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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이 돌아왔다. 사실 2년밖에 되지 않았는데 마치 먼일처럼 느껴졌다. 그만큼 현재가 생생해서일 것이다. 해결의 실마리는 보이지 않았다. 많이 먹여도 시간만 되면 정확히 일어나 울기 시작하는 아기. 인상을 찌푸리고 헝클어진 머리를 감싸 쥐며 소리라도 지르고 싶은 심정이었을까.

"여보. 안 되겠어. 얘, 그냥 분유 먹여."

 책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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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하이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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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때 되찾은 '모성애'의 포기였다. 야심 차게 기획했던 '완모(완전모유수유)'의 꿈은 날아가 버렸다. 젖도 달리지 않은 주제에 주제 넘은 지라 뭐라 말도 못하고 마음만 졸였다. 얼마 전에 얼핏 보았던 불량분유에 관한 기사도 떠올랐다.

하긴, 애 엄마만 고생스러운 일은 아니었다. 길면 두 시간, 짧으면 한 시간마다 젖을 청하는 막내아들은 마치 괴물처럼 보였다. 매일 자라는 것이 눈에 보일 만큼 몸집이 불어나는 모습과 반대로 아내는 몰골이 말이 아니었다. 얼굴에 주름과 기미가 유난히 도드라져 보이기도 했다.

하루 열너뎃번 가까이 젖을 먹이는 일의 가장 큰 문제 중 하나는 '잠'이었다. 잠을 모으는 것이 가능한가? 쪼개서 한두 시간씩 자는 일은 원기 회복에 도움이 되지 않았다. 눈은 퀭하고 머리는 지끈거렸다. 며칠 잠을 설쳤을 뿐인데 마치 언제 잠을 제대로 잔적이 있나 싶은 정도로 괴로웠다.

첫째 때에도 이랬었나. 기억이 나지 않는다. 분유와 반씩 섞여 먹였는데 나는 분유 먹이는 일과 기저귀 갈거나 빨아 널 때 도움을 주었고 잠이 모자란다는 투정도 어렴풋이 기억이 났다. 당시에 나는 잘 잤다. 완전수유에 성공한 둘째 때는 어땠었나.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잠을 잘 잤었나? 아내에게 물으면 답은 뻔하다.

"당신이야 잘 잤지. 항상."

잠 못 자는 괴로움이 컸다. 이젠 20년 전 선택, 전공인 건축설계를 포기한 이유도 제때 못 자는 일이 싫어서인 나다. 고민이 깊어졌다. 방법이 없을까 고민했다. 셋째가 나온 지 두 달이 막 넘을 즈음이었다. 집안 분위기도 엉망이 되어가고 있었다. 같이 해주지 못하는 남편은 미안한 마음은 있으나 '그래도 한 명이라도 제대로 자는 것이 낫겠다' 싶어 아기의 울음을 못 본채 하기도 했다.

그 넓다던 '어머님의 사랑'도 찾아보기 힘들었다. 시간마다 울어대는 아이를 두고 나중에는 욕지기가 나왔고 더불어 사랑과 평안으로 감싸야 할 나머지 두 형들도 엄마의 눈치를 보지 않으면 안 되었다.

"좀 지나면 괜찮아져."

대부분 어른들은 이런 해법을 내놓았다. 백일이 기점이라는 이도 있고 6개월을 잡는 이도 있었다. 믿기 어려웠다. 첫째 때부터 이미 경험해보았지만, 결코 나아지지 않았다. 밥을 먹기 시작하기 전에는. 앞으로 6개월 이상 이런 삶을 사는 것도 가족의 행복을 위해 바람직하지 않다는 판단이 들었다. 결단이 필요했다.

우연히 읽은 기사에 등장한 책의 내용이 눈에 들어왔다. 레스토랑에서 얌전한 아이들. 떼를 쓰는 아이의 모습이나 아이의 뒤를 졸졸 따라다니는 부모를 보기 힘들다는 내용이었다. 미국에서 기자를 하던 글쓴이가 프랑스생활을 하면서 배운 '다른 육아법'에 관한 책이었다.

책은 묵직했다. 그만큼 내용이 있었다. 국내에 많이 나와 있는 육아서의 형식과 디자인은 아니었지만, 재미도 있고 가치관과 문화, 철학이 버무려진 육아 방식이 우리의 것과 비교해 볼만했다. 특히 가장 큰 고민에 대한 해답이 담겨있었다. 프랑스 아이들의 대부분은 생후 2~3개월에 밤새 잔다는 점이었다. 그들은 '밤을 한다'는 표현으로 밤중 먹이기가 언제 끝나는지를 말하는 정도라는 것.

미국 저자가 경험한 프랑스 아이를 관찰한 책에 따르면 국내 육아방식은 우리 고유의 것에서 근대화를 통해 일본과 미국의 방식을 많이 흡수한 듯 보인다. 우리 집의 풍경과 비교하자면 모유수유를 강조하는 것이라든지 창조성을 위해 아이들에게 칭찬하고 기를 꺾지 말라는 방식은 '미국의 것'과 같았다. 덕택에 육아풍경도 프랑스보다는 미국 쪽에 가깝다. 먹는 것의 경우 확실히 제때 먹지 않으면 굶기고 간식을 주지 않는 법이라 밥을 떠먹이지는 않는 점. 사달라고 조르는 모습이 보이지 않는 점, 식사를 스스로에게 맡겨도 별 문제가 생기지 않는 점 등은 프랑스의 그것과 비슷하다.

<행복한 아이(A Happy Child)>라는 책에서 프랑스 심리학자 디디에 플뢰(Didier Pleux)는 아이를 행복하게 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 좌절을 주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아이를 놀지 못하게 하거나 안아주지 말라는 뜻이 아니다. 아이의 취향, 리듬, 개성은 당연히 존중해야 한다. 다만 아이는 아주 어릴 때부터 이 세상은 혼자 살아가는 곳이 아니며 모두를 위한 시간과 공간이 있다는 걸 배워야 한다.' -책에서

결국은 문화의 차이다. 파리의 가임여성(?)들은 몸매의 회복에 신경을 많이 쓰고 얽매여 아이와 함께 불행해지는 것보다 갓 낳은 아이에게는 시련처럼 보이더라도 꽤 엄격한 훈련과정을 당연시여긴다는 점. 그들은 '기다려'를 입에 달고 아이가 울어도 바로 달려가지 않는다. 보통 15분여 시간을 '두고 본다'는 점이 열쇠였다.

당장 시행해보았다. 효과가 있었다. 그것도 하룻만에. 냉정함이 중요했다. 악을 쓰며 우는 아이에게 다가가 "기다리라"고 말하고 왜 우는지 묻는 일도 했다. 어린 것이 뭘 알아듣나 싶게 울음을 멈추고 아빠가 하는 말을 귀담아 듣는 모습을 보이자 자신감이 붙었다. 15분씩 하루 세내 차례 울던 막내는 이틀 만에 적응하기 시작했다. 옹알거리는 수준으로 보채다가 곧 잠이 들거나 혼자 손발을 파닥이며 누워서 놀았다. 덕택에 집안의 분위기는 급반전했다.

프랑스 부모들도 아이들에게 날카로운 목소리로 말한다. 끊임없는 융단폭격보다 단번의 국부타격을 선호한다. 그러나 고함은 정말 중요한 순간을 위해 아껴둔다. 그런 사람들 앞에서 내가 고함을 지르면, 아이들이 무슨 엄청난 잘못을 했나 의아해하며 쳐다볼 정도다. 나는 다른 미국 부모들처럼 권위를 훈육과 벌의 관점으로 바라본다. 반면 프랑스 부모는 그런 식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훈육보다 '교육'이라 말한다. 말 자체가 암시하듯, 그들이 사용하는 방법은 '어떤 것은 용납이 되고 어떤 것은 그렇지 않은지' 아이들에게 서서히 가르쳐주는 쪽이다. - 책에서

한발 더 나아가, 엄마 말 안 듣기로 소문난 둘째에도 써 보았다. 눈을 맞추고 위엄 있는 표정과 낮고 엄한 목소리로 "안 돼"나 "기다려"등으로 '위엄 있게' 말하는 일이다. 달라진 분위기에 아이가 알았다는 듯이 행동을 그만두거나 보지 않고 멈칫할 때 또 한 번 강조해 힘주어 말했다. 효과가 있었다.

중요한 것은 부모의 믿음이었다. '내가 말하면 아이가 듣는다'는 확신을 가지고 해야 한다는 점이었다. 무르거나 부드럽게 해서는 아이는 절대 듣지 않는다. 더 빠른 효과를 볼 수 있는 일은 '매'를 사용하는 것이지만 이는 최후의 수단이 되어야 한다. 한번 매를 들면 이후에 아무리 소리 지르는 일이 반복되어도 상황은 나아지지 않기 때문이다.

덧붙이는 글 | 파멜라 드러커맨 저 /이주혜 역 /북하이브 /2013.03.20./15,000원
원제 Bringing up bebe : one American mother discovers the wisdom of French parenting



프랑스 아이처럼 - 아이, 엄마, 가족이 모두 행복한 프랑스식 육아

파멜라 드러커맨 지음, 이주혜 옮김, 북하이브(타임북스)(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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