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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야당인 민주통합당이 '종편 출연 금지' 방침을 공식 해제했다. 대선 직후, 민주당 내부에서는 '종편 때문에 선거에 패했다'는 주장이 나온 바 있다. 정치권뿐만 아니라 시민사회 내부에서도 냉소와 무시, 그리고 간과로 일관해오던 종편 대응에 변화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이제는 종편의 실체를 인정해야 한다는 것. 개국 1년 반, 종편은 어디까지 왔을까. 데이터 분석과 취재를 바탕으로 '종편의 민낯'을 입체적으로 해부해본다. 특혜와 편법으로 얼룩진 종편의 '정상화' 방안도 고민해본다. [편집자말]
서울 광화문의 한 식당 TV에서 JTBC 방송이 나오고 있다.
 서울 광화문의 한 식당 TV에서 JTBC 방송이 나오고 있다.
ⓒ 이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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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60 남성, 자영업, 주부, 무직, 경상도'

종합편성채널(아래 종편)의 주시청자로 분석되는 층이다. 민주통합당 싱크탱크인 민주정책연구원은 내부 보고서를 통해 "5060대의 남성과 자영업·주부·무직 등의 직업군이 대선 때 종편의 영향을 받았다"는 내용의 여론조사 결과를 공개했다. 또한 <오마이뉴스>가 지역별 종편 시청률을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부산·대구 등 경상도 지역에서 종편 시청률이높게 나타났다(관련기사1 : 저학력·블루칼라·주부·5060, 종편 바람 거셌다 관련기사2 : '종편 시청률 톱100', 조선·동아는 어디 갔니?).

왜 이들이 종편의 주시청자층이 된 것일까. 종편 프로그램 내용에는 만족하고 있을까. 20~30대 종편 시청자는 없는 걸까.  궁금증을 풀기 위해 지난 4월 30일 종편 시청자들을 찾아 나섰다.

[50대 남성] "아무 때나 틀면 뉴스 나오던데"... TV조선, '종편' 아니었다

지난 4월 30일, 서울 마포구 연남동 기사식당 거리로 향했다. 50대 남성 비율이 높은 택시기사 노동자들을 만나기 위해서였다.

이날 만난 택시기사 대부분은 보도전문채널인 YTN과 함께 종편 시사보도 프로그램을 시청했다. 개인택시기사인 문광렬(53)씨는 잠들기 전 꼭 MBN와 TV조선을 챙겨본다. "기존 뉴스와 다른 심층적인 보도방식이 마음에 들었다"고 한다.

"뉴스를 깊고 길게 잘 전해주더라고. 스토리가 있다고 해야 할까? 택시기사들은 맨날 라디오 뉴스를 들어서 단신은 많이 알지만 한 사건을 깊게 알지는 못하거든. 그런데 MBN이나 TV조선은 오래된 이야기부터 쭉 풀어서 설명해주잖아."

모범택시기사인 이동혁(60대)씨도 "조선방송(TV조선)은 내용이 괜찮아서 가끔 본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종편을 보도전문채널로 오해하고 있었다. 기자가 'TV조선은 보도전문채널이 아니다'라고 설명하자 그는 "뉴스채널 아냐? 아무 때나 틀면 뉴스 나오던데"라며 의아한 듯 고개를 갸우뚱했다.

50대 남성이라고 모두 종편을 좋게 평가하는 것은 아니었다. 연남동에서 공인중개사사무소를 운영 중인 김명철(60)씨는 "종편 이야기를 왜 꺼내냐"며 버럭 화부터 냈다. '무당파'인 김씨는 호기심에 종편 뉴스와 시사프로그램을 잠깐 본 적 있다. 하지만 방송 내용을 보고 크게 실망했다고 한다. 그가 결정적으로 종편을 보지 않게 된 계기는 남북관계 관련 보도 때문이다.

"어떤 교수가 나와서 '김정은 젖비린내 난다'고 하더라고. 생각을 해봐요. 북한이 박근혜 대통령한테 그런 말 하면 좋나? 기본이 안 됐잖아요. 상식대로 해야지. 시청자를 바보로 아는 건가. 저질방송도 아니고... 저급하기 짝이 없더라고요. 교수인지 해설위원인지 데려다 놓고 헛소리 마음껏 늘어놓게 하고 말이야. 편파적인 게 문제가 아니예요. 상식이 없어요."

[경상도] "땅 속에 북한이 뚫은 땅굴이 200개나 있다며?"

TV조선 <장성민의 시사탱크> 한 장면
 TV조선 <장성민의 시사탱크> 한 장면
ⓒ <장성민의 시사탱크> 캡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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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편 시청률이 높은 지역 중 한 곳인 부산에서도 싸늘한 반응이 나왔다. 한 사회팀 기자의 부모님은 지난 대선 때 종편 시사보도 프로그램을 즐겨봤다고 한다. 하지만 그의 아버지(62)는 이날 전화 통화에서 더 이상 종편을 보지 않는다고 잘라 말했다.

"처음에는 흥미로 봤는데 요즘은 안 봐. 평론가인지 뭐신지 똑같은 놈들 데려다 놓고 맨날 정치 이야기만 하니까. 채널A랑 TV조선 그것들은 방송의 가치도 없는 것들이야."

그의 어머니(55)도 마찬가지였다.

"요새는 안 본다. 거의 다 사람들 데꼬(데리고) 나와서 토론하는 거밖에 없잖아. 하루 종일 그 사람이 그 사람이다. 진행하는 사람도 한 사람밖에 없어서 혼자서 계속 말하대. 불쌍터라."

하지만 두 사람은 "부산 지역 장년층, 특히 남성들은 여전히 종편을 애청하고 있다"고 입을 모았다. 그의 아버지는 "같이 일하는 사람들(60~70대)은 종편을 보고 와서 그게 전부인 마냥 '박근혜가 어쩌고 김정일이 어쩌고' 이야기한다"고 덧붙였다.

한 사진팀 기자도 "안동에 사시는 어머니(60대)가 종편을 자주 본다"고 제보했다. 다음은 그와 어머니가 나눈 대화 내용이다.

어머니: "우리 땅 속에 북한이 뚫은 땅굴이 200개나 있다며?"
기자: "누가 그래요?"
어머니: "조선일보에서 하는 그 방송(TV조선)에서 들었다. 거기 나오는 사람들이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하긴 하는데, 들어보면 재밌다."

[60대 무직] "종편 점수 매기면? 100점 만점에 80점"

채널A <박종진의 쾌도난마> 홈페이지 화면
 채널A <박종진의 쾌도난마> 홈페이지 화면
ⓒ <박종진의 쾌도난마> 홈페이지 화면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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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편 애청자인 <오마이뉴스> 독자를 만났다. 이아무개(61·서울 강북)씨는 정년퇴직 후 주로 TV 시청으로 시간을 보내고 있다. 매일 오후시간대부터 자정 넘어서까지 뉴스와 시사보도 프로그램을 거의 다 챙겨본다. 이 가운데 80%는 종편 프로그램이다.

이씨가 종편 시사보도를 즐겨보는 이유는 안보를 바라보는 시각이 딱 들어맞아서다.

"가장 많이 보는 게 17번 채널A, 그 다음 19번 TV조선, 그리고 MBN이에요. 안보 관련해서는 채널A가 가장 성실하게 보도하고... JTBC는 안보에 소홀한 듯해. 사람들의 감각만 즐겁게 해주는 <무자식 상팔자> 같은 드라마나 하잖아."

정치적으로 보수 성향인 그는 최근 종편의 개성공단 보도를 전적으로 신뢰하고 있다.

"종편 기자들이 밀착 취재를 하다 보니 정보가 많이 나오는 것 같더라고. 이번에 개성공단만 해도 그래. 우리(남측) 근로자들이 한 달 동안 먹을 게 없어서 컵라면으로 때웠다잖아. 우리 근로자들한테 쌀이랑 의약품 좀 들여 보겠다는데 (북한은) 그것도 허락 안 해주고 말이야. 나쁜 놈의 새끼들. 내가 탱크 몰고 가서 박살내고 싶다니까."

은퇴 후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아진 김아무개(64·인천)씨도 종편 시사보도 프로그램을 자주 시청한다. 채널A <박종진의 쾌도난마> TV조선 <장성민의 시사탱크> 애청자이기도 하다. 그는 "지상파 뉴스에 비해 종편이 더 실감난다"며 "'생방송 시사토크' 형식이 종편만의 매력"이라고 칭찬했다. 김씨는 배우자와 함께 채널A '이만갑'(이제 만나러 갑니다)도 한 회도 빠지지 않고 챙겨봤다. 매주 북한이탈주민의 사연을 소개하는 이 프로그램을 두고 김씨는 "북한의 실상을 제대로 알 수 있는 방송"이라고 평가했다.

종편을 둘러싼 안 좋은 인식이 신경쓰이지 않냐고 물었다. 김씨는 "그렇지 않다"고 단호히 답했다. 그는 "지상파 방송 같은 경우 고리타분했는데, 종편이 생기면서 선택권이 자유로워졌다"며 "종편에 점수를 준다면 100점 만점에 80점 이상이다, 60대 사람들은 나처럼 느낄 것"이라고 덧붙였다.

[자영업] TV조선 옆 식당 주인 "나는 JTBC 드라마 본다"

JTBC 드라마 <무자식 상팔자>
 JTBC 드라마 <무자식 상팔자>
ⓒ JT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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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편을 애청하는 자영업자를 찾는 일은 예상보다 쉽지 않았다. 집 근처·영등포역·여의도역 일대 식당가를 돌아다니며 가게 안 TV를 전부 확인했지만, 대부분 지상파 예능·교양 프로그램 또는 YTN을 틀어놨다.

TV조선·채널A 등 종편 본사가 위치한 광화문 식당가도 상황은 비슷했다. 가게 사장에게 "종편 직원들이 많이 올 텐데 안 틀어놔도 괜찮나"라고 물어도 어색한 미소만 돌아왔다.

20~30곳의 식당·슈퍼 등을 취재한 결과, 몇 명의 종편 애청자를 찾았다. 이들 모두 MBN과 JTBC 프로그램을 시청했다. 서울 성북구 장위동에서 슈퍼를 운영하는 한 60대 남성은 저녁시간에 방송하는 MBN 교양 프로그램을 몇 개 적어두고 챙겨봤다.

특히 자영업자이자 동시에 주부인 종편 시청자들은 MBN 예능·JTBC 드라마의 팬이었다. 영등포역 인근 횟집 사장인 김덕경(60)씨는 손님이 없는 오후 2~6시 사이에 MBN 인포테인먼트 프로그램인<고수의 비법 황금알>(아래 <황금알>) <속 풀이쇼 동치미>(아래 <동치미>)를 사수한다. "사람 사는 이야기를 주제를 가지고 자기네(출연자)끼리 웃고 떠드는 걸 보고 있으면 재밌어서 시간가는 줄 모르기 때문"이다.

여의도에서 분식집을 운영하는 황아무개(57)씨는 가게에서 종편을 틀지는 않는다. 대신 집에 가면 <황금알>과 <동치미>는 잊지 않고 본다.

"나 같은 중년층 출연자들이 주제 하나 가지고 여러 이야기를 하니 재밌어. 예를 들면, '살 빼는 이야기'가 주제면 계속 그 이야기만 하는 거야. 그러다보니 공감 가는 이야기가 많이 나와서 보게 돼. 가뜩이나 요즘 지상파 프로그램 중에는 볼 게 없잖아."

전아무개(66)씨는 그의 식당이 TV조선 인근에 있다는 사실에 아랑곳없이 JTBC 드라마를 좋아한다. 지상파 3사와 함께 챙기는 채널이 바로 JTBC다. 특히 <무자식상팔자>는 한 회도 빠지지 않고 봤다.

"우연히 채널 돌리다 JTBC 드라마를 보게 됐는데 재밌더라고. 잘 만든 게 티가 나. 다른 엄마들은 MBN이 재밌다고들 하는데, 난 잘 모르겠어. <동치미>인가 뭔가 있잖아. 사람들 나와서 계속 이야기만 하는 거. 몇 번 보니까 매번 똑같은 형식이더라고. 나오는 사람만 나오고. 그래서 질렸어."

[2030세대] 종편 반대론자, 채널 넘겼을 뿐인데... '애청자' 되다

지난 11일 방송된 JTBC <썰전>의 한 장면.
 지난 11일 방송된 JTBC <썰전>의 한 장면.
ⓒ JT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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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편을 부정적으로 인식하는 비율이 높은 20~30대 중에서도 애청자는 있었다. 한 30대 여성은 JTBC <신화방송>을 꾸준히 챙겨보고 있다. 종편 출범 과정에서의 문제점을 알고 있지만, 좋아하는 가수 그룹을 외면할 수는 없었다.

그는 <신화방송>을 보면서 자연스레 JTBC의 다른 프로그램도 챙겨보게 됐다. 특히 기존 지상파에서 보기 힘든 형식이나 소재를 다룬 프로그램을 찾아서 시청한다. 최근에는 시사와 예능 형식을 섞어 좋은 평가를 받고 있는 <썰전>을 재밌게 보고 있다.

"처음엔 길티플레저(guilty pleasure·죄의식을 느끼면서도 쾌감을 느낀다는 뜻)라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그렇지 않아요. 지상파보다 훨씬 좋은 질의 프로그램을 내놓고 있는데 무조건 종편이라고 안 보는 건 말이 안 되죠."

이은영(33·여성)씨는 원래 종편 반대론자였다. 그러던 어느 날 채널을 돌리다 11번(MBC) 뒤로 넘어가게 됐다. 18번 MBN과 마주쳤다. '이건 뭐지?'하며 <황금알> 보게 됐다. "새로움" 그 자체였다.

"연예인이 아닌 분야별 전문가가 나와서 특정 주제를 놓고 이야기를 나누는 형식이라 정보를 얻을 수 있어요. 그러면서도 출연자들의 입담이 좋아서 기존 교양 프로그램처럼 무겁지도 않아요."

어느새 종편 애청자가 돼버린 이씨는 "마음 한 구석에서 '죄인' 같은 불편함을 느끼고 있다"고 털어놨다. 종편 시청을 반대하는 남자친구에게도 풀이 죽은 목소리로 "사실 나 오늘 종편 프로그램 봤어"라고 고백하곤 한다.

그래도 그는 "재밌게 만든 종편 프로그램을 보는 자체가 나쁘다고 생각하진 않는다"며 "이미 존재하는 종편을 무조건 차단하는 게 아닌, 보도 프로그램처럼 문제가 있는 부분을 감시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조심스레 말했다.

이씨뿐만이 아니었다. 하루 동안 만난 종편 시청자들이 제일 많이 쓴 단어는 '재미'였다. 재미있으면 보고, 재미없으면 보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들이 종편을 시청하는, 또는 더 이상 시청하지 않는 이유이기도 했다.


태그:#종편, #JTBC, #채널A, #MBN, #TV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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