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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 역명을 새로 지을 때면 늘 치열한 전쟁이 벌어진다. 어떻게든 자신이 속한 지역, 기관 등을 역명에 넣기 위한 전쟁이다. 해당 지역이나 기관은 이를 위해 코레일, 도시철도공사 등 관할기관에 압력을 넣기도 한다. 대학교 역시 예외는 아니다. 우수한 학생들을 끌어들여야 하기 때문에, 지하철 역명에 자기 학교 이름(이하 자교명)을 넣으면 그만큼 많은 학생들에게 자기 대학교를 나타낼 수 있다.

그러나 지난 2006년부터 코레일·서울메트로 등 철도 당국과 서울시는 특별한 경우 외에는 대학교를 역명으로 사용하는 것을 불허했다. 그 이후 역명을 짓거나 바꿀 때 벌어지는 논란의 중심에는 거의 항상 대학교가 있었다. 자교명을 역명으로 사용해 인지도를 얻으려는 대학교와, 과도한 대학교명 사용으로 인한 부작용을 최소화하려는 철도 당국 간의 이해관계가 정면으로 충돌하는 양상이다. 지금도 대학교와 철도 당국 간 신경전은 진행중이다.

대학교의 '역명' 전쟁을 아십니까 

1974년 개통한 이래 올해로 30년째를 맞고 있다.
▲ 서울지하철 노선도 1974년 개통한 이래 올해로 30년째를 맞고 있다.
ⓒ 네이버 지하철노선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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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교가 처음부터 역명을 넣기 위해 신경전을 벌인 건 아니었다. 1984년 2호선이 개통된 이후 근처에 대학교가 있는 역이 많아졌는데, 대학교들이 이들 역에 자기 학교 이름을 넣는 과정은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역명을 정하는 명확한 기준이 없었기 때문에 그냥 서울시에서 해당 지역의 의견을 참고하여 정했다.

처음부터 역명이 대학교였던 이대역, 서울대입구역, 한양대역, 교대역의 경우엔 역의 위치가 지명을 넣기에 애매한 곳에 있기 때문에 '랜드마크'인 대학교의 역명을 넣었고, 이후 건국대, 홍익대도 철도 당국과 서울시에 요청하여 자교명을 역명으로 정했다. 2호선 외의 다른 노선에서는 숙명여대, 동국대, 성신여대, 성균관대, 한성대 등이 자교명을 역명판에 새겼다.

그러나 서울시가 2006년 <지하철 역명제정 기준 및 절차>라는 자료를 발표하면서 사정은 달라졌다. 자료를 보면, 2기 지하철(서울지하철 5~8호선)의 역명은 대학명으로 정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고 되어 있다. 다만 '역사가 대학부지 내에 위치하거나, 대학과 접하여 대표지역명으로 인지 가능한 경우에 한하여 예외적으로 대학명을 표기'하는 정도의 여지를 두었다.

또한 코레일과의 형평성을 고려하여, 학교와의 거리가 500m 내외이고 학교규모가 종합대학 이상으로 재학생 2000명 이상인 경우에는 역명을 병기할 수 있다고 했다. 당시 코레일이 관리하던 구간은 전문대 이상, 재학생 3000명 이상인 경우에 병기 가능하다는 원칙을 정한 상태였다.

이를 기점으로 대학교가 역명으로 들어가는 기준은 매우 엄격해졌고 서울시와 철도 당국은 역명에 대학교를 무리하게 집어넣은 역의 이름을 바꾸려는 시도를 했다. 그리고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대학교와 철도 당국 간의 '총성 없는 전쟁'이 시작되었다.

대학교가 역 이름 '쟁취'에 신경 쓰는 이유

가장 대표적인 논란은 바로 총신대입구역 논란이다. 총신대입구역의 본래 이름은 이수역이었다. 그러나 4호선 개통 직전에 총신대에서 약 2400만 원의 건설비 부담을 명목으로 자교명을 넣으면서 이름이 바뀌었다. 총신대입구역에서 총신대까지는 버스로 약 10~15분 정도 걸리기 때문에 역 이름으론 부적절하다는 의견도 있었지만, 그대로 역명이 되었다. 그러나 2000년 7호선이 개통되고 총신대입구역보다 총신대에 더 가까운 곳에 남성역이 생기면서 상황은 바뀌었다.

붉은 원은 총신대를 가리킨다. 지도에서 볼 수 있듯 총신대입구역보다는 남성역에서 더 가깝다.
▲ 총신대와 남성역, 그리고 총신대입구역 붉은 원은 총신대를 가리킨다. 지도에서 볼 수 있듯 총신대입구역보다는 남성역에서 더 가깝다.
ⓒ 네이버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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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도 당국은 총신대입구역을 이수역으로 바꾸고 그 대신 '남성(총신대입구)'역으로 하고자 했다. 그러나 총신대 측의 완강한 반대에 부딪혔다. 총신대 측은 "한마디 상의도 없이 15년 동안 써왔던 역 이름을 바꾼 것은 탁상행정의 대표적 사례"라며 7호선 완전 개통 며칠 전 서울중앙지법에 역명 폐지금지 가처분 신청을 냈다.

총신대가 이러한 조치를 취한 것은 기존의 역이 남성역에 비해 훨씬 유동 인구가 많은데다가, 자칫 역명을 변경하면 사람들의 인지도가 떨어질 수 있다는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총신대의 행위는 사람들에게 큰 혼란을 불러 일으켰다. 총신대 측의 강력한 요구에 따라 기존의 4호선 역은 총신대입구역을 유지했지만, 7호선 역은 철도 당국의 대학교 역명 사용 금지 조처에 따라 이수역이 되었기 때문이다.

보통 환승역은 노선이 달라도 역명은 같지만 유일하게 이 역만 다른 노선에 다른 명칭을 가지고 있다. 이 때문에 지금도 헷갈려하는 사람들이 더러 있다. 게다가 총신대가 뒤늦게 시정 요구를 하는 바람에 모든 서울지하철 노선도를 전면 수정해야 했다. 이로 인해 추가 비용이 꽤 들었다.

순천향대 역시 역명 논란의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2008년 1호선이 천안에서 신창역까지 연장개통될 때, 종점인 신창역의 이름을 어떻게 할 것이냐를 두고 갈등이 있었다. 순천향대는 자교명을 병기역명으로 써야 한다고 주장했다. 아예 정식 역명을 '신창(순천향대)'로 해야 한다는 거였다. 그러나 코레일 측은 광역철도역명 제정 업무처리 내부기준상 사립대학은 지역 대표성이 없다는 이유로 순천향대의 요청을 거절했다.

순천향대 측은 즉각 반발했다. 오산대역, 성균관대역 등 코레일 운영 노선을 보면 대학명을 사용한 역명이 많은데 왜 순천향대만 안 되느냐는 것이다. 결국 순천향대의 항의는 받아들여졌고 최종적으로 신창(순천향대)역으로 결정되었다.

이 결정이 신창역 개통 1주일 전에 났기 때문에 이미 그 전에 준비된 노선도나 역명판을 수정하는 데 상당한 비용이 들었다. 게다가 신창역과 순천향대 사이의 거리는 약 1.5km, 도보 30분으로 병기역명을 사용하는 데에는 거리상 애매하다는 것도 논란거리다.

중앙대도 역명 논란에서 빼놓을 수 없다. 본래 중앙대는 7호선 상도역의 부기역명이었다. 그러나 9호선인 흑석역이 상도역보다 학교에서 더 가까운 거리에 신설되었다. 이에 중앙대는 상도역 대신 흑석역에 자교명을 넣어 달라는 청원을 했다.

하지만 이미 그때는 서울시가 대학교를 역명으로 쓰지 않겠다고 못을 박은 시기였다. 대표지역명으로 '흑석'이라는 명확한 명칭이 있었고 역사가 중앙대 안에 있는 것도 아니었기에 서울시는 중앙대의 요청을 거부했다. 이와 함께 서울시는 '앞으로 각 대학은 역 출구에서 도보로 1분 거리에 도달이 가능한 경우에만 해당 역에 교명을 붙일 수 있다'는 원칙을 새로 정했다.

그러나 2008년 8월, 최종적으로 중앙대는 흑석역의 부기역명으로 들어가는 데 성공했다. 이와 함께 상도역의 부기역명은 삭제되었다. 처음에 중앙대는 '중앙대흑석역'으로 아예 역명을 바꾸려고 했지만, 적당히 타협을 보면서 결국 부기역명에 이름을 넣는 데 만족해야 했다.

부산에서도 이런 일이...

서울에만 이러한 논란이 있었던 건 아니다. 부산지하철 2호선에는 경성대·부경대역이라는 독특한 이름을 가진 역이 있다. 두 개의 대학교가 하나의 역명을 공유하는 경우는 이 역이 유일하다. 게다가 부기역명이 '동명대학교'로 무려 세 개의 대학교가 한 역명판에 들어가 있다. 이렇게 된 이유는 경성대와 부경대의 팽팽한 신경전 때문이다.

당초 이 역의 공사역명은 용소역이었지만 경성대가 자교명을 역명으로 넣어달라고 요청하여 '경성대역'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그런데 부경대가 이에 반발하여 '부경대역'으로 해 달라는 요청을 부산교통공단(현 부산교통공사)에 보냈다. 경성대가 역에서는 더 가까웠지만 부경대도 도보 10분이면 역에 다다를 수 있다.

고심 끝에 결국 부산교통공단은 가나다순으로 두 역을 동시에 역명에 넣었다. 조금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던 동명대의 경우 개통 당시에는 역명판에 없었지만 이후 부기역명으로 들어갔다.

덧붙이는 글 | 위 글은 고함20(goham20.com)에 중복게재되었습니다.



태그:#지하철, #역명, #총신대입구역, #서울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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