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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럴 거면 우리 결혼하지 말자'

결혼식 당일 새벽이었다. 지난 밤, 고향 친구들과 술 한 잔 하고 오겠다던 예비 신랑에게선 연락이 없었다. 전화도 받지 않았다. 결혼식이 끝나자마자 떠날 신혼여행 가방도 싸지 않은 상태였다.

처음엔 이해했다. '동창 결혼이라고 미리 올라온 친구들한테 대접도 하고 방도 잡아주고 와야겠지', 마음을 좋게 가지려 했다. 하지만 나의 인내심은 그리 크지 않았다. 자정이 지나 새벽 2시가 넘어가면서부터는 짜증이 몰려왔다. '이 남자가 결혼을 하겠다는 거야 말겠다는 거야' '가방도 안 싸고 어떻게 신혼여행을 가겠다는 말이야' '남자들은 결혼 전에 이상한 데 간다는 데 혹시 그런 거 아냐?'

예비 신랑에게 보낸 최후의 메시지

혼자 텅 빈 신혼집에 앉아 별별 상상을 하고 있는 내가 한심해 예비 신랑에게 결혼을 못 하겠다는 최후의 문자메시지를 보내고야 말았다. 그로부터도 2시간여가 지나서야 집에 온 예비 신랑은 오자마자 싹싹 빌었다.

"정말 미안해. 몇 년 만에 만난 친구들이 잡는데 뿌리치질 못했어. 다시는 안 그럴게."

울상으로 이야기하는 그를 보니 나도 마음이 약해졌다. 결혼 취소 발언은 물렸다. 분위기가 좀 누그러들자 그가 한마디 했다.

"우리 아무리 화가 나도 끝까지 가는 얘기는 하지 말자. 앞으로는."

밤새 전전긍긍하느라 기운이 없어 입은 다물었지만 내 속대답은 이랬다.

'너만 잘 하세요. 그러면 그럴 일 없을 테니까.'

몇 시간 뒤 결혼식은 예정대로 거행됐고, 그로부터 6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다. 아직도 우리 부부는 "나는 빨래를 했는데 당신은 왜 청소를 안 해?" "주말에 약속을 잡으면 애는 나 혼자서 보란 말이야?" 같은 소소한 거리들로 티격태격 살고 있다. 그래도 남편의 바람처럼 그동안 누구의 입에서도 "끝내자"는 말이 나오지는 않았다.

물론 남편이 잘해서만은 아니었다. 겪고 보니 결혼생활이란 누구 한 명만 잘한다고 유지되는 관계가 아니었다. 부부 사이에 끈끈한 파트너십이 필요했다. 두 사람이 새롭게 편입된 시월드, 처월드와의 원만한 관계도 요구됐다. 아이가 태어나자 늘어난 관계만큼 양육과 관련된 문제들이 불쑥불쑥 튀어나올 태세를 갖췄다. 견고해 보이는 결혼관계도에는 조금만 틈이 보이면 언제든 삐끗할 수 있는 장애물들이 곳곳에 숨어 있었다.

이제 부부 4쌍 중 1쌍 이상이 이혼에 이른다는 통계가 별로 놀랍게 다가오지 않았다. 주례의 단골 멘트인 "검은 머리 파뿌리 될 때까지"는 옛말이 된 지 오래다. 이혼을 권하진 않아도, 이혼을 막고 싶진 않은 시대다. 그런데 주위를 둘러보면 넘쳐나는 결혼 관련 지침서에 비해 '이혼은 이렇게 준비하라'고 일러주는 책은 좀체 찾기 힘들다. 대부분의 이혼 관련 도서가 도덕선생님처럼 '이혼을 하라, 하지 말라'고 타이르는 데 지면 대부분을 할애한다. 아니면 한자가 넘쳐나는 법률용어만을 나열하고 있다. 이렇든 저렇든 실제 이혼을 고민하는 이들에겐 별 도움이 안 될 뿐이다.

제대로 이혼하는 방법 알려주는 책

책은 다양한 사례로 이혼에 대한 궁금증을 풀어 낸다.
▲ <이도남의 돈고생 마음고생 없이 이혼하는 방법> 책은 다양한 사례로 이혼에 대한 궁금증을 풀어 낸다.
ⓒ 위즈덤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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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서점가에서 이런 갈증을 해소해줄 현실적인 이혼 지침서를 발견했다. 바로 <이도남(이혼도와주는남자)의 돈 고생 마음고생 없이 이혼하는 방법>(이하 <이도남~>)이다. 법원공무원으로 <오마이뉴스>를 비롯해 여러 매체에 법률이야기를 써온 저자 김용국은 도덕적인 설교가 아니라 '제대로' 이혼하는 방법을 알려준다.

그것도 그에게 온 상담메일을 바탕으로 실제 사례를 덧붙여 현실성을 더했다. 결혼을 앞두고 헤어지고 싶은데 결혼예단을 돌려받을 수 있는지, 매번 무시하고 가정도우미 취급하는 시댁 때문에 이혼하고 싶을 땐 위자료를 받을 수 있는지, 이혼에 합의하면 도장만 찍으면 되는지, 이혼소송을 할 때는 꼭 변호사가 필요한지 등등 막상 이혼이라는 일생일대의 갈림길 앞에 서면 막막해지는 갖가지 사례에 대해 <이도남~>은 법률에 근거해 성실하게 답한다.

<오마이뉴스>에 연재돼 매회 수십만 건의 조회수를 기록했던 기사들을 모은 책답게 어려운 법률용어를 쉽게 풀어써서 읽기도 편하다. 아직 이혼을 해야 할지 말아야할지 고민하는 상담자에게도 <이도남~>은 따뜻한 조언을 아끼지 않는다.

"이혼을 하라, 마라 할 수 있는 자격이 누구에게 있을까요. 답을 갖고 있는 사람은 자기 자신입니다. 자신의 미래, 자신의 행복을 기준으로 결혼생활을 유지하는 게 나을지, 갈라서는 게 나을지 선택해야 하겠지요. 대신 결코 후회하지 않을 만큼 진지하게 고민 또 고민해야 합니다. 일생이 걸린 문제 아닌가요."(131쪽)

또한 <이도남~>은 진지한 고민 끝에 이혼을 결심했다면 마무리도 잘하라고 덧붙인다.

"불가피하게 이혼을 해야 한다면 되도록 상처를 적게 남겨야 합니다. 그런데도 이혼 뒤에까지 상처를 입는 분들이 적지 않습니다. 대부분 돈 때문입니다. 이혼 뒤에 또 다른 분쟁을 겪지 않으려면 약속을 문서로 남겨놓는 것도 하나의 방법입니다."(59쪽)

이혼하면서까지 합의문서를 잘 쓰라는 이야기가 너무 삭막하게 들리는가. 하지만 결혼이 현실이듯 이혼 역시 명백한 현실이다. <이도남~>은 그 현실에 제대로 대응하기 위해서는 꼼꼼한 법률적인 고려가 필요하다고 이른다. 그러하기에 이혼이란 명백한 현실을 앞두고 있는 이들에게 <이도남~>은 좋은 지침서가 될 것이다.

6년 전, 우리 부부의 결혼식 주례는 내가 일하던 단체의 대표인 40대 후반의 여성이었다. 나이도, 성별도 남달랐던 주례에게 남다른 주례사를 기대했다. 그런데 우리의 주례는 남들이 다 하는 이야기를 해버렸다. 첫 번째 당부가 "부모님께 효도하라"였다. 조금 아쉬웠는데 그녀의 다음 이야기가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요즘 시대에 부모님께 효도하는 건 이혼하지 않는 겁니다."

이혼하지 않는 게 효도가 되는 시절이 됐지만 주례도 주례석 앞 부부도, 그들을 바라보고 있는 혼주석의 부모와 하객들도 모두 알고 있을 것이다. 결혼관계도를 붙드느라 상처를 부여안고 사는 건 결코 바람직하지 않음을.

그래서 <이도남~>은 이야기했다.

'사랑은 뜨겁게, 결혼은 신중하게, 헤어질 때는 깔끔하게'


이도남의 돈 고생 마음고생 없이 이혼하는 방법 - 이혼 도와주는 남자

김용국 지음, 위즈덤하우스(2013)


태그:#이도남, #이혼도와주는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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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삶엔 이야기가 있다는 믿음으로 삶의 이야기를 찾아 기록하는 기록자. 스키마언어교육연구소 연구원으로 아이들과 즐겁게 책을 읽고 글쓰는 법도 찾고 있다. 제21회 전태일문학상 생활/기록문 부문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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