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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검은 대륙 아프리카 하면 뭐가 떠오르시나요. '광활한 대자연'이나 '투자 가치 있는 신흥 경제대국'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빈곤·질병 그리고 차별·소외가 있습니다. <오마이뉴스>는 2013년 밀알복지재단이 추진하는 캠페인 '우리의 눈은 아프리카를 향합니다'를 후원하며 지구촌 빈곤의 현주소를 전합니다. 독자여러분의 많은 성원 바랍니다. [편집자말]
원두는 팔고 떨어진 파치먼트를 끓여 먹는다.
 원두는 팔고 떨어진 파치먼트를 끓여 먹는다.
ⓒ 추연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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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 농사를 짓는 사람들은 정작 커피를 마시지 못해요. 커피 빈(Bean)을 만들 때 생기는 커피 껍질(파치먼트-내과피)을 끓여서 커피 대신 먹기도 하는데 시장에서 커피 가격의 1/10 정도로 살 수 있어요. 물론 수확이 한창일 때는 거저 얻어다 먹기도 하지요. 카페인양이 엄청나다고 해요. 사실 그것도 돈을 주고 사야 하니까 산이나 들에서 구하기 쉬운 생강과 계피를 넣어 끓인 차 '차이'를 마십니다. 차이에 사탕수수로 만든 설탕을 두세 수저 넣어 먹으면, 그게 저녁식사죠."

우리가 머물고 있는 에티오피아 남부도시 딜라는 커피 생산지로 유명한 시다모와 이그라짜페 지역이 동서로 이어져 있다. 보통 에티오피아를 대표하는 커피로 하라르·시다모·이그라짜페(예가체프)를 꼽는다. 이 가운데 중 두 종류의 유명한 커피가 생산되는 산림(산악) 지역과 인접해 있는 딜라 역시 두 생산지와 지형과 기후·토양이 유사하다. 그래서 딜라에서 생산되는 커피도 이그라짜페나 시다모 커피라 불러도 큰 무리가 없을 듯하다.

특히 숲이 깊어 그늘이 많고 우기가 되면 하루에 세 번 스콜처럼 비가 오는 이그라짜페는 아침저녁은 서늘하며 낮 기온은 30도에 가까워져 최고급 커피가 생산되기에 최적의 조건을 갖춘 지역이다. 이 지역의 높은 고도와 서늘한 기온 그리고 독특한 토양으로 인해 이그라짜페 커피는 독특한 단맛과 신맛을 가지는데, 이런 독특한 맛과 향 때문에 커피 애호가들은 이그라짜페를 '커피의 귀부인'이라 부르며 열광하는 것이다.

커피 원산지 에티오피아에 대규모 경작이 없다니

왼쪽엔 폴스바나나 오른쪽엔 커피나무를 키우고 있는 집.
 왼쪽엔 폴스바나나 오른쪽엔 커피나무를 키우고 있는 집.
ⓒ 추연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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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농장이라고 말하지만 대규모로 커피나무를 경작하는 사람들은 거의 없어요. 에티오피아는 토지가 정부 소유라 농민들은 경작권을 갖는 것뿐인데 커피나무 몇십 그루 정도를 가지면 그래도 꽤 부자인 거고, 보통은 한집에 커피나무 두세 그루를 가지고 있지요. 집집마다 마당에 커피나무 한두 그루와 폴스 바나나 나무 한두 그루를 가지고 있어요. 그게 이 사람들 재산의 전부예요."

커피 농장을 보고 싶다는 말에 우리를 안내하는 현지인 제게예는 난처한 표정이다. 커피나무가 방대하게 자생하는 지역을 알고 있지만, 농장이라고 불릴 만큼 대규모로 기획 경작을 하는 곳은 마땅히 없기 때문이란다. 프랑스의 와인 생산지처럼 대규모 공장시설을 갖춘 커피농장을 기대했던 나로서는 다소 실망이 아닐 수 없었다.

우리의 실망감을 눈치를 챘는지 제게예가 커피 자생지를 보여주겠다며 "길이 험하고 시간이 좀 걸리더라도 가보겠느냐"고 제안한다. 호기심 많은 외국인인 우리는 박수와 환호성으로 그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동남아 관광지에서 옵션으로 선택하는 정글 트레킹 정도를 상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의 낭만적 상상은 무참히 깨졌다. 우리는 앞좌석 등받이를 부여잡은 채 비명을 질러야 했다.

길이라고 할 수 없는 길. 튀어나온 날카로운 돌들과 깊이 갈라진 땅, 무너지는 절벽과 바퀴가 푹푹 빠지는 진흙탕. 붉은 먼지가 날리는가 하면 흙탕물과 주먹만 한 돌덩이들이 튀어 오르기도 하고 차체가 뒤집어질 것처럼 기울어지며 자동차 유리와 천장에 머리 받기를 수십 번. 사륜구동 차량으로도 10~20km의 속력을 내기 어려운, 길이 없는 정글에 길을 내며 달리기를 두 시간.

온몸의 뼈마디가 몇 번이나 해체됐다 다시 조립되는 것만 같은 격한 흔들림을 견디며 산 하나를 넘고, 또 다른 산비탈을 향해 어렵게 진입하는 순간이었다. 김병만의 <정글의 법칙>에서나 봤을 법한 원숭이들이 우리를 향해 '꺅꺅' 비명을 지르더니 카메라를 꺼낼 새도 없이 숲으로 달아나 버린다. 이 숲의 주인은 원숭이였던 모양이다.

운전을 하는 제게예는 낙타 무리들과 마주쳤을 때만큼 놀란 우리들에게 "깊은 산으로 들어가면 사자나 호랑이와 같은 맹수들도 있다"며 "궁금하면 잠깐 내려서 보여줄까?"라고 이죽거린다. 공포에 떠는 문명인들을 놀리는 게 재미있는 모양이다.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자 제게예는 "얼마 전에 하이에나가 샤르벳(초가집) 안에 있던 아기를 물어가려다가 아기를 보호하려는 엄마의 얼굴을 물어 큰 상처를 입은 일도 있었다"면서 "거짓말이 아니다"라고 자못 진지하게 이야기한다. 우리는 그의 말을 반신반의하면서도 빨리 이 정글을 벗어나고 싶다는 마음이 앞섰다.

험한 길에서 만난 아낙, 어디로 가는 걸까

험한 길에서 사람을 만나면 두렵기도 하다.
 험한 길에서 사람을 만나면 두렵기도 하다.
ⓒ 추연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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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로 들어가기 어려운 길. 맹수들이나 원숭이 말고는 누구도 살 것 같지 않은 오지에서 사람과 마주치면 반가움보다는 두려움이 앞서기 마련. 대부분 맨발로 깊은 산길을 걸어 다니는 원주민들. 어디서부터 걸어와 어디까지 가는지 알 수 없지만 더러는 물동이를 들고 더러는 나뭇짐을 지고 더러는 당나귀나 염소를 몰고 아무렇지도 않게 숲길을 걸어 다닌다.

우리도 이들의 모습이 신기하지만 외지인들의 출입이 드문 숲 속에 큰소리를 내는 자동차를 몰고 다니는 외국인을 보는 게 이들도 신기하긴 마찬가지였던 모양이다. 차 한 대가 간신히 지날만한 폭의 산길을 따라 많게는 수십 가구, 적게는 한두 가구까지 띄엄띄엄 이어져 있는 샤르벳에서 사람들이 몰려나온다. 멀리서부터 들리는 자동차 소리를 따라 나온 것이다. 아이들은 외국인과 자동차를 신기한 눈길로 구경하며 손을 흔들고 소리를 지른다.

"파렌지 파렌지…, 요요요요요요!"

아이들이 보이기 시작하고 사람들의 모습이 많아지기 시작하는 곳부터가 커피 자생지란다. 말로만 듣던 이르가짜페의 원산지에 도착한 것이다.

"이쯤부터라고 보시면 될 거예요. 저기 나와 앉아 있는 아이들 집에도 다 커피나무가 한두 그루 정도 있지요. 바깥 공기 다른 거 못 느끼세요? 커피 꽃향기가 가득한데…."

숲 속 마을 아이들의 환영 인사에 정신이 팔려 몰랐는데 이야기를 듣고 보니 바깥 공기가 아까와는 사뭇 다르다. 사실 에티오피아를 처음 찾은 외국인들은 높은 고도 때문에 많은 것을 느끼지 못한다. 하루 종일 머리가 아프고 가슴이 답답한 고산증 증세가 사라지지 않다 보니 모든 감각이 평소 같지 않기 때문이다.

커피는 따는 사람이 임자

커피나무가 자생하고 있는 밀림지역.
 커피나무가 자생하고 있는 밀림지역.
ⓒ 추연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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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번에는 달랐다. 달콤하고 싱그러운 난향을 떠올리게 하는, 기품있는 냄새가 산 전체를 감싸고 있었다. 이쯤에서 잠시 차를 세우고 좀 더 향기에 취해보기로 했다.

산 정상 가까이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니 사방을 둘러싸고 있는 몇 개의 산과 그 산들이 겹쳐지는 가파른 계곡 전체가 커피나무로 가득하다. 마침 개화기를 맞아 나무마다 아프리카 쌀 같이 길고 하얀 꽃들이 달려 햇살에 눈부시게 반짝이고 있었다. 말로만 듣던 커피 꽃이었다.

"주인이 없을 것 같지만 다 임자가 있어요. 누구는 두세 그루, 누구는 몇십 그루. 커피 체리가 붉게 익으면 열매를 따다 파는 거예요."

에티오피아는 사유재산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모든 임야가 정부 것이지만 커피는 따는 사람이 임자란다. 하지만 주변에 커피로 먹고 사는 주민들이 워낙 많다 보니 한 사람이 수확할 수 있는 양도 그리 많지 않다고. 산세가 가파르다 보니 숲 속에 들어가 커피 열매를 따서 지고 나오는 일도 쉽지 않아서 생각만큼 돈이 되지는 못한다고 한다. 당연히 농약을 치거나 비료를 줄 여력이 없다. 그래서 에티오피아 커피는 무공해·무농약·유기농 커피일 수밖에 없다.

우리가 쉽게 부르는 '커피 노동자'는 특별히 어느 농장에 고용된 사람들이 아니라 그냥 자생지나 집에서 나는 커피를 따다가 파는 주민들이었다. 커피 열매 수확기인 11월부터 다음해 2월까지 에티오피아 사람들은 대부분 커피 수확에 동원된다. 커피 수확에 동원된 사람들의 임금은 1달러 남짓. 보통 여자와 아이는 20비르(1비르: 한화 약 60원), 건장한 남자는 30비르를 받는데 그나마도 1년에 넉 달뿐인 일거리라 넉 달을 벌어 1년을 먹어야 하는 그들의 삶은 팍팍하기만 하다.

커피 노동자의 일당은 일용노동자의 일당과 다르지 않다. 도로를 닦는 일에 동원되거나, 벌목 작업장에서 일을 하거나, 집을 짓거나, 물건을 나르거나, 무엇을 하든 일용직 노동자의 일당은 여자가 20비르 남자가 30비르 수준이다.

한 달 내내 커피콩을 따도 벌 수 있는 돈은...

예가체프커피의 원산지 이르가짜페 마을.
 예가체프커피의 원산지 이르가짜페 마을.
ⓒ 추연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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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아를 이용해 원두를 분리해내는 과정.
 방아를 이용해 원두를 분리해내는 과정.
ⓒ 추연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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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오지와 다름없는 커피 생산지에 살고 있는 원주민들의 경우 다른 노동의 기회가 주어지지 않기에 커피 수확철이 유일하게 돈을 만져볼 수 있는 기회인 것이다. 그래서 커피 수확철이 되면 서너 살 어린아이부터 50세 노인까지(에티오피아 평균 수명은 53세로 50대면 노인으로 본다) 온 가족이 커피나무에 매달려 사는 게 보통이다.

다섯 살 먹은 어린아이까지 동원해 한 달 내내 커피를 따도 한 가구당(6인 가족 기준) 소득은 200불(한화 약 13만 원)을 넘지 못한다. 여섯 식구가 넉 달 내내 숨만 쉬고 일해야 50만 원 남짓한 돈을 만져볼 수 있는 것이다.

그나마도 최근 들어 심해진 인플레이션 덕분에 입에 풀칠하기도 어려운 상황. 에티오피아인들이 주식으로 먹는 인제라의 원료가 되는 떼프는 1kg에 13.5비르(한화 약 810원)인데 1kg이면 세 장의 인제라를 만들어 6인 가족이 한 끼 혹은 두 끼를 해결할 수 있다고 한다. 물이 귀한 지역이라 반드시 물을 길어다 먹는데 보통 30리터 물 한 통에 3비르, 가져다주면 5비르를 받는다. 에티오피아 사람들이 좋아하는 소고기는 1kg에 100비르로 이곳 역시 좋은 일이 생기면 소고기부터 사 먹는다고. 한 개그프로그램의 유행어 "소고기 사 묵겠지~"를 다시 한 번 곱씹게 되는 대목이다.

그날의 커피가격이 표시되는 전광판.
 그날의 커피가격이 표시되는 전광판.
ⓒ 추연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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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소로 돌아오는 길 이르가짜페 읍내 신작로 쯤에서 낯선 전광판을 봤다. 암하릭어와 숫자가 새겨져 있는 전광판은 뉴욕에 있는 국제주가지수표를 보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제게예에게 물어보니 당일 거래되는 커피 시세판이란다.

'4월 8일 커피가격 1kg 55비르.'(한화 약 3300원, 약 3달러)

전광판에 나오는 커피 가격은 내수용 커피의 현지 가격으로 에티오피아인들이 시장에서 사고팔 수 있는 커피의 가격을 말한다. 에티오피아에서는 10개 등급으로 커피의 질을 분류한다. 1등급부터 4등급까지는 등급별로 전량 수출하고 있으며 내수용은 5등급 이하의 커피들이다.

외국인의 입장에서는 질 낮은 내수용 커피가 저렴하게 느껴질지 모르지만, 가난한 에티오피아인들에게는 kg당 55비르의 커피도 사치일 뿐이다.

미디어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커피의 원산지 에티오피아의 여인을 앞세운 커피 광고. 광고에선 몽환적인 분위기로 그려지지만 현실은 정반대다. 이미지는 테이스터스 초이스 커피광고.
 미디어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커피의 원산지 에티오피아의 여인을 앞세운 커피 광고. 광고에선 몽환적인 분위기로 그려지지만 현실은 정반대다. 이미지는 테이스터스 초이스 커피광고.
ⓒ TV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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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거리 커피집 아줌마.
 길거리 커피집 아줌마.
ⓒ 추연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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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를 지나다 보면 좌판을 벌인 분나(커피) 아줌마들을 쉽게 만나게 된다. 집에서 키운 커피나무에서 딴 커피콩을 제베나라고 하는 목이 긴 토기 주전자에 끓여서 만든 커피를 판다. 에스프레소 잔에 설탕 세 숟가락 듬뿍 넣어 한 잔에 3비르를 받는다. 말 그대로 '본토 다방커피'지만 특유의 걸쭉한 단맛과 진한 쓴맛 때문에 커피를 즐긴다는 나조차도 목 넘김이 쉽지 않았다.

커피 파는 아줌마들은 어디서든 쉽게 볼 수 있다. 텃밭에서 키운 상추나 오이를 내다 파는 우리네 시골 아낙들처럼 그들도 그렇게 반찬값이라도 벌어보려는 것이다. 그러나 사 먹는 사람들보다는 주변에 누워있거나 앉아서 멍하니 하늘을 쳐다보고 있는 사람이 더 많다. 대부분 초라한 행색의 남자들이다. 왜 길가에 저렇게 할 일 없이 누워있거나 앉아 있을까 궁금해하니 제게예가 설명해준다.

배고파서 먹는 짜트, 악순환 불러

모여 앉아 짜트를 씹는 남성들.
 모여 앉아 짜트를 씹는 남성들.
ⓒ 추연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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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짜트를 먹는 거예요. 짜트를 먹으면 기분도 좋고 배도 고프지 않고 몸도 아프지 않고 먹지 않아도 힘이 나고…. 그래서 짜트를 먹는 거예요. 하루 종일 주머니에 넣고 다니면서 씹어요. 짜트 먹는 사람들 대부분 에이즈에도 쉽게 걸리고 저렇게 짜트만 하다가 결국 죽지요. 화물차 운전하는 사람들이 짜트를 먹고 운전하다가 교통사고도 많이 내지만 누구도 막지 않아요."

그러고 보니 길가에서 나뭇잎 줄기를 묶어서 파는 아이들이 눈에 보인다. 아이들의 입에도 어김없이 짜트의 푸른 물이 들어있다. 학교에 가야 할 아이가 길거리에서 짜트를 씹으며 배고픔을 달래고 짜트를 팔아 더 많은 짜트를 살 돈을 마련하는 것이다.

짜트는 마약 성분이 들어있어 환각·망상·편집증 등을 일으킨다고 알려져 있으며 유엔에서는 향정신약에 관한 조약에 의거해 강력하게 금지하고 있다. 그러나 에티오피아에서 짜트는 불법이 아니다. 그러다 보니 농민들 입장에서는 심은 지 5년이 지나야 수확이 가능하고 1년에 한 번 4개월간 수확할 수 있는 커피를 따는 것보다 연중 돋아나는 짜트를 따다 파는 게 훨씬 손쉽고 유리하다.

커피는 하루 종일 일을 해야 일당 20비르를 받지만 짜트는 한 묶음에 40~50비르를 받아 운이 좋으면 하루에 몇백 비르도 벌 수 있기 때문이다. 짜트는 인근 국가인 에리트레아와 케냐·지부티·우간다 그리고 바다 건너 사우디아라비아와 중동 지역에도 수출되는데 그 물량이 엄청나 커피에 이어 에티오피아를 먹여 살리는 효자 상품이 되고 있는 게 사실이다.

우리는 시다모와 이그라짜페 지역에서 커피나무를 뽑은 자리에 짜트를 심는 장면을 목격했다. 현지인 제게예 역시 "얼마 전까지만 해도 커피나무로 무성했던 산들이 짜트 숲으로 바뀌고 있다"고 안타까워했다. 실제 국제커피시장에서 에티오피아 커피의 거래 가격은 떨어지고 있지만, 내수용 커피 거래 가격은 점차 오르고 있다. 그 이유 중 하나가 짜트 생산량이 늘어나면서 커피 생산이 줄고 있기 때문이라고도 한다.

밥대신 짜트로 배를 채우는 남자들.
 밥대신 짜트로 배를 채우는 남자들.
ⓒ 추연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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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설 붐이 일기 시작한 에티오피아에 돈이 돌면서 자국인들의 커피 소비도 그만큼 증가하고 있다. 하지만 짜트 소비 역시 증가하고 있다. 돈을 버는 사람들은 돈을 버는 만큼 커피와 짜트를 즐기고, 돈을 벌지 못하는 사람들은 돈을 벌지 못해 짜트로만 살아간다.

"에티오피아 사람들의 생각이 바뀌어야 합니다. 돈이 생기면 우선 먹어요. 배불리 고기도 먹고, 사고 싶었던 물건도 사고, 월급을 받으면 며칠 만에 다 써버리고 나머지 날들은 짜트로 버티는 겁니다. 워낙 배가 고프다 보니 한 번에 풍성하게 먹고 다시 굶는 게 습관이 됐죠. 우리에게 미래가 있을 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기 때문에 준비를 하지 않아요."

이르가짜페 커피 자생지에서 봤던 하얀 커피 꽃들이 생각났다. 배고픔을 견디다 못해 죽은 며느리의 한이 서려 피어났다는 며느리밥풀 꽃만큼이나 슬픈 꽃들의 향연이 아닐 수 없다. 어려운 과제를 머리에 담고 숙소에 돌아오니 숙소에 커피 향이 가득하다. 부엌일을 돕는 에티오피아 아가씨 뜨베가 다음날 아침 손님들에게 대접할 커피를 만들기 위해 미리 생두를 볶고 있었다.

짜트 대신 책과 연필을 쥐여주고 싶다

에티오피아에서 볼 수 있는 길거리 커피집.
 에티오피아에서 볼 수 있는 길거리 커피집.
ⓒ 김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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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티오피아에 오기 전까지 나는 '커피' 하면 뉴욕부터 떠올렸다. 드라마 <섹스 앤더 시티>(Sex and the city)의 여주인공처럼 한 손에는 아메리카노 다른 한 손에는 베이글을 들고 뉴요커가 된 듯 다소 허세스럽게 커피를 즐겼다. 하지만 지금은 학교 갈 시간에 거리에 나와 입술이 시퍼렇도록 짜트를 씹으며 짜트를 팔고 있던 에티오피아의 아이들이 떠올라 마음이 편치 않다.

저들의 손에 짜트 대신 연필과 책을 쥐어줄 방법은 없을까. 저들의 배를 짜트 대신 빵으로 채워줄 순 없을까. 저들에게 절망 대신 꿈을 심어줄 방법은 없을까 고민하며 원고를 정리하다 보니 어느새 부옇게 아침이 밝아온다. 에티오피아 사람들의 삶이 담긴 진한 예가체프 커피 한 잔이 그리운 시간이다.



덧붙이는 글 | 아프리카 아이들에게 격려와 사랑을 전달해 주세요. 밀알복지재단(02-3411-4664)에 전화하시면 후원에 관한 구체적 정보를 얻을 수 있습니다. 또 [밀알복지재단 누리집]을 통해서도 사랑을 실천하실 수 있습니다.



태그:#울지마 아프리카울, #에티오피아에, #밀알복지재단, #예가체프, #커피노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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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아줌마가 앞치마를 입고 주방에서 바라 본 '오늘의 세상'은 어떤 모습일까요? 한 손엔 뒤집게를 한 손엔 마우스를. 도마위에 올려진 오늘의 '사는 이야기'를 아줌마 솜씨로 조리고 튀기고 볶아서 들려주는 아줌마 시민기자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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