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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하도 용오름길. 섬의 능선을 따라 난 숲길을 따라 뉘엿뉘엿 걸을 수 있는 길이다.
 고하도 용오름길. 섬의 능선을 따라 난 숲길을 따라 뉘엿뉘엿 걸을 수 있는 길이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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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그랬다. 숲길이 호젓했다. 둘이서 또는 셋이서 뉘엿뉘엿 걷기 좋았다. 유달산과 다도해 풍광도 멋졌다. 이순신 장군의 흔적도 있었다. 이야기 거리도 넉넉했다. 목포 고하도의 용오름 둘레숲길 얘기다.

이 길에 대한 얘기를 처음 들은 게 몇 달 전. 김향원(51) 목포시 문화관광해설사를 통해서다. 그녀는 틈만 나면 고하도 자랑을 했다. 여기에 머문 이순신 장군 얘기도 들려줬다. 그러던 중 고하도에 갈 기회가 주어졌다. 5월 28일이었다. 운 좋게도 안내자로 그녀가 나왔다. 횡재한 느낌이었다.

고하도에 있는 서산초등학교 충무분교. '나홀로 학생'인 4학년 김미소 양이 최철환 교사와 함께 수업을 하고 있다.
 고하도에 있는 서산초등학교 충무분교. '나홀로 학생'인 4학년 김미소 양이 최철환 교사와 함께 수업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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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산초등학교 충무분교 전경. 김미소 양 혼자서 학교에 다니고 있는 '나홀로 학교'다.
 서산초등학교 충무분교 전경. 김미소 양 혼자서 학교에 다니고 있는 '나홀로 학교'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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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하도는 목포 앞바다에 떠있는 섬이다. 하지만 배를 타지 않고도 들어갈 수 있다. 지난해 6월 개통된 목포대교 덕이다. 섬의 초입에 있는 서산초등학교 충무분교에 갔다. 마가렛 꽃과 어우러진 독서하는 소녀상이 보인다. 조그마한 이순신 장군상도 눈길을 끈다.

재학생은 딱 1명. 4학년 김미소(10)양 뿐인 '나홀로 학교'다. 1대1 개인학습이 가능한 건 좋지만 공동체 놀이를 할 수 없다는 게 최철환(41) 교사의 안타까움이었다. 섬에 입학을 앞둔 어린이가 없다는 말도 가슴 한켠을 아리게 한다.

충무분교에서 나와 용오름 둘레숲길의 시작점에 섰다. 한 할머니가 용오름 둘레숲길 안내판 아래에 앉아있다. 목포시내버스를 기다리고 있는 장옥심(82) 할머니다.

"옛날에 비하믄 시상 좋아졌어. 여그까지 뻐스도 들오고."
"무슨 일로 목포 나가세요?"
"목욕도 허고 병원에도 갈라고."

고하도 풍경. 장옥심 할머니가 목포행 시내버스를 기다리고 있다.
 고하도 풍경. 장옥심 할머니가 목포행 시내버스를 기다리고 있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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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이 시내버스가 들어와 할머니를 태우고 목포대교 쪽으로 사라진다. 고하도는 대반동에서 바로 앞에 보이는 섬이다. 목포의 남쪽 해안을 감싸고 있다. 지리적 특성상 목포의 천연 방파제 역할을 해왔다. 서남해에서 뭍으로 연결되는 관문이기도 하다.

높은 산(유달산) 밑에 있는 섬이라고 고하도(高下島)라 이름 붙었다. 보화도(寶和島), 비하도(悲霞島), 칼섬으로도 불렸다. 섬의 형상이 바다로 질주하는 용을 닮아 '용섬'이라고도 한다.

하여, 용오름 둘레숲길은 용의 등을 따라 이어진다.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유적지를 돌아보고 용의 등으로 난 숲길을 따라 탕건바위, 말바우, 뫼막개를 거쳐 용머리까지 갔다 오는 길이다. 왕복 6㎞ 가량 된다.

고하도 해송숲. 아름드리 해송이 늘어서 있어 아름답다.
 고하도 해송숲. 아름드리 해송이 늘어서 있어 아름답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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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하도 모충각 풍경.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자취를 새겨놓은 비석이 세워져 있는 곳이다.
 고하도 모충각 풍경.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자취를 새겨놓은 비석이 세워져 있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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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찾아간 곳은 충무공 이순신 장군 유적지. 아름드리 솔숲에 들어앉아 있다. 명량대첩을 승리로 이끈 이순신 장군이 1597년 10월 29일부터 여기에 머물며 군량미를 확보하고 전열을 가다듬었던 곳이다. 이듬해 2월 17일 고금도로 옮기기 전까지 107일 동안 머물렀다. 유적지 내 모충각에 기념비가 있다.

"이순신 장군이 머문 지 175년이 지난 1772년에 처음 세웠는데요. 일제강점기 때 야산에 버려졌던 것을 광복 이후 여기에 다시 세웠습니다. 저기, 비석에 난 흔적들 보이죠? 일제강점기 일본인들이 쏜 총탄자국이라고 해요."

김 해설사의 얘기다. 일본인들이 이충무공의 기념비를 버리고 총질까지 했다는 것이다. 일본인들의 심보에 울컥 치밀어 오르는 게 있다.

고하도 이충무공 유적지 내 모충각에 세워져 있는 기념비. 여기저기에 총탄의 흔적이 보인다.
 고하도 이충무공 유적지 내 모충각에 세워져 있는 기념비. 여기저기에 총탄의 흔적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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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라잡이를 한 김향원 목포시 문화관광해설가가 용오름길을 걷고 있다. 뒤쪽으로 보이는 풍경이 고하도의 뒷도랑마을이다.
 길라잡이를 한 김향원 목포시 문화관광해설가가 용오름길을 걷고 있다. 뒤쪽으로 보이는 풍경이 고하도의 뒷도랑마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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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하도에는 당시 진영과 성터도 남아있어요. 진영이 있었던 곳은 불당골인데, 큰산 아래에 있어요. 칼바위에서 말바우 가는 길에 성터의 흔적도 남아있고요. 자연 그대로의 큰 바위를 이용해서 쌓은 석성입니다. 칼바위 아래 석축도 옛 진성의 흔적이고요."

김 해설사는 이야기를 하면서 자신의 휴대전화기에 저장해 놓은 사진을 하나씩 보여주었다. 고하도 최초의 교회로 사용됐다는 바위굴도 보여주며 굴의 길이가 25m, 너비와 높이가 각 3m나 된다고 했다.

고하도는 또 육지면(陸地棉)이 처음 재배된 곳이다. 1904년 목포 주재 일본영사에 의해서였다. 육지면은 고려말 문익점이 가져온 재래면과 달리 남미가 원산지다. 유적지에서 가까운 곳에 '조선육지면 발상지비'가 서있는 이유다.

고하도에 있는 조선 육지면 발상지비. 재래면과 다른 육지면이 처음 재배된 곳을 알리는 기념비다.
 고하도에 있는 조선 육지면 발상지비. 재래면과 다른 육지면이 처음 재배된 곳을 알리는 기념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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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오름길에서 만나는 말바우. 바위의 모양이 말발굽을 닮아 그렇게 이름 붙었다.
 용오름길에서 만나는 말바우. 바위의 모양이 말발굽을 닮아 그렇게 이름 붙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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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 장군 유적지에서 나와 다시 뒷도랑 잔등에 섰다. 처음에 장 할머니를 만났던 곳이다. 여기서부터 본격적인 용오름 둘레숲길이 시작된다. 감자, 고추 심어진 밭이랑을 지나 숲길로 접어든다. 오르막인가 싶더니 금세 평탄해진다. 발바닥으로 전해지는 느낌이 푹신하다. 용의 등에 올라섰다.

솔숲에 찔레꽃과 아까시꽃이 많이 피었다. 간간이 때죽나무꽃도 보인다. 길섶에는 자란, 남산제비꽃, 둥굴레, 우산나물, 마삭줄 지천이다. 걸으면서 나무와 풀꽃에 눈 맞추는 재미가 쏠쏠하다.

숲길 밖으로 눈을 돌리니 목포항이다. 유달산을 배경으로 크고 작은 배들이 물살을 가르며 오간다. 다른 쪽으로는 다도해 풍광이 펼쳐진다. 앞에서는 목포대교가 위용을 뽐내고 있다. 내내 걷히지 않는 안개도 몽환적인 풍경을 선사한다. 어디선가 들려오는 뻐꾸기 소리도 귓전을 즐겁게 한다. 바람결도 살랑살랑 마음속까지 청량하다.

고하도 용오름길에서 본 풍경. 유달산과 목포항을 배경으로 크고 작은 배들이 오가고 있다.
 고하도 용오름길에서 본 풍경. 유달산과 목포항을 배경으로 크고 작은 배들이 오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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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오름길에서 본 고하도 용머리와 목포대교. 섬의 생김새가 바다로 나아가는 용의 형상을 하고 있다.
 용오름길에서 본 고하도 용머리와 목포대교. 섬의 생김새가 바다로 나아가는 용의 형상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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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은 탕건바위에서 기우제를 지내고 올라와서 불을 지폈다는 큰산을 거쳐 칼바위와 말바우로 이어진다. 바위의 생김새가 영락없는 칼이고 말발굽이다. 칼바위를 지나면서 드러나는 고하도 풍광이 흡사 용틀임을 준비하는 한 마리의 용 같다.

일제강점기 소년원이었던 감화원 터에 들어선 장애인복지시설 공생재활원도 왼편 바닷가에 있다. 용오름 둘레숲길 끝에서 만나는 용머리는 용이 날개를 펴고 승천하는 전설을 간직한 곳이다. 목포대교 바로 아래까지 뻗어있다.

갯바위에서 낚싯대를 드리우고 있는 강태공도 풍경이 된다. 대교 밑을 오가는 배들도 영화의 한 장면 같다. 장자도, 달리도 등 다도해도 매력적이다. 시뻘건 해가 바닷물에 몸을 담그며 자지러지는 풍광도 황홀하겠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다는데, 고하도 용오름 둘레숲길은 그렇지 않았다. 김 해설사의 자랑이 결코 헛된 말이 아니었다. 용의 등을 타고 걸으면서 그 기운까지 받은 것 같다. 몸도 마음도 가뿐하다. 야간 경관을 위한 전봇대와 조명시설이 많고 안내판과 화장실 등 편의시설이 없다는 게 옥의 티일 뿐.

목포대교의 위용. 고하도 용오름길에서 만나는 풍경 가운데 하나다. 대교의 끝자락에 보이는 곳이 목포 북항이다.
 목포대교의 위용. 고하도 용오름길에서 만나는 풍경 가운데 하나다. 대교의 끝자락에 보이는 곳이 목포 북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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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하도의 조명시설. 밤에 불을 밝히기 위해 여기저기 조명시설이 돼 있다. 용오름길에서 만나는 옥의 티다.
 고하도의 조명시설. 밤에 불을 밝히기 위해 여기저기 조명시설이 돼 있다. 용오름길에서 만나는 옥의 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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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 찾아가는 길
고하도는 목포시 달동에 속한다. 서해안고속국도 목포요금소를 지나 고속국도와 연결되는 자동차전용도로를 타고 북항까지 가서 목포대교를 건너면 된다.



태그:#고하도, #용오름길, #용오름 둘레숲길, #조선육지면 발상지비, #서산초교 충무분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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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찰이 일상이고, 일상이 해찰인 삶을 살고 있습니다. 전남도청에서 홍보 업무를 맡고 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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