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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당진 송악읍 현대제철 당진제철소 내 열연공장. 10일 당진제철소 내 한 전로에서 하청 노동자 5명이 질식사했다.
 충남 당진 송악읍 현대제철 당진제철소 내 열연공장. 10일 당진제철소 내 한 전로에서 하청 노동자 5명이 질식사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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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일 충격적인 뉴스를 접했습니다. 많은 분들이 윤창중 성추행 사건에 경악을 금치 못하시는 동안 저는 소위 '윤창중 사건'이 블랙홀처럼 빨아들인 여러 소식들 중 현대제철 노동자 5인 사망 소식에서 눈을 뗄 수 없었습니다.

11년 전인 2002년, 저는 대학 등록금을 벌고자 충남 당진에 있는 당시 한보철강, 지금의 현대제철 당진공장에서 일주일간 일을 했습니다. 당시 인천에 살던 저는 방학 동안 등록금을 마련하기 위해 소위 일당이 높은 '노가다' 자리를 구하려 동네 한 용역 사무소를 찾았고, 그곳에서 처음 보는 형님들과 한 조가 되어 인천에서 멀리 떨어진 충남 당진까지 파견됐습니다.

일주일간 진행된 작업은 주야를 가리지 않았고, 가동이 중지된 용광로 안으로 들어가 작업하는 일도 계속됐습니다. 제공된 것이라고는 빨간 고무 처리가 된 목장갑이 전부였고, 한 번 작업하고 나면 용광로에 남아 있는 열기에 장갑의 빨간 고무 부분이 찐득하게 녹아버리는 일이 비일비재했습니다.

새벽까지 이어지는 작업에 주린 배를 형님들이 주는 빵과 우유로 달래며 잠깐씩 교대로 쪽잠을 자는 생활을 일주일간 계속했고, 당시 돈으로 60여만 원을 손에 쥘 수 있었습니다. 그때 가장 힘들었던 것이 수시로 진행된 야근 때문에 쏟아지는 졸음과 용광로 안에 들어갔다 나오기만 하면 한동안 지속됐던 몽롱함이 겹쳐 맨 정신을 유지하기 어려웠다는 점이었습니다.

이번에 돌아가신 다섯 분을 살펴보니 모두 현대제철에 직고용된 분들이 아닌 하청업체 분들이었습니다. 그래서인지 그분들의 집은 당진에서 한참 먼 포항 등 외지였습니다. 안전 장비 역시 제대로 지급되지 않아 위험한 조건 속에서 작업이 진행되었습니다. 또한 사망 시간 역시 새벽 1시 45분으로 야간작업 중이었습니다.

11년 전 내가 일하던 그곳... 안타깝게 죽은 5명의 하청노동자

지난해 11월 21일, 민주노총 충남지역본부와 플랜트노조 충남지부가 현대제철 공사현장에서 일어난 사고현황을 설명하고 특별근로감독을 요구하고 있다.
 지난해 11월 21일, 민주노총 충남지역본부와 플랜트노조 충남지부가 현대제철 공사현장에서 일어난 사고현황을 설명하고 특별근로감독을 요구하고 있다.
ⓒ 심규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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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를 한 줄 한 줄 읽어 내려갈 때마다 저는 가슴 한 쪽이 콱 막히는 기분을 느끼며 '이것은 사고가 아니다. 명백한 살인이다'라고 중얼거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사실 현장에서 일하시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현장은 정해진 규정을 지킬 조건을 제공하지 않습니다. 노동자들이 부주의해서 사고가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사고의 개연성이 있는 곳으로 노동자들을 밀어 넣어버리는 상황이 '사고'라는 탈을 쓴 '살인'을 일으키는 것입니다.

이 사고 아니, 살인의 표면적 원인이야 복잡하지 않습니다. 작업 규정을 지키지 않은 하청 노동자들이 무리한 야간작업을 진행하다 철수하기 전, 이유를 알 수 없는 아르곤 가스가 투입된 것이 원인이 되어 사망에 이른, 그저 안타까운 사건에 그치는 것입니다.

'늘 그래왔듯이' 원청업체는 하청업체 직원들이라며 책임을 회피하겠고, 하청업체 측도 원론적 사과 표명을 하며 기껏해야 벌금 몇 푼 내고, 유족 측에 보상금 쥐여주며 마무리하려 할 것입니다. 이렇게 명백한 살인사건은 한낱 사고로 그치고, 노동자들의 죽음은 어딘가에서 계속될 것입니다.

실제 현재의 산업안전보건법에서는 하청 비정규 노동자에 대한 화학물질 정보 제공 및 안전교육, 보호구 지급, 산업안전보건위원회 등이 발주처와 원청업체의 책임으로 명확히 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리고 원청업체인 현대제철은 수 년간 벌어진 사고와 관련하여 단 한건의 사법처리도 받은 적이 없습니다. 유해위험 현장은 하청업체에서 맡고 있고, 안전사고에 대한 책임도 하청업체가 고스란히 짊어지는 구조가 이런 결과를 낳았습니다.

지난해 9월 5일 현대제철에서 철 구조물 해체 작업을 하던 홍아무개(50)씨가 구조물이 쓰러지는 과정에서 숨졌지만 경찰과 검찰은 하청업체의 담당자를 업무상 과실치사 등 혐의로 불구속 기소하는 선에서 사건을 마무리했습니다.

1개월 뒤인 10월 9일 크레인 전원 공급 변경을 위해 빔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던 김아무개(43)씨가 고압 트롤리바에 감전되면서 10m 아래로 추락해 숨졌고, 같은 달 25일 이아무개(56)씨가 기계 설치 작업 중 4m 아래로 떨어져 의식불명에 빠졌지만 경찰과 검찰은 이들 사건 역시 현대제철은 가만히 둔 채 하청업체 담당직원만 불구속 기소하는 데 그쳤습니다.

지난해 7명 사망... 현대제철은 멀쩡, 하청업체만 솜방망이 처벌

국내 최대 석유화학산업단지인 여수산단 내 대림산업 HDPE 여수공장 저장조(싸일로). 지난 3월 14일 이곳에서 하청 노동자 6명의 목숨을 앗아간 폭발사고가 일어났다.
 국내 최대 석유화학산업단지인 여수산단 내 대림산업 HDPE 여수공장 저장조(싸일로). 지난 3월 14일 이곳에서 하청 노동자 6명의 목숨을 앗아간 폭발사고가 일어났다.
ⓒ 심명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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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가 생기면 해결을 해야지 봉합해서는 안 됩니다. 봉합된 문제는 변형되어 반드시 다시 터지기 마련입니다. 그럴 듯한 표면적 원인만 주절대며 사건을 봉합해온 것이 지금의 현대제철 사고를 만들었습니다.

실제 현대제철에서는 수 년간 30여 명의 노동자가 죽거나 다쳤으며, 지난해에만 추락, 감전사 등으로 7명의 노동자가 사망했고, 2010년에도 가스누출 사고로 23명의 사상자가 발생했습니다. 심지어 이번 사고가 발생한 것은 잇따른 사고를 예방하겠다며 지난달 고용노동부 천안지청이 현대제철에 대한 특별근로감독을 2주간이나 실시한 뒤였습니다. 진짜 원인을 놔두고 죽은 자식 불알 만지듯 봉합만 하니 자꾸 문제가 재발하는 것입니다.

박근혜 정부가 공언한 '안전한 대한민국'은 잇따라 발생하고 있는 산업재해들로 인하여, 이미 그 처방이 잘못된 것으로 증명되었습니다. 고용노동부는 현대제철에 대한 근로감독을 2주간이나 실시했음에도 사고를 예방하지 못했고, 삼성에서 수천 건의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을 적발했다고 성과를 내세웠음에도 이를 비웃듯 삼성에서는 불산 누출 사건이 재발했습니다.

이번 사건의 근본 원인은 산업안전보건법의 상위법인 기업활동 규제완화에 관한 특별조치법 개정 이후 안전에 관한 기업규제가 완화된 데 있습니다. 관련 법안들이 국회에서 누더기가 된 이후, 여수 폭발 사고 등 산업 현장들에서 각종 대형 사고가 벌어지는 주기가 점차 짧아지고 있는 것입니다.

산업안전보건법은 산재사망에 대한 책임을 사업주만 지도록 하고 있기 때문에 하청노동자가 숨지면 하청사업주만 책임을 지게 됩니다. 지난 정부 말 완화된 기업의 각종 규제는 노동자들의 안전에 관한 규정들을 기업의 자율적 관리에 맡기도록 하였습니다.

개정된 산업안전보건법은 13종의 유해물질이 포함된 유해, 위험 작업에 대해서는 하도급을 금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하도급 금지 유해물질 13종이 결정된 이후 유해물질 대상을 확대하기 위한 회의는 단 한 번도 열리지 않았고, 최근 문제가 된 불산 등도 여전히 유해물질 대상에서 빠져 있는 상태입니다.

우리는 갑도 을도 아닙니다... 바로 '사람'입니다

지난 1월 29일 삼성전자 화성사업장 반도체 생산라인 불산 누출사고로 협력업체 직원 1명이 사망하고 4명이 부상당한 가운데, 29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한강성심병원에서 부상자들이 병실로 들어가고 있다.
▲ 치료받는 삼성전자 불산누출사고 피해자들 지난 1월 29일 삼성전자 화성사업장 반도체 생산라인 불산 누출사고로 협력업체 직원 1명이 사망하고 4명이 부상당한 가운데, 29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한강성심병원에서 부상자들이 병실로 들어가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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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갑을관계' 노사구조라는 본질적 원인에 손대지 않고서는 잇따라 터지는 산업재해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 원래 노사관계야 갑을관계라고는 하지만 지금 우리나라 고용구조는 갑을관계를 넘어 하청이다, 파견이다, 계약직이다 하며 '갑을병정'으로 줄줄이 이어지는 비틀리고 왜곡된 종속적 노예 관계를 형성하고 있습니다. 갑의 입장에서 을은 같은 사람이 아닌 철저히 돈으로 환산되는, 마지막 한 방울까지 짜내야 할 한낱 대상에 불과하기 마련입니다.

비단 현대제철 사고뿐만이 아닙니다. 한국 사회를 거대하게 잠식하고 있는 갑을병정의 치명적 계급 질서는 사회 곳곳에 미필적 고의임이 분명한 각종 사고를 뇌관처럼 심어놓은 채 줄줄이 터질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얼마 전 화제가 된 대한항공 승무원 라면 폭행 사태, 남양유업 '밀어내기' 사태, 경주빵 사장 폭행 사태 등은 결국 같은 인간임에도 갑의 위치에 선 권력자들이 을에 위치한 노동자를 전혀 다른 계급의 몸종 정도로 대한 것에 원인이 있습니다.

이 같은 전근대적 갑을병정 질서를 걷어내기 위해서는 결국 일하는 사람들 스스로가 힘을 모으는 방법밖에 없습니다. 선한 누군가가 갑의 위치로 올라선들 이 구조는 해결될 수 없습니다. 남에게 의존하는 순간 그 운명은 저당잡히기 마련이라는 것이 역사의 진리입니다.

그런 면에서 학교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전국적 노동조합 결성과 투쟁은 구조적 질서를 해체할 수 있는 하나의 희망을 보여주는 일입니다. 일하는 사람들 스스로 단합된 힘을 모을 때 갑의 위치에 선 사람들은 결국 무너지고 일하는 사람들 스스로가 주인의 권한을 행사할 수 있다는 소중한 경험을 우리에게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11년 전, 당시 당진의 한보철강에서 같이 일하던 형님과 나눈 대화가 가슴에 남습니다.

"형님, 이렇게 형편없는 조건에서 일하는데 노동조합 같은 거 필요하지 않아?"
"내가 전에 다니던 직장에서 노동조합 가입했다가 잘려서 이렇게 노가다 뛰고 있는 거여. 조합 얘기는 하지도 말어."

지금도 그 형님의 대답이 잊혀지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때 미처 더하지 못했던 답이 아직도 가슴에 남아 있습니다.

"형님, 우리 같은 사람들이 노조 안 하면 우리 자식들도 이렇게 계속 일하게 될 거 아냐. 힘들어도 우리 때 해야 되지 않어?"

돌아가신 현대제철 노동자 다섯 분의 명복을 빕니다.


태그:#현대제철, #비정규직, #노동자, #파견직, #산업재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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