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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의원이 있으면, 그의 곁에는 항상 보좌관이 있다. 의원의 의정활동 상당 부분에 보좌진의 손길이 미쳐야만 한다. 그러나 늘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건 가슴팍에 배지를 단 의원뿐이다. 그렇다면, 늘 그림자처럼 뒤를 지키는 보좌진들의 생활은 어떨까. 밤을 새워 일해 국회의원을 빛나게 하지만, 평생 '4년짜리 비정규직'을 벗어날 수 없는 보좌진들의 정치 역정 스토리를 들어보자. [편집자말]
 조세정책 전문가 이상민 비서관. 이 비서관이 최근 내놓은 숨은 세원 찾기 시리즈는 정부가 실제 정책에 반영할 정도로 호평을 받았다. 하지만 언론에 잘 보도되지 않는다. 그가 어렵게 만든 자료들은 많은 기사에 출처 없이 떠돌고 있다. 김재연 의원이 1년 전 통합진보당 비례대표 부정경선 논란으로 대중과 언론으로부터 미운털이 박혔기 때문이다. 하지만 김재연 의원실로 자리를 옮긴 것은 전적으로 이 비서관의 결정이었다.
 조세정책 전문가 이상민 비서관. 이 비서관이 최근 내놓은 숨은 세원 찾기 시리즈는 정부가 실제 정책에 반영할 정도로 호평을 받았다. 하지만 언론에 잘 보도되지 않는다. 그가 어렵게 만든 자료들은 많은 기사에 출처 없이 떠돌고 있다. 김재연 의원이 1년 전 통합진보당 비례대표 부정경선 논란으로 대중과 언론으로부터 미운털이 박혔기 때문이다. 하지만 김재연 의원실로 자리를 옮긴 것은 전적으로 이 비서관의 결정이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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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사를 재밌게 짓고 있는데, 참여연대 선배로부터 연락이 왔어요. '여의도 갈래?'라고 묻더라고요. 제 첫 마디는 '미쳤어요?'였어요. 그 선배가 '이정희 의원실 보좌관인데…'라고 하니, 마음이 흔들렸어요. 그때 만해도 이정희 통합진보당 대표는 '진보의 아이유'라고 불렸잖아요. 고민 끝에 보좌관이 됐죠."

이상민 비서관(38, 통합진보당 김재연 의원실)은 담담히 2010년 국회 입성기를 털어놓았다. 당시 이정희 의원실에서 참여연대 쪽에 조세정책 전문가 섭외를 요청했고, 참여연대 조세개혁센터·경제개혁센터에서 활동한 이상민 비서관에게 연락이 닿은 것이다. 이로써 이 비서관은 일반 회사 →참여연대→농사에 이어 4번째 직업을 가지게 됐다.

국회 이정희 의원실로 출근한 이상민 비서관은 "2012년 18대 국회가 끝나고 다시 농촌으로 돌아가겠다"고 했다. 농사꾼이 국회의원 보좌관으로 적응하는 시간도 만만치 않을 텐데, 다시 돌아갈 계획부터 세운 것이다. 이 비서관은 "일하는 환경이 좋았다, 참여연대와 비교해 자료접근권이 좋았다"면서 "그날 점심 때 떠오른 아이디어로 그날 법을 만들었다"고도 했다.

그의 호언은 빈말이 아니었다. 18대 국회에서 사상 최초로 통과된 일감 몰아주기 과세 법안(상속세·증여세법 개정안)은 이상민 비서관이 만들어낸 것이다. 그가 이정희 의원과 함께 낸 법안이 정부안과 묶여 입법화된 것이다. 앞서 그가 실무를 맡았던 참여연대 경제개혁센터가 2005년 처음으로 일감 몰아주기에 대한 개념을 세웠다는 것을 감안하면, 이 비서관이 일감 몰아주기 과세 법안의 산파 역할을 한 셈이다.

이 비서관이 최근 내놓은 숨은 세원 찾기 시리즈 역시 정부가 이를 받아 실제 정책에 반영할 정도로 호평을 받았다. 하지만 언론에 잘 보도되지 않는다. 그가 어렵게 만든 자료들은 많은 기사에 출처 없이 떠돌고 있다. 김재연 의원이 1년 전 통합진보당 비례대표 부정경선 논란으로 대중과 언론으로부터 미운털이 박혔기 때문이다. 하지만 김재연 의원실로 자리를 옮긴 것은 전적으로 이 비서관의 결정이었다.

지인들이 그를 말렸다. 이 비서관은 "청년비례대표 경선에서 뽑힌 김재연 의원은 억울한 면이 있다"며 "이를 정책으로 극복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국회 내에서부터 반응이 나오고 있다. 대표적인 정책 보좌관으로 평가 받는 손낙구 보좌관(민주당 최원식 의원실)이 말했다. "김재연 의원실에 선수가 있다"고. 9일 오후 '선수' 이 비서관과 마주 앉았다.

[좌충우돌① : 참여연대 간사→농사꾼] "보슬보슬한 흙 만지면 기분 좋아요"

이상민 비서관의 인생항로는 '좌충우돌'이다. 그가 잡은 전공서적만 해도 정치학과 기초·응용과학을 넘나든다. 일반 회사를 다니다 96학번으로 한 대학의 생물학과에 입학했다. 화학 학사학위를 땄다. 미국으로 건너가 식품영양학을 공부하다가, 중도에 귀국했다. 국내에선 NGO대학원에 다녔다. 지금 하는 일은 경제 영역이다. "꼬였다"는 기자의 말에 그는 "후회하지 않는다, 사고에 큰 도움이 된다"며 너털웃음을 지었다.

시민운동의 꿈을 가지고 있던 이 비서관은 2004년 참여연대에 들어갔다. 반부패 사업을 하는 투명사업팀에 배치됐다가 곧 다른 팀으로 옮겼다. 이 비서관은 "부패 감수성이 없다는 이유로 쫓겨났다"고 웃음을 지었다. 자리를 옮긴 곳은 경제개혁센터·조세개혁센터였다. 이 비서관은 "인생의 큰 행운"이라고 했다. '재벌 저격수' 김상조 한성대 교수를 필두로 한 쟁쟁한 멤버들과 한 팀이 돼, 일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때 처음으로 참여연대에서 일감 몰아주기에 대한 문제제기가 나왔다. 이 비서관은 "참여연대는 일감 몰아주기를 의제화 했다는 차원을 뛰어넘어, 무에서 유를 만들었다"며 뿌듯함을 나타냈다. 이 비서관은 삼성 같은 재벌·대기업과 대립 각을 세웠다. 2007년 김용철 변호사가 삼성 비자금을 폭로할 때, 시민사회단체와 정의구현사제단 등이 만든 공동대책위원회 실무를 맡았다. 2008년 촛불시위 때 광우병 대책위 상황실장이었던 박원석 진보정의당 의원의 도피를 도운 혐의로 기소돼, 수백만 원의 벌금을 내기도 했다.

이 비서관은 2009년 갑작스레 참여연대에 사표를 제출했다. 그는 "당초 세법과 회계 공부를 더 하기 위해 참여연대를 나왔지만, 공부하다가 갑작스럽게 농사 아이디어가 떠올랐다"고 말했다. 그는 경기도 용인시에 1만6500㎡(5000평) 크기의 땅과 20개가 넘는 하우스시설을 빌렸다. 동업자와 5000만 원씩 투자했다.

농사꾼으로 진로를 바꾼 이유가 궁금했다. 그는 "농사로 돈을 벌 수 있는 아이디어가 떠올랐다"면서 "주말농장을 분양한 뒤, 분양받은 사람들이 게임을 하듯이 주말농장을 운영할 수 있도록 하는 사업을 구상했다"고 말했다. 이 비서관은 '리얼팜'이라고 이름붙인 이 사업을 위한 준비 작업으로 상추 농사를 직접 하기로 결정했다.

"하루 상추 100박스를 중간업자에게 납품했다. 4kg짜리 1박스가 8000원이면, 월급쟁이 벌이 정도는 됐다. 하지만 3000원까지 내려가 하루에 수백만 원의 손해를 볼 때가 있다. 반대로 7만 원까지 올라가면, 하루에 1000만 원이 넘는 돈을 번다. 상추 가격은 주가보다 더한 '롤러코스터'였다. 그래도 농사를 짓는 게 재밌었다. 밭을 갈아, 보슬보슬한 부드러운 흙을 만지면, 기분이 좋았다."

[좌충우돌② : 농사꾼→국회 보좌관] "MB 최대 치적은 이정희 의원실에서"

 이상민 비서관은 "청년비례대표 경선에서 뽑힌 김재연 의원은 억울한 면이 있다"며 "이를 정책으로 극복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상민 비서관은 "청년비례대표 경선에서 뽑힌 김재연 의원은 억울한 면이 있다"며 "이를 정책으로 극복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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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다시 이 비서관의 직업은 바뀐다. 국회의원 보좌관이다. 당시 민주노동당 의원이었던 이정희 통합진보당 대표가 상임위를 기획재정위원회로 옮겨, 조세전문가를 필요로 하던 참이었다. 농사꾼 이 비서관은 추천을 받아 국회에 입성했다. 그는 의원실의 첫 인상은 '낯이 익다'는 거였다. "참여연대에서 하는 일과 비슷했다, 참여연대에서 사용했던 보고서 양식을 그대로 가져왔다"고 말했다.

이 비서관은 금세 국회에 적응했다. 그는 "참여연대에서 법안 하나 만들려면 한두 달은 족히 걸린다, 토론회도 열고 국회의원을 섭외한 뒤 보고서도 써야 한다"면서 "하지만 국회에서는 그날 떠오른 아이디어를 그날 발의할 수 있다"고 전했다. 이명박 정부가 최대 치적이라고 강조하는 3대 금융안전망 중 하나인 김치본드(국내에서 발행되는 외화 표시 채권) 과세가 바로 이 비서관의 밥상머리 아이디어에서 출발한 것이다.

2011년 이슬람 채권에도 비과세 혜택을 주자는 '스쿠크법'을 두고 논란이 일자, 이 비서관은 '외화 표시 채권은 왜 비과세일까'라는 의문을 품었다. 기획재정부 국제금융국에 전화했지만 '잘 모르겠다, 세제실로 연락해보라'는 답을 받았다. 세제실 역시 '모르겠다'며 국제금융국에 미뤘다. 이 비서관은 그제야 '정부가 잘 몰라서, 바로잡지 못했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이정희 대표와는 구체적인 것을 좋아한다는 면에서 통했어요. 18대 국회에서 이슈화됐던 부자증세나 버핏세 있잖아요? 다들 정치적인 수사로서만 주장했어요. 하지만 우리는 정확하게 법조문 형태로 정의를 내리고, 구체적인 시뮬레이션을 만들어봤어요. 수백 쪽에 이르는 입법·정책보고서에 나온 거의 모든 숫자는 제가 직접 엑셀을 통해 만든 거예요."

이 비서관은 2012년 4·11 총선을 한 달가량 앞두고 거대한 소용돌이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그는 이정희 대표의 선거 운동을 돕기 위해 서울 관악을 지역구에 내려갔다. 하지만 이 대표는 '여론조작 문제메시지' 파문으로 총선 후보직에서 사퇴했다. 그는 "굉장히 깜짝 놀랐다, 변명의 여지없이 잘못한 것"이라고 했다. 이어 야권단일후보가 된 이상규 의원의 정책을 나 홀로 맡았다.

그해 5월 통합진보당 부정경선 사태와 그를 둘러싼 계파 갈등과 일방적인 언론보도는 그에게 큰 충격을 줬다. 그는 "가슴이 너무 아팠다, 계파 갈등에 대한 이정희 대표의 인간적인 고뇌를 보며 많은 것을 느꼈다"고 했다. 국회를 떠나기로 결심했다. "정치판에 대한 오만 정이 다 떨어졌다"며 "다시 민족해방(NL) 계열 쪽에서 일하면 '너를 다시는 안보겠다'는 얘기가 나왔다, 많은 선후배를 등지고 살 자신이 없었다"고 말했다.

국회를 떠날 날만 기다리고 있을 때, 김제남 의원이 보좌관 제의를 해왔다. 김 의원은 "우리는 중간 지대에 있는 사람이다, NL과 PD(민중민주) 어느 쪽에도 속하지 않는 시민사회 출신들이 이 상황을 수습해야 한다"고 설득했고, 이 비서관은 고개를 끄덕였다.

[좌충우돌③ : 분당 뒤 김재연 의원실로] "인간 관계 끊기는 것 알면서도..."

2012년 9월 통합진보당이 분당되면서, 그는 다시 기로에 섰다. 이 비서관은 1월 김재연 의원실로 자리를 옮겼다. "아는 사람들이 모두 진보정의당 쪽이다, 김재연 의원실로 간다고 하니 '우려스럽다', '안 그럴 사람이 도대체 왜 그러느냐'라는 얘기까지 나왔다"면서 "기존의 인간관계가 대부분 끊기는 것을 알면서도 결단을 내렸다"고 밝혔다.

왜일까? 이 비서관은 "김재연 의원은 부정으로 점철된 비례대표 경선이 아니라, 청년 비례대표 경선으로 국회의원이 된 것이다, 김재연 의원은 억울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정책을 통해 이런 상황을 타개하는 데 도움을 주고 싶었다, 김 의원이 똑똑하다는 얘기를 듣게 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김 의원이 이 비서관이 잘 아는 기획재정위원회 소속이라는 것도 중요한 이유였다.

이 비서관은 1월 출근하자마자 숨은 세원 찾기 시리즈를 내놓았다. 이는 김재연 의원에 대한 재평가 목소리를 이끌어냈다. 특히, 공무원 급여 중 보조비에 대해 과세를 해야 한다는 주장은 정부의 긍정적인 검토로 이어졌다. 연 4500억 원의 세수효과가 기대된다. 또한 차명계좌 소유권을 인정하지 않음으로써, 불법차명거래를 규제하는 방법은 혁신적으로 아이디어로 평가받고 있다.

이 비서관은 "부가가치세를 소비세로 바꾸는 세제 개편 작업에 집중한 뒤, 19대 국회가 끝나기 전에 농사를 짓겠다"고 말했다. 농사를 짓기 위해 국회를 떠나겠다는 생각은 이미 두 차례나 좌절됐다. 그는 "조금 미뤄졌을 뿐"이라고 말했다. 이 비서관은 이번에는 국회를 떠나 농사를 짓겠다는 꿈을 이룰 수 있을까?

"반나절 만에 법 만들어... 배울 점 많다"
김재연 통합진보당 의원이 보는 이상민 비서관은?


 김재연 통합진보당 의원
 김재연 통합진보당 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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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떻게 이상민 비서관과 일하게 됐나?

"이 비서관은 18대 국회에서 이정희 의원실에서 일하면서 조세정책 전문가로 이름을 날렸다. 실력 있는 보좌관이라는 소문이 당내뿐만 아니라 국회, 시민사회에 퍼졌다. 당 총선 공약 중 조세정책을 만든 것도 이 비서관이다. 기획재정위원회에 배정되면서 제일 먼저 떠오른 사람이 이 비서관이었다."

- 이 비서관과 함께 일해 보니 어떤가?
"아이디어가 너무 많다. 1월 2일부터 의원실에 출근했는데, 곧 바로 숨은 세원 찾기 아이디어를 내고 보도자료를 만들었다. 반나절 만에 법안을 만드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지난 6일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어린이 주식갑부 관련 얘기를 듣고 와서는 아침 회의 때 이들에게 증여세를 부과하는 법을 만들겠다고 했다. 결국 점심 전에 법안을 만들었다. 대충 만든 것도 아니었다. 치열하게 생각하고 일하면서 자기관리에도 철저한 이 비서관은 참 배울 게 많은 사람이다."

- 이 비서관이 낸 아이디어가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이 비서관이 낸 아이디어를 기획재정위 회의 때 얘기하면, 반응이 좋다. 새누리당 의원이나 정부 관계자들도 좋은 의견이라고 한다. 관련 토론회를 열었을 때 한 새누리당 의원은 자기 보좌관도 이 비서관과 친했으면 좋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 국회의원과 보좌관은 어떤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고 생각하나?
"의원과 보좌진이 갑을 관계에 머무르면 신뢰를 바탕으로 일할 수 없다. 치열한 여의도 정치판에서 계약 만료됐다거나 수 틀린다는 이유로 헤어진다면 어찌 전투를 벌일 수 있겠나. 또한 의원이 자동차 문 하나 까딱하지 않는 여의도 정치의 관습에서 탈피해야 한다. 의원은 보좌관을 '나를 만들어주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야 한다. 고마운 마음을 가져야 한다. 동지적 관계가 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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