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명의 시민기자가 개의 기사를 작성하였습니다. 시민기자 전환하기
반성매매인권행동 <이룸>은 성매매피해지원상담소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성매매의 복합적이고 다층적인 문제에 대해 '새로고침 F5 : 성매매 다시 생각하기'라는 타이틀로 연재합니다. 성매매의 구조를 다각적으로 살피고, 남성의 성욕을 위해 이 사회가 얼마나 총동원 되었는가를 돌아보며, 여성들의 인권현실이 얼마나 열악한지, 나아가 정체성과 상관없이 누구나 안전하고 평등한 성을 누릴 수 있는 사회에 대해 이야기 하려 합니다. 더불어 성매매는 법으로만 결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사회 구성원 모두가 함께 해결해야 할 문제라는 걸 나누고 싶습니다... <기자 말>

2012 성매매방지영상제에서 상영된 탈성매매 여성들의 일상을 담은 영화 <당신은 모르는 우리들의 이야기>의 한 장면.
 2012 성매매방지영상제에서 상영된 탈성매매 여성들의 일상을 담은 영화 <당신은 모르는 우리들의 이야기>의 한 장면.
ⓒ 앰케이

관련사진보기


매달 나오는 이룸 소식지에는 Q&A 코너가 있다. 성매매에 대한 다양한 질문을 받아 그에 대한 답변을 하는 코너다. Q&A 코너를 통해 질문자의 성매매에 대한 인식을 읽어낼 수도 있다.

한번은 '(성매매 여성들은) 늙으면 어떻게 되나요?'라는 질문이 들어온 적이 있다. 이 질문에는 성매매 여성은 젊고 예쁜 여자일 것이라는 틀린(!) 전제가 깔려있다. 하지만 한편으로 그 여성들의 미래까지도 궁금해하는 사람들은 별로 없기에 (이 질문이) 반갑기도 했다.

성매매 여성들은 개개인마다 성매매를 그만 둔 각자의 서사를 갖고 있다. 그런데 본인의 의지로 이뤄낸 탈출이었든 주변 환경의 변화로 인한 우연한 탈출이었든 업소를 나온 뒤 겪게 되는 몇 가지 공통된 문제가 있다. 이것과 관련된 내용을 채권추심·민사소송을 통해 살펴보자.

'딩동' 우체국입니다

형미씨(가명)는 오늘 우체국 직원에게서 등기를 하나 받았다. 1200만원을 갚으라는 대여금청구소송이다. 형미씨는 소송을 제기한 원고의 이름을 확인하자 지난 기억들이 떠오르며 순간 아찔해졌다. 2004년, 마지막 (업소)가게에서 일할 때 남아있던 빚이다. 다음 번에 남편과 있을 때 또 이런게 날아오면 어쩌나, 채권자가 집으로 찾아와서 소란피우면 어쩌나 겁이 난다.

성매매피해지원상담소의 주요 업무 중 하나가 성매매 여성이 (업소에서 일할 당시 발생한 빚 때문에) 업주나 사채·일수업자가 제기한 민사소송에 대응하는 것을 돕는 일이다. 일을 그만둔 지 한참 지난 여성들에게 7-8년 전의 차용증을 근거로 한 대여금청구소장이 날아오는데, 문제는 이 차용증을 언제 쓴 것인지, 채권자가 누구였는지도 기억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성매매를 했던 여성들 입장에서) 워낙에 오래 전의 일이기도 하고 차용증을 쓸 당시에는 대부분 빈 서류에 채무자의 이름만 적게 한 뒤 서류를 가져가버려 채권자의 인적사항은 전혀 알 수 없다. 심지어 돈을 다 갚고나서 서류를 돌려달라고 해도 '지금 없다, 내일와라'라고 하며 돌려보낸다. 이렇게 하루 이틀 미루다 그냥 넘어가게 되면 돈을 다 갚았지만 되돌려 받지 못한 차용증이 다시 부활해 민사소송이 되기 일쑤다.

(민사소송에서) 차용증 작성 과정에서의 불합리함은 두 번째 문제다. 더 심각한 것은 여성들이 성매매 업소와 관련된 빚이라는 점 때문에 소송이 제기된 것 자체로 불안에 시달려야 한다는 점이다.

현재로서는 성매매 경험이 그 자체로 치명적인지라 남편이 알게 될까 시댁이 알게 될까 불안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성매매 여성들은 제기된 소송에 한 번 싸워보거나, 제대로 대응할 의지를 잃게 되기도 한다.

'마지막 재판이었으면... 진짜 빌고 빌었다'

서울중앙지방법원 501호. 미자씨(가명)는 2시 재판을 기다리고 있다. 서성이는 수많은 사람들 중 누가 내 사건의 원고일까, 아는 얼굴일까 힐끔힐끔 주변을 살펴봤다. 이름이 불리고 피고인석에 앉았는데 원고라고 나온 사람이 낯설다. 원래 모르는 사람인 건지 아는 사람인데 오랜 시간이 흘러 못 알아보는 것인지 도통 모르겠다.

떨리는 마음을 애써 진정시키며 2차를 나가는 유흥업소에서 일을 했었고 그때 생긴 빚이라고 진술했다. 일순간 쏟아지는 방청석의 시선을 느꼈다. 판사도 눈을 치켜뜨고서 쳐다본 것 같다. 여러 가지 감정이 지나가지만 일단 지금은 참기로 한다. 원고는 자기는 성매매고 업소에 관한 건 하나도 모르고, 선의로 (돈을) 빌려준 건데 돈을 받아가고서는 그 뒤로 연락도 안 되고 잠적을 했다며 억울함을 호소한다.

채권자가 제기한 대여금청구소송 소장에는 '얼마를 빌렸다'는 사실만 남는다. 어떤 과정에서 생성된 채무인지는 드러나지 않는다. 또한 선불금 의혹을 피해가기 위해 업주들이 선불금을 직접 빌려주기 보다는 사채나 일수 등을 통해 거래하기 때문에 업소에서 발생한 빚은 단순한 개인 간 빚으로 둔갑하곤 한다.

채권 발생 시기가 오래되었을수록, 일할 때 썼던 장부나 증인이 마땅치 않아 여성에게는 불리하다. 이런 경우 여성의 진술만이 유일한 증거가 되는데 몇 달에 걸쳐 이어지는 재판은 그 자체로 힘겹다. 스스로 법정에서 성매매를 했었다고 증언하는 것은 또 얼마나 부담스러운 일인가. 또, 판사가 성매매 여성에 대한 선입견으로 불리한 판결을 내놓지는 않을지도 걱정해야 한다.

이번이 마지막이었으면, 이번이 마지막 재판이었으면, 진짜 빌고 빌었다니까 속으로. 이번에 이런 생각도 했어. 판결이 이상하게 나와도, '그냥 끝나라, 더 이상 가지말고 끝나라 돈을 물어주라고 판사가 하면 한 달에 얼마씩 갚아주겠다고 할 테니까 제발 끝나라' 이런 마음도 있었어. 너무 안 끝나니까. 잊어버릴만 하면 또 와갖고 또 그러면... 사람이 참 희한한게 가슴이 막 또 떨려. 또 나와라 이런 애기 들으면 갑갑해지고 또 떨리고. 어쩔 땐 이런 생각도 해요. 괜히 상담소 찾아갔나 이런 생각도 해.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다니면서 단 얼마씩 갚아줬으면 지금 이런 상황까진 오지 않았을 텐데. 오히려 일할 때보다 그 재판 받고 막 그랬을 때가 더 힘든 거야, 정신적으로(2008, 이룸이 발간한 성판매 여성이 경험하는 사회적 차별 중에서).

주소불명, 주민등록 말소상태로 살아가기

경남 창원시가 최근 폐쇄 여론이 많은 것을 고려, 개발용역에 착수한 마산합포구 서성동 성매매업소 집결지(자료사진)
 경남 창원시가 최근 폐쇄 여론이 많은 것을 고려, 개발용역에 착수한 마산합포구 서성동 성매매업소 집결지(자료사진)
ⓒ 연합뉴스

관련사진보기


성매매를 했던 여성에게 가장 두려운 것은 무방비상태에서 주변에 성매매 경험 사실이 드러나는 것이다. 성매매에 대한 낙인과 사회적 차별이 존재하는 상태에서 '주변에 알리겠다'는 말은 (성매매 여성들에게) 강력한 협박이 된다.

내가 쓴 차용증이 어딘가를 떠돌아다니고 있고 언제고 다시 소송이 제기될 수 있다는 불안감은 앞으로의 삶을 계획하는데도 영향을 미친다.
빚 추심이 드러날까 혼인신고를 앞두고, 망설이기도 한다. 내가 살고 잇는 집을 알아내서 쫓아오지 않을까 두렵기 때문에 전입신고를 꺼리기도 한다. 이것이 성매매를 했던 여성들의 솔직한 심정이다.

실제로 상담을 하다보면 그 어느 곳에도 전입신고가 되지 않은 채 주민등록 말소 상태로 십수 년의 세월을 견뎌온 여성도 만나게 된다. 어떤 기록에도 남지 않게, 적극적으로 사라지는 편이 본인의 안위를 위해 더 나은 선택이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녀의 안부를 묻습니다

대부분 문제 해결을 위해 상담소를 찾는 여성의 특성상 사건이 끝나면 자연스레 연락이 끊어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시간이 흘러도 간간이 안부를 하는 경우도 있다). 그리고 다시 연락이 오는 경우는 다른 문제가 생긴 것인 경우가 많기 때문에 무소식이 희소식인 셈이다.

상담원과 연결되는 자체로 내가 그 일(성매매)을 했었다는 사실을 떠올리게 되고, 아직도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다는 느낌을 받게 되어 괴로운 것이다. 일하던 당시의 나와 이후의 내 삶을 성공적으로 분리해 살아가고 있는 여성의 경우라면 더욱 그렇다.

'은밀한 호황'을 누려온 한국의 거대한 성산업에 비춰봤을 때 길든 짧든 성매매를 경험해 본 여성들의 수는 적지 않을 것이다. 차별하기 좋아하는 누군가는 이렇게나 타락한 여성들이 많다고 호들갑을 떨며 여성혐오를 드러내기도 한다.

정작 그런 사람들이 남성의 성욕을 위해 성매매가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성매매여성 구별법을 공유하는 모순적 행태를 보이는 것이 현실이다. 이러나 저러나 성매매를 경험했던 여성들은 다 어디선가 살아가고 있다.

사람살이가 다 그렇듯 이들도 머리 아프고 구질한 일상을 견뎌내고 있을 것이다. 건승하시길!

[관련기사]
[새로고침 F5 : 성매매 다시 생각하기①] "성매매한 저만 잘못인가요?"... 억울해 죽겠어요
[새로고침 F5 : 성매매 다시 생각하기②] 성폭행에 빚독촉까지...벗어나고 싶어요

덧붙이는 글 | 활동가 기용은 반성매매인권행동 <이룸>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반성매매인권행동[이룸]은 성매매 여성을 지원하고 반성매매활동을 펼치는 여성단체입니다. 성매매는 사회적 약자인 여성에 대한 가부장적 권력의 지배와 억압이 여실히 드러나는 심각한 사회문제입니다. [이룸]은 성매매 구조의 심각성을 알리고 우리 사회의 변화를 이끌어내기 위한 활동을 합니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