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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민당 총재 아베 신조. 사진은 지난해 11월 29일 일본 정당 지도자 토론회 당시 모습.
 자민당 총재 아베 신조. 사진은 지난해 11월 29일 일본 정당 지도자 토론회 당시 모습.
ⓒ 연합뉴스/EP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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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22일 : "(일본의 식민 지배를 사죄한) 무라야마 담화를 그대로 계승하지 않을 것이다."
4월 23일 : "침략의 정의는 학계나 국제적으로 정립된 것이 아니다, 국가 간 관계에서 어느 쪽으로 보느냐에 따라 다르다."
4월 24일 : "(여야의원 168명의 야스쿠니 신사참배를 한국과 중국 등이 비판한 것과 관련하여) 일본 각료들은 어떠한 위협에도 굴하지 않을 자유가 있다고 확신 한다."

아베 일본 총리의 최근 망언들이다.

아베는 2000만 아시아인과 310만 일본인까지, 침략전쟁과 식민지배에 희생된 그 모든 영령들을 잠에서 깨우고 무덤에서 불러내는 핵폭탄급 망언을 연속 세 개나 터뜨렸다. 22일의 '무라야마 담화 부정'은 다시 시작된 1995년 이후의 한일·중일 관계를 박살내는 것이며, 23일의 "침략의 정의는 국제적으로 정립된 것이 아니다"는 말은 '일본 재무장 저지'가 포함된 2차 세계대전 이후의 동북아 질서를 온통 부정하는 것이다. 그리고 24일의 "일본 각료들은 어떤 위협에도 굴하지 않을 자유가 있다"는 발언은 '야스쿠니 신사 참배에 대한 항의'를 '위협'으로 규정하는 것이어서, 적반하장의 정도가 '대동아 공영을 위한 성전'에 결코 모자라지 않는다.

이로써 5월 중순 예정됐던 한중일 정상회담이 무산된 데 이어, 5월 3일로 날짜까지 받아놨던 '한중일 재무장관, 중앙은행총재 회담'도 취소됐다.

총리 등 일본 각료들이 망언을 하고, 한반도와 중국이 격렬하게 항의를 하고, 이에 따라 동북아의 긴장이 고조되는 일련의 발단과 전개, 절정은 예전에도 있었다. 그럼, 이번에도 일본의 사태 수습 발언과 그에 따른 봉합, 관습적인 '결말'을 볼 수 있을까. 아니다. 이번에는 주인공이 다르다. 오늘의 아베는 2006년 1차 집권 당시 (일본군 '위안부'의 강제성을 인정한) 고노 담화를 부정하고, 역사 교과서 수정을 추진하고, (일본의 재무장을 위한 헌법 9조) 개헌을 주장하는 등 '이념형 정치인'으로 '각'을 확실히 세운 까닭에 되레 인기가 추락, 결국 '복통(즉, 배가 아파서)'을 이유로 조기 사퇴해야만 했던 그 나약한 아베가 아니다.

일본 <니혼게이자이> 신문이 22일 발표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아베의 지지율은 76%다. 지난해 8월 자민당 총재 선거에 출마할 당시 일반 국민을 상대로 하는 여론조사에서 3등에 그쳤으며, 일본 특유의 파벌정치로 총재가 된 뒤 12월 총선을 지휘할 때에도 지지율이 30% 남짓이었다는 점을 생각하면, 상전벽해를 넘어 천지개벽이 아닐 수 없다. 

아베는 말한다. "7월 참의원 선거에서 압승, 군대와 전쟁을 금지한 헌법 9조를 반드시 개정하겠다"라고. 일본에서 개헌은 첫째 국회(중의원·참의원)에서 2/3가 발의하고, 둘째 국민투표 과반을 얻어야 한다. 중의원의 경우 366석, 2/3 초과다. 7월의 참의원 선거만 압승하면 개헌으로 가는 길이 열린다. 이는 76% 아베의 놀라운 지지율이 받쳐준다. 그러므로 아베의 망언은 이제 망언이 아니다. 염연히 다가오는 현실이다.

아베 지지율 비결은 '윤전기'

천정부지로 치솟는 아베 지지율의 비결은 경제다. 달러 대비 엔의 환율을 두 배 이상 강제로 끌어올리는 1985년의 플라자 합의는 일본의 수출을 꺾었고, 거기에 찔려 거품경제가 터지면서 그들은 2011년까지 무려 21년 동안이나 연평균 성장률 0.9%의 장기적인 경기침체, 이른바 '잃어버린 20년'을 헤맨다. 그 끝을 기다린 것은 동일본대지진. 원전가동중단이 속출하면서 에너지 수입이 급증, 무역수지마저 적자를 기록한다. 더구나 지난해 9월 '센카쿠 분쟁' 이후 중국 수출이, 도요타 등 일본차 대규모 리콜로 미국 수출이 각각 줄어드는 등으로 일본 경제는 그야말로 땅을 파고 내려간다.

'국가는 부자인데 국민은 가난한 나라' 일본. 이 비유에 일본 경제가 망한 이유와 살리는 대안이 숨어있다. 일본의 국내총생산은 세계 3위다. 그러나 일본 국민들은 그 같은 '부자'가 아니다. 돈이 1% 부자에게 몰려있기 때문이다. 텅텅 빈 99% 서민의 주머니를 채워야 소비가 살고, 그래야 기업의 판매와 생산이 산다. 그래야 일자리가 살아난다. 복지는 경제의 이런 선순환이 자리 잡는 터전이다. 그러나 일본 민주당은 무상복지를 공약, 당선된 후 모조리 철회했다. 이 틈을 비집고 아베의 자민당이 압승하는 것이다.

아베의 '경제 살리기'는 간단하다. 선거를 앞둔 지난해 11월 그는 공약했다. "윤전기를 돌려 화폐를 무제한 찍어내서라도 경제를 살리겠다"고. 당선 된 뒤 그는 진짜로 약속을 지키고 있다. 취임 후 20조2000억 엔(239조7000억 원) 규모의 경기부양책을 발표하며 본격적으로 돈 뿌리기에 나선 아베 정부는 '무제한 윤전기를 돌려 무제한 엔화를 뿌리는' 양적완화를 앞으로 2~3년 동안 지속하겠다고 공언하고 있다.

시장에 흔한 것은 값이 싸다. 흔해진 엔화 값은 당연히 떨어진다. 아베 집권 이전 달러당 80엔 선이던 환율이 12월 아베 집권을 계기로 고개를 쳐들어, 올해 2월에는 95엔 선을 치고 올라가고, 현재 100엔 선에 근접하고 있다. 도요타자동차가 "달러당 90엔일 경우 올해 흑자가 400억 달러, 100엔일 경우 올해 흑자가 1000억(<주간조선> 2월 26일 '미일 밀월관계 깊어지나' 인용)이라며 기뻐한다는 소식이 있다. 우리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4월 들어 하루 평균 수출액이 지난해 4월에 비해 7.4% 감소했다(<동아일보> 4월 29일 '환율전쟁엔 동맹국도 없다... 한국이 가장 큰 피해자' 인용)는 보도가 동전의 양면처럼 찰싹 붙어 다닌다.

아베가 윤전기를 돌리는 한 엔화는 더욱 넘쳐나고, 따라서 엔화 값이 떨어져 일본 제품의 수출경쟁력이 치솟는다는, 이 당연한 3단 논법에 따라 일본경제에 돈을 걸려는 국제 '투자자'들이 급속히 증가했다. 그 결과, '4월 둘째 주(8~12일) 일본 증시에서 외국 투자자 주식 순매수 규모가 1조5865억 엔으로 사상 최대를 기록(<매일경제> 4월 22일, 면죄부로 힘 받은 일본 "돈 풀기 2-3년 지속" 인용)했으며, 이에 따라 일본 증시는 역사상 최대치로 오르고, 그 힘으로 아베의 지지율도 천정을 뚫고 힘차게 오르고 있는 것이다.     

미국이 엔저를 용인하는 이유

미국이 아베 윤전기에 흙을 뿌리면 아베의 이른 바 '양적완화(엔화 남발)'는 끝장인 까닭이었다. 그런데 2월 11일 라엘 브레이너드 미국 재무부 국제담당 차관이 "디플레이션에서 탈출하려는 일본의 노력을 지지한다"고 발언, 사전 분위기를 조성한다.
 미국이 아베 윤전기에 흙을 뿌리면 아베의 이른 바 '양적완화(엔화 남발)'는 끝장인 까닭이었다. 그런데 2월 11일 라엘 브레이너드 미국 재무부 국제담당 차관이 "디플레이션에서 탈출하려는 일본의 노력을 지지한다"고 발언, 사전 분위기를 조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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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가 아무리 큰 소리를 쳐도 '시장'은 2월 15일 러시아에서 열리는 G20 재무장관, 중앙은행 총재 회의를 기다리며 숨을 죽였다. 거기서 미국이 아베 윤전기에 흙을 뿌리면 아베의 이른 바 '양적완화(엔화 남발)'는 끝장인 까닭이었다. 그런데 2월 11일 라엘 브레이너드 미국 재무부 국제담당 차관이 "디플레이션에서 탈출하려는 일본의 노력을 지지한다"고 발언, 사전 분위기를 조성한다. 이것이 G20 재무장관, 중앙은행 총재 회의에서 "화폐의 경쟁적 평가절하를 자제해야 한다"고 언급, "미국·유럽연합·일본 외 다른 나라는 환율조작에 경쟁적으로 따라 나서지 말라"는 식의 약탈자적 발언이 나온 배경이다.

2월 26일 벤 버냉키 미국 연준 의장은 미국 상원 은행위원회 증언에서 "일본의 아베 총리가 추진하는 경기부양책에 공감하며, 일본이 디플레이션을 없애려는 노력을 지지한다"고 발언했다. 아베의 윤전기에 기름칠을 하는 게 미국 정부의 공식 입장임을 분명히 한 것이다.

우리 정부가 4월 20일 워싱턴 G20 재무장관, 중앙은행 총재 회의에서 "일본의 양적완화가 한국을 비롯한 주요 교역 상대국의 수출 경쟁력을 저하시킬 것"이라고 아무리 외쳐 봐도 먹힐 리가 애당초 없었던 것이다. 아베의 윤전기가 주야로 돌아 엔화가 무제한 뿌려지는 환율조작, 주변국 경제수탈의 한 복판에서도 미국·유럽연합·일본 등 '약탈자 동맹'은 4월의 그 회의 공동선언문을 통해 "일본의 양적완화 정책은 디플레이션을 탈피하고 내수를 지지하기 위한 국내 정책"이라고 판결했다. 이는 아베의 무제한 엔화 남발을 국제적으로 재차 용인한 것이라 할 수 있다.

2008년 미국 경제가 쓰러진 직후 "의사 20명 모여라. 경제를 살리자"는 오바마의 외침에 따라 G20이 시작됐다. '1% 부자정책'과 '투기자본' 때문에 경제가 쓰러졌으니, 부자정책을 도려내는 '수술'을 하고, 투기자본에 대한 규제라는 '약'을 바르면 미국경제는 물론 세계경제가 스르륵 살아난다. 그러나 미국은 올바른 처방을 외면하고, 자기가 든 수술 칼을 치켜든다. '한 줄로 서라, 차례로 너희 배를 째겠다'는 게 현대판 환율전쟁의 시작인 것이다. 그리고 미국은 2월과 4월의 G20회의를 통해 '약자의 배를 쨀 권한'을 아베에게도 허용했다.     

미국은 2012년 1월 "2020년까지 국방력의 60%를 아시아에 배치한다"는 이른바 '아시아로의 회귀' 즉, 중국 포위 압박 정책을 선언한다. 그리고 2월에는 오키나와 주둔 미군을 괌과 호주 다윈으로 재배치 개시한다. 일본을 후방으로 하고 한국을 전방으로 하는 동북아시아 축선 외에 호주를 후방으로 하고 필리핀·베트남 등을 전방으로 하는 또 하나의 중국 압박 축선을 구축한 것이다.

그리고 지금, 동북아 축선에 대한 결정적 정비 및 강화 작업에 몰두하고 있다. 일본의 개헌과 재무장은 중국을 포위·압박하는 미국의 전력을 획기적으로 증강시키는 것이며, 대중국 전선의 선두에 일본을 보다 효과적으로 배치하는 길이다. 아베의 지지율을 빌려 일본의 개헌을 달성하는 것, 이것이 미국이 아베에게 '칼'을 허용한 이유다.                 

아베는 지금 그 칼을 휘둘러 우리 한국 등 주변국의 경제를 수탈, 자기 지지율을 띄우고 있다. 그 피눈물 위에 두둥실 떠올라 개헌을 이룬다면, 그가 휘두르는 칼은 종류가 달라진다. 미일 동맹의 선두에서 한반도에 상륙하는 일본군, 그들이 두렵다면 그리고 아베가 두렵다면 그 뒤의 미국도 놓치지 말아야 한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를 쓴 장대현님은 한국진보연대 집행위원장입니다.



태그:#아베, #일본, #야스쿠니, #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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