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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 마을 같은 도시, 우크메르게

동유럽의 작은 나라 리투아니아에 머무른 지 4개월째. 여기에 와서 두 번째로, 리투아니아 친구의 고향집에 초대받았다. 아그네 집, 우크메르게(Ukmergė). 이름이 참 예쁘다. 우크메르게는 카우나스 버스정류장에서 버스를 타고 한 시간 반 가량을 달리면 나타나는 소도시이다.

리투아니아 전도를 보면 우크메르게는 크게 쓰여져 있어서 꽤 큰 도시일 거라는 생각이 들지만, 막상 가 보면 아기자기한 집들과 숲이 있고 한적한 중심가를 지닌 조용한 곳이다. 하긴 리투아니아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라는, 내가 살고 있는 카우나스의 규모로 보건대, 다른 소도시들이 어떠할지는 쉬 상상할 만하다. 리투아니아는 정말 자그마한 나라이다.

 리투아니아의 작은 도시 우크메르게.
 리투아니아의 작은 도시 우크메르게.
ⓒ 배이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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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마, 이슬언니와 함께, 전혀 번잡스럽지 않은 버스정류장에서 내려 아그네를 만났다. 중심가를 먼저 구경하고 집에 가서 밥을 먹자며 아그네는 우리를 이끌었다. 그녀를 따라 걸었다. 타운을 한 바퀴 구경하면서 아그네 집까지 갔다. 중심가라고 해서 큰 길과 상점들을 기대했는데, 그런 것들은 찾아볼 수 없는 조용한 마을이었다.

 우크메르게의 한적한 중심가
 우크메르게의 한적한 중심가
ⓒ 배이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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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방인 처음 보세요?' 쏟아지는 눈길에 당황


아그네 집까지 가는 길은 참 멀었다. 하지만 이 아이들은 버스를 타지 않고 걸었다. 내가 만난 여기 친구들은 버스를 잘 안 타고, 먼 거리도 걸어간다. 그러면서 그 거리를 '가깝다'고 말한다. 우리나라 시골 사람들 같다. 그러고 보면 리투아니아 사람들은 정말로 '시골 사람들' 같다.

카우나스에서도 사람들이 동양인인 우리가 신기하다는 듯 빤히 쳐다 봤었는데, 우크메르게에서는 그게 훨씬 심했다. 어른부터 아이까지, 남자건 여자건, 우리를 쳐다보기를 멈추지 않았다. 한 번은 버스가 우리 앞을 지나갔는데 버스 안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고개를 돌려 우리를 쳐다봤다.

심지어 어떤 사람들은 우리에게 말을 걸었다. 자전거를 타고 가던 젊은 남자가 우리에게 어디에서 왔냐고 묻기에 한국(South Korea)에서 왔다고 했더니, 왜 여기에 너희가 있는 거냐고 되물었다. 그래, 우리가 여기에 있는 것 자체가 이들에게는 굉장히 신기한 일인 것이다. 길에서 우리를 쳐다보는 남녀노소 모두가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을 것이다. 이렇게 주목받는 존재가 되다니.

카우나스는 어제부터 흐렸는데, 우크메르게 날씨는 기가 막혔다. 햇볕은 쨍쨍, 바람도 솔솔 불었다. 나는 입고 온 겉옷 두 개를 벗고 반팔 차림으로 걸었다. 드디어, 리투아니아를 반팔 차림으로 활보할 수 있는 계절이, 안 올 것 같던 계절이 왔다. 덥다.

아이스크림을 사먹으면서 걸었다. 아이스크림을 빨리 먹지 않아도 녹아내리지 않는, 딱 좋은 계절이다. 행복하다. 세계에서 자살률이 가장 높은 리투아니아에 사는 사람들도, 이 계절에만은 행복해야 할 텐데. 그래야 춥고 긴 겨울을 버티지. 간간이 아이를 데리고 나들이를 나온 부부, 일광욕을 하는 노인들을 보며 그런 생각이 들었다.

 긴 겨울을 마친 리투아니아의 풍경은 이제 온통 초록색이다.
 긴 겨울을 마친 리투아니아의 풍경은 이제 온통 초록색이다.
ⓒ 배이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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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시간여를 걸었던 것 같다. 아그네의 집에 도착했다. 집은 그리 크지 않았다. 하지만 마당에 강아지(강아지라기엔 너무 큰 성견 셰퍼드)도 키우고, 텃밭도 있고, 넓은 공간에 테이블과 의자도 있었다. 아그네 강아지 이름은 동가. 동가와 인사를 나눴다.

떠나고 싶어하는 리투아니아 사람들...쓸쓸하다

지난 학기에 아그네와 친해져 먼저 여기에 왔었던 한국인 오빠가, 아그네 집은 다 완성되지 않은 상태라고 했었는데, 이번에 내가 가 보니 집은 완성되었는데 한쪽 벽면이 자재의 포장을 뜯어내지 않은 상태였다. 아그네의 부모님은 앞으로 스웨덴에 살 계획이라고 했는데, 아마도 여기의 집을 예쁘게 완성하는 것보다 이주 계획을 세우는 데에 더 골몰하고 계신가 보다.

리투아니아는 주변국가에 비해 경제사정이 좋지 않아 자살률도 높고 국민들이 주변의 다른 나라에서 직업을 구하고 싶어한다. 마음이 뭔가 허전했다. 우리는 리투아니아 친구의 고향집에 놀러 오고 싶어 안달했지만 정작 여기 사는 사람들은 이곳을 떠나고 싶어하는 것 같았다.

아그네의 부모님은 지금 카우나스에 축제를 보러 가셨고, 늙으신 할머니가 계셨다. 아그네의 부모님은 카우나스에 가시고, 아그네는 카우나스에서 우크메르게로 오다니, 뭔가 이상하지만 어쨌든 친구 집에 갈 때는 부모님 안 계신 게 편하긴 하지. 아그네의 할머니는 친할머니가 아니라, 아흔이 넘은, 아그네의 이모할머니라고 했다.

우리는 인사를 하고, 아그네는 할머니에게 카우나스에서 친구들이 왔다고 했다. 할머니께서 내게 리투아니아 말로 말씀을 하셔서 나는 한국에서 왔고 카우나스에 있다고, 말할 수 있는 대로 리투아니아 말로 얘기를 했다. 할머니와 길게 이야기할 수 있다면 참 좋을 텐데, 아쉽다.

 아그네의 방 벽에는 한국 아이돌 가수들의 포스터가 잔뜩 붙어 있었다.
 아그네의 방 벽에는 한국 아이돌 가수들의 포스터가 잔뜩 붙어 있었다.
ⓒ 배이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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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그네 방에는 한국 아이돌 가수들의 포스터가 잔뜩 붙어 있었다. 샤이니, 인피니트, 동방신기, 유키스, 카라, 포미닛, 미스에이 등등. 이미 아그네와 라이마의 기숙사 방에서 이런 포스터들을 많이 봤기 때문에 별로 놀랍지는 않았다. 라이마의 말에 따르면 리투아니아에는 훌륭한 언더그라운드 뮤지션들이 많이 있지만 메이저 음악은 정말 별로라고 했다. 노래하면서 춤을 출 수 있는 가수도 없다고. 쇼프로그램도 별로 재미있게 만들지를 못해서 한국 프로그램들을 즐겨 본다고 라이마는 말했다.

아그네 엄마가 양념을 해 두신 고기를 바비큐로 구워 먹었다. 아그네가 밥도 했다. 리투아니아 사람들도 이렇게 고기를 먹을 때는 주로 밥을 곁들여 먹는다고 한다. 바비큐를 해먹기 위한 숯불을 피워 두고 우리는 커피를 한 잔씩 마시면서 마당의 테이블과 의자에 앉아 햇살을 즐겼다. 아그네 집에 있는 커피는 내가 여기 와서 먹은 가루커피 중 가장 맛있었다. 리투아니아 사람들은 대개 집에서, 여과기로 내려 먹도록 만들어진 커피를 물에 타서 가라앉혀 먹는다.

 바비큐를 만드는 아그네와 라이마.
 바비큐를 만드는 아그네와 라이마.
ⓒ 배이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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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아그네 집 우유는 이웃집 소한테서 얻은 산지직송 우유였다. 리투아니아에서는 도시에 사는 사람들도 산지에서 바로 우유를 배송해 먹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얼마 전에는 민다우가스가 치즈를 주면서 그 치즈를 만든 젖소 사진을 보여줬었는데…. 여기는 식품의 생산자와 소비자가 우리나라에서보다는 훨씬 가까이 있는 것 같다. 그러니 식품을 더 신뢰할 수가 있다. 카우나스에 돌아와서야 안 사실이지만 대형마트 막시마에도 농가에서 직접 가져온 식품들을 파는 코너가 따로 있었다.

 텃밭이 있는 아그네의 집 정원. 아그네 어머니의 수제 파이는 정말 맛있었다.
 텃밭이 있는 아그네의 집 정원. 아그네 어머니의 수제 파이는 정말 맛있었다.
ⓒ 류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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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그리하여 그 맛있는 커피와 함께 우리는 햇살을 즐겼다. 아그네와 라이마는 다음 학기에 한국으로 교환학생을 올 예정이다. 사정이 허락하는 한 1년을 머무를 계획이라고 하니 나도 다음 학기를 마치고 한국에 돌아가면 만날 수 있다.

서울 물가가 여기에 비하면 엄청나게 비싸서 좀 걱정이 되지만, 어쨌든 얘네가 서울에 살게 될 생각을 하니 설렌다. 자기 집에 한국 친구들을 초대하고 자기 동네의 모습을 구경시켜 준 아그네도 나와 똑같은 마음이었겠지. 내가 리투아니아에서 알게 된 친구들을 한국에서도 만날 수 있다니, 세상은 정말 넓기도 하고 좁기도 하다.

숲의 나라 리투아니아, 숲의 도시 우크메르게

배부르게 먹고 동네를 구경하러 나갔다. 아그네가 다니던 학교를 가 보았는데, 학교가 병원같이 생긴 건 우리나라나 여기나 똑같은 것 같다. 새 병원이냐 헌 병원이냐의 차이지.

 아그네는 자기가 다녔던 학교를 구경시켜 주었다.
 아그네는 자기가 다녔던 학교를 구경시켜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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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그네가 다녔던 학교 안에서 아그네, 라이마와 함께.
 아그네가 다녔던 학교 안에서 아그네, 라이마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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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그네는 숲길을 보여 줬다. 리투아니아는 숲의 나라이다. 아그네는 우리를 우크메르게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숲으로 데리고 갔다. 곧게 자란 높은 소나무들 사이 펼쳐진 풀밭에 흰색과 보라색의 꽃들이 수놓아져 있었다.

 우크메르게의 숲길은 온통 보라색 꽃으로 뒤덮여 있었다.
 우크메르게의 숲길은 온통 보라색 꽃으로 뒤덮여 있었다.
ⓒ 배이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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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메르게에는 이 곳 말고도 두 군데 더 숲이 있는데, 한 군데는 술을 마시는 젊은 남자애들이 모여드는 곳이라 좀 위험하다고 했고, 다른 한 군데의 숲은 그 근처에 유대인 거주지역이었던 곳이 있는데, 2차대전 때 유대인들이 수용소로 끌려가기 전에 대기하던 곳이라고 했다.

 우크메르게에서 가장 오래 된 교회.
 우크메르게에서 가장 오래 된 교회.
ⓒ 류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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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투아니아에서는 소련 시대에 지어졌을 법한 건축물들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사진은 아그네 어머니가 젊었을 때에 극장으로 사용되었던 건물이라고 한다.
 리투아니아에서는 소련 시대에 지어졌을 법한 건축물들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사진은 아그네 어머니가 젊었을 때에 극장으로 사용되었던 건물이라고 한다.
ⓒ 류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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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그네는 우크메르게에서 가장 오래 된 교회, 오래 된 건물들을 보여 주었다. 하루 종일 걷고 또 걸어 다리가 아플 지경이 되었다. 해가 길어 더 많이 걷게 되었던 것 같다. 들꽃을 한아름 꺾어 가지고 다리가 아플 때까지 들판을 쏘다닌 기억은 한국에 돌아가면 정말 꿈처럼 느껴지겠지. 햇살 때문에 눈이 부시던 풍경 때문에 더더욱 그럴지도 모른다.

김밥 대접에, 인피니트까지 소개해 주는 외국인 친구

아그네 집으로 돌아가서, 나도 모르게 잠이 들었다가, 깨우기에 일어나서 보니 얘네 둘이서 김밥을 만들어 놓고 있었다! 리투아니아 친구들이 한국 친구들을 위해 만든 김밥이라니. 속이 풍성한 건 아니었지만 충분히 맛있었다. 여기 사람들은 김밥을 스시라고 불러서, 김밥을 스시 먹듯이 간장에 찍어 먹는다. 그래도 아그네와 라이마는 한국문화를 굉장히 좋아하는 애들이라 김밥이 스시와 다르다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김밥을 먹고 잘 준비를 하고, 영화나 볼까 하다가 얘네가 좋아하는 인피니트 영상을 몇 개 보게 되었다. 나는 아이돌에 별로 관심이 없어서 그동안 몰랐는데, 세상에, 정말 멋있긴 멋있더라. 왜 그렇게 지구 반대편에 있는 애들까지 열광하는지 좀 알 것 같았다. 얘네가 이제 뭐 볼래? 할 때마다 인피니트 다른 걸로 보여줘!를 외치다 보니 영화를 보지 않고 인피니트 첫 번째 단독콘서트 영상을 보게 되었다.

새벽 두 시까지, 그렇게 밤새 콘서트의 열기에 빠져든 나는 아그네와 라이마가 한국에 오면 인피니트 콘서트를 같이 가기로 힘주어 약속하고 굿나잇을 외치고 잠이 들었다. 내가 리투아니아에서 리투아니아 애들한테서 한국 가수를 소개받고 열광케 되다니. 한류가 대단한 것인가 내가 이상한 것인가, 모르겠다. 리투아니아에서 정말 별별 경험을 다 한다.

다음날 아침, 일어나 보니 상이 눈앞에 와 있었다. 그래서 일어나자마자 차와 함께 라이마가 만든 팬케이크를 먹게 되었다. 얘네는 어떻게 이렇게 부지런하지? 분명히 어제 함께 지치도록 걷고 낮잠도 우리만 자고 잠자리에 든 시간도 똑같은데, 일찍 일어나서 다 씻고 아침까지 준비했다. 한 가지 느껴지는 것은 여기 사람들은 집에 친구를 초대하면 굉장히 극진하게 대접한다는 것이다. 한국에 가면 정말 잘 해줘야겠다.

돌아가기 전, 이 동네 사람들이 'mountain'이라고 부르는 낮은 언덕에 올라가서 경치를 즐겼다. 얼마나 낮냐 하면, 경주 시내에서 자주 볼 수 있는 고분 정도이다. 겨우 그 언덕이 우크메르게에서 가장 높은 지대이다. 여기 사람들에게는 산이라는 단어가 불러일으키는 이미지가 우리나라 사람들의 그것과는 다를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곳 사람들이 '산'이라고 부르는 언덕에서 내려다본 풍경. 리투아니아에는 높은 산이 없는 대신 울창한 숲이 있다.
 이곳 사람들이 '산'이라고 부르는 언덕에서 내려다본 풍경. 리투아니아에는 높은 산이 없는 대신 울창한 숲이 있다.
ⓒ 류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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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집으로 돌아왔을 때는 이미 아그네의 부모님이 카우나스에서 돌아와 계셨다. 아그네의 아버지는 우리에게는 무뚝뚝했지만 딸에게는 좋은 아버지일 것 같았다. 아그네의 어머니는 수다스럽고 밝아서 상대방까지 기분이 좋아지게 하는 부류의 사람이었다. 지금 아그네 어머니의 얼굴이 또렷하게 기억나지는 않지만, 웃는 인상이 아름다웠다는 느낌이 든다. 어머니는 나에게 이것저것, 내가 못 알아듣는데도 신나게 이야기를 하셨다.

그리고 그 중 내가 알아들을 수 있는 딱 한 가지! 카우나스가 마음에 드는지를 물으셨다. 나는 짧은 리투아니아 말로 카우나스가 좋다고 말했다. 우리가 떠날 때에도 어머니는 우리를 한 번씩 포옹하고 볼키스를 하고 "셰크메스!(Sėkmės, '행운을 빈다'는 뜻)"라고 해 주셨다. 이제 아마도 이 곳을 다시 올 기회는 없을 것이다. 등 뒤에 남기고 온 작은 마을 우크메르게가 마음 속에 아그네 어머니의 포옹처럼 따듯하게 남을 것 같다.

덧붙이는 글 | 기자는 교환학생으로 리투아니아 카우나스에서 거주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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