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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절마다 눈에 보이는 경치는 모두 다르다. 봄이면 산과 들에 꽃이 피고 여름에는 파란 바다와 신록이 우거진다. 거기다 황금빛 들판과 온 산이 붉게 물드는 가을, 그리고 온 세상이 흰 눈으로 뒤덮이는 겨울까지.

이런 계절 변화가 중위도 지역의 기후 특징이다. 우리나라의 지형은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반도이고 산이 많아 날씨의 변화가 잦은 편이다. 바다에서 수증기가 공급되고 산에서 상승 기류가 발달해 바람 방향에 따라 날씨가 변덕을 부리기 쉬운 것이다.

우리나라의 계절 변화를 알기 위해서는 기후를 빼놓을 수 없다. 이런 기후는 어떻게 작용하고 우리 생활에 어떤 영향을 주고 있을까. 지난 3일 봄꽃으로 가득한 건국대학교에서 기후연구소 이승호 소장(이과대학 지리학과 교수)을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건국대 기후연구소 이승호 소장(지리학과 교수)
 건국대 기후연구소 이승호 소장(지리학과 교수)
ⓒ 박선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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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앞선 기후변화 가설로 국민 불안케 해선 곤란"

최근 기상청이 기후변화 주기가 빨라져 80~90년 후면 우리나라가 여름이 절반이 될 것이라는 하나의 시나리오를 발표했다. 이승호 소장은 "기상청이 그 같은 발표를 한 것은 무책임한 행동"이라며 "우리나라는 지구온난화와 기후변화 현상에 대해 너무 극단적으로 표현하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이 소장은 "이번 세기 말에 1년의 절반이 여름이 된다면 우리나라는 북위 20°에 있는 것과 마찬가지이고, 만약 그렇게 될 경우 지구는 살아남지 못할 정도가 된다"며 "국민의 신뢰를 받고 있는 국가기관이 하나의 시나리오로 국민을 불안하게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강조했다.

이 소장은 최악의 시나리오를 발표하는 것보다 '평균기온이 1℃씩 오를 때 국민들이 어떻게 대비할 것인가'와 같은 대응 방법을 제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제안했다. 이 소장은 기후변화와 관련한 여러 가설들이 너무 앞서가는 경향이 있다고 재차 지적했다. 그는 "일부에서 몇 십 년 후면 우리나라에서 고랭지 배추를 경작할 수 없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하는데 이 또한 잘못된 것"이라고 말했다.

건국대 기후연구소는 지난 5년간 태백산 일대의 농경지를 대상으로 연구를 했다. 연구결과 고랭지 배추 농사가 가능한 곳이 고도가 높은 곳으로 장소를 옮겨갈 뿐 면적은 줄지 않았다고 한다. 현재 강원도 평창의 횡계 지역에서는 해발 1000~1300m의 고지대에서 고랭지 배추 농사를 짓고 있다. 고랭지 농업이 해발 600m 이상부터 가능한 것을 감안하면 고도가 높아지는 추세다.

단, 문제가 있다. 고도가 높을수록 지형성 강수(습윤한 공기가 산지를 넘으면서 수증기가 응결돼 나타나는 강수 현상)가 빈번한데, 비가 내릴 때마다 경사면의 토사가 유출되는 것이다. 이 소장은 "지형성 강수 때문에 태백산 일대의 농경지의 토사가 많이 유출되고 있다"며 "유출된 토사는 하천을 따라 댐으로 흘러가는데 댐의 수용량에 한계가 있어 문제가 되고 댐의 수명도 짧아진다"고 말했다.

"기상청 '기후도' 각 지역의 지형 고려 않고 제작돼 문제"

요즘에는 비가 많이 와도, 날이 갑자기 추워져도 '기후' 이야기를 한다. 기후란 일정한 지역에서 장기간에 걸쳐 나타나는 대기현상의 평균적인 상태를 말한다. 하지만 기후는 수십 년 또는 수백 년 정도의 긴 주기를 가지고 변화한다. 기후 요소에는 기온·일사량·일조시간·강수량·습도·증발량·운량·바람·기압 등이 있다.

'기후변화가 가속화되고 있다'는 말은 이 주기가 빨라지고 있음을 이른다. 그 원인은 온실가스 배출량 증가·대기오염의 심화·오존층의 감소 등으로 인한 지구온난화 등이 있다.

2000년대 초반만 해도 '기후'를 전문으로 연구하는 연구기관이 없었다. 그래서 건국대는 2006년 기후연구소를 설립하게 됐다. 현재 40여 명의 연구원들이 기후변화로 인한 현상이 사회경제적으로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연구하고 있다. 지난해 12월에는 연구소 논문집 <기후연구>가 한국학술진흥재단의 등재지로 선정됐다.

건국대 기후연구소 이승호 소장
 건국대 기후연구소 이승호 소장
ⓒ 박선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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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소 설립 후 5년간 태백산 지역의 농업을 중점적으로 연구했다. 이 소장은 "기후변화는 고위도 지방에서 주로 많이 나타나는데, 태백산 지역이 비교적 빠르게 진행되고 있는 것 같아 연구를 시작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또 '기후도' 제작에도 나섰다. 지리학과 교수인 이 소장은 우리나라 정부에서 발표하는 기후도에 아쉬운 점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는 "지도와 함께 기후가 설명되는데 기상청에서 발간하는 '기후도'는 각 지역의 지형을 고려하지 않은 채 만들어지고 있어 문제점이 있다"고 밝혔다.

전국에 기후 관측 지점은 80여 개가 있다. 해당 지점에서 관측된 자료가 그 지역을 대표하는 값이 된다. 하지만 지역에 따라서 산이 있고 평지도 있는데 모두 같게 표시되면 안 된다는 것이 이 소장의 의견이다.

날씨와 기후가 농사의 '때'와 각종 '세시풍속' 만들어내

날씨와 기후는 우리나라의 계절과 각 지역의 문화와 풍습을 만들어왔다. 이승호 소장은 "우리의 문화 중 하나가 빨리빨리 서두르는 것"인데 "이는 우리나라의 변덕스러운 '날씨'와 관련이 있다"고 풀이했다. 농경사회였던 우리나라는 계절에 맞춰 농경준비를 해야 했다. 그 '때'를 놓치면 농사를 망칠 수 있어 자연스레 서두르게 된 것. 이렇듯 계절의 차이가 농사의 '때'를 만든 것이다.

또 계절에 맞는 다양한 세시풍속을 만들어 냈다. 이 소장은 "세시풍속의 대부분이 기후와 관련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한식날에는 찬밥을 먹는 습관이 있는데, 이 무렵이 1년 중 가장 건조한 시기"라고 덧붙였다. 겨울철에는 건조한 기단의 영향을 받지만 기온이 낮고 곳곳에 눈이 내려 습도가 낮지 않다. 반면 봄이 되면서 기온이 오르고, 눈이 녹아 사라지면서 공기가 마를 대로 마른다는 것. 

겨울철 바람이 강하고 눈이 많이 내리는 전라도 가옥 형태는 소백산맥을 사이에 두고 이웃하고 있는 경상도 가옥과는 차이가 난다. 전라도 가옥은 하나의 건물로 집중됐지만, 경상도에서는 기능별로 여러 채의 가옥이 있었다.

이 소장은 "그런 차이에는 '기후'도 한몫 했을 것"이라며 "전라도는 겨울철 눈이 자주 내리고 바람까지 매섭게 불어 가옥 밖으로 출입이 쉽지 않았다"면서 "경상도는 소백산맥이 북서풍을 막고 있어 체감 온도가 크게 떨어지지 않았고, 눈도 거의 내리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우리나라 날씨, 산지의 영향 많이 받는다

우리나라는 산지를 사이에 두고 바람이 불어오는 쪽과 불어가는 쪽의 날씨 차이가 발생한다. 종종 산지를 사이에 두고 한쪽은 구름이 끼고 반대쪽은 하늘이 맑은 것을 볼 수 있다. 어떻게 이런 현상이 일어나는 것일까. '소나기는 쇠잔등을 가른다'는 옛 속담이 있다. 이 말은 소나기가 매우 국지적인 현상이란 의미를 담고 있고, 산지가 날씨 차이에 미치는 영향이 그만큼 크다는 것을 잘 보여주는 말이다.

이승호 소장은 "우리나라는 태평양을 향해 뻗어 나간 반도 국가이고, 국토의 70% 정도가 산지"라며 "이런 속담이 있을 정도로 우리나라 날씨는 산지의 영향을 크게 받는다"고 말했다. 이 소장은 "그 중에서 태백산지는 영서 지방과 영동 지방의 기후와 날씨 차이에 미치는 영향이 무척 크다"며 "영동지방은 늦겨울부터 초봄 사이에 눈이 많이 내린다"고 덧붙였다.

겨울철에 북서풍은 북동쪽에서 남서쪽으로 뻗은 차령산맥이나 노령산맥에 부딪히면서 상승한다. 그 영향으로 서해안에 가까운 서쪽 사면에 눈이 많이 내린다. 눈 소식이 잦은 충남 보령, 전북 정읍, 고창 등이 그 예이다. 반면 소백산맥으로 북서풍이 막혀 있는 영남 내륙지방은 눈이 거의 내리지 않는다.

이 밖에도 산지의 영향을 받는 경우가 있다. 공기가 이동하다 장애물을 만나면 멈추지 않고 상승하면서 산을 넘는데, 상승하는 공기덩어리는 기압이 낮아져 팽창한다. 이 소장은 "공기가 팽창하려면 에너지를 사용하기 때문에 기온이 낮아진다"면서 "상승하는 공기는 이슬점에 이르면 응결해 구름이 만들어지고 그 구름이 발달하면 비나 눈이 내린다"고 말했다. 

이승호 소장
 이승호 소장
ⓒ 박선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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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 공기가 한반도 북쪽을 지나다 그 중심이 우리나라 북동쪽에 자리 잡으면, 대부분 지역에 북동풍이 분다. 실제 북동풍이 동해상을 지날 때 구름이 발달되고 이 구름이 태백산맥을 만나서 상승하면 더욱 두꺼워진다. 그는 "이는 마치 공기를 덜 채운 풍선이 높이 올라가면서 탱탱해지는 것과 같은 원리"라고 설명했다.

산 정상까지 올라간 공기가 사면을 따라 하강할 때는 기압이 점차 높아져 압력을 받으면서 공기가 압축돼 기온이 상승한다고 덧붙였다. 이 소장은 우리나라 기후의 특성은 '다양성'에 있다고 말했다. 사계절 중 봄의 날씨가 특히 변덕스러운 것도 이와 연관이 있다.

그는 "봄에 접어들면서 시베리아 고기압과 북서 계절풍이 약해지고, 이동성 고기압이 우리나라로 동진해 온다. 또 이동성 고기압에 뒤에 기압골이 따라와 봄에는 꽃샘추위 등 날씨 변화가 가장 심하다"고 설명했다. 우리나라의 위치(북위 33~43˚, 동경 124~132˚)·지형·기후 등의 특징이 곧 우리나라 사람들의 삶의 모습에 고스란히 스며들어 있다는 해석이다.


덧붙이는 글 | 박선주(parkseon@onkweather.com) 기자는 온케이웨더 기자입니다. 이 뉴스는 날씨 전문 뉴스매체 <온케이웨더(www.onkweather.com)>에도 동시 게재됩니다.



태그:#이승호 소장, #기후연구소, #날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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