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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저녁이 되어 그날의 아침을 떠올리면 까마득하다. 3일째. 내 다리가 이렇게 많이 걸을 수 있다는 것도, 내 다리가 아무리 걸어도 3일에 100km를 가지 못한다는 것도 난생처음 알았다. 이제는 출발할 때부터 다리가 아팠다. 난 대체 무슨 용기로 침낭을 챙겨 오지 않은 것일까? 전날 밤 추위로 웅크리고 잤는데, 추위에 긴장한 상태로 있어서인지, 그게 다리를 더 아프게 했고, 아픈 다리가 나를 더 잠 못 이루게 했다. 전날 잠을 설치면서 정말 내가 이 다리로 내일 걸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막상 출발하고 나니 어떻게든 걸어서 다음 마을에 도착하게 되었다.

동트는 하늘을 뒤로하고 걷기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이 길을 걷다가 죽은 순례자의 무덤 (혹은 기념비?)를 만나게 되었다. 순례길을 걷다가 죽으면 길에 묻힌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와서 보니 정말 꽃으로 장식된 십자가나 돌무더기가 종종 눈에 띄었다. 그런 장면은 왠지 걷는 사람을 숙연하게 한다. 길에서 죽는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저 사람은 아마도 할머니나 할아버지였겠지. 그렇게 늙고 힘든 몸으로 순례길을 택한 것은 무엇 때문이었을까, 순례길을 걷다가 죽음을 맞은 그 사람은 삶에 후회가 없었을까? 이렇게 나는 아침부터 길에서 죽음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다. 죽음은 나에게서 너무 먼 것 같지만, 예측할 수도 없기에. 후회 없이 죽기 위해 후회 없이 살아야겠다고. 그러기 위해 나를 그리고 너를 더 사랑하고, 삶을 더 사랑하고 세상을 더 사랑해야겠다고. 그렇게 걷는 동안 하늘이 등 뒤에서 점차 밝아져 왔다.

순례길 곳곳에서, 순례 도중 죽은 이들의 무덤 혹은 기념비를 만날 수 있다.
▲ 순례자의 묘비 순례길 곳곳에서, 순례 도중 죽은 이들의 무덤 혹은 기념비를 만날 수 있다.
ⓒ 류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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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팜플로나'라는, 까미노 데 산티아고의 거점이 되는 큰 도시를 지나게 되었는데, 이 팜플로나에서 나는 함께 출발했던 영지 언니와 이슬 언니를 잃어버리게 되었다. 도시에 들어선 우리는 점차 복잡한 중심가로 향하게 되었다. 겨우 3일 동안 농촌 마을만 지나다니며 한가로운 풍경을 보았다고 거기에 익숙해져 있었나 보다.

팜플로나의 구시가지. 시골길만 걷다가 큰 도시에 들어서자 우리는 좀 헤매기 시작했다.
 팜플로나의 구시가지. 시골길만 걷다가 큰 도시에 들어서자 우리는 좀 헤매기 시작했다.
ⓒ 류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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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짝반짝하는 태양 아래 늘어선 스페인 도시 특유의 건물들과 많은 사람들에 어질어질, 노란 화살표만 보고 길을 찾았다. 그러다가 거리의 바이올린 연주자 앞에서 잠깐 구경을 하고 사진을 찍었는데, 두 언니가 화살표를 찾다가 멀어져 가는 소리가 들렸다. 나도 빨리 쫓아가야겠다는 생각에 화살표를 보고 발걸음을 옮겼는데, 도대체 이 언니들이 보이지가 않았다. '아이고, 이 언니들이 왜 이렇게 많이 갔어'하며 아무리 빠른 걸음으로 걸어도, 익숙한 배낭 두 개가 보이지를 않는다. 점점 내가 섣불리 먼저 출발했다는 것이 확실해지고 있었다. 이렇게 된 이상 중간 지점에 가서 기다려야겠다고 생각했다.

팜플로나 거리의 악사. 악사를 구경하다가 나는 동행자들을 잃어버렸다.
 팜플로나 거리의 악사. 악사를 구경하다가 나는 동행자들을 잃어버렸다.
ⓒ 류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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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팜플로나 거리의 상인.
 스페인 팜플로나 거리의 상인.
ⓒ 류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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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 중심가를 걷다 보니 시위대도 만났다. 무슨 주장을 하는 건가, 유럽에서 처음 만나는 시위대라서 호기심이 발동해 가만히 봤더니, 스페인으로부터 바스크 지방의 분리독립을 주장하는 사람들이었다. 시위 규모도 엄청나게 컸고 경찰도 동원되어 있었다. 그중에는 유모차를 끌고 나온 엄마도 있었고, 잠깐 봐서인지 모르겠지만 듣던 것보다 평화롭다.

팜플로나 시내에서 바스크 지방 분리독립을 주장하는 시위대를 만날 수 있었다.
 팜플로나 시내에서 바스크 지방 분리독립을 주장하는 시위대를 만날 수 있었다.
ⓒ 류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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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언니를 기다리러 중간 지점으로 가던 중에, 첫날 만났던 한국인을 만났다. 내가 잃어버린 두 언니를 보셨는지 물었는데, 길목의 레스토랑 야외테이블에서 30분째 식사를 하고 계셨지만 못 보셨다고 한다. 나도 앉아서 음식을 좀 먹고 가라고 하셨다. 스페인은 유럽에서 물가가 그리 비싸지 않은 편에 속하지만, 나는 순례자 중 돈 없고 점심을 빵으로 때우는 축에 속했다. 그래서 형편이 나은 순례자들에게 종종, 아니 거의 매일 조금씩, 조금씩의 도움을 받고 있었다. 살면서 이렇게 많은 도움을 받게 될 줄은 몰랐다. 나는 이 길에서 점점 주위의 베풂에 감사히, 사양하지 않고 받는 사람이 되어 가고 있었다.

그렇게 앉아서 먹고, 사 주시는 맥주도 마시면서 두 언니를 기다렸다. 30분이 더 지나도 오지를 않는다. 어떻게 된 건가 하다가 거기에서는 만나겠지 하고 '나바라 대학'까지 가기로 했다. 미리 신청해 놓은 대학인 순례자 여권을 팜플로나의 나바라 대학에서 받기로 되어 있었기 때문에, 거기에서는 어떻게든 만나게 될 것이었다. 화살표만 보고 따라가기 때문에 누가 먼저 가든 뒤처지든, 길을 잃어버려 못 만날 염려는 없다고, 나는 확신하고 있었다.

햇빛은 쨍쨍, 바람도 살랑살랑 분다. 나바라 대학까지 걸었다. 일요일의 대학교 캠퍼스는 지나다니는 사람이 거의 없이 고요했다. 주말에도 평일에 버금가게 붐비는 우리나라 대학교의 주말 풍경과는 퍽 달랐다. 이국의 조용한 대학교 캠퍼스에 서서 영어공부와 '스펙'전쟁에 치이고 있는 내 친구들, 우리나라 대학생들을 떠올리자 갑자기 좀 슬퍼졌다.

팜플로나 나바라 대학의 입구. 미리 신청하면 이 곳에서 대학인 순례자 여권을 받게 된다.
 팜플로나 나바라 대학의 입구. 미리 신청하면 이 곳에서 대학인 순례자 여권을 받게 된다.
ⓒ 류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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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인 순례자 여권이란 말 그대로 대학생들만 받을 수 있는 순례자 여권(크레덴시알)이다. 생장피드포르의 순례자사무소에서 받았던 순례자 여권은, 알베르게와 레스토랑 등의 도장을 모아 순례 증명서를 받을 수 있는 크레덴시알이다.

이것 외에 대학인 순례자 여권을 신청하여 일반 도장과 함께 지나온 도시마다 1개 이상의 대학에서 도장을 받고 산티아고 콤포스텔라 대학의 도장을 받으면, 길을 걸으면서 산티아고 콤포스텔라 대학의 문화, 역사, 예술, 건축 등의 수업을 이수한 것으로 간주하여, 순례증명서와 함께 콤포스텔라 대학 학위 증서를 받을 수 있다. 이 대학인 순례자 여권을 받기 위해 출발 전에 미리 2유로 정도를 내고 신청했고, 순례 도중에 나바라대학 본관에서 받을 예정으로 되어 있었다. 결국, 이번 순례에서는 산티아고에 도달하지 못하게 되어 이 여권이 필요 없어져 버렸지만.

일요일이라 본관 수위 아저씨에게, 건물에도 들어가지 않고 건물 창문으로 순례자 여권을 전달받았다. 내 것과 함께, 같이 신청했던 이슬언니 것도 받아서, 평화로운 학교 캠퍼스에 앉아서 두 사람을 기다렸다. 1시간 정도가 지났을까, 결국 우리는 만나게 되었는데, 언니는 나를 잃어버렸다고 생각해서 찾아다니다가 경찰서에까지 가고 페이스북에 나를 찾는 글을 올렸다고 한다. 누가 나를 끌고 갔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오 마이 갓…. 언니는 나를 보고 울려고 했다. 나만 태평하게 시위대 구경하고, 음식 얻어먹고, 캠퍼스 구경하며 돌아다닌 것이다. 페이스북에 올리지 않았다면 좋았겠지만 어쩌랴. 나 때문에 고생하고 결국 오늘 팜플로나 시내 구경을 못 한 것이 미안해졌다.

나바라 대학 캠퍼스에 아몬드꽃이 흐드러지게 피었다.
 나바라 대학 캠퍼스에 아몬드꽃이 흐드러지게 피었다.
ⓒ 류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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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가 경찰서에 갔을 때, 경찰들이 영어를 못해서, 언니와 말을 하기 위해 다섯 명이나 동원됐다고 한다. 처음에 있던 경찰관이 대화에 실패하고 다른 사람을 불렀다. 그 사람이 실패하고 다른 사람을 불렀다. 이런 식으로 해서 '비번'이었던 경찰관까지 동원되었다. 그래서 결국 결론은 '이 도시는 안전하다'는 것이었다고. 그래도 친절한 사람들이다. 비번인 경찰관까지 불러내 당황한 외국인을 도우려 했다니.

어쨌든, 우리는 만났다. 그리고 팜플로나 다음 도시인 시주르 미노르(Cizur Minor)까지 걸어서 알베르게에 도착했다. 아까 그 한국인 삼촌들이 먼저 와 계셨다. 어제의 그 프랑스 할아버지들이, 오늘도 역시나 먼저 도착해서 드디어 도착한 우리에게 박수를 보냈다. 정말 대단한 분들이다……. 그리고는 항상 "Are you ok?"라고 물으신다. 나는 좀 과장되게 "OK~!!"를 외쳤다. 다리가 좀 괜찮지 않아도, 이 정도면 괜찮은 것이다. 오늘도 무사히 걸어 알베르게에 도착했으니까.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기자의 블로그 blog.naver.com/plumpberry 에도 게재되었습니다.



태그:#까미노 데 산티아고,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 #팜플로냐, #나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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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관심이 많고 알고 싶은 것도 많은 대학생입니다. 항상 여행을 꿈꾸고 있습니다. 오마이뉴스 대학생기자단 오마이프리덤 1기로 활동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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