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항구 공사를 하다 중단한 방파제 위에 올라서 있는 범선 모양 건축물. 감사원으로부터 불법이라는 지적을 받았다.
 항구 공사를 하다 중단한 방파제 위에 올라서 있는 범선 모양 건축물. 감사원으로부터 불법이라는 지적을 받았다.
ⓒ 성낙선

관련사진보기


법과 규정에 따라서 일을 해야 하는 공무원들이 법과 규정을 무시한 채 업무를 진행해서, 해당 지역의 주민들이 상당한 피해를 입고 있다. 그런데 그 공무원들이 법과 규정만 무시한 게 아니라, 그 법과 규정을 그 지역에서 사업을 확장하려고 하는 특정 사업자에게 유리한 쪽으로 적용해, 더 큰 문제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힘이 있는 사업자에게는 약한 태도를 보이고, 힘이 없는 주민들에게는 강한 태도를 취하는 공무원들 때문에 그 지역 주민들의 삶이 더욱 더 팍팍해지고 있다. 이 일은 매년 수많은 관광객들이 찾아오는 강원도 강릉시에서 일어났다. 그것도 '새해 첫날 해돋이'와 '모래시계'로 유명한, 정동진에서 일어난 일이다.

감사원 "방파제 위에 요트클럽하우스를 지은 것은 위법"

요트클럽하우스 측면. 다소 어수선한 분위기다.
 요트클럽하우스 측면. 다소 어수선한 분위기다.
ⓒ 성낙선

관련사진보기

정동진에 가면, 바닷가 높은 바위 절벽 위에 거대한 유람선 한 척이 올라서 있는 광경을 볼 수 있다. 썬크루즈호텔이다. 그리고 바닷가 절벽 아래로는 그 유람선보다 작은 '범선' 한 척이 바다를 향해 길게 뻗어나간 방파제 위해 앉아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림 같은 풍경이다. 그런데 그런 풍경을 보면서 결코 낭만적인 생각에 사로잡혀 있을 수 없다. 이 범선 모양 건축물이 최근에 문제가 되고 있는 '썬크루즈 요트클럽하우스'다.

이 요트클럽하우스는 바닷가에 있는, 그저 조금 독특한 배 모양의 건축물처럼 보인다. 겉보기에, 무슨 문제가 있을까 싶다. 하지만 이 건축물은 결코 평범한 과정을 거쳐 만들어진 물건이 아니다. 이곳의 방파제 위에 철제로 만들어진 범선 모양의 건축물을 올려 세우고, 그 옆에 요트 계류시설 등을 건설하는 데는 상식적으로도 이해하기 힘든 온갖 불법과 탈법이 동원됐다.

물론 이곳에서 그런 불법과 탈법이 저질러질 수 있었던 것은 주민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사업자에게 상당한 특혜가 주어지는 방식으로 행정 업무를 처리한 공무원들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어촌어항법에 따르면, 방파제 위에는 철근과 콘크리트를 사용한 건물을 신축하는 것 자체가 위법이다. 그런데 강릉시 공무원들은 그 일이 가능하게 만들어주었다.

이곳에서는 지역 주민들의 오랜 건의 끝에, 1996년부터 어민들을 위한 어항인 정동항 건설이 시작됐다. 그런데 이 어항은 2005년까지 26억 원을 들여 178m에 달하는 방파제를 건설한 채 중단됐다. 그러더니 2008년에 '관광어항개발'이라는 이름의 새로운 사업이 시작됐다. 그리고 건설이 중단된 방파제 위에 범선이 올라섰다.

감사원은 지난해 9월과 10월 사이에 전국의 48개 기초 지방자치단체를 대상으로 인·허가 등 '비리 취약분야'에 대한 2차 감사를 실시했다. 그리고 그 감사 결과 이 범선 모양의 건축물과 관련해, 지난 3월 12일 강릉시에서 "영구 구축물을 건축할 수 없는 방파제 위에 요트클럽하우스를 신축할 수 있도록 어항개발사업을 허가"해주었다고 밝혔다.

또한 강릉시 공무원들이 특정 사업자에게 어항개발사업을 허가해주면서, "해수면까지 대지면적으로 인정하여 건축면적을 과다하게 건축허가"를 내주었을 뿐만 아니라, "(사업자가 제출한) 허위 계산서를 근거로 (건축물의) 무상사용·수익 기간을 10년 이상 더 인정"했다고 밝혔다. 상식밖 일들이 벌어진 것이다.

도대체 강릉시에서는 어떤 일들이 벌어진 것일까? 감사원이 밝힌 내용만으로도, 강릉시에서 상당히 이상한 일이 일어난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그 내용을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강릉시가 어항개발사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더욱 더 이해하기 힘든 일들이 일어났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 일은 5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건의서에 도장을 찍은 사람도 모르는 어촌계 건의서 내용

가짜 시비가 일고 있는 정동진 어촌계 건의서. 말단공무원에서 시작해 강릉시장까지 결재 도장을 찍었다. 이 문서가 문제의 요트클럽하우스를 짓게 되는 발단이 된다.
 가짜 시비가 일고 있는 정동진 어촌계 건의서. 말단공무원에서 시작해 강릉시장까지 결재 도장을 찍었다. 이 문서가 문제의 요트클럽하우스를 짓게 되는 발단이 된다.
ⓒ 성낙선

관련사진보기

강릉시는 2008년 3월, 정동진 어촌계로부터 어촌계원 26명의 서명이 첨부돼 있는 '정동항 개발과 관련한 건의서'를 접수했다. 이 건의서에는 "(기존의) 정동항 개발 중단"과 "현재까지 개발된 방파제를 해양관광인프라 시설로 리모델링"해달라는 내용이 담겨 있다. 지역 어촌계원들이 갑자기 자신들을 위해 건설 중이었던 정동항을 다른 용도로 사용할 것을 요구한 것이다.

이 건의서는 당시 정동진어촌계장을 맡고 있던 오아무개씨가 작성해서 제출한 것으로 되어 있다. 이 건의서에는 어촌계원 26명 중 23명이 회의를 진행해 의견을 모은 뒤, 계원들 스스로 정동항 개발을 건의한 것처럼 꾸며져 있다. 강릉시가 추진하는 '관광어항개발사업'은 이 건의서에서 비롯됐다.

이 건의서는 2009년 주민들과 강릉시장과의 법정 다툼에서 '가짜'라는 주장이 제기됐다. 당시 주민들은 법정에서 이 문서는 계원들의 의견을 들은 것이 아니며, 건의서에 첨부한 주민들의 서명 역시 다른 문서에 사용한 주민 서명을, 누군가 이 건의서에 도용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주민들의 그 같은 주장은 판결에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이 문서는 여전히 가짜 논란에 휩싸여 있다. 당시 이 문서를 작성하고 도장까지 찍은 것으로 되어 있는 전 정동진어촌계장 오씨는 최근 이 건의서와 관련해, "나는 직접 문서를 작성하거나 회의를 한 사실이 없다"고 밝혔다. 그리고 그 건의서에 서명을 한 것으로 되어 있는 주민들 역시 "서명한 사실이 없다"고 증언한 사실도 확인됐다.

그런데도 강릉시는 당시 이 건의서를 받아들이는 형식을 취해, 2008년 6월 기존의 정동항 개발계획을 변경하는 작업을 추진하고, 2009년 1월 민자유치를 명목으로 관광어항개발사업에 참여할 사업자를 공모했다. 이 공모에는 극히 제한된 사람만이 참여할 수 있었다. 그 결과, 그해 2월 ㈜승화 썬크루즈의 대표이사인 박기열 대표가 사업자로 선정됐다.

그러자 주민들은 2009년 3월 정동항민자유치사업반대추진위원회를 구성하고, 강릉시청 앞에서 시위를 하는 한편으로, 대통령 등 정부 각 기관에 진정서와 탄원서를 제출했다. 진정서를 수도 없이 제출했지만 제대로 된 답변이 돌아온 곳은 한 군데도 없었다. 그러던 중 주민 수백 명이 감사를 요청해, 2009년 6월 감사원에서 감사를 나왔다.

주민들은 당시 "강릉시장이 정동진을 개발한다고 하면서, 어민이 이용하는 국가 소유의 토지와 어항과 바다의 일정 면적까지도 편법적이면서도, 막강한 행정 권력을 이용하여 합법적임을 가장하면서까지 특정인에게 넘겨주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그 당시 감사원은 "강릉시 행정 전반에 특별한 하자가 없다"며 감사에서 별다른 문제를 짚어내지 못했다. 주민들은 "그 당시 감사원이 현장을 둘러보고는 방파제 위 건물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지만, 서울에 돌아가서는 다른 결론을 내려보냈다"고 주장했다.

그 감사는 주민들에게 오히려 불리하게 작용했다. 강릉시에는 면죄부를 준 꼴이 됐다. 강릉시는 감사원조차 별다른 문제를 제기하지 않자, 오히려 더 적극적으로 사업을 추진했다. 그 과정에서 사업자로 선정된 박기열 대표는 사업과 관련해 각종 인허가 관련 서류를 강릉시에 제출했고, 공무원들은 그 서류들의 불법 유무와 상관없이 '허가'를 내줬다.

정동진, 방파제 위에 건설된 요트클럽하우스. 감사원으로부터 불법이라는 지적을 받았다.
 정동진, 방파제 위에 건설된 요트클럽하우스. 감사원으로부터 불법이라는 지적을 받았다.
ⓒ 성낙선

관련사진보기


'2009년 감사'와는 완전히 달라진 '2012년 감사' 결과

그 사이 방파제 위에는 범선 모양의 건축물이 들어섰고, 요트클럽하우스는 본격적인 영업을 시작했다. 주민들은 더 이상 문제를 제기할 방법이 없었다. 하지만 감사원이 2012년에 실시한 감사는 2009년에 실시한 감사와는 완전히 달랐다. 2012년 감사에서 그동안 의혹으로만 남아 있던 것들이 사실상 불법이었음이 확인된 것이다. 이때 감사원이 밝혀낸 문제는 크게 네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 방파제(어항시설) 위에 철골 구조로 된 건축물을 신축하는 것은 위법이다. 어촌어항법 제38조 등에 따르면, "어항시설의 점·사용은 시설물 설치를 수반하는 경우 영구 구조물이 아닌 경우에 한하여 허가"할 수 있다. 감사원은 "이 건축물이 영구 구조물로서 어항시설 점·사용 허가 대상이 되지 않는다"며 "강릉시가 이 건축물 신축을 허가하지 않아야 했다"고 지적했다.

둘째, 이 건축물을 무상으로 사용할 수 있는 기간이 과도하게 부풀려졌다. 법에 따르면 무상사용이 가능한 기간은 총사업비를 시설의 연간사용료로 나누어 정하게 되어 있다. 총사업비는 감정평가금액을 적용해야 한다. 그런데도 ㈜화승 썬크루즈는 강릉시에 총사업비로 한국감정원 평가금액이 아닌 다른 금액을 제출했고 강릉시는 이를 그대로 받아들였다.

사업자가 제출한 금액은 27억여 원이라는 한국감정원 감정평가금액보다 13억 원이 더 많은 45억여 원이었다. 그렇게 총사업비를 부풀려 잡으면서, 무상사용 기간이 20년에서 30년으로 늘어났다. 강릉시는 불법을 방조했다. 강릉시는 한국감정원의 감정평가금액을 무시한 채, 단지 사업자가 제출한 총사업비만으로 무상사용 기간을 산정했다.

셋째, 사업자가 총사업비 내역을 증명하는 용도로 제출한 세금계산서는 '가짜'일 가능성이 높다. 감사원은 총사업비 45억여 원 중 43억여 원에 달하는 세금계산서 5매가 모두 법인 인감의 위치가 정확히 일치하는 등 "복사 위조된 허위의 세금계산서일 가능성이 높다"고 밝혔다. 그 외에도 이 세금계산서는 대표이사, 발행날짜가 잘못 기재돼 있는 등 거래사실과 금액을 입증하기 어렵다. 그런데도 강릉시는 총사업비의 96%를 차지하는 이 5매의 세금계산서가 진짜인지 가짜인지도 확인하지 않은 채 허가를 내줬다.

넷째, 문제의 건축물은 공유수면까지 대지로 사용했다. 이 건축물의 실제 대지 면적은 1018㎡이다. 그런데 주변의 공유수면 3652㎡를 대지 면적에 집어넣어, 법정 건폐율과 용적률을 실제보다 크게 늘려잡는 꼼수를 부렸다. 그러면서 건축 면적만 203.6㎡에서 862.06㎡로 늘렸다. 무려 4배가 넘는 면적이다. 강릉시는 당시 이런 사실을 확인하고, 사업자에게 건축 면적 등을 축소할 것을 요구했어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않았다.

이 요트클럽하우스 안에는 커피점과 횟집까지 들어서 있다. 이 역시 특혜라는 지적이 있다.
 이 요트클럽하우스 안에는 커피점과 횟집까지 들어서 있다. 이 역시 특혜라는 지적이 있다.
ⓒ 성낙선

관련사진보기


주민들 "원상 복원" 요구... 기세남 시의원 "주민소환" 추진

감사원은 2012년 감사 결과, 강릉시장에게는 사업자인 ㈜승화 썬크루즈 대표이사 박기열씨를 "공무집행방행 등의 혐의로 고발"할 것을 요구했고, 강원도지사에게는 "어항개발사업 및 무상사용·수익 허가업무 등을 부당하게 처리한 관련자 2명"에 대해서는 징계를, "징계 시효가 지난 나머지 5명"에게는 주의를 촉구하도록 요구했다.

강릉시는 일단 감사원의 요구를 받아들여 업체 대표를 고발했다. 하지만 강릉시 감사담당관실은 "업체 대표가 제출한 허위 공문서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것"은 인정하면서도, 강릉시 공무원들이 업체 대표에게 특혜를 준 것에는 동의하지 않았다. 감사담당관실의 한 관계자는 20일 기자와 한 통화에서 "(중앙) 감사원이 지적한 부분은 해석을 다르게 할 수 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방파제 위에 건물을 짓는 것은 논쟁의 대상이다, 물양장(소형 선박이 접안하는 부두)에 건물을 짓는 것과 비슷해" 반드시 잘못된 것이라고 볼 수 없으며, "(허위) 영수증을 제대로 확인하지 못한 것은 공무원들이 (감사원 같이) 가짜 여부를 확인할 만한 권한을 갖고 있는 않은 데서 발생한 것"이라며, 어쩔 수 없는 일이었음을 강조했다.

강릉시는 현재 감사원이 관광어항개발사업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음에도 불구하고, 감사원 요구에 따라 업체 대표를 고발하는 등의 조치를 취한 것으로 이 문제를 일단락지으려 하고 있다. 할 일을 다했다는 반응이다. 그러나 지역 주민들의 요구는 어항개발사업의 문제점을 확인하는 데서 그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주민들은 당장 '방파제 복원'을 요구하고 있다.

2009년부터 정동항민자유치사업반대추진위(2012년 3월 해체)를 이끌어온 양진석씨는 "지난 몇 년간 온갖 고생을 다하며, 울분을 삭였다"면서 "우리 주민들은 해당 공무원들에게 징계 등의 단순한 조치를 내린 것에 만족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강릉시에 "방파제를 원형대로 복원해줄 것"과 "공유수면을 지역 주민들에게 되돌려 줄 것"을 강하게 요구했다.

법에 따른 요구다. 어촌어항법 제41조(사용허가 등의 취소)에 의하면, "어항시설의 사용 또는 점용의 허가를 받거나 신고한 자가 거짓이나 그 밖의 부정한 방법으로 허가를 받거나 거짓으로 신고하였을 때는 그 허가를 취소하거나 6개월 이내의 기간을 정하여 사용 또는 점용의 정지를 명할 수 있다"고 되어 있다.

양진석씨는 범선 모양의 건물을 "불법으로 지어진 흉물단지"라며, "우리 같은 서민들은 물탱크 하나 잘못 지어도 바로 부수고 다시 지으라고 하면서, 어떻게 저런 물건에 허가를 내주면서 법을 제대로 준수하지 않았냐"며 울분을 토했다. 그는 "강릉시에서는 인맥이나 안면 있으면 안 되는 게 없다"며, 강릉시 공무원들에게 "법을 준수하면서 살자"고 호소했다.

강릉시의회 기세남 의원은 "방파제 위에 건축물을 지은 곳은 강릉시가 유일할 것이다, 전국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일"이라며 "이번 어항개발사업은 물론이고 구정리 골프장, 연탄공장 건설 등 그동안 강릉시에서 계속 악성 민원이 발생하고 공무원들이 법적 절차를 제대로 밟지 않는 것과 관련해 곧 시의회에서 공식적으로 문제를 제기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기세남 의원은 또 이번 사안과 관련해 "강릉시에서는 시장이 곧 법"이라며, "시가 법을 악용하고, 법을 지키지 않는데 어떻게 시민들에게 법을 지키라고 말할 수 있겠냐"고 비판했다. 기 의원은 "(시가 법을 악용해) 강릉시에서는 서민이 억울한 일을 당하는 경우가 많아 이런 일들이 바로잡히지 않으면, 앞으로 시장소환을 하는 방안까지 강구한다"는 계획이다.


태그:#정동진, #요트클럽하우스, #썬크루즈, #강릉시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