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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 터오는 마을을 떠난다. 신선한 새벽 공기의 무게와 냄새에는 너무나 오랜만에 느껴 보는 그리운 무언가가 있었다.
 동 터오는 마을을 떠난다. 신선한 새벽 공기의 무게와 냄새에는 너무나 오랜만에 느껴 보는 그리운 무언가가 있었다.
ⓒ 류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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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티아고 순례길은 출발 전부터 새로운 만남으로 시작되었다. 최근 들어 한국인 순례객들이 늘어났다고 들었는데, 정말 나는 생장피드포르에 도착한 날에만 여덟 명의 새로운 한국인을 만나게 되었다.

바욘에서 만난 영지언니와 지연언니, 아라언니, 알베르게에서 같은 방을 쓴 은별이, 순례자사무소에서 만난 두 분의 삼촌들과 젊은 선생님(나이가 있는 한국인 분들에게 우리는 그냥 선생님이라고 불렀다) 그리고 알베르게 앞 거리에서 만난 유대선이라는 성함의 진짜 고등학교 선생님이 그분들이다.

여행을 하면 늘 새로운 사람을 만나게 마련이지만, 이렇게 도착하자마자 많은 사람들을 만나게 될 줄이야. 그리고, 이곳에서는 누구든지 조건 없이 친구가 된다. 나이도, 국경도, 신을 믿는가의 여부도 상관없이.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소서

미명을 떨치고 첫날의 길을 걷는다. 순례자사무소 바로 옆에 있었던 첫째 날의 알베르게(숙소)는 추워서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했는데, 아침부터 분노와 충격을 겪었다. 샤워를 하는 도중에 주인 아주머니가 나에게 밖으로 나가라며 물을 끊어버린 것이다. 아주머니는  샤워 중인 나를 그대로 끌어내려고 했다.

나도 화가 나서 되는 대로 따졌는데, 나중에 아침식사를 주면서 계속 나를 따라하면서 마치 내가 화를 내는 게 이상하다는 양 굴었다. 숙박료가 싸다고 해서 이렇게 사람을 막 대할 수가 있는 것인가 하고 생각했는데, 나중에 보니 12유로인 그 사설 알베르게는 싼 편도 아니었다.

내 출발 동기가 온전히 종교적인 것은 아니었지만 나는 크리스천이다. 순례길을 화가 난 상태로 출발하는 것은 맞지 않는 것 같았다.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소서, 마음을 넓게 하기로 했다. 그래서일까? 그렇게 한바탕 소란을 벌였음에도 불구하고, 길을 떠나는 발걸음은 이상하리만치 가벼웠다. 신선한 새벽 공기의 무게와 냄새에는 너무나 오랜만에 느껴보는 그리운 무언가가 있었다.

 설레는 마음 안은 순례자들이 깨어나는 생장피드포르의 고요한 새벽
 설레는 마음 안은 순례자들이 깨어나는 생장피드포르의 고요한 새벽
ⓒ 류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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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첫 걸음을 내딛는 순례자들
 첫 걸음을 내딛는 순례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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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 같고 햇빛 같은 첫 출발, 첫 만남


출발은 바람같이 순조로웠다. 컨디션은 최고였다. 날씨도 온화했고, 해가 뜨기 시작하면서 따듯해졌다. 평탄한 길에 평화로운 정경이 펼쳐졌다. 사실 첫날 원래 내가 걸으려던 길은, 나폴레옹이 에스파냐를 공격하러 피레네를 넘을 때 걸었다는 그 길이었다. 지금은 그곳에 눈이 쌓여 위험하다고 해서, 우회로로 돌아가야 한다고 했다. 프랑스 길을 택했던 이유가 이곳 피레네를 넘는 것이었는데, 아쉽다.

아무리 우회로라고 해도 피레네 산맥인데, 길이 그렇게 평탄할 리가 없었다. 중간부터 경사로가 조금씩 나타나기 시작했다. 첫날은, 기숙사에서 먼저 이 길을 출발한 선우 오빠가 알려준 대로 한 시간 정도를 걷고 십 분씩 신발과 양말을 다 벗고 쉬었다. 그래야 발에 물집이 생기지 않는다고 했다. 그렇게 쉬었어도 어느 정도 지쳐갈 무렵에, 마을이 나타나고 먼저 도착해 마을의 바(bar)에서 쉬고 있는 사람들이 보였다.

나도 함께 걸어온 사람들과 바에서 쉬다가, 캐나다인 조앤 아줌마를 만났다. 그녀는 혼자서 이 길을 걷고 있었는데, 쉬면서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50이 넘었다고 하는 그녀는 40대 초반 정도로 밖에 보이지 않았다. 나중에 알게 된 것이지만 그녀는 열일곱에 벌써 아들을 낳아 지금은 할머니가 되었다고 한다. 어쨌든 첫 만남부터 그녀는 내게 무척이나 멋져 보였다.

 이른 오후까지는 날씨가 좋았다.
 이른 오후까지는 날씨가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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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레네의 아름다운 정경들을 만날 수 있다.
 피레네의 아름다운 정경들을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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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코스, 순례의 예방주사

잠깐의 휴식처였던 마을을 벗어난 이후에도 경사로는 계속되더니 급기야는 눈이 쌓인 곳까지 이르게 되었다. 눈이 녹기 시작한 길들이 질퍽거렸다. 끝날 것 같지 않은 길들이 계속되었다. 보통 하루에 적게는 20km, 많게는 30km를 걷는데, 27km에 경사로인 첫날 코스는 순례자에게 일종의 예방주사 역할을 하는 것 같다.

첫날에 벌써 바람과 눈과 진창을 만나, 오후 4시경 겨우겨우 론세스바예스의 알베르게에 도착했을 때에는 만신창이가 되어 있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우리가 도착할 무렵무터 내리기 시작한 비를 간신히 피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이것도 다음 날 있을 고난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지만.

론세스바예스 알베르게의 시설은 최상급에 속한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담요가 구비되어 있지 않아 침낭을 가져오지 않은 나는 덜덜 떨면서 자야 했지만. 도착하자마자 뜨거운 물로 샤워를 했더니 피곤이 한결 가시는 것 같았다. 샤워를 하고 거울을 보니 두 볼이 빨간 것이, 꼴이 말이 아니었다. 순례를 하면서 거울을 안 보는 게 속이 편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허기진 배를 채워야 했다. 보통 그날의 순례를 마치고 알베르게에 도착해 순례자 여권에 도장을 찍고 샤워를 하고 저녁을 먹으면 하루 일과가 끝이 난다. 알베르게마다 취사 시설이 있고, 사람들이 두고 간 음식들이나 물건들은 누구든 먹고 쓸 수 있다. 누구나 기부를 하고, 기부를 받을 수 있는 것이다.

나와 몇몇 한국인들은 누군가가 두고 간 보리인지 밀인지 끓여 먹을 수 있게 된 음식을 주워서 조리해 먹었다. 다들 자기 음식을 꺼내어 나눠 먹었다. 나는 내놓을 만한 음식이 없어 식사 후의 커피를 제공했다. 둘러앉아 각자 자기소개도 하며 조촐하지만 따듯한 만남의 시간을 가졌다.

그리고 이곳에서 내가 교환학생으로 와 있는 나라인 리투아니아에서 온 사람들을 만났다! 나와 함께 간 이슬 언니가 주방에서 그냥 옆에 있는 사람들에게 말을 걸며 "Where are you from?(어디서 왔어요?)"했는데 "Lithuania(리투아니아)"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유럽에서도 작은 나라인 리투아니아 사람들을 여기에서 만나다니!

그날은 그들과 그리 많은 대화를 나누지 못했는데, 아쉽게도 이후로 그들과 같은 숙소에서 마주치지를 못했다. 어쩌다 여길 오게 된 것인지 얘기도 들어보고 나는 리투아니아가 정말 좋다고 말하고 싶었는데. 역시 '나중에'를 생각하다 보면 아무것도 못 하게 된다.

"고생하셨습니다. 편안한 밤 되세요!"

 알베르게 직원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순례자들의 좋은 밤을 위한 작은 연주회를 열었다.
 알베르게 직원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순례자들의 좋은 밤을 위한 작은 연주회를 열었다.
ⓒ 류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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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사를 마치고 잠자리에 들려는데, 어딘가에서 음악을 연주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소리를 따라 1층으로 내려가 보니 알베르게 직원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순례자들의 휴식을 위한 작은 연주회를 열었다. 자장가를 연주해주고 있다고 했다. 아코디언에, 하모니카에, 탬버린 등 악기도 다양했다.

보니까 알베르게 직원이 아닌 사람들도 악기를 들고 연주하고 있는 것 같아서, 나도 슬쩍 들어가 트라이앵글을 들고 연주에 끼어들어 보기도 했다. 자장가 치고는 소리가 요란하기는 했지만, 비바람을 헤치고 27km를 걸어온 지친 순례자들에게는 달콤한 깜짝 선물이 아닐 수 없었다.

저녁 내내 마음에 걸리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날 낮에 정말 힘들었던 경사로에서, 스웨덴에서 오셨다는 두 분 할머니가 계셨는데, 힘드신지 계속 가다 쉬다를 반복하고 계셨다. 한 분이 걷다가 계속 서서 쉬시고, 다른 한 분은 옆에서 계속 기다려주셨다. 그분들이 잘 도착하셨을까가 계속 마음에 걸렸다. 우리는 그분들보다 훨씬 앞서 도착했지만 길이 너무 험하고 멀고, 게다가 우리가 도착한 후로는 비까지 내려 사정이 훨씬 나빴을 것이다.

그런데 웬걸, 웃는 얼굴의 아까 그 할머니들을 알베르게에서 마주쳤다. 다행이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순례길이 계속되면서 알게 된 사실이지만 그분들은 우리보다 훨씬 더 강하셨다. 대부분의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우리보다 강하셨다. 누가 누구를 걱정했던 것일까. 그분들이 알면 웃으시겠지.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기자의 블로그 blog.naver.com/plumpberry에도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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