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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후보가 17일 오전 충남 천안시 서북구 쌍용동  이마트 천안점 앞에서 유세를 마친 뒤 차에 올라 지지자들에게 손을 들어 인사하고 있다.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후보가 2012년 12월 17일 오전 충남 천안시 서북구 쌍용동 이마트 천안점 앞에서 유세를 마친 뒤 차에 올라 지지자들에게 손을 들어 인사하고 있다.
ⓒ 사진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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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불쌍한 여직원, 결국 무죄라는 것입니다."

지난 대선을 이틀 앞둔 2012년 12월17일, 당시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후보는 천안시 쌍용동 이마트 앞에서 있었던 유세에서 이렇게 말했다. 전날 밤 11시 경찰에서 긴급하게 발표한 '국정원 선거개입 의혹 사건'의 중간수사결과에 기댄 발언이었다. 그러나 지금까지 밝혀진 바에 따르면 박근혜 대통령의 후보시절 이 발언은 전혀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났다.

밤11시 수사발표와 박근혜의 잘못된 발언  

<오마이뉴스>는 4월30일 민주화를 위한 변호사 모임(이하 민변)이 자체 분석한 결과를 보도하면서, 현직 국정원 직원과 일반인 보조요원의 것으로 의심되는 계정을 73개 발견했으며 이 계정을 이용해 특정 게시물에 대한 반대추천이 광범위하게 이루어졌다고 폭로했다.

(관련기사 : ID 73개, 박근혜 후보 불리한 글에 반대 집중)

민변의 이번 발표로 국정원 선거개입 의혹사건은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게 되었다. 먼저 이번 사건의 전체적인 흐름을 다시 한 번 추적해 보자. 지난 대선 직전 국정원 직원 김씨의 댓글달기 의혹이 처음 제기되었을 때, 최초의 쟁점은 정말로 그 국정원 직원이 댓글을 달았느냐는 사실관계에 모아졌다. 지난 12월16일 밤 대선후보 3차 TV 토론이 끝난 직후 경찰은 갑작스럽고도 전격적으로 중간수사결과를 발표하면서 "국정원 직원이 댓글을 단 흔적을 발견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최근 경찰이 검찰로 사건을 넘기면서 최종적으로 밝힌 바에 따르면 국정원 직원이 댓글을 단 사실이 있었고 그것은 법으로 금지한 정치개입(경찰 발표내용)에 해당한다. 이 사실만 놓고 보더라도 국정원 직원은 사건 초기에 허위진술을 했으며 투표를 코앞에 둔 시점에서 급작스럽게 발표한 경찰의 중간수사결과도, 이를 그대로 옮겨 상대후보를 비난한 박근혜 당시 후보도 허위사실을 유포한 셈이 된다.

사실 경찰이 그처럼 무리하게 수사 3일 만에 중간수사결과를 그것도 이례적인 시각에 발표했을 때, 그것이 얼마나 철저하게 조사한 결론인지 의구심이 많았다. 박근혜 후보가 주위의 이런 경고에 귀를 기울이고 조금만 신중했더라면 적어도 '허위사실유포'를 피할 수 있었다.  국정원 직원이 진보성향의 사이트에서 댓글을 달았고 또한 특정 게시물에 대한 반대추천을 했다는 사실은 2013년 1월3일부터 밝혀지기 시작했다. 이렇게 되자 새로운 쟁점이 두 가지 생겼다. 하나는 이것이 해당직원의 개인적인 행위인가 아닌가였고, 다른 하나는 댓글작업이 통상적인 국정원의 대북심리전인가 아니면 국내정치개입인가, 그리고 직접적인 선거개입인가가 하는 문제였다.

압수수색 당하는 국정원, 바리케이드 안쪽 접근금지 국가정보원의 대선개입·정치개입 의혹을 수사중인 서울중앙지검 특별수사팀(팀장 윤석열)이 30일 오전 서울 서초구 내곡동 국가정보원에서 압수수색을 실시하고 있다. 국정원 정문앞에는 수십명의 기자들이 압수수색을 마치고 나오는 검찰 수사관들을 취재하기 위해 대기하고 있다.
▲ 압수수색 당하는 국정원, 바리케이드 안쪽 접근금지 국가정보원의 대선개입·정치개입 의혹을 수사중인 서울중앙지검 특별수사팀(팀장 윤석열)이 4월 30일 오전 서울 서초구 내곡동 국가정보원에서 압수수색을 실시하고 있다. 국정원 정문앞에는 수십명의 기자들이 압수수색을 마치고 나오는 검찰 수사관들을 취재하기 위해 대기하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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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쟁점은 국정원의 심리정보국장도 이 사건에 관여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비교적 싱겁게 정리되었다. 게다가 국정원장의 이른바 '지시사항'이 있었다는 사실이 폭로되면서 이번 사건이 국정원장의 지시사항과 어떤 직간접적인 연관이 있는지를 밝히는 것이 가장 큰 이슈 가운데 하나가 돼 버렸다.

두 번째 쟁점에서 국정원 직원의 댓글 작성이 대북심리전의 일환이라는 국정원의 주장은 상식적으로 생각했을 때 대단히 궁색한 변명임을 쉽게 알 수 있다. 대북심리전을 국내의 평범한 사이트에서 진행할 이유가 전혀 없지 않은가. 문제가 된 오늘의 유머라는 사이트에 북한을 찬양하는 북한 사람들이 많이 들어온다? 이것은 그야말로 '오늘의 유머'에 오를만한 얘기다.

변명이 궁색해지자 국정원은 해당 사이트가 '종북 사이트'라고 주장했다. 국정원이 생각하는 종북의 기준이 무엇인지는 차치하고서라도, 백 번 양보해서 그 사이트에 종북적인 사람들이 많이 온다고 가정하더라도 그 사람들은 북한 사람들이 아니라 남한 사람들이다. 그러니까 적어도 국정원의 말이 최소한의 논리를 가지려면 대북심리전을 한 것이 아니라 우리 국민들을 대상으로 한 '대남심리전'을 했다고 말해야 한다. 즉, 국정원이 스스로 인정한 바에 따르면 이번 댓글 사건의 본질은 일국의 정보기관이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자기 국민들을 대상으로 심리전을 펼친 사건이다!

이 사실을 기억하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는 어느 새 우리 자신도 모르게 국가 정보기관의 심리전 대상이 되어버렸다. 북한 같은 폐쇄적인 독재국가에서나 있을 법한 일이 21세기 남한에서, 그것도 대단히 중요한 선거를 앞두고 버젓이 자행된 것이다.

국정원에 의한 헌정 유린 사건  

그렇다면 이번 댓글 사건은 정치개입행위에 불과한가 아니면 선거개입에도 해당하는가? 경찰은 정치개입 혐의만 인정하고 선거개입 혐의는 인정하지 않은 채 이 사건을 검찰로 넘겼다. 선거개입 혐의가 입증되려면 댓글 행위 또는 반대추천 행위가 특정후보를 당선·낙선시키기 위한 행위인지가 밝혀져야 한다.

일단 국정원 직원 김씨가 단순한 의견개진 차원에서 댓글을 작성하거나 반대추천을 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왜냐하면 이것은 국정원이 스스로 인정했듯이 심리정보국장까지 개입된 '심리전'의 일환이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김씨의 댓글작성 작업은 일과시간에 이루어졌다. 김씨가 사용한 계정이 무려 11개(처음 밝혀진 것만)인 것도 평범한 개인의 일상적인 인터넷 생활과는 거리가 멀다.

그리고 김씨의 댓글 상당수는 북한체제 비판과 MB정권 찬양에 할애되었으나 야당 후보와 정책에 대한 비판도 없지 않았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특정 후보에 대한 지지·반대가 전체 글의 몇 퍼센트냐가 아니라 그런 글이 있었느냐 없었느냐이다.

이 사실만 하더라도 정보기관이 조직적으로 선거에 개입했다는 결론을 피하기가 어렵다. 그런데, 이번 민변의 조사결과 국정원이 선거에 개입한 양상이 훨씬 더 치밀하고 조직적인 여론조작이었음이 드러나고 있다.

우선 국정원의 것으로 의심되는 계정이 무려 73개에 달해 이전의 16개(김씨 11개, 일반인 보조요원 5개)를 훨씬 넘는데다, 최소 4명 이상 총 8개 그룹이 조직적으로 가담한 정황이 포착되었다. (중앙일보 온라인판 보도에 따르면 검찰이 확보한 국정원 의심 계정이 50여 개에 달한다. 관련기사: 검찰, 국정원 직원 댓글 의심 ID 50개 추가 확보 )

이처럼 많은 계정은 특정 게시물의 반대추천에 동원되었다. 반대추천은 경찰의 수사과정에서 아예 조사도 하지 않은 사안이다. 반대추천은 박근혜 후보를 비판하는 글에 집중(734회)되었다. 이렇게 되면 박근혜 후보에 대한 부정적인 글이 돋보이게 게시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야당 후보에게 유리한 게시물에 대한 반대도 적지 않았으나(366회), 북한 관련 게시물에 대한 반대는 고작 3회에 그쳤다. 인위적으로 조직을 동원해 추천수에 영향을 준 것은 가장 손쉬운 여론조작의 사례이다.

<한겨레>가 보도한 바에 따르면 민변이 밝혀 낸 국정원 연루 계정으로 박근혜 후보를 지지하는 글도 올린 것으로 확인되었다. 아직 모든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가 아니기 때문에 얼마나 많은 인원이 어떤 방법으로 얼마나 많은 여론조작을 일삼았는지 짐작조차 어렵다.

검찰조사 받고 나오는 원세훈 전 국정원장 국가정보원의 정치개입과 선거개입 의혹을 받고 있는 원세훈 전 국정원장이 29일 오전 10시부터 30일 오전 12시 20분경까지 14시간여동안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검 특별수사팀(팀장 윤석열)에서 피고발인 신분으로 소환 조사를 받은 뒤 귀가하고 있다.
▲ 검찰조사 받고 나오는 원세훈 전 국정원장 국가정보원의 정치개입과 선거개입 의혹을 받고 있는 원세훈 전 국정원장이 4월 29일 오전 10시부터 30일 오전 12시 20분경까지 14시간여동안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검 특별수사팀(팀장 윤석열)에서 피고발인 신분으로 소환 조사를 받은 뒤 귀가하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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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의 이야기를 간단하게 정리하면 이렇다.

정보기관이 중요한 선거를 앞두고 자기 국민들을 대상으로 심리전을 조직적으로 펼쳤다. 그리고 그 심리전의 주요 내용은 특정 후보에 대한 호불호를 명확하게 표현함으로써 그 후보에 대한 정보유통을 통제해 여론을 조작하는 것이었다. 관권부정선거라는 말 외에 이 사건을 달리 규정할 수 있을까?

관권부정선거의 또 다른 축을 담당한 것은 경찰이다. 경찰은 사건의 진상을 축소 은폐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나섰고 그 결과 특정 후보를 이롭게 했다. 경찰은 3차 TV 토론 직후 중간 수사 결과 발표에서 허위사실을 유포해 선거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쳤다. 경찰의 수사과정에서는 담당 수사과장에게 부당한 압력이 이어졌다. 그러니까, 선거에서 엄정중립을 지켜야 할 국가기관들이 한 통속이 되어 특정후보의 당선을 이중적으로 도모한 것이다. 한 번은 여론조작으로, 또 한 번은 축소 은폐로.

10년쯤 전 노무현이 탄핵됐을 때나 5년 전 광우병 파동이 났을 때, 많은 국민들이 탄핵에 반대하며 또 미국산 쇠고기 수입에 반대하며 길거리에 나서자 보수언론과 일부 정치인들은 누군가가 여론을 조작해 무지한 국민들을 선동했다는 중상모략을 퍼부었다.

이번 국정원 선거개입 의혹사건을 돌아보면 당시에 그런 중상모략으로 오히려 여론을 호도하려고 했던 세력들이 지난 대선에서 정말로 여론을 조작해서 선량한 국민을 선동했음을, 그렇게 민의를 왜곡했음을 알 수 있다.

사태가 이 지경인데도 아직까지 이번 사건을 국정원 직원 인권유린사건이라고 규정하는 일부 집권당 인사나 청와대의 태도는 문제의 심각성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대단히 안일한 처사이다. 이번 사건은 '국정원 직원 인권유린사건'이 아니라, '국정원에 의한 헌정유린사건'이다.

관권부정선거 배후, 밝혀질까

한국 정치에서는 선거에서 이기면 끝이라는 생각이 팽배하다. 학위논문을 표절하거나 제수를 성추행한 국회의원은 아직도 버젓이 금배지를 달고 있다. 청와대가 조직적으로 민간인을 사찰하고 그 증거를 인멸했지만, 대통령을 쫓아내야할 이 중대범죄는 총선결과 속에 그냥 묻혀버렸다. 무슨 짓을 해도 선거에서 이기면 처벌받지 않는다는 잘못된 교훈은 우리의 미래와 후손들에게 대단히 부정적인 신호를 남길 것이다. 국정원과 경찰이 뒤얽힌 이번 관권부정선거의 진상을 철저히 규명하고 책임자를 끝까지 추적해서 엄벌에 처해야 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진상규명은 이제 검찰의 몫으로 넘어갔지만, 검찰이 지난 세월 권력의 시녀 노릇을 벗어던지고 사건의 진상을 명명백백하게 밝혀낼지는 의문이다. 특히 한국 정치의 권력구조상 이런 엄청난 사건을 당시 이명박 대통령이 몰랐다고 보기 어렵다. 이명박-원세훈의 개인적인 관계도 그러려니와, 박근혜가 당선됐을 때 박근혜를 제외하고 가장 큰 이익을 보는 사람이 이명박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검찰 수사가 원세훈을 넘어 어디까지 진행될 것인지, 이번 관권부정선거의 배후를 얼마나 철저하게 밝혀낼 것인지가 일차적인 관건이 될 것으로 보인다.

2013년 봄, 밖으로는 북한의 전쟁위협과 일본의 우경화, 주변 강대국 간의 갈등으로 우리의 안보환경이 급속하게 악화되고 있다. 하지만 지금 우리 민주주의 체제의 가장 큰 위협은 바로 우리 안에 있다. 민주주의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아직 익숙하지 않았을 때에도 우리는 부정선거를 획책한 독재자를 국민의 손으로 몰아낸 적이 있었다. 그때의 숭고한 뜻은 지금까지도 헌법정신으로 면면히 이어지고 있다.  우리는 후손들에게 어떤 헌법정신을 물려줄 것인지, 역사는 이 봄에 우리에게 다시 묻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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