평가받았다는 것이다.

이 때문일까. 최근에는 SBS와 KBS에 이어 MBC까지 '일드' 리메이크 경쟁에 뛰어드는 모양새다. 지난 13일 첫 방송을 시작한 <여왕의 교실>은 동명의 일본 드라마를 원작으로 하며, 박보영이 출연할 예정인 <1리터의 눈물> 역시 올 하반기 MBC 편성이 유력시되는 일드 리메이크 작품 중 하나다.

이쯤 되면, '안방극장을 점령했다'는 표현도 과하지 않다. 대체 왜 우리나라 드라마 제작사는 일본 드라마에 목을 매는 것일까. '일드' 리메이크가 안방극장을 점령한 몇 가지 이유를 살펴보자.

 일본 드라마를 원작으로 한 SBS <그 겨울 바람이 분다>와 MBC <교실의 여왕>.

일본 드라마를 원작으로 한 SBS <그 겨울 바람이 분다>와 MBC <교실의 여왕>. ⓒ SBS, MBC


출생의 비밀은 이제 그만…소재의 참신성 

일드 리메이크 작품이 국내 시청자에게 큰 사랑을 받는 것은 무엇보다 소재가 참신하기 때문이다. 누리집에 떠도는 우스갯소리를 하나 소개하자면 "미드(미국 드라마)는 형사가 사건을 파헤치고, 일드(일본 드라마)는 형사가 교훈을 주며, 한드(한국 드라마)는 형사가 연애한다"고 한다. 우리나라는 어떤 소재로 드라마를 만들더라도 결국은 연애 이야기로 흐른다는 자조섞인 농담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재벌2세의 사랑 이야기나 기억 상실증, 불치병과 출생의 비밀에 시청자는 염증을 느낀다.   

반면 일본 드라마는 메시지가 뚜렷한 대신 폭넓은 소재를 자랑한다. <그 겨울, 바람이 분다> <직장의 신> <여왕의 교실>의 원작만 비교해 보더라도 세 드라마가 모두 각기 다른 이야기 구조로 되어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비정규직 문제, 교육 문제 등 일본과 우리나라의 공통된 정서가 일본 드라마 리메이크를 부추기고 있다.

비정규직 문제, 교육 문제 등 일본과 우리나라의 공통된 정서가 일본 드라마 리메이크를 부추기고 있다. ⓒ KBS, MBC


비정규직, 교육 문제 등 공통된 정서 많아

물론 소재만 참신하다고 해서 인기를 끌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국내 드라마 팬만을 놓고 보자면 일드 팬보다 미드 팬이 더 많으며, 영국 드라마를 즐겨보는 마니아 층도 상당수 존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미드'나 '영드'를 리메이크한 작품은 찾아보기 힘들다. 심지어 우리나라와 가까운 중국 드라마조차 판권을 구입해 재해석하는 경우는 드물다. 그만큼 국내 리메이크 시장은 사실상 일본 드라마가 독점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이유는 무엇보다 우리나라 드라마 제작 환경과 가장 유사한 시스템을 갖춘 곳이 바로 일본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미드처럼 시즌제 드라마를 이끌 작가와 제작진, 방송 환경이 갖춰지지 않았고, 그렇다고 러닝타임이 상당히 긴 영국 드라마를 미니시리즈로 제작하기에도 한계가 있다. 사전제작이 안 되고 생방송에 버금가는 촬영 일정을 소화해야 하는 만큼, 제작 환경이 비슷한 일본 드라마에 눈독을 들일 수밖에 없는 구조이다.

게다가 일본은 우리나라와 경제, 문화, 교육 등에서 상당히 비슷한 정서가 존재하는 만큼 스토리 자체에 국내 시청자의 공감대를 살 수 있는 여지가 많이 녹아 있다. <직장의 신>이 다룬 비정규직 문제나 <여왕의 교실>이 그려낼 공교육의 현실 등은 이미 십수 년 전에 일본이 맞닥뜨린 사회적 문제로, 이는 현재 우리에게도 매우 친숙한 '아젠다'이다. 소재는 참신하되, 그 안에서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와 정서는 익숙하다는 점이야 말로 일본 드라마가 리메이크 작품으로 선호되는 진짜 이유이다.       

이 밖에도 일드 리메이크가 하나의 흐름으로 이어지는 데에는 일본 드라마의 판권을 사들여 작품을 만든 뒤, 그 작품을 다시 일본으로 역수출하고자 하는 제작사의 '노림수', 그리고 검증된 스토리를 드라마로 만들어 시청률을 담보하려는 방송사의 현실적인 이유 등이 있을 수 있겠다.  

하지만 일본 드라마의 리메이크 작품이 성공을 거두면 거둘수록 우리나라 드라마 작가의 도전 정신과 창작력은 꺾일 수밖에 없다. 때문에 장기적인 관점에서 보자면 우리만의 독창적인 콘텐츠를 만드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부디 일본 드라마의 리메이크 성공을 타산지석 삼아 국민의 정서를 대변하는 다양하고 재미있는 여러 드라마가 제작될 수 있기를 바란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개인 블로그(saintpcw.tistory.com), 미디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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