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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없을 '멘탈 붕괴'를 경험하다

론세스바예스(Roncevaux)에서 출발한다. 나와 함께 리투아니아에서 출발한 이슬 언니와, 이 길에서 첫날 만나게 된 영지 언니와 함께 둘째 날 여정을 걷게 되었다.

영지 언니는 서른, 배우 지망생이다. 지금까지 작은 배역들은 맡았지만, 아직 제대로 데뷔를 한 것은 아니라고 했다. 이 길에 대해 조금씩 알게 되면서 언젠가 가야겠다는 마음을 갖게 되었는데, 지금이 와야 할 때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이 길을 걷기 위해 언니는 공장에서도 일을 했었다고 한다. 그 절실함이 아마도 영지 언니에게는 이 길의 의미 자체일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비바람을 맞으며 론세스바예스를 나서는 순례자들
 비바람을 맞으며 론세스바예스를 나서는 순례자들
ⓒ 류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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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우리는 론세스바예스에서 라라수와나(Larrasoaña)까지 33.3km를 걸었다. 둘째 날은 가장 힘든 날이었다. 코스 자체도 평지가 아닌 산길인 데다, 날씨까지 도와주지를 않았다. 스페인은 따듯할 줄 알고 왔는데... 해를 보지 못하고 비바람과의 싸움에 비옷을 찢기며 걷고 또 걸었다. 정말 이럴 줄은 몰랐는데 심지어 손까지 시리다! 겨울 장갑을 가져온 게 얼마나 다행인지.

출발한 지 한 시간 정도가 지났을까. 우리는 빗물로 만들어진 큰 웅덩이를 마주하게 되었다. 사람들은 웅덩이를 간신히 돌아가려고 했지만, 발을 거의 담그며 건너야 했다. 산타 할아버지를 닮은, 브라질에서 오신 할아버지가 마치 선물같이 우리를 도와주어서 겨우겨우 건널 수 있었다.

 브라질에서 오신 할아버지! 산타 할아버지를 닮은 이 분은 알고 보니 브라질에서 오신 목사님이었다.
 브라질에서 오신 할아버지! 산타 할아버지를 닮은 이 분은 알고 보니 브라질에서 오신 목사님이었다.
ⓒ 류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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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아직까지는 최악이 아니었다. 이날 나는 까미노를 걷는 10일 내내 다시는 없을 '멘탈 붕괴'를 경험하게 되었다. 그 첫 번째 웅덩이를 지나쳐, 몸과 마음을 추스르고 다시 걷기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아까 것은 별것 아니었다고 말하는 듯한 '진짜'가 나타났다. 불어난 계곡물이 길을 완전히 덮어 7m 정도를 가로지르고 있었다. 앞선 사람들이 이미 신발을 벗고 바지를 걷어 올리고 그곳을 건너는 것이 보였다. 아까 우리를 도와주셨던 할아버지도 그렇게 건너고 계셨고, 다른 노인분들도 그렇게 건너고 계신 것이 보였다. 우린 출발 1시간여 만에 이미 추위와 비로 지쳐 있었기에, 이건 정말 '멘붕'이었다. 정신이 없어 사진을 찍어 두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쉽다.

앞서 건너가 있었던 한국인 분들이 그나마 물이 얕은 지점을 알려 주셨다. 그분들은 다른 지점으로 건넜다가 바지 주머니의 라이터까지 젖어서, 건너서 담배조차 피울 수가 없었다고 한다. 달리 어쩔 방도가 없었다. 길이 완전히 막혀서, 어떻게든 물에 들어가는 수밖에 없었다.

옆에 있던 영지 언니도 '멘붕'이 왔던지, "아예 바지를 벗고 들어가야 하지 않을까?"라고 말했다. 우리는 신발과 양말을 벗어들고, 바지를 걷어올리고 물에 들어갔다. 허벅지까지 올라오는 물 깊이는 고사하고 마치 다리를 몸에서 떼어내는 듯이 차가웠다. 발가락까지 얼어붙는 것 같았다. 건너고 나서 한동안 우리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 웅덩이 이후에 어떤 고난의 길이 나와도 나는 그 웅덩이를 생각하면서 '그것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님'에 감사할 수 있었다.

 비에 물이 불어난 곳이 많았다. 곳곳에서 길이 잠기기도 해, 잊지 못한 고난을 선사해 주었다.
 비에 물이 불어난 곳이 많았다. 곳곳에서 길이 잠기기도 해, 잊지 못한 고난을 선사해 주었다.
ⓒ 류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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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에서 주워먹고... 하나 시켜서 셋이 먹고

추위에 지친 우리는 가던 길에 떨어진 귤을 주워서 먹었다. 귤이 정말 완벽한 형태로 버려져 있었기 때문이다. 귤이 그렇게 맛있는 것이었다니... 추위에 덜덜 떨며 지나게 된 한 마을에서 나는 이 카미노 길에서는 처음으로 커피를 한 잔 사 마셨다. 나는 '카페 아메리카노'를, 영지 언니는 '카페 콘 레체'를 마셨는데 우유를 넣은 커피인 카페라떼를 스페인에서는 카페 콘 레체라고 불렀다.

알고 보니 카페 콘 레체와 카페 아메리카노의 가격이 똑같아서, 이후로는 이왕이면 같은 값에 우유가 들어간 커피를 마시기 시작했다. 나는 한국에서는 아메리카노를 즐겨 마시지만, 배고픈 여행길 특히 카미노에서는 어떻게든 같은 값에 많은 영양을 섭취해야 했다. 어쨌든, 그 커피 한 잔의 위력은 대단한 것이었다. 커피 한 잔에 몸을 따듯하게 녹이고 다시 걸을 힘을 얻을 수 있었다.

그날의 길은 산길로 계속되는 지루하고 길고 춥고 습한 여정이었다. 준비가 철저하지 못해서 등산화를 준비해 오지 않은 나는, 눈 녹는 계절인 봄의 질퍽이는 흙에 비가 더해진 진창길을 걸어가며 신발과 양말을 계속 적셔야만 했다. 참다 못해 중간에는 가방에 있는 슬리퍼를 꺼내 신기도 했다.

 운동화를 다 적신 나는 중간에 슬리퍼를 신고 걷기도 했다.
 운동화를 다 적신 나는 중간에 슬리퍼를 신고 걷기도 했다.
ⓒ 류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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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도착지인 라라수와나까지 7km 정도를 남겨 두고 도착한 마을 주비리(Zubiri)에서, 너무 지쳐 버린 나, 이슬언니, 영지언니는 레스토랑에 들어갔다. 산티아고까지의 순례길을 거치면서 들를 수 있는 레스토랑들의 메뉴판에서는 '순례자 메뉴'라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전식, 본식, 후식에 빵과 와인까지를 대략 10유로 정도에 제공한다.

우리 같은 가난한 부류의 순례자들에게는 이 '순례자 메뉴'는 너무 비싼 것이어서 한 번도 우리 스스로 값을 지불하고 사 먹은 적은 없는데, 이 날만은 세 명이서 하나를 시켜 나눠 먹었다. 곧 7km만 걸어가면 저녁을 해 먹을 것이기 때문에, 간단히 허기만 해결하면 되었다. 식당에서 좀 푸대접을 당하긴 했지만, 괜찮았다.

 레스토랑 순례자 메뉴의 한국어 메뉴판. 구글 번역을 이용해 만든 것이 틀림없다.
 레스토랑 순례자 메뉴의 한국어 메뉴판. 구글 번역을 이용해 만든 것이 틀림없다.
ⓒ 류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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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on't stop walking!
 Don't stop walking!
ⓒ 류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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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그치고 무지개를 선사받다

오늘 묵을 알베르게가 있는 라라수와나까지 남은 7km를 도로를 따라 걸었다. 지금까지 스페인의 아름다운 전원풍경만 보며 지나왔는데, 이번에는 웬 황량한 공장을 지나쳐야 했다. 둘째날 코스의 우울함은 공장을 지날 때에 극에 달했다. 길가에는, 로드킬을 당한 건지, 죽은 너구리도 있었다. 또다시 비바람과 함께 전력을 다해 라라수와나까지 걸었다. 도착했을 때쯤에는 비가 그쳤다. 마을 표지판이 있는 곳까지 와서 뒤를 돌아봤을 때 우리가 지나온 길에 예쁜 무지개가 걸려 있었다. 고생 끝에 주어진 선물 같았다.

 힘들었던 길 끝에서 무지개를 선사받았다.
 힘들었던 길 끝에서 무지개를 선사받았다.
ⓒ 류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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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알베르게는 춥고 마치 병동 같았다. 하지만 그곳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활기차고 기쁨이 넘쳤다. 알베르게가 좋든 나쁘든, 결국은 크게 다르지 않다. 하룻밤을 쉬고 다음날 떠나는 것일 뿐이다. 그리고 그 휴식 동안에 언제나 즐거운 만남이 있다.

프랑스 할머니와 할아버지들, 아저씨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그 중 한 할아버지와 아저씨 한 분은 영어를 잘 하셨지만 다른 분들은 그렇지가 않았다. 영어를 못 하시는데도 내가 이 길을 걷는 것에 대해 무척 궁금해하고 영어를 잘 하시는 분을 통해서 계속 물어 보셨다.

아까 그 할아버지들도, 그 힘들어 보이던 덴마크 할머니들도 결국 다 나와 같은 길을 나보다 빨리 걸으셨고, 무엇보다 아까 그 차가운 웅덩이를 똑같이 건너오셨다는 데에 할 말이 없었다.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대부분 우리보다 강하셨다. 젊은 사람들은 노인들은 늙어서 어떤 일도 할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곤 한다. 그러나 카미노 순례자들의 대다수가 노인 분들이었고, 젊은 내가 나도 모르게 가지고 있는 편견이 잘못된 것이었음을 몸소 증명해 보이고 계셨다. 그리고 각기 다른 신념을 가지고, 저마다의 이유로 이 길을 택하셨고, 길 위에서 삶을 즐기고 계셨다. 그분들은 '인생의 마지막 단계'를 살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삶을 그저 아름답게 살고 있는 것이었다.

 작은 마을 라라수와나의 길가 담장에 꽃이 피었다.
 작은 마을 라라수와나의 길가 담장에 꽃이 피었다.
ⓒ 류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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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기자의 블로그 blog.naver.com/plumpberry 에도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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