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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가족은 부산에서 살다 2007년 경남 어느 마을로 귀농했다. 아내와 고등학생 큰딸, 중학생 둘째 딸을 키우며 단감농사, 쌀농사를 짓고 있다. -필자 주-

며칠 전 일요일(14일)이었다. 모처럼 온 가족이 거실에서 뒹굴 거릴 때였다. 고등학생인 큰 딸이 나와 아내의 눈치를 살짝 보더니 중학생 둘째 딸에게 사인을 보냈다.

"우리 뱀부 갈까?"

'뱀부?'. 뱀부가 뭐지? 순간 아내와 나는 서로 쳐다보았다. 그리곤 감을 잡게 되었다. 이 녀석들이 둘만의 은어를 쓰는 거였다. 뱀부는 영어로 Bamboo. 즉 대나무를 뜻한다. "뱀부에 가자"는 말은 대나무숲 아지트에 가자는 뜻이었다.

그러고 보니 지난겨울부터 둘이서 함께 살짝살짝 놀고 오더니 대숲에 아지트를 만든 모양이었다. 대숲은 우리 집 바로 뒤다. 집이 산 쪽에 붙어 있고 산 입구부터 대나무가 우거져 있다. 그 속이 녀석들의 비밀기지였다.

시골에 와서 살다 보니 문화시설은 아무래도 열악하다. 대신 집 마당만 나서도 주변은 온통 자연 그 자체다. 귀농한 지 7년, 다행히 두 딸도 여전히 자연 속에서 노는 걸 좋아한다. 고등학생과 중학생씩이나 된 지금도.

딸들의 은어 놀이를 보면서 갑자기 옛날 생각이 났다. 벌써 오래된 기억이 떠올랐다. 나도 우리집 두 딸처럼 형과 함께 어린 시절을 많이 보냈다. 형과 나는 학년은 2년 차이고, 나이로는 한 살 차이라 곧잘 어울려 다녔다. 물론 동네 친구나 학교 친구하고도 놀곤 했지만, 형제끼리 뭉쳐 다닐 때가 훨씬 많았고 재미있었다.

우리가 자고 나란 곳은 부산 '광안리'다. 광안리 바닷가로 유명한 바로 그곳이다. 포유류 일반의 수컷들 영역이 그런 것처럼 우리 형제의 활동공간도 꽤나 넓었다. 위로는 황령산 '금련사'라는 절에서부터 아래로는 남천동과 민락동 사이 바닷가까지 돌아다녔다.

민락동 끝 지점엔 야트막한 동산이 하나 있었다. 수영강과 민락동 바다가 만나는 지점이다. 이 동산은 '해방대통령 산'으로 불렸었는데 지금은 개발로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방파제와 회 센터만 즐비하다. 그곳까지가 우리의 영역이었다.

우리는 남자형제 답게 무지무지 밖으로 돌아다녔다. 지금 애들처럼 아파트 생활도 아니고 학원 다닐 일도 없었다. 게임기나 가지고 노는 요즘 애들로서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산으로 들로 바다로 뛰어다니며 놀았다. 아침 일찍부터 저녁때까지.

해수욕장 개장과는 관계없이 6월에도 바닷물에 뛰어들기 일쑤였고 9월에도 바다에서 놀았다. 태풍이 부는 전날에는 거세지는 바다를 즐기려고 일부러 물에 뛰어들기도 했다. 이런 태풍이 오는 때는 어머니는 걱정했다. 당연히 바다에는 가지 못하게 했다. 그렇다고 가지 않을 우리가 아니었다. 그때 우리는 우리만의 은어를 만들어 썼다.

"형. '닷가바' 갈까?"

'닷가바'. 조잡한 단어조합이다. '바닷가'라는 단어를 어중간하게 조합한 것이지만, 우리는 은밀한 눈빛을 교환하며 즐겨 사용했다. 또 하나 생각나는 은어가 있다. 그건 '냥사개'라는 단어다. 이미 40년 전 쯤 일이니 이제 말해도 될는지 모르겠다. 지금 이런 놀이를 하는 애들은 동물학대로 처벌을 받을 게다.

그때 왜 그랬는지 몰라도 우리 형제는 '냥사개'. 즉 '개사냥'을 하곤 했다. 자전거 한 대에 앞뒤로 타고 우리 동네와 이웃 동네를 돌며 길거리의 개를 찾아다녔다. 말 그대로 사냥이었다. 그렇다고 개를 죽이거나 먹는다거나 어쩐다는 생각은 없었다. 그냥 그러고 놀았다. 아마도 어린 나이에 나름대로 개와 영역 다툼을 벌였던 것 같다.

'냥사개'는 이런 식으로 진행되었다. 둘이서 자전거로 돌아다니다 떠돌이 개를 발견하면 길가에서 돌멩이를 주워 무장부터 했다. 보통의 떠돌이 개들은 우리가 돌을 줍는 걸 보는 순간 꼬리를 내리고 슬슬 도망가곤 했다. 그러면 우리는 도망가는 개에게 돌멩이를 던지면서 쫓아다녔다. 어른의 눈으로 보면 유치하고 엉뚱하기 짝이 없지만, 당시의 우리에겐 진지했다.

가끔은 이런 일도 있었다. 그렇게 개를 쫓다보면 떠돌이개가 아니라 주인 있는 개일 때도 있었다. 그럴 땐 개를 쫓던 우리가 주인에게 쫒기는 역전된 상황도 발생했다. 코미디 같은 일이었다. 이젠 다 옛날 일이다. 요즘은 그렇게 노는 애들도 없을 것이다.

옛날 일을 생각하다 보니 딸들의 아지트에 가보고 싶어졌다. 둘 만의 은어까지 만들어 쓰는 그 '뱀부'란 곳이 궁금해졌다. 딸들이 아지트로 떠난 지 30분쯤 후에 아내를 재촉했다.

"여보, 애들 아지트를 급습해 봅시다. 깜짝 놀라게 해주자고."

아내는 어른이 되어 가지고 참 싱겁다고 나를 나무라면서도 따라나섰다. 농촌의 어느 일요일 낮. 대나무 아지트에 숨어든 딸들과 이곳을 급습하는 부모의 장면이 연출된 것이다. 아래는 아내와 함께 '영장'없이(?) 습격해 본 딸들의 아지트 풍경이다.

일명 '뱀부'라 불리는 은밀한 장소
▲ 비밀 아지트 일명 '뱀부'라 불리는 은밀한 장소
ⓒ 서재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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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켜버린 비밀장소
▲ 아지트 들켜버린 비밀장소
ⓒ 서재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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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뭐하고 놀까?
▲ 아지트 여기서 뭐하고 놀까?
ⓒ 서재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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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찍으면 안되요. 비밀장소에요
▲ 아지트 아, 찍으면 안되요. 비밀장소에요
ⓒ 서재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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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제 블로그에도 실을 예정입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아지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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