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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가 다시 현장으로 달려갑니다. 기존 지역투어를 발전시킨 '2013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전국투어'가 4월부터 시작됐습니다. 올해 전국투어에서는 '재야의 고수'와 함께 지역 기획기사를 더욱 강화했습니다. 시민-상근기자의 공동 작품은 물론이고, 각 지역에서 오랫동안 삶의 문제를 고민한 시민단체 활동가와 전문가들의 기사도 선보이겠습니다. 5월, 2013년 <오마이뉴스> 전국투어가 찾아가는 지역은 부산경남입니다. [편집자말]
 한국전력공사가 20일부터 밀양 송전탑 공사 재개에 들어간 가운데, 밀양시 단장면 고례리 바드리마을 소재 89번 철탑 공사 현장에서 경찰과 한국전력 직원들이 배치되어 반대 주민들과 대치하고 있다.
 한국전력공사가 20일부터 밀양 송전탑 공사 재개에 들어간 가운데, 밀양시 단장면 고례리 바드리마을 소재 89번 철탑 공사 현장에서 경찰과 한국전력 직원들이 배치되어 반대 주민들과 대치하고 있다.
ⓒ 윤성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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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일 오전, 한전이 밀양 송전탑 공사를 재개했다.

"주민과 경찰이 곳곳에서 대치하고 있다, 경찰을 앞세워 현장을 철통같이 막아 주민 접근을 막고 있다. 할머니들은 옷을 벗고 경찰에 항의했으며, 오물을 물병에 담아 경찰을 향해 던지기도 했다. 경남 밀양면 부북면 127번 송전탑 자리 현장에서는 이금자 할머니가 쓰러져 병원으로 후송되고 있다, 상동면 109번 현장에서는 이갑술 할머니가 다쳐 헬기를 불렀다.…… "

송전탑 공사 현장으로부터 급보가 쏟아지고 있다. 엊그제부터 우려했던 사태가 기어이 벌어지고 말았다.

지난 18일, 언론은 일제히 '한전, 밀양 송전탑 공사 재개'라는 기사를 내보냈다. 같은 시각, 공사 현장인 경남 밀양시 부북, 상동, 산외, 단장면 마을에는 '밀양 765kV 송전선로 건설공사 관련 대국민 호소문'이 집집마다 뿌려졌다.

한전 조환익 사장 이름으로 나간 이 호소문은 '보상은 원하지 않으며 지중화'를 요구하는 송전탑 반대대책위와 4개면 주민들의 요구를 받아들일 수 없다고 못을 박았다. '횃불을 밝히며 야간 공사를 단행해서라도 올 12월 신고리 원전 3호기에서 생산된 전기를 농사와 일터로 차질 없이' 보내겠다고 한다.

한전은 신고리 원전에서 생산된 전기를 창녕군 북경남변전소로 보내는 765kV 송전선로 건설공사를 벌이다 밀양 지역의 주민들과 8년째 대치해 왔다. 18일 오후, 밀양시 부북면 평밭마을로 들어서는 고갯마루에 자리잡은 움막(129번 송전탑 자리)을 찾아갔다.

움막에서 발견한 '박근혜 대통령께 드리는 글'  

 밀양시 부북면 평밭마을 고갯마루에 있는 움막, 창 밖으로 고갯길이 보인다.
 밀양시 부북면 평밭마을 고갯마루에 있는 움막, 창 밖으로 고갯길이 보인다.
ⓒ 이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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움막 출입문 옆에 '박근혜 대통령께 드리는 글'이란 제목의 시가 붙어 있다.

우주가 있어 / 지구가 있고 / 땅이 살아 있어 / 만인 만물이 사는 이치이듯이 / 지구 땅 사람 빼앗아가는 / 원자력 발전 접으시고 / 태양 달 바람 안고 / 새 에너지 낳으소서(...).
(2013.2. 밀양 76만5천 볼트 송전탑 반대 주민 일동)

"말도 안 되는 소리 하고 있네."

한전의 호소문을 다 읽고 난 이남우(71) 할아버지의 첫마디였다.

작년 9월 공사 중단 이후 한전과 대화에서 진전된 게 있는지 궁금했다.

"지난 2월 18일, 국회 지경위 소회의실에서 1차 간담회를 시작으로 5월 13일까지 6차에 걸쳐 주민들과 한전의 만남이 있었어요. 한전은 보상안을 가지고 이야기 하려 들고, 우리는 보상이 아닌 지중화를 주장했어요. 우리가 제시한 지중화를 비롯한 방안들이 현재로서는 어렵다고 하는데, 과연 그런지 전문가 협의체를 구성해서 검토해 보자는 겁니다. 6차 간담회에서 한전은 공사를 지금 재개하더라도 8개월이 걸린다고 했어요. 그러면 공사가 1개월 정도 늦어지더라도 검토하자는 겁니다. 한전은 처음에는 지중화가 기술적인 문제가 없다고 하다가 지금은 말을 바꿨어요."

움막 안에서 이남우 할아버지의 말을 듣는 동안, 다른 분들이 나누는 이야기도 귓전을 훑고 지나갔다.

"20일 공사가 시작된다는 보도가 나온 이후 경찰서 형사들이 4개 면을 다녀갔다. 급하면 똥을 퍼부어야 한다. 공사를 하면서 대화를 하겠다는데 싸움 하면서 무슨 협의가 되나."

그러다 차 소리가 나면 다들 약속이나 한 듯 시선을 문 밖으로 향했다.

"처음에는 765kV 송전선로를 통해 북한에까지 전력이 간다고 했다가, 그걸 우리가 따지고 드니까 다음에는 서울까지 보낸다고 했지. 그러면 서울 인근에서 공급하라고 따지니까 이번에는 영남권에 공급할 전기라고 말을 돌려. 영남권은 전기가 남아돌거든. 한전은 거짓말, 거짓말, 또 거짓말을 해 왔어."

 움막 안에 있는 새로 사온 듯한 바가지, 무언가 담긴 검은 비닐봉지가 보인다.
 움막 안에 있는 새로 사온 듯한 바가지, 무언가 담긴 검은 비닐봉지가 보인다.
ⓒ 이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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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당번인 한옥순 할머니와 박후복 할머니가 금방 올라온 젊은 장 아주머니와 밖에서 뭔가를 챙기고 있다. 어디서 주워 모은 듯한 페트 병에 플라스틱 바가지, 모자 등등. 아무래도 한 판 싸움은 피할 수 없다는 판단인 모양이다.

"이제 한전이 큰 불상사를 일으킬 수도 있어. 국책사업이라 말하면서 공기업이 '인간의 존엄성'을 생각하지 않는 게 더 큰 위험이라고 생각해. 나는 그들이 인간의 존엄성을 짓밟는 게 더 이상 용납이 안 돼. 인간은 잠시 왔다가 가지만 지구는 후손들이 영원히 살아야 할 곳이잖아. 후손들에 대한 예의를 알아야지. 한전은 정당하지 못해. 우리는 목숨을 걸고라도 공사를 막을 거야!"

공사를 이렇게까지 밀어붙이는 이면에는 '전기는 돈'이라는 논리가 깔려 있고, 그 논리가 돈으로부터 자유롭고자 시골 생활을 선택한 이들을 다시 옥죄고 있다고 생각하니 속이 갑갑해져 움막을 나왔다.

"지난 번에는 할배가 죽었는데..."

 밀양시 부북면 평밭길 초입의 움막. ‘사람이 우선이다 침묵의 살인자 전자파는 안 돼’라는 현수막이 보인다.
 평밭길 초입의 움막. '사람이 우선이다 침묵의 살인자 전자파는 안 돼'라는 현수막이 보인다.
ⓒ 이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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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양 마을로 내려오다가 산 입구에 지어 놓은 움막에 잠시 들렀다. 여기가 평밭으로 올라가는 산길의 출입구이니 초소로는 안성맞춤이다. 할머니 세 분과 아주머니 한 분이 지키고 있기에 들어가 몇 마디 나누었다.

- 곧 공사 재개한다는데 어쩔 작정인지?

"우짜긴, 싸워야지, 죽기 아니마 살기고. 지난 번에는 할배 죽었는데, 이제는 할매가 죽게 생겼네." ('할배'는 2012년 1월 16일, 자신의 논에 송전탑이 들어서는 것을 막으려다 분신하신 이치우 할아버지를 말하는 것 같았다.)

- 여기 이러고 있으면 농사는 어쩝니까?
"농사야 올해 못 지으면 내년에 지으면 되고. 이놈들, 부딪혀 봐야 정신을 차리지."

시골에서 늙은 할머니답지 않게 한 마디 한 마디가 매섭다.

 평밭길  초입의 움막에서 만난 할머니들.
 평밭길 초입의 움막에서 만난 할머니들.
ⓒ 이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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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형사가 움막을 찾아왔다면서요?
"어찌 지내는고 궁금해서 왔다카면서, 올해 나이가 몇인고 물어. 여기서는 우리 둘이가 71살, 제일 젊어. 마음은 이팔청춘이지."

- 밥은 어떻게들 해 드시나요?
"지줌(제 각기) 알아서 반찬 가지고 오고, 밥은 여서 해 먹고 그래. 여기 못 오는 사람은 마을회관에서 먹고 그러지."

- 서울에서, 부산에서 대학생들이 다녀갔다면서요?
"서울서 온 대학생들은 수요일 촛불 미사 때 참석했다가 그날로 가고, 목요일 부산에서 온 대학생 다섯은 저 위 평밭 움막에서 하루 자고, 엊저녁은 여기서 자고 아침에 갔어."

출입문 옆 벽에는 달력 뒷면을 이용해 굵은 매직펜으로 눌러 쓴 '비상연락망'이 붙어 있다. '윤여림, 현풍댁, 서종범...' 이름과 전화번호가 죽 적혀 있다. 말은 한 마디 한 마디가 매섭지만, 할머니들은 싸움을 앞둔 이들 같지 않게 여유가 있다. 장 보러 가고 마실 가고 밭에 나가 일상을 보내듯 여기서도 그렇게 웃고 떠들며 보낸다. 싸움을 삶으로 받아들인 이들 같다.

"이건 주민에 대한 겁박입니다"

19일 오후, 단장면 동화전 마을 입구. 길가 청정 미나리를 파는 무진장농원 앞에 대절버스 두 대와 승용차들이 빽빽하니 서 있고 마을 사람들과 등산복 차림이 뒤섞여 있다.

"저는 주민과 한전의 국회 간담회 1차부터 6차까지 함께했던 사람입니다. 송전선 지중화 가능합니다. 함양-울산간 고속도로 공사 구간으로 지중화하면 됩니다. 밀양 송전선 경과지와 병행 구간이 15키롭니다. 지중화 공사비용이 4300억입니다. 현재 3000억이 남아 있답니다. 그렇다면 1200억만 추가로 들이면 가능한 공삽니다. 저희들이 전문가의 자문을 받은 결과 2년 정도면 공사가 가능한 것으로 압니다. 그런데도 한전은 비용이 2조 7000억, 공사기간이 10년 이상 걸린다고 언론에 보도하고 있습니다. 세상에, 공기업이 이런 엉터리가 어디 있습니까?"

마이크를 잡은 이는 동화전 마을 김태연(62)씨다. 때마침 정동영 민주당 상임고문 일행이 이곳을 방문해서 주민들의 이야기를 듣는 자리가 펼쳐지고 있었다. 앞서 여러 사람이 발언을 한 듯, 정동영 상임고문의 마무리 인사가 이어졌다.

"단장면 동화전, 상동면 여수동 주민 여러분, 모두 힘 내십시오. 이 나라에서 맨 위에는 헌법이 있습니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으며,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1조2항)'고 했습니다. 송전탑 문제에 있어서 어느 누구도 주민들의 요구를 막을 권리가 없습니다. 주인이 외치는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밀양 상동면 김영자씨의 발언을 정동영 상임고문이 듣고 있다.
 밀양 상동면 김영자씨의 발언을 정동영 상임고문이 듣고 있다.
ⓒ 이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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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후, 대절 버스 두 대가 떠나고, 승용차도 하나씩 떠났다.

"대국민 호소문이라니? 왜 대국민이냐 이거지요?(한전 사장 명의로 나온 '밀양 765kV 송전선로 건설공사 관련 대국민 호소문'을 말한다.) 송전선이 지나가는 경과지 4개 면 주민들에게 호소해야 말이 되는 것 아닌가요? 이건 대국민호소문이 아니라 주민에 대한 겁박입니다. 8년 동안 주민을 회유, 협박하더니, 전력대란의 책임을 주민에게 덮어씌우고 있어요. 우리가 전력 대란의 주범입니까? 8년 동안 공사를 못한 것은 자기들이 정당하고 떳떳하지 못했기 때문이지요. 문제를 제대로 파악했다면 8년 동안 뭐 했습니까? 신고리 3호기를 올해 연말까지 완공한다고 하는데, 핵발전소는 6개월 전부터 시운전을 해야 상업 운영이 된답니다. 지금 5월인데, 6월말까지 공사가 안 끝나면 시운전이 안 되는 겁니다. 시운전 없이 핵발전소를 돌릴 수 없잖아요. 그러면 한 달 안에 공사 끝낼 수 있습니까? 자기들이 8개월 걸린다고 해 놓고 말이 됩니까?"

단장면 용회동에서 온 고준길(70)할아버지가 차근차근 따져 말했다. 그러자 곁에 섰던 이들이 한 마디씩 속에 있던 말을 내뱉기 시작했다.

"밤에 잠을 잘 수가 없어. 사람도 부족하고 힘도 부족하고, 어떻해야 하나……."
"나중에 밀리다 보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지. 너무 말도 안 되는 짓을 하니까."
"더 이상 설 자리가 없어. 우리를 막 절벽으로 밀어버리잖아."

주변에서 왁자지껄 떠드는 소리가 마구 뒤섞이기 시작했다.

"병에 넣어야 된다카이. 그래 갖고 뚜껑 열어가 던져야 된다카이."
"밥 안 드신 분!"
"요새 밥 안 묵고 어찌 사노."
"자 가입시다, 고추 모종 심으러."
"어뜩(어서) 일을 해야 할 거 아이가."

나중까지 평상에 앉아 있던 이남이(65) 할머니가 말문을 열었다.

"이때꺼정 싸웠으니께 끝까지 해 봐야 안 되겠습니까. 조상 대대로 고향 지키고 살아왔는데 끝끝내 지키고 살아야 안 되겠습니까. 손자, 손녀 다 여기서 농사짓고 공부하고 살고 있는데, 우리 대추 논 위로 송전선이 지나간다카는데, 그러면 어찌 농사를 짓고 살겠습니까.  대추하고 밤 농사 짓고, 아들하고 며늘아이는 들깨 농사 하고 살아요. 요새 대추 순 치는 때라, 아침부터 순 치다가 지금 내려왔다 아닙니까."

주민들은 저녁에 다시 모이기로 하고 각자 일터로 흩어졌다. 서둘러 인사를 하고 돌아오다 뒤돌아보니 손글씨로 쓴 현수막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조용한 우리 마을에 철탑이 웬말이냐."

 송전탑 관련 동화전 마을 입구에 걸린 현수막
 송전탑 관련 동화전 마을 입구에 걸린 현수막
ⓒ 이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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