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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 행복시대? 나는 행복이니 사랑이니 하는 듣기 좋은 말로 백성을 현혹하는 정치인을 믿지 않는다. 유사 이래 다수 만 백성이 행복을 누렸던 나라가 없었고 그런 나라일수록 백성을 위한다는 정치인들의 요설만 장황했던 역사를 알고 있기 때문이다.

정치는 법으로 백성을 휘어잡는 것도 아니다. 거짓으로 불안감을 조성하여 백성의 입을 막는 것도 아니다. 정치는 권력과 재력을 가진자는 '갑'이요 가난한 백성은 우매한 '을'로 취급하는 나라를 만드는 일도 아니다. 그런데 밖으로 눈을 돌리면 보고 싶지 않은 것만 보인다.

첨예한 남북대립을 조장하는 안보불안, 재벌 손자들의 주식보유, 권력자들의 성추문, 물가불안, 사회불안 등 듣고 싶지 않은 소리만 들리고 글로 표현하기 어려운 추악한 냄새만이 진동한다. 특히 정치를 보면 천박한 군상들이 벌이는 야바위판밖에 떠오르지 않는다. 그러나 어쩌랴, 그것이 내 나라의 현실인 것을.

텃밭의 일부에는 마늘과 완두콩 양파가 자라고 있다. 
우리 가족이 자급자족가능한 양이다.
▲ 마늘과 완두콩밭 텃밭의 일부에는 마늘과 완두콩 양파가 자라고 있다. 우리 가족이 자급자족가능한 양이다.
ⓒ 홍광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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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자족의 길을 찾는다. 텃밭을 뒤집고 시앗을 심는 일도 그런 노력의 한 가지일 것이다. 농사를 시작하면서 가급적 텃밭에 심는 작물의 씨앗은 자급하겠다는 나름의 원칙을 세웠던 터였다. 그래서 마을의 기후와 토양에 적합한 종자를 구해 심으려고 애를 썼다. 

하지만 그런 원칙을 모든 농사에 적용하기는 어려웠다. 원하는 종자도 많지 않거니와 설사 종자를 구한다고 해도 겨우 수박 참외 가지 등 텃밭에 심을 대여섯 주의 모종을 만들기 위해 비닐하우스 안에 보온용 이중 터널을 만들기가 쉽지 않았고 그런 시설비와 모판을 관리하는 수고를 따지면 모종을 사서 심는 편이 훨씬 경제적이라는 판단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금년에도 고구마와 야콘 모종을 만드는 일은 스스로 했지만 고추 가지 수박 참외 토마토 등의 모종은 구입하여 심기로 했다. 고추는 마을 박영감댁에서 205주의 모종을 사서 심었다. 비닐하우스 안에 80주를, 노지에 125주를 심었는데 이는 지난해와 같은 양이다. 고추는 모종당 200원씩 계산하여 4만 원에 구입하였다.

지난 5월 4일 야콘을 옮겨 심고 5일에는 고추를 그리고 6일에는 가지 토마토 등 채소류를대여섯 주씩 사서 심었는데 2만 3천원이 들었다. 그밖에 생강 종자가 얼어버리는 바람에 1만 원 어치를 사왔고 상추 등 각종 잎채소 종류의 씨앗 구입에 2만 여원 정도 썼으니 여름철 우리 밥상을 지켜줄 찬거리 마련을 위한 농사에 투자한 현금은 9만 3천원이 되는 셈이다.

세상의 모든 일이 그렇지만 텃밭 농사라고 투자 없이 되는 일은 아니다. 그러나 텃밭 농사는 다른 투자에 비해 종자대가 많이 드는 편은 아니지만 그것을 가꾸는 노동력이 많이 든다는 사실이다. 그럼에도 우리 사회는 농민의 노동력에 대한 가치는 제대로 평가해주지 않는 실정이다. 물론 초기 투자비용이라고 할 수 있는 지대를 고려해주지도 않는다. 또한 흉작으로 가격이 오를 만하면 정부는 서민 생활안정을 이유로 불안한 외국산 농산물을 수입하여 국내산 농산물 가격을 낮추고, 풍작에는 방치하여 농민들을 죽이는 짓을 되풀이 하였다.   

노동의 가치를 제대로 인정해주지 않는 농업정책은 결국 우리 농업을 죽이는 결과를 가져온 것이다. 우리 농업의 사양화는 우리 시장에서 값싼 수입농산물의 비중을 높이는 바람에 우리 젊은 농민들은 농촌을 떠났고 농촌은 고령화되었다. 농촌의 고령화는 노동력의 부족으로 이어져 필연적으로 우리 농산물의 생산 감소할 수밖에 없었고 그래서 다시 외국 농산물 수입증가라는 악순환이 계속되는 것이다.

         지난 5일 모종을 심은 고추밭.
▲ 고추밭 지난 5일 모종을 심은 고추밭.
ⓒ 홍광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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텃밭 농사를 시작한 지 7년째. 우리의 텃밭 농사는 건강을 지키는 일과 놀이이면서 불안한 수입 농산물이 판치는 세상에서 최소한 깨끗하고 안전한 농산물이라도 먹자는 생각, 그럼으로써 최소한 우리가 먹는 것만큼이라도 농산물의 수입을 줄이고 싶다는 소박한 생각의 실천이다.

또 수입 농산물의 농산물가격도 들썩여 물가 불안이 예상되는 즈음에 최소한 미래를 위한 대비책이기도 하다. 아마 이상기후로 인한 급격한 천재지변이 없는 한 금년 여름 우리는 필요한 각종 채소를 비롯한 마늘 완두콩 양파 감자 생강 고구마 야콘 등 기본적인 양념과 부식을 자급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아직까지 지난해 가을 비닐하우스 안에 심은 채소를 먹는 중이다. 쑥갓은 동이 올라 꽃을 피웠지만 상추 비트 신선초는 먹을 만하다. 숙지원 주변을 돌아다니면 돌나물 머위 미나리를 우리 세 식구가 매일 먹기에 부족하지 않을 만큼 구할 수 있다. 곧 뒷밭에 심은 채소들이 자라고 풋고추로 입맛을 돋울 수 있을 것이다. 한 달쯤 있으면 가지와 오이도 선을 보일 것이다.

짧은 이야기 한 토막. 이발을 하면 하루가 행복하고, 말(혹은 자동차)을 사면 1개월이 행복하고, 결혼을 하면 1개월이 행복하고, 나무를 심으면 평생 행복해진다는 말이 있다. 텃밭 농사는 1년을 기다리는 일이다. 그것이 꼭 행복이라고는 우기지 않겠다. 그러나 텃밭 농사로 불행해지는 경우는 많지 않을 것으로 본다.

때문에 욕심 없이 1년을 즐겁고 보람 있게 보내고자 한다면 텃밭농사를 선택해 볼일이다.
토지 사용 비용, 각종 농구 및 농자재 구입비용과 감가상각비 등을 구차하게 꼼꼼히 따지지 않고, 하루 노동을 일과 놀이라는 생각을 한다면 하면서 텃밭농사만큼 조용히 재미를 느낄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을 것으로 생각한다.

멀칭용 비닐이나 고추 지주대 등은 전에 구입한 것을 썼으니 아마 금년도 투자비용(?)은 적을 수 있다. 그렇지만 9만 3천원을 들여 보람찬 1년을 준비할 수 있는 일이 또 무엇이 있을까? 텃밭 농사는 멧돼지가 고구마를 먹지 않는다면 병이 많은 고추가 조금 오래 버텨준다면 기대하지 않았던 수확의 기쁨까지 맛볼 수 있는 일이다.

       숙지원에 핀 철쭉의 일부.
▲ 철쭉 숙지원에 핀 철쭉의 일부.
ⓒ 홍광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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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성이 행복한 세상은 정치인의 호언장담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정부는 모든 국민이 행복한 나라라는 거창한 명분을 들이대며 백성을 우롱하지 말고 또 말로만 민생을 외칠 것이 아니라 우선 뛰는 물가라도 잡아주었으면 싶다. 제발 백성들이 다리 뻗고 나물밥에 물 마시면서도 마음 편안하게 살도록 두었으면 싶다.

더 이상 감시하고 간섭하고 억압하고 강요하는 일도 그쳤으면 싶다. 아무리 가난하고 힘없는 백성 '을'도 행복하게 살 권리는 있다. 하지만 금방 말을 바꾸는 거짓정부나 탐욕만 가득한 대기업이 만들어주는 행복을 기대할 수 없는 나라, 이웃이 지켜주는 행복을 기대할 수 없는 사회에서 백성들에게 행복이란 스스로 만들어가야 하는 과제라는 생각을 한다.

6월에 매실을 따고 마늘과 양파를 캐고 완두콩을 수확하면 고구마를 심어야 하리라. 그때쯤 아내는 마늘과 양파 캐낸 자리에 참깨를 심을 것이다. 자두를 딸 무렵이면 빨갛게 익은 첫물 고추도 볼 수 있을 것이다. 79만 3천원의 투자비용(?)을 계산하기 미안할 만큼 모종들이 잘 자라고 있는 텃밭을 보면서 소박한 삶, 안빈낙도를 꿈꾼다.

비가 그치면 잔디는 더 푸르러지리라.

2013.5.9.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한겨레 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안빈낙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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