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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년 동안 간직한 참담한 유골 가격흔이 발견된 후 많은 이들은 재야인사 장준하 선생의 사인에 대해 강력한 의혹을 품었다. 그로 인해 지난 2003년 '대통령소속 의문사 진상규명위원회'에서 이 사건 조사관으로 일한 나에게 강연 요청이 쇄도했다.

2012년 8월 1일, 그날도 시민단체인 '민족문제연구소'가 회원을 상대로 장준하 선생에 대한 이야기해 달라는 요청이 있었다. '나는 장준하를 보았다'라는 주제로 약 2시간에 걸친 열띤 강연과 질의 응답이 끝난 후 많은 이들은 고맙게도 깊은 공감을 표시했다. 이후 홀가분한 마음으로 이동하여 식당에서 못다 한 이야기를 마저 나누었다. 그렇게 얼추 자리가 파하여 이제 돌아가려던 순간이었다. 낯선 한 사람이 참석자를 헤치고 내게 악수를 청해왔다.

그리고 그때, 나는 그와 나눈 몇마디 대화를 통해 마치 망치로 한 대 맞은 것처럼 잊고 있었던 '새로운' 진실을 깨달았다. 그는 나에게 장준하 선생님의 타살 의혹을 밝힐 수 있도록 더 많은 역할을 주문했다. 고마운 마음에 허리 굽혀 악수를 하는데 그는 안타까운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그래도 장준하 선생님은 얼마나 다행인가요. 장 선생님 사건에 대해 많은 이들이 이렇게 관심을 보여주고 있잖아요. 하지만 우리 백범 선생님의 암살 의혹에 대해서는 사람들이 별 관심이 없어 너무 안타까워요."

'아. 그렇구나. 백범 김구 선생의 암살 의혹 역시 아직까지 제대로 밝혀지지 못했구나'하는 새삼스러운 깨달음이 밀려왔다. 알고보니 그는 백범기념관의 홍소연 자료실장이었다. 나는 홍소연 실장과 헤어진 후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나의 '부족한' 역사 인식을 두고 부끄러웠다.

정치인이 존경하는 인물 1위 '백범', 그러나 암살 진실 규명은...

만년의 백범 김구 선생
 만년의 백범 김구 선생
ⓒ 백범기념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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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9년 6월 26일 낮 12시 34분경. 서울 종로구 평동 소재 경교장 2층(현재 강북삼성병원 내)에서 느닷없는 네발의 총성이 울렸다. 그 비극적인 총성이 앗아간 생명은 '백범 김구'였다.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그를 잘 아는 사람이든, 아니든 상관없이 '존경하는 인물'을 꼽을 때마다 늘 빠지지 않고 거론되는 인물이다. 특히 대통령 선거때마다 대선 후보를 상대로 "가장 존경하는 인물이 누구냐"고 물으면 '링컨'과 함께 거의 빠지지 않고 언급되는 인물이 바로 백범 김구다.

"네 소원이 무엇이냐 하고 하나님께서 물으시면 나는 서슴지 않고, '내 소원은 대한 독립이요.'하고 대답할 것이다. 그 다음 소원은 무엇이냐고 하면 나는 또, '우리나라의 독립이요.'할 것이요, 또 그 다음 소원이 무엇이냐 하는 셋째 번 물음에도 나는 더욱 소리 높여서, '나의 소원은 우리나라 대한의 완전한 자주 독립이요'하고 대답할 것이다. 동포 여러분! 나 김구의 소원은 이것 하나밖에는 없다. 내 과거의 70 평생을 이 소원을 위하여 살아왔고, 현재에도 이 소원 때문에 살고 있고, 미래에도 나는 이 소원을 달하려고 살 것이다." - '나의 소원' 중 일부

1947년 10월 3일 개천절을 맞아 백범 선생이 발표한 이 성명처럼 그는 조국의 독립을 위해 살아온 '대표적인 독립운동가'였으며 자신의 모든 것을 던져 사심없이 조국을 사랑한 인물이었다. 그런데 그런 그가 일제 치하로부터 독립한 제 나라에서 육군 소위 계급장을 달고 있던 안두희로부터 백주대낮에 총격을 받아 서거한 것이다. 이 충격적인 사실을 접한 당시 국민들은 10일에 걸친 장례 기간동안 경교장으로 몰려와 연일 통곡했다.

하지만 백범 선생의 이같은 절통한 죽음만큼 더 참담한 사실은 따로 있었다. 바로 백범 선생을 시해한 육군 소위 안두희를 옹호한 당시 사건 처리 과정에 대한 묻혀진 진실이었다. 그리고 이로 인해 백범 선생의 '진짜 암살자'는 끝내 역사 속에 묻혀진 비밀이 되어 버렸다. 백범 선생을 시해한 안두희가 이승만 정권 하에서 6. 25를 거치며 소위에서 소령으로 진급했고, 이어 군납업체 특혜까지 받아 강원도에서 '두 번째로' 많은 세금을 낸 부자가 되었다는 사실은 그래서 인정하기 '거북한 진실'이 되고 말았다.

백범 기념관 홍소연 실장의 한탄을 접하고 새삼스럽게 내가 깨달은 부끄러움이 바로 이것이었다. 나는 그저 백범 선생 암살에 대해 어느 정도 사건의 전개 과정이라든가 그 저격범 안두희를 안다고만 생각했지 암살 과정에서 드러나지 않은 의혹을 '반드시' 밝혀야 한다는 절박감은 망각하고 있었다. 그것이 안타까운 역사라고 여겼을 뿐 '그것을 우리가 꼭 밝혀야 할 숙제'라고 인식하지 못했다. 

<백범 김구 암살자와 추적자> 표지. 위 사진은 남북연석회의 때 연설하는 김구, 아래 사진은 김구 시해 소식을 듣고 경교장에 몰려든 시민들의 통곡하는 모습을 안두희가 쏜 총알로 경교장 거실 깨진 유리창을 통해 본 것이다.
 <백범 김구 암살자와 추적자> 표지. 위 사진은 남북연석회의 때 연설하는 김구, 아래 사진은 김구 시해 소식을 듣고 경교장에 몰려든 시민들의 통곡하는 모습을 안두희가 쏜 총알로 경교장 거실 깨진 유리창을 통해 본 것이다.
ⓒ 백범기념관, 눈빛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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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던 중 반가운 소식을 접했다.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 활동을 해온 박도 기자가 최근 <백범 김구 암살자와 추적자>(눈빛출판사)를 출간했다는 소식이었다. 그리고 참으로 오랜만에 행복하고 의미있는 주말을 보냈다. 책 <백범 김구 암살자와 추적자>를 읽으며 나는 비로소 나의 부끄러움 앞에 조금이나마 당당해질 수 있음을 느꼈다. 피상적으로만 알고 있었던 백범 김구 선생의 사건에 대해 "무엇이 진실이고 무엇이 감춰진 비밀인가에 대해 말할 수 있게 되었다"고 자부한다.

무엇보다 이 책이 주는 '새로운' 감동에 푹 빠졌다. 그것은 또 다시 '사람에 대한 신뢰'이다. 민족의 지도자인 백범 선생을 빼앗기고도 분노하지 않은 채 살아온 나와 같은 '부족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백범 선생의 진실을 밝히고자 일신의 안락을 던지며 살아온 귀한 분들이 있었음을 알았다는 점이다.

저자 박도는 이 책에서 암살자인 안두희와 일생을 걸고 그를 쫒은 의인 네 명에 대해 상세하게 그렸다. 많은 이들에게 알려진 곽태영, 권중희, 박기서 선생을 비롯하여 이책을 통해 비로소 처음 알게된 김용희라는 위인까지 매우 흥미롭고 감동적인 이야기를 접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러한 네 분의 정의로운 의협심을 통해 지금까지 알려진 백범 선생의 암살 비밀이 이나마 밝혀지고 또한 민족의 정기가 바로 서게 되었음에 알게 되었다. 그리고 이처럼 귀한 인물들이 밝혀낸 귀한 진실을 한권의 책으로 소개해 준 저자 박도 선생 역시 우리 시대의 또 다른 의인이라고 감히 이야기하고 싶다.

1949년 6월 26일의 비밀이 특별한 이유

책을 읽으며 놀라운 우연도 확인했다. 백범 선생과 또 생전 그의 비서 역할을 했었던 장준하 선생의 죽음 사이에 흐르는 묘한 일치점을 확인한 놀라움이었다. 백범 선생의 암살 의혹을 밝히고자 수고한 추적자들의 이야기를 다룬 이 책에서 세상에 숨어버린 안두희를 다시 찾아내는데 가장 큰 역할을 한 권중희 선생을 그려낸 대목이 있다.

1965년 12월 중순, 당시 청년이었던 곽태영으로부터 첫 번째 응징을 받은 후 안두희는 자신의 신분을 철저히 숨기고 도피해 살고 있었다. 그런 안두희를 다시 세상 사람들 앞에 드러낸 일은 1987년 3월 27일이었다. 당시 이를 보도한 <동아일보> 기사의 전문을 보자.

'안두희씨 피습 중상'
3월 27일 낮 1시 10분경 서울 마포구 성산동 마포구청 앞 버스 정류장에서 지난 1949년 백범 김구 선생을 암살했던 안두희(70)씨가 권중희(51)씨로부터 몽둥이로 온몸을 두들겨 맞아 머리가 깨지고 갈비뼈가 부러지는 등 중상을 입고 인근 서부성심 병원에 옮겨져 치료를 받고 있다.

백범 선생의 암살 의혹을 추적한 '의인' 권중희씨는 무려 4년에 걸쳐 집요하게 안두희의 행적을 추적해 마침내 숨어 살던 안두희를 찾아내 응징했다. 그리고 잊고 살았던 안두희를 확인한 세인들은 다시 '잊고 살았던' 백범 선생의 암살 의혹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런데 묘하게도 그 시점이 백범 선생이 시해당한 후 38년이 지난 때였다. 한편 장준하 선생 역시 사후 38년을 맞이하는 올해, 서울대 이정빈 법의학자를 통해 타살 의혹이 세상에 드러났다. 물론 우연이겠지만 이 놀라운 사실 앞에 나는 묘한 전율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이제 이 책을 권하는 마지막 이유를 덧붙인다. 그리고 이것이 어쩌면 저자가 세상에 이 책을 남기는 이유가 아닐까 싶다. 책을 읽는 내내 나는 눈 앞에서 펼쳐진 1949년 6월 26일을 봤다. 그동안 내가 알고 있었던 결론, 그러니까 '안두희가 백범 선생을 시해했다'는 사실만을 알고 있었던 나에게 이 책은 사실을 '넘어' 그날의 숨결마저 그대로 복원하게 만들었다. 그날, 그러니까 백범 선생이 우리를 떠나간 1949년 6월 26일을 전후한 모든 사실들이 생생하게 나에게 다가왔다.

그 '참혹한' 진실 앞에 내 가슴이 너무 아팠다. 그리고 안두희가 백범 선생을 향한 총부리를 막지 못한 우리의 '무능'이 미웠다. 왜 권총을 찬 안두희가 경교장 2층으로 향할 때 '그 총을 내어 놓고 올라가시오'라고 비서들은 말하지 않았나 생각하면 더욱 그랬다. 하지만 그들보다 더 미웠던 것은 안두희가 체포된 후 벌어진 이승만 권력 하에서의 '암살 진실 은폐 행위'였다. 그 은폐 행위가 무엇인지 낱낱이 폭로된 <백범 김구 암살자와 추적자>는 그래서 오늘 우리가 읽어야 할 책이라고 자신있게 권한다.

나는 서재에 꽂힌 이 책을 틈틈이 다시 읽을 생각이다. 그것이 내가 할 수 있는 백범 선생에 대한 '최소한의 도리'라고 믿기 때문이다.

덧붙이는 글 | <백범 김구 암살자와 추적자>(박도 씀 | 눈빛출판사 | 2013.03. | 1만3000원)



백범 김구 암살자와 추적자

박도 지음, 눈빛(2013)


태그:#백범, #박도, #암살 진실, #장준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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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 운동가, 재야인사 장준하 선생 의문사 및 친일 반민족행위자의 재산을 조사하는 조사관 역임, 98년 판문점 김훈 중위 의문사 등 군 사망자의 명예회복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저서- 중정이 기록한 장준하(오마이북), 장준하, 묻지 못한 진실(돌베개), 다시 사람이다(책담) 외 다수. 오마이뉴스 '올해의 뉴스게릴라' 등 다수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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