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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능적으로 사람이 드나드는 것은 문이요, 멀리 바라보거나 햇볕과 바람을 통하게 하는 문은 창이라 한다. 한옥에서는 대개 창과 문을 구별하지 않는다. 사람이 드나드는 문이 창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밥상 하나 겨우 들어갈 정도로 작은 문이 있는가 하면 크지만 정자나 누정, 살림집 뒷문처럼 기능적으로 문의 역할보다는 창으로서의 역할이 더 큰 경우도 있다.

기능적으로 왼쪽은 문, 오른쪽은 창인데 한옥에서는 기능이 뒤섞여 둘을 구별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 문과 창 기능적으로 왼쪽은 문, 오른쪽은 창인데 한옥에서는 기능이 뒤섞여 둘을 구별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 김정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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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은 문 안과 밖을 나누는 경계의 의미와 안과 밖을 통하게 하는 소통의 의미를 갖고 있다. 문은 창이 갖는 기능성 외에 경계와 소통이라는 상징성을 갖고 있어 이 글에선 창이나 문을 구별하지 않고 모두 문으로 통일하고자 한다. 

집주인에 따라 문밖의 이미지(心像)는 다르다. 집주인이 여성인 경우, 남성의 경우와 다르고 선비의 문인 경우 선비의 성품에 따라 달리 보이기도 한다. 그것은 집주인의 마음씨(心相)와 마음속 생각(心想)이 바깥세상에 반영되기 때문이다.   

또한 객(客)의 마음상태(心狀)에 따라 문 밖의 풍경은 달리 보인다. 문 밖의 풍경을 주관적으로 해석하는 경우다. 객은 앞에 문을 두고 이런저런 상념에 빠져 들게 된다.

선비의 문으로 본 바깥세상

담양에 명옥헌원림이 있다. 5그루의 노송과 28그루의 배롱나무가 빚어낸 풍경은 선경에 가깝다. 집주인은 낙향하여 여기에 새로운 세상을 만들려고 한 것 같다. 배롱나무 저만치 명옥헌 정자가 있다. 명옥헌에 오르면 다투듯 번갈아 피는 배롱의 붉은 꽃과 뒷산에서 내려오는 옥구슬 물소리(鳴玉)에 시름은 저 멀리 가버린다.

명옥헌 방에서 보면 다른 풍경은 보이지 않고 오직 붉게 물든 배롱 꽃만 보인다. 광해군시절, 어지러운 세상에 벼슬을 마다하고 은둔생활을 한 선비의 눈에 들어온 바깥세상이 이렇게 아름다운데 뭐 그리 멀고 먼 한양이 궁금할까? 문 밖으로 선비는 보고 싶은 풍경만 보고 시름을 떨쳤으리라. 그것도 싫으면 한쪽 문은 닫고 반쪽 문으로 반쪽세상을 보았을 게다.

배롱나무도 싫으면 문을 반쪽만 열어 놓아 바깥세상을 멀리 한다
▲ 명옥헌 반쪽 바깥세상 배롱나무도 싫으면 문을 반쪽만 열어 놓아 바깥세상을 멀리 한다
ⓒ 김정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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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경당(演慶堂), 효명세자가 부친 순조를 위해 지은 창덕궁 후원에 있는 사대부집이다. 네모반듯한 문으로 네모난 돌로 쌓은 화계가 들어온다. 흐트러짐 없이 단정하고, 소박하나 초라하지 않은 방에다 정갈한 화계, 이 집주인의 인품이 그대로 드러난다.

네모반듯한 문으로 들어온 정갈한 화계, 이 집주인의 인품을 보는듯하다
▲ 연경당 바깥세상 네모반듯한 문으로 들어온 정갈한 화계, 이 집주인의 인품을 보는듯하다
ⓒ 김정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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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성향을 지닌 인물은 단명하나 보다. 문 너머로 너무나 짧은 생을 마감하여 오래 머물지 못한 효명세자의 애틋한 공간, 의두합(倚斗閤)과 폄우사(砭愚榭)가 눈에 들어온다.    

여성의 문으로 본 바깥세상

창덕궁 한쪽에 낙선재가 있다. 한때 고종의 편전으로 사용되고 순종이 나라를 빼앗긴 후 머문 곳이기도 하지만 본래 국상을 당한 왕후와 후궁들의 거처로 지어진 여성들을 위한 공간이다.

상중의 왕후들이 거처하는 곳이라 단청도 하지 않고 화려하지 않다. 집주인의 마음을 대변하듯 달문으로 살짝 보이는 굴뚝과 꽃완자문 밖의 괴석, 그리고 화계의 색은 회색빛이다.

회색이 지나치면 지루하고 우울해진다. 이를 막으려 낙선재를 둘러싸고 있는 담은 꽃담으로 쌓고 화계에는 모란을 심었다. 회색은 조용하고 무(無)를 연상시키는 색이다. 문 밖을 보고 있으면 집주인 마음 마냥 차분해지고 무념무상에 잠긴다.

만월문을 통해 살짝 보이는 굴뚝은 집주인의 마음속 마냥 차분한 회색이다
▲ 낙선재 만월문과 굴뚝 만월문을 통해 살짝 보이는 굴뚝은 집주인의 마음속 마냥 차분한 회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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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대조적인 곳이 경복궁아미산이다. 교태전 안주인처럼 화색이 돈다. 연분홍과 연록의 아미산은 그 색과 같이 부드럽고 편안하며 여성스럽고 온화하다. 교태전 안주인의 심상은 늘 평온할 수 없었겠지만 아미산으로 위안 받기를 바라는 왕의 마음이 전해지는 행복한 뒷동산이다.  

 여성스럽고 온화한 뒷동산이다
▲ 교태전 바깥풍경 여성스럽고 온화한 뒷동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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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이 거주하는 문 밖의 풍경은 살림집이라 하여 다르지 않다. 내 고향집 '누나 방' 뒤뜰은 꽃단장을 한 여성같이 예쁘다. 석류나무가 있는 안방의 뒤뜰과는 다른 풍경이다. 이 작
은 방을 거쳐 간 다섯 누이 모두 순하고 수줍음 많은 여성이 된 것은 작은 방문을 통해 들어온 여성스런 풍경 때문이다.  

여성이 거주하는 문 밖의 풍경은 살림집이라 하여 다르지 않다
▲ 고향집 누나 방 뒤뜰 여성이 거주하는 문 밖의 풍경은 살림집이라 하여 다르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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객(客)의 마음으로 본 문밖세상

부여 정림사지터에 가면 석불좌상을 모셔놓은 전각이 있다. 전각 문틈으로 보면 오층석탑이 눈에 흐릿하게 들어온다. 마치 백제를 대하는 우리의 모습처럼 보인다. 백제를 모르는 사람은 없어도 딱 꼬집어 자신 있게 말하는 사람은 드물다. 알듯 모를 듯한 국가가 백제다.

이제야 부여의 문을 살짝 열고 들여다본다
▲ 석불좌상이 모셔져 있는 전각에서 본 정림사터오층석탑 이제야 부여의 문을 살짝 열고 들여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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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여를 보고 백제를 이해하려 하면 더더욱 어려워진다. 부여는 백제의 도읍지였지만 남아 있는 유물은 많지 않다. 그래서 상상력을 갖고 보지 않으면 별로 볼 게 없다고들 한다. 어쩌면 부여에 유물이 많지 않아서가 아니라 우리가 백제를 너무 모르고 있거나 마음에 두고 있지 않아서인지 모른다. 최근에 '백제알기 운동'이 한창이다. 나도 이제야 부여의 문을 살짝 열고 백제를 들여다본다.

보통 철원은 궁예의 한이 서려 있을 것만 같은 곳, 비운의 고장, 왠지 마음이 무거워지는 곳으로 알려져 있다. '땅굴', '백마고지', '민통선', '주인 잃은 철모', '녹슨 기차' 등 우리들 가슴을 무겁게 하는 낱말을 생각나게 하는 그런 곳으로 알기 쉽다. 뼈대만 앙상한 노동당사를 보면 이런 생각이 굳어진다.

철원은 이 작은 문으로 보여지는 게 전부는 아니다
▲ 노동당사에서 본 바깥세상 철원은 이 작은 문으로 보여지는 게 전부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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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철원에는 금강산에 심취했던 겸재 정선이 금강산을 오가다 들러 진경산수를 그렸다는 삼부연폭포가 있고 멋진 아치형 다리인 승일교와 옛날에 임금이 와서 노닐고 아직도 임꺽정이 살아 숨 쉬고 있는 고석정이 있으며 호족문화의 진수를 보여 주는 도피안사(到彼岸寺)가 있다. 

철원하면 백마고지, 삽슬봉이 있는 산악지역으로 알기 쉬우나 맛 좋은 쌀을 생산하는 철원평야가 펼쳐진 곳이다. 철원은 노동당사의 작은 창을 통해 보여 지는 것이 전부는 아니다. 이제 우리도 이런 굴레에서 벗어나 보자.

문을 통해 본 부처님의 세계

절집의 문은 단순히 사람이 드나드는 문이 아니다. 부처가 계신 문은 세속과 선계를 나누는 경계의 문이지만 문 안의 세상과 문 밖의 세상을 잇는 연속의 문이기도 하다.

청정한 마음을 가질 때 안과 밖의 경계는 무너진다
▲ 부석사 무량수전 안 세상 청정한 마음을 가질 때 안과 밖의 경계는 무너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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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정한 마음을 가질 때 안과 밖의 경계가 사라진다. 부처님은 중생을 교화하고 중생은 부처의 세계에 귀의한다. 문안에 있으나 문밖에 있으나 한 가지 마음을 갖게 되도록 무심히 부처님을 바라다본다.

밖을 향해 문을 활짝 열고 끊임없이 소통하면 결국 안과 밖은 하나가 된다
▲ 창덕궁 후원 영화당 문 밖을 향해 문을 활짝 열고 끊임없이 소통하면 결국 안과 밖은 하나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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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과 벽이 안과 밖을 나눈다면 문은 안과 밖을 통하게 한다. 우리는 바깥세상을 향하여 문을 활짝 열어 바깥생각이나 사상을 받아드리려 한다. 안은 밖의 세상으로부터 동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문을 통해 바깥세상과 끊임없이 교류한다. 결국 문안과 문밖은 하나가 된다.


태그:#문, #바깥세상, #명옥헌, #송강정, #환벽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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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不自美 因人而彰(미불자미 인인이창), 아름다움은 절로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사람으로 인하여 드러난다. 무정한 산수, 사람을 만나 정을 품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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