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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 fta, 안녕하세요. 소문자로 fta라고만 쓰는 것을 용서하세요. 갑자기 당신에게 편지를 쓰고 싶어졌습니다. 지금은 잊힌 이름이 된 것 같지만 당신은 곧 '짠!' 하고 나타나겠죠?

올해는 당신과 관련한 두 개의 뉴스가 있네요. 헌법 위에 군림한 것처럼 기세 좋던 외교부 통상교섭본부가 '실'로 강등됐을 뿐만 아니라 산업통상자원부로 자리를 옮겼다는군요. 권불십년이란 말이 딱 맞군요. 두 번째 소식은 민주당 이야기입니다. 민주당은 fta를 맺을 당시는 여당이었지만, 국회 비준을 할 때는 야당이었죠. 참 딱한 처지이긴 하지만, 덕분에 국민들이 민주당에 대해서 정확히 알게 된 것 같아요. '나쁜 fta, 좋은 fta' 기억하시나요? 5·4 전당대회를 앞두고 강력을 대거 손질해 보수 정당으로 거듭나려고 절치부심하고 있더군요.

그러니까 한미fta와 관련해 '국민의 이익이라는 관점에서 전면 재검토한다'는 문구를 한미fta로 국한하지 않은 채 'fta 등 통상정책에 국익을 최우선시해야 하고, 피해부분 최소화 및 피해분야 지원 방안을 마련한다'는 문구로 바꾸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대요. 좌클릭 우클릭을 반복하더니 다시 오른쪽으로 몇 번 클릭한 셈이죠. 이제 국민들이 헷갈리지 않게 돼 다행이지만, '똥개훈련'을 너무 오랫동안 시킨 것 같아 괘씸하네요.

이쯤에서 당신께 하나 물어보고 싶습니다. 당신은 누구였나요? 당신은 우리에게 무엇이었나요? 전국을 떠들썩하게 만들면서 싸울 만큼 의미가 있었던 당신은 지금은 왜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가십거리가 돼버렸나요? 나는 여전히 당신의 정체를 알지 못합니다. 다만 한국에서 가장 유명해진 전 통상교섭본부장이 당신의 후광을 입어 한 대기업의 사장으로 갔다는 소식을 들었고, 여당이었다가 야당이 된 정당의 너무 빤한 연극을 재미 없게 바라본 것, 그리고 피해는 고스란히 농민이나 청년 등 사회적 약자들에게 전가됐다는 것만 봤습니다. 당신은 정치인가요, 경제인가요, 제도인가요? 이미 우리의 일상속에 깊숙이 들어와 있으니 이 정도는 대답해줘야 하는 거 아닌가요?

'우리들 자신이 괴물'이라고 하는 책

<fta 한 스푼> 표지
 <fta 한 스푼> 표지
ⓒ 레디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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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fta를 둘러싼 대한민국의 현주소를 편지 형식으로 묘사해봤다. 만약 fta씨가 답신을 한다면 짧게 이렇게 썼을 것 같다.

"그러는 너희들은 정체가 뭐냐?"

1997년 대학 새내기 때 농활(농촌활동)이 끝나고 나면 선배들과 함께 거리를 지나며 가투(街鬪)를 했다. 골프장 문제와 당시 정치 현안에 대해서 목소리를 냈던 것 같다. 전단지를 슈퍼나 과일가게 아저씨·미용실 아줌마들에게 나눠주면서 설명을 해드리면 차분히 읽어보시는 분도 있지만, 대개는 "정치는 어른들이 할 테니 너희들은 공부나 해라"라며 면박을 줬다.

그런데 10여 년이 지난 지금 가장 열성적으로 투쟁하는 사람들은 슈퍼 아저씨·미용실 아줌마들이다. 이 모습을 보면서 묘한 기분이 들었다. 더 이상한 것은 바로 '경제'다. 정치인들과 대기업·고위 관료들은 "경제는 높으신 분들이 할 테니까 너희들은 너희 일이나 해라"고 강요한다. 통상 권한을 외교부로 넘겼다가 다시 산업통상자원부로 넘기는 것은 예삿일이고, fta 자체도 마치 지뢰 제거하듯이 극소수의 관계자들끼리만 뚝딱 해치우고, 여당은 비준안을 날치기로 처리해버린다.

우석훈의 <fta 한 스푼>은 fta를 둘러싼 각계의 안일한 자세와 노골적인 욕망을 들춰내며 '통상의 기본'을 이야기한다. 즉, 우리에게는 '통상'이라는 기본이 없다는 것이다. '경제민주화'를 이야기한다면  한미fta만큼, 그리고 <fta 한 스푼>만큼 적절한 사례가 없을 것 같다. 경제독재와 통상독재의 적나라한 실태와 그 폐해를 잘 보여주기 때문이다. 우석훈의 이야기를 따라가 보면 결국 '괴물은 누구인가'라는 문제와 만난다. 대기업·정치인·관료들은 괴물 같은 얼굴을 하고 있지만, 진짜 괴물은 따로 있다.

분야별로 이익과 손해를 따지고, 이것을 합산하여 플러스가 되면 된다는 논리를 만들어 놓은 묘한 미장센 속에서, 국민들은 "수출이 늘어난다잖아" 혹은 "수출로 먹고 사는 나라잖아"라는 틀 속에 갇혔다. (본문 일부)

정말 무서운 괴수는 한미fta가 아니라, 그걸 바라본 우리 자신이 아닌가? 괴수와, 괴수를 불러들인 괴수와, 그 괴수를 키운 괴수로 구성된 나라에서 어떻게 우리가 다른 사람의 아픔을 공감할 수 있게 되느냐, 이게 경제보다 더 중요한 그리고 경제 그 자체에 대한 논의이다. (본문 일부)

이 책을 함께 읽은 페이스북 이용자 Sasha Kim씨는 "매번 나라에서 행하는 모든 행사나 사업에 장밋빛 미래를 보여주고, 그 반대의 이야기는 다 막아버리는 현실"이라는 말로 우리나라가 가지고 있는 '일상적 독재성'을 지적했다. 도대체 일반국민이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fta라는 주제를 다루지만 책을 읽어나가면 정작 fta는 주변으로 물러나고 보다 근본적인 문제가 펼쳐진다.

"FTA를 찬성하든 반대하든 민주적 절차를 무시하는 정부와 관료의 행태는 이미 그 자체로 그들이 추진하는 정책을 원인무효시킬 만큼 용서할 수 없는 반민주적·독재적 행태다."(페이스북 이용자 서정호씨)

비단 fta만 그러하랴. 국가가 주도하는 거의 모든 정책은 독재적으로 시행되고 있지 않은가. 한 지식인이 박근혜 대통령을 논평하며 "민주주의가 체질화되지 않은 것 같다"고 표현했는데, 민주주의가 체질화되지 않은 것은 우리나라 전체 국민이라고도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fta 한 스푼>은 어떤 책인가

나와 페이스북에서 토론을 벌이던 독자들은 8년 전 우석훈씨가 쓴 <한미FTA, 폭주를 멈춰라>라는 책을 기억하고 있었다. 서정호씨는 "8년 전 우 교수가 급하게 써냈던 책과 비교한다면, 이번 책은 상당히 여유(?) 있어졌다"고 평했다. 그래서 fta와 관련해서 딱 한 스푼 만큼의 관심과 질문이 필요하다고 압축해서 이야기할 수 있었다.

이 책의 정체에 대해서는 논란이 많았다. "우석훈은 사람 냄새가 나는 경제학자인 것 같다"고 완곡하게 평가한 권기성씨의 말과 같이 <fta 한 스푼>은 경제학 책이 아니다. 한미fta가 경제·정치·외교 등으로 구분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고은애씨는 특히 3장에서 제시하는 몇 가지 정책 방안을 거론하며 "이 부분은 저자가 한미fta 체결을 평가하는 것처럼, 이 책이 경제적이기보다는 '정치적'으로 느껴지는 데에 큰 몫을 한다"고 평가했다. 장재호씨는 "이 책은 경제서적이 아니라 인문학책이라 단언하고 싶다"고까지 표현했다. 결국 <fta 한 스푼>이 이야기하는 것은 "우리의 공감 능력을 회복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미 우석훈 씨의 전작 <한미FTA, 폭주를 멈춰라>에서 보이는 것처럼 <fta 한 스푼> 역시 무엇인가를 의도한다는 느낌을 받은 독자들이 많았다. MyoungJoo Go씨는 "<fta 한 스푼>은 친절하지만 의도가 있는 책이라고 말하고 싶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fta에 대한 생각보다는 자신과 주변의 20대에 대해서 생각해보게 됐다고 회상했다. 20대와 지속적인 만남을 가져온 우석훈씨의 의도가 제대로 먹힌 것 같았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었다. 마태호씨는 "이 책은 FTA를 해야 한다고 막연하게 생각하고 있었던 생각을 바꾸지는 못했다"고 평가하며 경제학 전공자가 비전공자를 설득하지 못해 아쉽다고 말했다.

서정호씨 역시 우석훈 씨가 다소 '헐렁(?)'하게 이야기하는 스타일을 전제하며 "이번 책은 전작들보다 책의 구성이 좀 덜 짜여져 있다는 느낌이 든다"고 솔직하게 평가했다. 어쩌면 <fta 한 스푼>에는 우석훈 씨가 표현하고 싶었던 게 원만하게 표현되지 않았을 수도 있다. 하지만 내가 주목하고 싶은 것은 이 책을 내놓을 당시에 우석훈 씨가 보여줬던 자세다. 우석훈씨는 베스트셀러이자 지금도 잘 팔리고 있는 스테디셀러인 <88만원 세대>를 절판하면서 fta 문제로 화두를 돌리기 위해서 <fta 한 스푼>을 내놨다. 그 의도가 성공했든 그렇지 않았든 간에 그가 마음속에 품고 있는 절박함은 충분히 전달된다.

우리는 불행하게도 '아는 만큼 보이는' 시대가 아니라, '알아야 사는' 시대를 살고 있다. 지금 알고 있는 것은 당장의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고, 오히려 화병만 날 수 있지만 알고 대화하는 과정 속에서 나는 우리나라 통상정책의 새로운 전기가 마련될 수 있다는 희망을 갖는다. 그래서 아래 구절을 보면 만감이 교차하면서도 힘을 얻게 된다.

"fta 체결의 의미를 정확하게 알려면 한 시대가 갖고 있는 경제적·정치적 맥락들을 알고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습니다."(MyoungJoo Go씨)

덧붙이는 글 | 이 기사 속에 나오는 이들은 페이스북 댓글 독서토론 리뷰 참가자들입니다.
(우석훈 씀 | 레디앙 | 2012.07. | 1만5000원)



fta 한 스푼 - 그리고 질문 하나

우석훈 지음, 레디앙(2012)


태그:#FTA, #FTA 한 스푼, #우석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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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놀이 책>, <인문고전으로 하는 아빠의 아이 공부>, <공자, 사람답게 사는 인의 세상을 열다> 이제 세 권째네요. 네 번째는 사마천이 될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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